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FC/일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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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화 천마 프로축구단 2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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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2차례의 3연패(1993~1995, 2001~2003) 포함 7회 우승한 당시 리그 최다 우승팀이었으나 축구에 애착을 보였던 구단주의 사망으로 위기를 겪은 끝에 2013년 겨울 성남시에 인수되었다.
모기업(주식회사 일화)의 대표 상품 맥콜이 새겨진 유니폼은 '''한 때''' 선수 이름 대신 상표명을 표기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맥콜 팀의 삼정톤 선수 참 잘한다"'''는 드립이 이 무렵에 나온 말. 상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 그 외에도 삼정톤, 고려인삼 등 난감한 스폰서가 많았다.
여느 구단보다 압도적인 우승 횟수에도 관중이 터무니 없이 적었다. 동대문운동장과 성남종합운동장을 쓸 때는 그럭저럭 수가 되었으나, 오룡종합운동장과 탄천종합운동장에서는… 물론 옛날엔 집계가 엉망이라서 정확하진 않지만, 그래도 꽤 많이 왔다. 이러한 저조한 인기는 무엇보다 구단의 성의없는 마케팅에 기인했고, 천안 정착 실패와 성남시의 제의로 연고지를 성남으로 옮겼으나 성남의 개신교 신자 비율과 성남 개신교 신자들의 반대로 오라고 했던 성남시마저 말을 바꾸는 등 천안보다 연고 정착에 더 실패하며 성남 시절 리그 3연패+1회 우승에도 불구하고 비인기팀으로 전략했다.
2. 시즌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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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사
3.1. 일화 천마
당시 성적은 이곳 참조.
1989년 서울특별시 강북 지역을 연고지로, 동대문운동장을 홈 경기장으로 출범했다.
창단부터 월드컵 유치에 이바지하겠다며 서울에 15만명 규모의 축구 전용 경기장을 건립하겠다는 등 막대한 투자를 예고했고 박종환 감독 선임과 창단 특혜로 신인 선수 지명권을 받고 유공에서 김용세를 영입하는 등 팀을 만들어나갔다. 소련 리그에서 올해의 골키퍼에 선정되기도 한 '''발레리 사리체프'''(귀화명 신의손)와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 출신 신태용과 이태홍을 영입하면서 점점 운이 트이기 시작했고, 팀내 간판이었던 '적토마' 고정운, '팽이' 이상윤 등의 활약까지 합쳐서 1993년부터 1995년까지 리그 최초 '''3시즌 연속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최초 3연패 달성 기념 신문광고
특히 신의손은 너무 뛰어난 활약을 펼쳐 다른 팀들도 골키퍼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게 되자 국내 골키퍼들의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겨[3] 골키퍼 포지션의 외국인 선수는 금지되었다.
3.2. 천안 일화 천마
성적
일화는 프로축구 출범 후 최초로 서울'''만을''' 연고로 한 구단이었는데[4] , 1996 시즌 개막을 앞두고 서울 연고의 다른 두 팀과 함께 연고지 이전을 하게 되었고 일화는 선문대학교 및 일화의 청주 공장 등 통일교 기반이 있는 충청남도 천안시를 선택한다.
경기장은 천안오룡경기장으로, 이 경기장은 조명탑이 없어서 해가 지고 나면 경기 진행이 불가능하여 제비뽑기를 시행할만큼 시설이 매우 열악했던 구장이다. 이 때문에, 천안시는 일화의 유치를 위해서 오룡경기장을 축구전용구장으로 전환할 것까지 약속한 상태였다.#
하지만 동대문 때와 달리 구단 성적이 전혀 나오질 않는 상태[5] 에 경기장의 문제점이 워낙 커서, 구단 수뇌부는 반전의 기회를 노리며 연고 이전의 불씨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천안시는 오룡경기장의 부실한 시설을 개선하는 대신 1998년 12월에 천안오룡경기장을 대신할 천안공설운동장 착공식을 치르고 공사에 들어갔으나, 이미 축구전용구장 약속을 믿고 있다가 통수를 맞은 일화 측은 천안시를 믿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연고이전의 주된 원인은 인프라 문제였지만, 천안시에 대한 일화의 신뢰 상실도 부차적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천안시는 이에 대해 천안오룡경기장 대신 천안종합운동장이 공사에 들어가 착공될 예정이니 기다려 달라고 요청했으며, 거기에 덧붙여 다음 해 조명탑 설치를 위한 예산을 편성한 상태라고 밝히며 일화를 잡기 위해 뒤늦은 노력을 했으나 이미 일화의 마음을 되돌리기엔 늦어버렸다. 참고로 오룡경기장은 천안시의 약속과는 달리 2009년 철거할 때까지 끝내 조명탑이 설치되지 않았다. 일화 유치 때 전용구장 리모델링 약속처럼, 조명탑 설치 예산편성 역시 천안시측에서 급한 마음에 공수표를 던진 것이 아닌가 추측되는 부분.
