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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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榮彦
1899년 10월 23일 ~ 1971년 08월 16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899년 경상남도 동래군(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부산상업고등학교(현 부산개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조선흥업주식회사 부산지점에 10여 년간 근무하다가 부산봉래주조주식회사 전무를 지냈다. 같은 시기 부산제3금융조합에서 평의원, 감사를, 조합장을 지냈으며 부산부 협의회 의원을 지냈다.
8.15 광복 이후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경상남도석유연합회 회장, 대한석유협회 회장, 한국미유주식회사 사장, 송우상사주식회사 취체역사장, 국민회 영도지구지부장 등을 지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남도 부산시 무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5년 자유당 전라남도당 위원장이 되었다. 이후 자유당에서 중앙위원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회 상공위원회(현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도 역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남도 부산시 영도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무투표 당선되었다.
1960년에는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무투표 당선이 부정선거 결과로 발표되어 기소되었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 다시 이갑식 등과 기소되어 혁명재판을 받았고 1962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