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縱(? ~
기원전 117년)
전한의 정치가이다. 젊은 시절엔 도적질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그의 형 의후(義姁)가 당시 황태후였던 효경황후의
태의가 되었는데, 의후의 실력을 높이 샀는지 의종의 행실이 별로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도 효경황후가 아들
한무제에게 의종을 관료로 임명하라고 말했고 이 때문에 의종은 상당군의 현령이 되었다.
그는 일처리를 잘해 유능하다고 평가받아 승승장구해, 수도
장안을 관활하는 직책인 우내사(右內史)가 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117년, 한무제는 병에 걸렸다가 나은 후 갑자기 감천궁(甘泉宮)에 갔는데 길이 정비되어 있지 않자 다시는 자신이 이 길을 지나가지 못할 거라고 의종이 생각(=병으로 죽을 거라고 생각)해 정비하지 않은 거라 생각해 괘씸하게 여겼다.
몇달 후, 의종은 고민령(告緡令)
[1] 기원전 114년에 한무제가 재산을 은닉하여 세금을 포탈한 상인들을 적발해 세금으로 추징하라고 내린 법령.
의 감독을 맡은 양가(楊可)가 백성들을 혼란에 빠뜨린다며 양가의 사자를 체포했다. 그러자 한무제는 두식(杜式)에게 의종의 죄를 다스리라고 했고, 두식은 의종이 조서를 어겼다고 했다. 이에 의종은 처형당했다.
2. 묘호
의종은 동아시아 제왕의 묘호 중 하나이다.
성명
| 묘호
| 시호
| 재위기간
| 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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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현(王晛)
| 고려의종(高麗毅宗)
| 강과장효대왕 (剛果莊孝大王)
| 1146~1170
| 18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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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조(李諒祚)[2] 소영제 이영령량조 또는 이양조. 하경종과 원장황후 몰장씨의 소생.
| 서하의종(西夏毅宗)
| 소영황제 (昭英皇帝)
| 1048~1067
| 2대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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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검(朱由檢)[3] 그렇게 긍정적인 묘호는 아니지만 말제치고는 괜찮다. 처음에 남명 정권이 사종(思宗)이란 묘호를 올렸다가 다시 고친 것이다. 청나라 조정에서 올린 시호는 회종(懷宗).
| 명의종(明毅宗)
| 순천수도경검관문양무체인치효장렬민황제 (順天受道敬儉寬文襄武體仁致孝莊烈愍皇帝)
| 1627~1644
| 16대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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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묘호
| 시호
| 재위기간
| 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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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최(李漼)
| 당의종(唐懿宗)
| 소성공혜효황제 (昭聖恭惠孝皇帝)
| 859~873
| 17대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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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신(黎維祳)
| 후여의종(後黎懿宗)
| 온가장숙계서명민관홍연예휘황제 (溫嘉莊肅啓瑞明愍寬洪淵睿徽皇帝)
| 1735 ~ 1740
| 25대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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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묘호
| 시호
| 재위기간
| 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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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李弘)
| 당의종(唐義宗)
| 효경황제 (孝敬皇帝)
| -
| 당중종 추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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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율배(耶律倍)[4] 요나라 초대 황제 태조 야율아보기의 장남이자 요세종의 아버지. 동란국의 군주로 요세종이 추숭했다.
| 요의종(遼義宗)
| 문헌흠의황제 (文獻欽義皇帝)
| -
| 요세종 추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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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안수서(完顔守緒)
| 금의종(金義宗)
| 경천덕운충문정무천성렬효장황제 (敬天德運忠文靖武天聖烈孝莊皇帝)
| 1224 ~ 1234
| 10대 황제 이칭 애종(哀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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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해(朱以海)
| 남명의종(南明義宗)
| 시천제도공화양정헌문경무명덕숙인성황제 (侍天制道恭和襄定獻文敬武明德肅仁成皇帝)
| 1645~1655
| 남명의 감국 (비정통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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