윤원일
- 1983년생의 인천 유나이티드, 대구 FC, 포항 스틸러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출신 수비수는 윤원일(1983) 항목 참조.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2. 경력
2.1. 제주 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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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K리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입문하였으며, 실력을 인정 받아 박성화 감독이 이끄는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팀에 승선하기도 했으나, 대표팀 전지훈련 도중 왼쪽 발목 부상을 당하고 동시에 2008 시즌 리그 개막을 앞두고 왼쪽 허벅지 부상을 당했으며 또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 도중 '''전방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2009 시즌 가까스로 재활을 마치고 리그 경기에 투입되었지만 또다시 같은 부위가 부상 당하는 악재가 이어졌고, 결국 1년 6개월동안 다시 재활을 해야했다. 그리하여 2011년 가까스로 복귀했지만 경기에 출전하기에는 몸상태는 좋지 못했고, 결국 제주 유나이티드 2군에서 주로 활동하며 주포지션인 중앙 수비수 대신 측면 수비수로 뛰면서 그 해 시즌 5경기에 출전하였다. 이후에도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리며 주전으로 올라서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2.2. 대전 시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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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시즌을 앞두고 대전 시티즌으로 1년 임대되었으며, 대전 시티즌에서는 주전 수비수로서 20경기를 출장하며 8월 4일 성남 일화 천마전에는 자신의 프로 데뷔골을 성공시키도 하였지만, 시즌 종료 후 팀이 K리그 챌린지에 강등되면서 빛이 바랬다. 2013 시즌 종료 후, 원 소속팀인 제주 유나이티드에 복귀하지 않고 대전 시티즌에 완전 이적하였고, 2014 시즌 대전 시티즌의 주장으로 선임하였는데, '''이는 신의 한수였다.'''
대전 시티즌의 중앙 수비의 중심으로 활약하면서 K리그 챌린지 최고의 센터백으로 거듭났으며, 주장으로서 팀의 분위기를 다잡았고 선수단을 응집시켰으며, 대전 시티즌의 '''K리그 챌린지 우승과 승격'''을 이끌었지만 시즌 막판 부상으로 또다시 고전해야만 했다.[2]
2015 시즌에도 윤원일은 주장직을 유지했으며, 시즌 전 인터뷰에서 자존심을 걸고 같은 승격팀인 광주 FC와 수원 삼성, 자신의 친정팀인 제주는 꼭 이기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원일의 다짐과는 다르게 광주와의 홈개막전에서 대전은 무기력하게 2:0으로 패했으며, 추가로 고질적인 부상이 다시 재발하면서[3] 2015 시즌 개막 후 리그 3경기만에 시즌 아웃되고 말았으며,[4] 대전 시티즌의 재강등을 지켜봐야만 했다.
애초에 2015시즌을 앞두고 대전이 선수단을 거의 재창단 수준으로 싹 갈아 엎어버렸기 때문에 윤원일이 주장으로서 오로지 자신의 능력 및 역량만을 가지고 2014년과 같은 선수단 응집을 그것도 단기간에 펼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이였다.
결국 부상이 회복될 가망이 없는 것을 알고 '''2015 시즌을 끝으로 다소 이른 나이인 29세 나이에 은퇴를 선언해''' 대전 시티즌 팬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으며, 은퇴를 하면서 자신은 결코 부상에 지지 않았다고 말하며 대전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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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 대전 시절 자신의 스승이였던 윤균상 코치와 함께 울산대학교 축구부의 코치로 취임해 유상철 감독을 보좌하기 시작했으며, 2017년 현대고등학교의 코치로 부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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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윤균상 코치가 감독으로 새로 부임한 신생팀인 K3리그 울산시민축구단의 코치로 부임했으며, 울산의 창단 첫해 K3리그 베이직 우승에 공헌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전술 이해도가 높은 선수로 여러 포지션을 수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선수였고, 수비 상황에서 안정감이 높은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현역 선수 생활 내내 따라다닌 부상으로 제대로 된 성장의 시기를 잡지 못하고 말았다.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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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친 팔로도 팬에게 싸인을 해주는 팬서비스가 좋은 선수였다.
- 대전 시티즌 입단 후, 팀의 강등과 승격을 모두 경험해 보기도 하였으며, 대전 시티즌의 두번의 강등을 모두 경험하기도 하였다.
[1] 2013시즌에는 임대로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였으나, 2014년 대전 시티즌에 완전 이적했다.[2] 시즌 막판 윤원일이 출전하지 못한 경기에는 김은중이 주장 완장을 달고 출전했었다.[3] 회복 확률이 10%정도 된다고 했다.[4] 윤원일을 대신해 안상현이 대신 주장직을 수행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