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 vs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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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대호와 김태균의 라이벌리를 다룬 문서.
2. 상세
신기한 것 중에 하나는, 라이벌 구도이자 친구 사이인 이대호와 김태균이 사이클이 같은 때가 거의 없다는 것. 이대호가 절정의 타격감과 장타력을 보일 때 치고 올라갈 김태균이 볼넷만 고르다가 김멀뚱이 되거나, 김태균이 알버트 푸홀스 모드 발동하여 스탯을 쌓고 있을 때 이대호는 치라는 홈런은 못 치고 안타나 똑딱거린다던지… 이는 두 선수의 커리어 전체를 봐도 그렇게 보일 정도.
3. 이대호와 김태균의 연도별 비교
3.1. 2001년: 김태균 압도
김태균이 고졸 신인으로 4번 타자까지 맡으며 삼성전 데뷔 첫 안타를 홈런으로 만드는 등 활약해 시즌 종료 후 규정타석은 미달이지만 3할과 20홈런을 치며 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신인왕을 차지했다. 이대호는 막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시점이었고, 시즌 막판 1군에 등록되어 간신히 나왔다.[6]
3.2. 2002년: 이대호 우위
김태균이 라식수술 후유증과 소포모어 징크스가 겹쳤고 3루와 1루를 번갈아가며 수비해 타율이 .255까지 떨어지며 허우적댈 동안 이대호는 어떻게든 나와서 0.278에 8홈런을 치면서 가능성을 보였다.
3.3. 2003~2005년: 김태균 압도
롯데 팬이라면 치를 떨 백인천 때문에 이대호는 무릎 부상을 당해 그 후유증으로 인해 2003년 타율 0.243에 그쳤고 이후 양상문 감독이 부임하며 어찌어찌 기회를 잡으며 두 자릿수 홈런 이상을 기록했으나 여전히 타율은 2할 초중반대를 오가는 등 공갈포 기질을 보이며 양상문의 양아들이냐며 욕을 먹은 반면, 김태균은 3년 연속 타율 3할대, 출루율 4할대, 장타율 5할대에 각각 31, 23, 23홈런으로 맹활약하고 2005년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받았다. 다만 이대호도 2004, 2005년 20홈런 이상을 쳐주며 가능성을 보여준 시기.
3.4. 2006~2007년: 이대호 압도
독하게 단련하고 나타난 이대호가 2006년 트리플 크라운#s-2.1을 포함해 3할 3푼대의 맹타를 휘두르는 동안 김태균은 2할 9푼으로 타율이 떨어지고 홈런도 반토막이 났다.[7] 그러나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나간 것은 김태균이었고,[8] 그 덕분에 김태균은 병역 혜택을 먼저 받게 되었다. 다만 이대호는 2006년 시즌 종료 후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나갔으나 대표팀은 도하 참사로 인해 동메달에 그쳤고, 이로 인해 이대호는 점점 병역 문제에 대한 압박을 받기 시작한다.
3.5. 2008년: 김태균 우위
초반 타점머신으로 군림했지만 여름부터 축 처진 이대호에 비해 김태균은 그해 홈런왕에 오른데다가 도루, 최다안타 빼고 다 5위 안에 들어갈 맹활약으로 다시금 이대호를 제꼈다. 하지만 중요 이벤트였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이대호가 맹타를 휘두를 동안 김태균은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고 집에 있었다.[9] 그도 이 때의 올림픽 금메달로 병역 면제 획득.
3.6. 2009년: 이대호 우위
이대호가 제리 로이스터감독의 지시로 3루에 들어가면서 수비로 고생하고 손바닥 부상까지 찾아오면서 3할을 못 치는 동안, 김태균은 2008년 겨울 푹 쉬고 FA로이드까지 마시며 2009 WBC를 폭격하고 3할 3푼의 타율로 시즌을 마감한 뒤 지바 롯데와 3년 7억 엔이라는 대형 계약까지 맺으며 일본 진출에 성공했다. 다만 이대호는 김태균과 다르게 100타점을 달성했고 김태균은 시즌 초 뇌진탕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를 결장했다.