후일담이지만 천안종합운동장은 뒤늦게 2001년 9월에야 개장식을 치렀고 그 해 전국체전을 개최한다. 당장 정상적인 시즌일정 진행이 불가능한[6] 경기장을 2시즌 가까이 더 쓰면서 참아달라는 천안시 측의 요청은 무리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 최신식 시설의 천안종합운동장이 건설중으로 조금만 기다리면 최신식 시설을 가질 수 있었다는 비판도 있으나 해당 문서에 보이듯이 천안종합운동장은 조금만 기다리면 되기는 커녕 일화가 떠난 한참 후인 2001년 7월에야 완공되었다. 게다가 천안시는 오룡경기장을 축구전용구장으로 리모델링 해주겠다는 약속도 파기했기 때문에(2009년 철거) 이미 일화의 신뢰를 상실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그 요청의 주체가 이미 한 번 통수를 쳤고, 게다가 지난 4시즌간 구단이 불편을 감내하는 동안 경기장 시설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방관하기만 했다. 거기다, 결정적인 원인은 천안시가 기독교의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에 사이비 종교 취급받는 통일교 산하의 일화 천마는 계속 천대를 받고 있었다. 물론, 성남으로 연고이전을 했어도 이 문제는 마찬가지이긴 했다.
한편, 일화 축구단의 연고이전 계획이 대외로 알려지자 강릉시와 대구광역시가 유치 의사를 표명했다. /연합뉴스/프로축구 일화, 강릉으로 이전할 듯.
3.3. 성남 일화 천마
천안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판단한 구단은 2000시즌 부터[8] 조명탑이 갖춰진 성남종합운동장이 있는 성남시로 연고지를 옮겨 경기를 치뤘다.[9] 당시에는 그냥저냥 묻혔지만 이후 다른 연고이전 구단들이 각각 북패, 남패라는 별명을 얻자 성남 역시 연고이전 비판의 대상이 되어 '''중패'''라는 별명을 뒤늦게 얻게 된다.
다만 성남의 입장에서는 천안에서 남고 싶었지만 경기장 조명탑 설치 문제부터 시작해서 전용구장이나 클럽하우스 건설 좌절 등, 대놓고 홀대하는 태도와 무관심한 것에 폭발하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니 반쯤 쫒겨난 상황이나 마찬가지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호해주는 경우도 있다.[10]
이후 2001 시즌부터 2003 시즌까지 차경복 감독의 지휘 아래 '''다시 3년 연속 리그 우승'''을 이룩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특히 2003년 K리그 역사상 단일시즌 최다골(28개)을 기록했던 득점왕인 김도훈을 포함한 여러 선수들을 현질하기 시작했다. K리그 골수팬들 사이에서는 2003년의 성남 일화 천마를 K리그 역대 최강 스쿼드 중 하나로 꼽는다.
그러나 2004년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원정의 불리함을 딛고 3-1로 이기고 와서 우승을 확신했던 홈 2차전에서 상대팀에 완파(0-5)당하며 합계 3-6으로 준우승, 차경복 감독이 사임하며 김학범이 후임 감독으로 부임했다.
2006년에 K리그 최초로 7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위업을 이루었지만, 2007 시즌에는 리그 1위를 하고도 플레이오프에서 포항에 지는 바람에 안습하게도 우승을 빼앗겼다. 그 사이 다른 대회에서는 죄다 미끄러졌고...
