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라)

 


'''조선 왕실 시조'''
'''始祖考 | 시조고'''

[image]}}}{{{-2 이한의 묘 조경단(肇慶壇)
'''존호'''
'''시조고선공존령
(始祖考先公尊靈)'''
'''관직'''
사공(司空)
'''본관'''
전주(全州)
'''성'''
이(李)
'''휘'''
한(翰)
'''호'''
견성(甄城)
'''출생'''
미상
'''사망'''
미상
'''부인'''
시조비(始祖妣)
'''묘호
墓號
'''
'''조선 영조
47년
'''
조경묘(肇慶廟)
'''대한제국
광무 3년
'''
대한조경단(大韓肇慶壇)
1. 개요
2. 상세
3. 묘소 조경단


1. 개요


'''이한(李翰)'''은 조선국성 전주 이씨의 시조이며, 대흥 이씨, 영해 이씨, 하빈 이씨의 원시조이다. 생년은 불명이며[1] 754년(신라 경덕왕 13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2. 상세


전주 이씨 이한의 선대 조상들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설[2]과 신라의 토착성씨인 경주 이씨 분적설이 존재하지만, 조선 말기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경주 이씨 시조 이알평부터 중시조 이거명까지 36대에 이르는 이름들[3]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점, 알평도 후대에 성을 붙인 것이고, 신라 최초의 성씨가 발견된 진흥왕의 '김진흥'보다도 600년 전인데, 성은 물론이고 항렬을 따져 돌림자까지 사용했다는 점 등을 들어 조선 말기에 조작된 것으로 본다. 이보다는 당대 금석문도 나올 정도로 신분이 확실한 인천 이씨로부터 나왔다고 보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남북국 시대였던 경덕왕 치세에 사공(司空) 벼슬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태종 무열왕의 10세손 김은의(金殷義)의 딸과 결혼해 이자연을 낳았다. 태조대왕실록, 증보문헌비고 등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 태조는 이한의 22세손이다. 이성계뿐만 아니라 그 전에 무신정권의 집권자로 유명한 이의방의 선조이기도 하며, 이성계는 이의방의 동생인 이린의 직계 후손이다.

3. 묘소 조경단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는 '조경단(肇慶壇)'이 바로 그의 위패를 모신 장소이다. '조경단(肇慶壇)'은 '조선 왕조가 시작(肇)되는 경사(慶)스러운 곳(壇)'이라는 뜻.


[1] 조선왕조의 가계 중 생년이 알려져 있는 시조 21세 이자춘부터 30세 정원군까지 10명의 생년을 가지고 추세선을 구하면, 시조 이한의 출생년을 약 713년으로 추산할 수 있다.[2] 연대, 작자 미상의 '완산실록'에서 중국기원설이 등장하는데, 모화사상의 영향으로 보인다.[3] 이들의 이름은 경주 이씨로부터 분적한 합천 이씨의 조선 말기 발견된 족보에서 등장하는데, 이한의 이름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