3.7. 2010년: 비교논외[10]
이대호가 KBO를 폭격하며 '''타격 7관왕'''에 등극하는 등 한국에서 돼마왕이 된 동안 김태균은 일본 데뷔 첫해부터 20홈런을 넘기긴 했으나 후반기로 갈수록 체력 부침이 심해지며 2할 초중반대 타율과 삼진 2위, 병살 1위에 득점권 타율 꼴찌라는 부진한 모습으로 시즌을 마감. 하지만 일본시리즈에서 우승을 하면서 팀 성적 면에는 김태균이 웃게되었다.
3.8. 2011년: 이대호 우위
이대호는 이번에도 타격 분야 3관왕에[11] 올랐고 시즌 후 오릭스와 2년 7억 엔이라는 대박 계약을 터뜨리며 일본으로 건너간 대신 김태균은 동일본 대지진 여파와 부상 등으로 인해 얼마 안 되어 2군으로 사라졌고 시즌 중 대지진으로 인한 두려움에 의해 퇴단을 선언, 귀국해 친정 팀 한화에 복귀했다.
3.9. 2012년: 비교논외[12]
반대로 이대호가 일본에서 투신타저에 고생하는 동안 한국으로 돌아온 김태균은 4할 5푼을 쳤다. 그러나 6월, 이대호가 타점 1위에 등극하는 등 날아다니는 동안 김태균은 부상과 극악의 빠따질로 타율과 출장경기 수가 같이 떨어졌다. 또 이대호가 잘하다가 8월 극심한 부진에 빠지는 동안 김태균은 4할을 유지하며 4할타자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나 이대호가 부활하자 김태균의 타율은 .365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시즌이 끝나고 이대호는 일본 타점왕을, 김태균은 투고타저 시즌에 고타율로 한국 타격왕과 출루왕을 차지한 것을 보면 결과적으로는 둘 다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던 시즌으로 볼 수 있겠다.
3.10. 2013년: 이대호 우위
이대호는 전년도에 비해 홈런과 타점은 그대로였으나 타율은 3할로 마무리하며 시즌 후 소프트뱅크와 3년 20억 엔이라는 대박 계약을 터뜨린 반면, 김태균은 부상과 부진 등으로 인해 팀과 본인의 안습한 사정을 버텨내지 못하며 겨우 10 홈런을 치면서 장타력이 하락. 다만 출루율 1위 OPS 4위를 기록하며 최정상 타자임은 확인 했다.
3.11. 2014년: 비교논외[13]
이대호가 많은 기대속에서 소프트뱅크로 이적하였고 세자릿수 안타와 타율 3할을 기록하였지만, 그래도 까이는 동안 김태균은 비록 리그 자체가 타고투저의 성격이 강하다고는 하나 타격왕 경쟁까지 하면서 상당히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둘의 평행이론은 비단 타격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었는데, 이대호의 경우 FA 신청으로 오릭스팬들과 소뱅팬들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국내에서도 온갖 비아냥[14] 을 당하면서 팬심이 조금씩 등을 돌리고 있는데 반해서,[15] 김태균은 비록 한화 한정이긴 하지만 적어도 홈팀 팬들의 지지를 다시 얻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팀 성적은 또 반대로 소프트뱅크는 우승했고 한화는 꼴등했다. 이쯤 되면 평행이론 수준. 김태균은 타율2위 출루율 1위. 이대호는 일본 퍼시픽리그 타율 6위 장타율 9위 OPS 10위.
3.12. 2015년: 비교논외[16]
이대호는 퍼시픽리그 OPS 4위(0.892)를 기록했다. 김태균은 출루율 2위, OPS 5위. 아무래도 2015년에는 평행이론이 폐기될 줄 알았는데 이대호가 플레이오프에서 맹타를 휘두르며 일본시리즈 MVP와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고 시즌 후 열린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까지 가장 극적인 장면에서의 맹타를 휘둘렀다. 김태균은 한화가 여전히 못해서 가을 야구를 꿈꿀수도 없었다.