신태용 감독이 맡은 2010년, 우여곡절 끝에 AFC 챔피언스 리그를 2번째로 제패하는데 성공했으나, 리그 및 컵 대회에선 죽을 쑤었다.
2011년 숙적 수원을 꺾고 FA컵을 두 번째로 들어올려 이를 바탕으로 문선명이 상당히 많은 투자를 했으나 이듬해 성적은 의미없는 홍콩 챌린지컵 우승에 ACL 16강이 고작이었고 팀 내분도 심해서 신태용 감독이 사퇴하고 많은 선수가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2013년엔 부랴부랴 부산의 안익수 감독을 데려와 성적은 전남과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B스플릿 1위(클래식 내 8위)를 달성했다.
다만, 이런 기록들과는 다르게 '''처절할 정도로 인기가 없었는데''', 2012년 어린이날을 맞아 돌(Dole) 코리아에서 탄천 구장을 방문하는 관객 5,000 명에게 선착순으로 과일을 증정하는 행사를 했는데, 이날 관객수는 4,543명[11] 이 온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다른 팀 팬들에게 인기없는 일화가 자꾸 우승해서 리그의 인기가 떨어진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KBO 리그로 치면 현대 유니콘스와 상황이 비슷했는데 현대는 대놓고 서울로 갈거라고 표명하며 당시 4번의 우승으로 최강팀 반열에 올랐음에도 수원시에서의 인기는 개차반이었다. 일화 천마는 통일교 재단의 구단이라서 개신교 영향력이 강한 성남시가 개신교 신자들 눈치를 보느라 무관심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주경기장이던 탄천종합경기장의 관리가 전혀 안돼서 상대팀의 원성이 자자했고,[12] 서포터가 워낙에 강성이라 상대팀 서포터즈와의 불화도 많았다.
4. 문선명(통일교)과 일화 천마
구단 이름과는 달리, 음료회사 일화는 사실상 모기업이 아니었다. 구단 법인명은 (주)통일스포츠로, 이는 일화와 같이 통일교(통일그룹)의 자회사다.(^v 고리를 봤다면 알 것이다.)
성남이 통일교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특정 종교단체들에게 비난을 당하는 원인이 되었다. 천안시 시절에도 종교색 문제로 홀대받았었지만, 특히 일화 천마가 천안시에서 성남시로 연고이전을 했을 때 성남은 개신교 신자 비율이 많은 도시였고 당연히 성남시 내 여러 교회에서 반대 성명을 냈었다. 게다가 당시 김병량 성남시장이 분당신도시의 모 대형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던지라 교계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성남 일화 천마는 소속 선수 및 스태프들에게 어떠한 종교 행위도 강요하지 않았으며 구단 내에도 통일교도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신교 구단인 안산 할렐루야야말로 종교 구단스러운 면모를 보였던 바가 있으니 성남 일화 천마를 향한 맹목적 비난은 참 우스운 자기 얼굴의 침 뱉기다.
실제로 2000년 초반 성남을 비난하면서 안산 할렐루야를 K리그로 진출을 시킨다는 개신교계 움직임에 당시 유니텔이나 넷츠고, 하이텔, 나우누리 축구 게시판에선 그야말로 가루가 되도록 까이면서 개신교계만 온갖 쌍욕이나 쳐먹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스러운 태도를 보였으니 당연한거다.
그렇다고 통일교 색깔이 전혀 없는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당시 구단 엠블럼에 원형 테두리의 좌우 양쪽에 새겨진 부등호 표시 같은 것은 통일교 로고에서 따온 것이다. 이 표시는 성남 엠블럼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통일교 계열 여러 단체의 로고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것이긴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통일교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저것이 통일교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또한 통일교라는 실질적인 모기업에서 운영하는 팀인 만큼 모기업의 상징이 들어간 것이고 이게 문제가 된다면 기업구단의 엠블럼에 들어가는 모기업 로고나 시민구단의 연고도시 심벌이 들어가는 것 또한 문제라는 얘기가 된다. 일화 천마가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대놓고 통일교 색체를 표하며 포교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나중에 등장한 고양 Hi FC만 봐도 알 수 있는 차이점이다.
