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준(고려)
任元濬
(? ~ 1147)
1. 개요
고려의 문신. 임의의 삼남으로 임원숙과 임원후의 동생이다.
2. 생애
예종 때 간관인 좌정언에 임명된다. 윤관을 따라 여진 정벌에 나선 최홍사가 군대를 사적으로 동원해 자재를 나르게 하니 중서사인으로 있던 한충과 함께 최홍사를 탄핵한다. 예종 16년(1121) 왕이 한충과 임원준을 타일러 탄핵을 그만두게 했는데 임원준은 탄핵을 중단하고 전중내급사에 임명되고 탄핵을 계속한 한충은 서경부유수로 좌천된다. 이듬해 예종이 죽고 인종이 즉위하는데 이자겸 당파가 한안인 당파를 무너뜨리고 집권한다. 한안인과 사돈이었던 임원준도 당시 원외랑에 있다가 연좌돼 유배당한다.
이자겸 사후 개경으로 돌아온 임원준은 인종 8년(1130) 어사중승으로서 이주연, 황보양, 고당유, 문공원 등과 당시의 폐단을 비판하며 상소를 올린다. 이들 대부분은 문벌귀족 등 개경파로 묘청 등 서경파를 밀어주는 인종의 행보를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인종은 문제로 제기된 안건 한두개만을 고치고 나머지는 그대로 둔다.
이듬해 인종 9년(1131) 어사대부에 올라 아들 왕호(훗날의 명종)를 낳은 조카 임씨(임원준의 작은형 임원후의 딸, 훗날의 공예태후)에게 교서와 예물을 전한다.
인종 10년(1132) 이자겸 당파 출신으로 평장사에 있던 최자성이 지공거로 과거 시험을 주관하다 출제한 문제에서 실수가 발견된다. 이를 빌미로 중서문하성과 어사대에서 시험관 최자성 등을 물어뜯었으며 어사대부인 임원준도 나서 급제자 전원의 명패를 회수하고 재시험을 봐야 한다고 아뢴다. 왕은 답하지 않고 침묵으로 최자성을 보호한다. 임원준은 죄 받기를 기다리겠다며 어사대 업무를 놓고 대부직에서 물러나는데 이에 어사대 업무가 일주일동안 마비된다.
이어 임원준은 추밀원에서 관직생활을 한다. 인종 11년(1133) 4월 동지추밀원사, 12월 지추밀원사를 거쳐 인종 13년(1135) 추밀원사에 오르고, 인종 14년(1136) 12월 김극검, 이자덕과 함께 참지정사에 임명된다. 인종 15년(1137)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판형부사에 임명되고 참지정사 태자소보를 지내다가 이후 평장사로 은퇴한다. 의종 원년(1147) 8월에 기미일(28일)에 죽는다.
3. 기타
- 황보한이 지은 임의묘지명(1117년)에는 임의에게는 아들이 합문지후 임원숙과 국자감주부 임원애 둘 뿐이라고 나타난다. 임원숙은 임원준이 죽은 뒤인 의종 2년(1148)에 평장사로 은퇴하므로 동일인물일 가능성은 적다.
-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국자좨주에 임명돼 국자감에 부임한 적이 있다. 최유청이 대신 적은 비답(批答, 임금이 상소에 대해 내리는 답문)에 따르면 좨주 자리를 사양하는 상소를 올린 것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