3.13. 2016년: 비교논외[17]
이대호는 스플릿 계약에서 경쟁자들을 뚫고 메이저리거가 된 한편 김태균은 초반에 4년 84억이라는 대형 FA 계약을 맺고도 수비와 타격 모두 최악으로 떨어져 많은 욕을 먹었다. 하지만 5월을 기점으로 이대호는 플래툰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10홈런을 기록하고, 김태균은 장효조를 넘어 통산 출루율 1위에 등극하는 등 올해도 평행이론이 통하지 않는 듯 하다가 이대호가 후반기에 가며 죽을 쑤며 마이너리그까지 떨어졌던 반면 김태균은 타율 2위, 출루율 1위 OPS 3위의 호성적을 기록하고 한 시즌 300출루라는 대기록까지 덤으로 세웠다. 참고로 이대호의 메이저 최종성적은 WAR 0.3 평범한 1군 백업이었다.[18][19]
3.14. 2017년: 이대호 소폭 우위
이대호가 롯데로 4년 150억이라는 파격적 계약을 맺고 한국의 롯데로 돌아오면서 다시금 라이벌 관계가 주목받고 있다. 이후 고척돔 참사에서 클린업을 맡아서 시원하게 말아먹었고, 시즌 초반에는 이대호는 4할 이상을 쳐대며 타격 부문 선두권에 오르고, 김태균은 연속 경기 출루 신기록을 86경기까지 갱신하는데 성공하며 오랜만에 두 선수가 다 잘하는 싸이클이 일치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6월 이후 이대호는 찬스마다 삼진 혹은 병살타를 치며 욕을 먹었고, 김태균 역시 출루 기록이 끊기자마자 슬럼프에 빠져버리며 친구답게 서로 똑같이 누가누가 못하나 대결하며 나쁜 쪽으로도 싸이클이 일치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대호는 30홈런 100타점을 기록했는데, 김태균은 복사근 부상으로 이탈하며 평행이론을 다시 입증 중이다. 최종성적은 김태균은 wRC+ 142.9 이대호는 132.2를 기록. 다만 이대호는 142경기, 김태균은 94경기 출장에 그쳤다.
3.15. 2018년: 이대호 압도
이대호가 역대급 최악의 스타트를 기록할동안 김태균은 나름대로 괜찮게 활약 중이었다. 이대호가 올라오고 김태균은 큰 하락 없이 꾸준히 스탯을 쌓고 있었으나... 이대호가 미친듯이 타점을 쌓을 동안 김태균은 미친듯이 부상이나 쌓았다(...). 김태균이 부상에 계속 허덕일동안 이대호는 4번 타자의 면모를 톡톡히 보여줬다. 정작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은 한화 이글스. 포스트시즌에서는 김태균이 준플레이오프 3차전 결승타를 치며 3차전 MVP가 된 반면에 롯데는 정규시즌에 포스트시즌 탈락했다.
3.16. 2019년: 김태균 소폭 우위
언제까지나 잘할 줄 알았던 이대호마저도 에이징 커브와 공인구 직격탄을 맞으며 부진하였고, 김태균은 장타율이 3할 후반대에 불구하고 홈런이 6개에 그칠 정도로 더 부진했지만 시즌 후반에 규정 타석에 진입하면서 3할을 기록하였고 볼넷, WAR, WRC+등의 부분에서 그나마 김태균이 앞서며 우위한 시즌이 되었다.
3.17. 2020년: 이대호 압도
이대호가 노쇠화조차도 씹어버리며 나이가 숫자에 불과함을 보이고 있을 때 김태균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7월 들어 조금씩 타율이 오르는 중이다. 그러다 이대호도 8월 이후로 체력이 떨어지면서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 그리고 김태균이 10월 21일 먼저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제 비교는 끝나게 되었다.
4. 역대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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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담
- 두 선수 모두 1982년생 동갑내기에, 결혼하여 딸을 첫 아이로 얻었고, 같은 이름을 붙였다. 김태균의 딸이 먼저 태어났고 이대호의 딸이 이듬 해에 태어났는데[20] 이름은 둘 다 효린. 게다가 이대호는 딸의 이름을 지을 당시 김태균의 딸 이름이 효린인 줄 몰랐다고 한다. 다만 현재 이대호의 딸 효린 양은 이"예서"로 개명했다.