주요 경기에 교인들이 단체 관람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2003년 일본에서 벌어진 A3 챔피언스컵에는 일본 내의 통일교 신자들이 대거 동원되어서 일본 J리그 클럽에 맞서는 성남을 응원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또한, 통일교에서 주최하는 피스컵에는 영구진출권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2010년 도쿄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vs 조바한)에는 총 2만여 관중이 왔는데, 경기장에는 노란 물결이 넘실거렸다(이 사람들이 다 한국에서 간 성남팬 또는 우리나라 팀이라 응원나온 교포일 리는 없으니, 일본 통일교 신자가 그만큼 왔다는 것).
반면, 선수들이 골 세리머니 등에서 종교 의식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구성원 각자의 종교에 대한 아무런 제약도 없다. 잘 알려져 있듯이 신태용은 독실한 불교 신자이며,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이 골넣고 기도 세리머니 하는 것도 유명하다. 축구단이 종교와 관련되어도 좋은가에 대한 판단은 스스로 하도록 하자. 참고로 종교적인 축구 클럽이면서 분쟁 더비가 유명한 클럽이 SPL의 셀틱 FC와 레인저스 FC로 이들의 맞대결을 올드펌 더비라고 한다.(# 참조)[13][14][15]
여담으로 2012년 10월 K리그 이사회에서 연고지를 고양시로 옮긴 안산 H FC(할렐루야)가 고양 Hi FC라는 이름으로 2013 시즌 K리그 2부리그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한국판 올드펌'''(...)이 펼쳐질 것으로 보였으나, 이후 성남이 시민구단으로 변화하면서 없던 일이 됐고 기독교 계열 이랜드그룹의 서울 이랜드 FC가 창설되면서, 2015년부터 챌린지에서 고양 HI FC와의 개신교 종교 더비가 이뤄지게 되었다.[16]
팬들 중 통일교인이 아닌 팬들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통일교도인 팬들도 어느 정도 있는 모양이다. 특히 공식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일반 팬들의 활동이 뜸한 비시즌에 문선명을 디스하는 발언을 했다가는 집중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4.1. 문선명의 사망, 일화 천마의 해체
2012년 9월 통일교 교주 문선명이 사망함으로써 성남 일화 구단에 대해 미칠 영향에 대해 많은 K리그 팬들이 우려를 했다. 축구에 애정을 쏟았던 문선명과는 달리, 부인인 한학자와 통일그룹 실권을 쥔 4남 문국진은 축구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문선명 와병 이후 축구단 운영에서 손을 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K리그 팬들 사이에서 돌기도 했다. 통일그룹은 문어발식으로 수익성 없는 사업에 돈을 많이 소모하는 바람에 긴축경영이 필요하게 된 상황에다 문선명 외 나머지 가족들은 별 애착도 없었던 축구단에서 손을 뗄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실제로 문선명 사망 이후에 축구팬들이 걱정한대로 영 좋지 않은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2012년 10월에 WK리그에 참가하고 있던 충남 일화 천마가 해체되고[17] , 피스컵/피스퀸컵이 폐지되면서 성남 일화마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게 아니냐는 우려섞인 이야기가 나왔다. 통일교가 보유하던 브라질 축구팀도 해체했다.
한편, 일화가 축구판에서 손을 떼게 되면 다른 기업이 인수하거나 성남-분당에서 발벗고 나서서 시민구단으로 재탄생시키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K리그 팬들 사이에서 있었다. 그런데 성남시 내에서는 시민축구단 창단 모임이 성남 일화 위기설이 일어나기 한참 전에 발족됐고, 거기에 성남시의 재정난이 어느정도 진정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이재명 시장이 해체된 성남시청 소속 체육팀을 재창단하며 축구단도 만들겠다는 얘기를 하면서 실제로 그 논의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
이후 일화가 (축구계에서) 일화가 축구단 정리 수순을 밟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고, 성남시에서 2013년 6월까지 시민구단 창단 타당성 연구용역을 실시하기로 했지만, 성남시 측에서는 2014년쯤에나 창단 혹은 구단 인수가 가능한 것으로 나왔으나 성남시 측에서는 이러한 용역 결과를 공개하지 않아 투명성에 문제가 있는걸로 의심이 점차 확산 중이다. 이 쯤 되면 일화 축구단의 존속 여부가 불투명해질 정도다.
