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연(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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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문종 인효대왕 대의 문관. 현종 원문대왕 대부터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한 신라계 경원 이씨 가문 출신이다.[2] 이자연의 등장으로 인해 경원 이씨는 고려 중기를 집어삼키는 최대의, 최고의, 최악의 외척 가문이 된다.
이자연은 준수한 배경, 뛰어난 능력으로 문종의 신뢰를 얻었고, 탁월한 정치적 감각으로 문벌귀족 가문들, 종교계를 휘어잡는데 성공한다. 그의 세 딸이 문종의 아내가 되었으며 그의 후손들도 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왕실과 연결을 맺었다.
이자연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 이자연 묘지명, 그의 자손들의 묘지명에서 볼 수 있다.
2. 상세
현종 대의 외척가문은 안산 김씨였는데, 안산 김씨와 먼저 연을 맺고 있던 가문은 인천 이씨였다. 안산 김씨가 여요전쟁의 혼란을 틈타 줄을 잘 섰고, 인천 이씨는 덩달아 같이 지위가 올라갔다. 공주의 절도사 김은부가 몽진중인 현종을 극진히 모셨고 그의 세 딸을 모두 현종에게 시집보낸다. 김은부는 인천 이씨의 시조 이허겸의 사위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자연은 현종 대에 치뤄진 과거 시험에서 2등으로 통과했고, 화려하게 커리어를 시작한다.
묘지명엔 이자연이 거쳐간 수많은 관직이 나열된다. 정말 끝도 없는데 당시 이자연의 재능과 정치적 수완의 합작으로 보인다. 즉 단순히 야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능력도 있었기에 이자연이 크게 성공한 것이다. 이자연은 많은 자식도 두었는데 이는 당시 가문끼리의 연합을 수월케하여 더욱 이자연을 도와주었다.
묘지명 기록으로 이자연이 마지막으로 받은 관작은 다음과 같다:
- 공신호: 추성좌운보사공신(推誠佐運保社功臣)[3]
- 문산계 품계: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4]
- 향직 품계: 삼중대광(三重大匡)[5]
- 직위: 중서령(中書令)[8] - 문하시중(門下侍中)[9] - 판상서이부삼사사(判尙書吏部三司事)[10] - 감수국사(監修國史)[11]
- 훈위: 상주국(上柱國)[12]
- 시호: 장화공(章和公)[13]
이자연은 고려 중기에 천하를 손에 쥐었던 이자의나 이자겸 같은 경원 이씨 문벌귀족들의 시조이지만 막상 본인은 성군 문종 인효왕의 우수한 신하이면서 성품도 좋았다. 이런 이자연의 처지는 조선왕조의 김조순과 비슷한데,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스타트를 끊었다지만 막상 본인은 성군 정조 선황제의 충직한 신하이면서 인품도 훌륭했다. 그러나 후손들은 그렇지 못하고 국정을 농단하며 전횡을 저질렀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자연의 자손들은 현 인천광역시 지명의 유래를 만들게 된 인물이기도 하다. 인천은 원래 신라 율진군 소성현이었는데, 현종이 고려 양광도 수주 소성현으로 고쳤다. 이자연의 딸인 인예태후 덕분에 경원군으로 승격되었고, 손녀인 문경태후 때 인주로 승격해 수주와 떨어졌다. 이후 조선태종이 주(州)로 돼 있는 지명 대부분을 천(川)으로 바꾸게 했고, 지금의 인천이 되었다.
파한집 권중 기록에 따르면 이자연이 북송에 사신으로 파견된 뒤, 북송의 감로사를 구경했다고 한다. 너무나 멋진 관경에 감동받은 이자연은 자신도 이런 사찰을 세우겠다고 다짐했고, 뱃사공을 시켜 북송 감로사와 똑같은 풍경을 가진 곳을 찾게 했다. 뱃사공은 6년을 찾았고, 결국 개경 개성부 서쪽 호수 근처에 비슷한 장소를 찾았다. 이자연은 이 곳에 이름도 같은 감로사를 지어 이 고려 감로사가 후대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본인 묘지명에 따르면 이자연이 과거 급제 후 양온령 직위를 받았다가 승진해서 감문위(監門衛) 녹사참군사(錄事叅軍事)가 되었다고 한다. 감문위는 고려 중앙군인 2군 6위 중 하나이며 녹사창군사는 정8품 직위였다. 즉 이자연에겐 정8품 하급 무관이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16]
3. 가족관계
- 조부: 이허겸
- 부: 이한#s-2
- 모: 낙랑군대부인 최씨
- 이자연
- 형제: 이자상
- 이자연
- 처: 계림국대부인 김씨[23]
4. 문하생
보한집에 따르면 다음 인물들이 이자연의 문생이었다.
모두 문종 5년(1051) 4월 신묘방 을과 급제자들로, 위에서부터 장원부터 6등까지다. 최석과 김양감은 평장, 최사훈과 박인량은 참정, 최택과 위재만은 학사까지 오른다. 문생 중 김양감(광산 김씨), 박인량(평산 박씨) 등은 이자연 사후에도 인천 이씨 문벌과 혼인관계를 유지했다.
5. 바깥고리
6. 같이보기
[1] 파한집엔 창화공(昌華公)이라 되있다.[2] 인천 이씨는 김해 김씨의 분파인 김해 허씨에서 갈라져 왔으므로 엄격히 말하면 신라계라기보다는 가야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야가 망한지 워낙 오래전이고 신라에 귀부하였으므로 신라계라해도 무방할 것이다.[3] 문종이 봉한 보사공신호.[4] 종 1품 최고위 정식 품계.[5] 1품 1등위 최고위 명예 품계.[6] 태사는 정 1품, 이자연은 종 1품이다. 수직은 이처럼 자신의 품계보다 높은 품계의 직위를 받을 때 붙힌다.[7] 태사는 '천자의 스승'이란 명예직으로 신하가 받을 수 있는 최고로 명예로운 칭호이다.[8] 중서문하성의 명목상 최고위 직위. 고위왕족이나 공신만 봉해졌다.[9] 중서문하성의 실질적 최고위 직위.[10] 두 직위를 붙여 부른 것이다. 각각 이부(吏部)와 삼사(三司)의 장관이다.[11] 문하시중이 겸하던 직위. 사관(史館)의 장관이다. 사관은 실록을 작성하는 사관(史官)들의 기관이다.[12] 공신을 치하하기 위한 명예직. 최고위 훈위이다.[13] 문종의 배향공신으로서의 시호.[14] 국척은 나라의 친척, 원신은 공신을 의미한다. 여기선 이자연을 가르킨다.[15] 비슷하게 해주 최씨 가문의 최윤의는 사직원신(社稷元臣)으로 표현됐다.[16] 척준경도 비슷하게 천우위 녹사참군사 출신이다.[17] 신라의 고위 관리.[18] 이한의 누나 안효국태부인(安孝國太夫人) 이씨는 안산군 개국후 김은부의 아내로 원성태후, 원혜태후의 어머니이다.[19] 왕가도의 셋째 딸.[20] 김의원의 처.[21] 최사추의 딸.[22] 김경용의 딸.[23] 본관은 경주. 현종의 비 원순숙비와 김원충의 남매이다. 덕종의 비 경성왕후와 정종의 비 용절덕비, 문종의 비 인목덕비의 이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