- 평행이론을 깨는 공통점도 있는데, 둘 다 포지션이 1루수, 3루수, 지명타자로 같고 KBO 리그에서는 KBO 소속 팀의 우승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고 NPB 소속 팀에서만 우승을 경험해 보았다는 것과,[21] 두 사람 모두 NPB의 퍼시픽 리그에서만 뛰었다는 것이다. 또한 두 사람 모두 불교 신자이다.
6. 관련 문서
[1] KBO와 NPB 수준차[2] KBO와 NPB 수준차[3] KBO와 NPB 수준차[4] KBO와 NPB 수준차[5] KBO와 MLB 수준차[6] 펠릭스 호세가 참교육을 시전하고 잔여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다.[7] 이 시기가 엄청난 투고타저였음을 감안한 조정스탯으로 비교할 경우 김태균은 이 시기 평소보다 부진하지 않았다. wRC+ 수치로 보면 김태균은 한국리그 커리어 평균 155.6에 비해 2006년 161.1, 2007년 159로 오히려 평균보다 더 잘한 해라고도 볼 수 있다. 단지 2006년 '''191.8''', 2007년 '''194.7'''을 기록한 이대호가 미쳤을 뿐. 참고로 2007년의 이대호는 타격 7관왕을 기록한 2010년의 이대호보다 wRC+가 더 높다.[8] WBC가 2006년 정규시즌 전에 3월에 열렸기 때문. 막상 1루수 자원에 이승엽, 최희섭이 있어서 김태균도 꼴랑 4타석 나왔다.[9] 당시 병역 문제를 해결한 김태균과 달리 병역 문제가 걸려있었던 이대호를 뽑았고 더불어 대표팀 1루수 터줏대감이나 다름없던 이승엽까지 뽑으며 포지션 중복을 이유로 김태균은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 이때 이대호가 각성이후 최악의 부진을 맞으며 팀에서도 타순이 6번까지 밀리던 시기였기 때문에 '''병역문제 때문에 억지로 뽑았다'''는 '''논란'''이 좀 있었다. 김경문 감독은 이대호를 3루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 실제로 김동주가 쉬는 경기에 3루를 보기도 했고, 이대호가 대회내내 워낙 잘쳐서 대회이후 큰 논란은 없었다.[10] KBO와 NPB 수준차[11] 타율, 안타, 출루율 1위.[12] KBO와 NPB 수준차[13] KBO와 NPB 수준차[14] 안타치면 똑딱거린다고 까이고, 홈런을 치면 솔로홈런이라고 까이고, 멀티 히트를 쳐도 주자 없다고 까인다. 심지어는 출루를 해도 후속타자들 타점 올리는데 방해된다는 소리가 나온다. [15] 다만 이것은 해외로 나간 선수들에 대한 국내팬들의 반응을 생각하면 딱히 등을 돌리니 마니 할 정도는 아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전의 팀 팬이 아니고선 바로 비아냥이 나오기 때문. 그리고 이전 소프트뱅크의 4번 타자들을 생각해보면 어떤지 답이 바로 나온다.[16] KBO와 NPB 수준차[17] KBO와 MLB 수준차[18] WAR은 플래툰이다보니 낮을 수밖에 없다.[19] 그리고 이대호의 특성상 주루와 수비가 메이저에서 좋지 않은 편이므로 사실상 타격에서만 WAR을 쌓아올린 것이기에, 이 점을 감안한다면 그리 나쁜 WAR도 아니다. [20] 김태균 딸이 2011년 10월, 이대호 딸이 2012년 1월생. 띠는 양력을 기준으로 바뀌지 않기에 두 선수의 딸 모두 같은 신묘년 토끼띠다.[21] 다만 김태균은 페넌트레이스 우승 경험이 없다. 2010년 일본시리즈 우승 당시엔 리그 순위 3위인 상태에서 CS 우승 후 일본시리즈에 진출해 우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