그러던 2013년 8월 23일 자정 무렵, 인터넷 중앙일보에서 일화 축구단이 안산시로 연고를 이전한다는 기사가 떴다. 단순한 연고 이전이 아닌 안산에 팀을 '''매각'''하는 형식으로 논의했다. 그런데 9월 들어 일화와 안산시 간의 인수협상이 지지부진해지고 동시에 천마불사 등 성남 팬을 비롯한 K리그 팬, 성남 지역 스포츠 관계자가 성남 사수 운동을 벌이고 이에 지역 국회의원과 시의회가 동조하고 나서자 다시 성남시 측에서 일화 축구단 인수를 검토하기 시작했고 결국 2013년 10월 2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일화 축구단 인수 및 시민구단화를 발표했다. 그리고 안산시는 경찰 축구단을 받아 운영하다가 안산 무궁화가 아산으로 이전한 후 2017년 2월 21일 결국 안산 그리너스 FC를 창단했다.
5. 관련 문서
[1] K리그1 최초 3연패 기록과 재차 3연패의 2회 3연패 기록을 갖고있다. 1993, 1994, 1995 시즌 우승은 서울 연고 시절 우승이고, 2001, 2002, 2003 시즌 우승은 성남 연고 우승이다.[2] 전신인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 횟수 포함.[3] 지금 프리미어 리그보면 왜 그랬는지 알 듯.[4] 유공은 서울, 경기 인천 전체를 연고로 삼았다.[5] 1999년의 FA컵 우승이 최고 성적[6] 춘추제로 진행되는 K리그 일정과 한국의 여름기후를 고려할 때 야간경기는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7] 처음에 쓴 것은 이것. [image][8] 연고이전일은 1999년 12월 27일[9] 탄천종합운동장은 연고이전 당시 완공되지 않은 상태였다.[10] 그리고 1년 후 성남을 연고로 하는 여자농구팀이 성남에서 천안으로 정 반대로 연고이전을 하게 된다.[11] 그나마도 이 4000여명이 개막식 이후 최대 관중이었다.[12] 수원 삼성의 윤성효 감독은 성남과의 경기에서 패배한 이유를 경기장의 잔디를 첫번째로 꼽았다가 윤잔디라는 별명을 얻었다.[13] 애초에 축구 클럽에는 종교가 깊이 개입되어 있었다. 유럽에서 축구팀 창단 중 가장 큰 가지의 갈래는 교회 및 마스지드(-이슬람 성원-터키같은 경우), 학교, 군대, 노동자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제의 노동자팀이 어릴 적 팬이던 부자에게 인수를 당해서 오늘의 갑부팀이 되기도 하는 축구판에서 이러한 종교팀이 창단 당시의 주지를 지켜서 모두 종교적 구단으로 남은 것도 아니다.[14] 당장 '유나이티드 팀명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많은 팀들끼리 이합집산 하던 것'이 유럽의 축구판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저런 사정상 종교색이 빠진 구단도 많다.(있어보인다는 이유로 쓰는 구단이 많기 때문에 잘 와닿지 않을 수 있다. 맨유가 대표적이다.)[15] 반면, 상술된 셀틱이나 레인저스가 그렇듯이 종교색이 굳어버린 곳도 많다. 우리나라도 일화 말고도 할렐루야 같은 팀도 있고, 지엽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허다한 게 종교 축구팀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남 일화는 창단이 된지 이제야 20년이 약간 넘은 구단으로, K리그에서야 고참이지만 세계적으로 본다면 풋사과에 불과하다. 유럽 쪽은 워낙에 100년 넘은 구단이 허다하여 자랑거리도 못 된다. 결국 이 팀의 종교색에 대한 판단은 개개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16] 다만 이랜드는 어디까지나 기업구단이라 종교 더비라고 볼 수는 없고 2016년을 끝으로 고양 Hi FC가 탈퇴했고 성남이 강등되면서 성남과 서울 이랜드 FC에 탄천이 끼고 있으니 탄천 더비가 형성되었다.[17] 여기 선수들은 남은 팀에 배분되었기 때문에, 강제 입대하거나 결국 은퇴하고 만 선수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