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진(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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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발라드의 여제'''. 숨소리도 노래로 소화하는 가수이며, 연륜이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 2-30대의 감성을 울리는 노래를 많이 한다.[2]
대표곡은 '''"꿈의 대화"''', "완전한 사랑", '''"키 작은 하늘"''', '''"1994년 어느 늦은 밤"''', '''"내게로"''', '''"마주치지 말자"''', '''“아름다운 날들”''', “불꽃[3] ”, '''“그 남자 그 여자[4] ”''', '''“술이 문제야”[5] ''' 등이 있다.
상명대학교 체육학과에서 기계체조 및 리듬체조를 전공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중퇴를 하고 음악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프로페셔널음악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2016년 경희대학교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에서 퍼포밍아트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19년에는 상명대학교에서 공연예술경영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본명은 이남미. 가수 이남이와 이름이 비슷해 친지가 권유한 예명인 '장혜진'으로 활동한다고 한다.
2. 활동 내역
본래는 체조 선수였지만 부상을 당해 선수 생활을 접고, MBC의 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했다.[6] 당시 그녀의 오랜 친구였던 강승호가 막내 매니저로 일하며 방송국에서 어느 예능 PD에게 발로 차이고 꾸지람을 듣는 모습을 보게 된 장혜진은 강승호에게 "이렇게 막내 매니저로 살지 말고, 네가 제작자로 나서라. 일단 내가 너의 가수가 돼줄 테니 그 다음부터는 나를 발판 삼아 인기 있는 가수들을 많이 키워내라"고 조언을 했다. 이후 강승호는 일주일 만에 곡을 갖고 장혜진을 찾아 "녹음하자"고 제안했고, 이 앨범이 바로 장혜진을 가요계에 데뷔시킨 1991년 "슬픈 약속" 이라는 타이틀곡의 그녀의 첫 앨범이며 27살의 늦은 나이에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1992년에 나온 2집의 타이틀곡 '키 작은 하늘'[7] 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장혜진의 뜻대로 강승호는 장혜진을 1호 가수로 내세워 '캔 엔터테인먼트'라는 기획사 운영을 시작하였다. 이후 김종서, 박상민, 박완규, 캔 등의 실력파 가수들을 발굴하기 시작하고 '깡통 사장'이라는 별명으로 연예계에서 승승장구하게 되며,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이른다.[8] 참고로 2집 수록곡 중 하나인 '아프리카 여행'이란 노래 가사에 작사가의 실수가 있다. - 어디로든 멀리 떠나고 싶어 어디로 떠날지 망설이다 표를 끊어 버린 곳은 텔레비젼에서만 보았던 검은 땅의 나라 아프리카로 캥거루 뱃속엔 또 캥거루가 악어입 속엔 악어새 -로 가사가 이어지는데 다들 알다시피 아프리카에는 캥거루가 살지 않는다.
1994년 나온 3집 <Before the party>는 장혜진의 앨범 중 최고로 꼽히는데, 김현철이 프로듀스하고 여러 뮤지션들이 게스트로 참여하는 등 적절한 조력을 받은 뛰어난 앨범이 되었다. 박창학 작사/유정연 작곡의 타이틀곡 '내게로'는 큰 인기를 끌었고 김현철이 작사하고 김동률이 작곡한 수록곡인 '1994년 어느 늦은 밤'은 이후 여러 가수들에 의해 커버되고 리메이크되었다.
1996년 이후에 성대결절로 공백기를 거치면서 고음을 자제하고 중저음 위주의 창법으로 변화했고, 그런 중에도 1997년에는 주영훈이 작곡한 타이틀곡인 '꿈의 대화'[9][10] 등 총 3곡(+MR 1개)이 실렸던 싱글 <Moskito>를 발표해 '내게로'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었다.
2002년에 6집 활동을 끝낸 후 콘서트를 마치고 나서 3년 간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도 했다. 2004년까지 미국 실용음악과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버클리 음대에서 장학생으로 입학한 후 공부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프로페셔널뮤직학과)[11]
2006년에 귀국하여 그해 2월 7일 정규 7집 앨범을 발표했는데, 다른 장르의 가수들과 함께 앨범 작업을 하는 등 가수로서 자신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와 장르를 시도하며 활동하였다. 평소 장혜진의 음악을 생각했다면, 좀 파격적이었다. 이 시기 대표적인 곡들로는 바이브의 3집 앨범에서 윤민수와 듀엣으로 부른 "그 남자 그 여자", 7집 타이틀곡 "마주치지 말자" 등이 있다. 이후 리쌍의 개리와 함께 파격적으로 힙합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인 디지털 싱글인 "불꽃"을 하나 더 발표했다.[12]
가수 활동과 동시에 국내 실용음악계에서 가장 유명한 학원인 '서울 재즈 아카데미'의 강사로 재직하다가, 이후 한양여자대학 실용음악과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실 사진 # 사진 속 인물은 한양여자대학 실용음악과를 거친 레인보우 출신의 김지숙이다.
2017년 8월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와 계약했다.
2019년 6월 18일 윤민수와 함께 부른 "술이 문제야"를 공개 했다. 7월 기준 차트 상위권을 달리는 중.
2019년 7월 12일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 의 ost ‘물거품’ 을 발매했다.
장혜진의 목소리는 매일 들을 수 있는데 KBS 1TV 9시 직전에 들을 수 있는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한국방송~” 이라는 로고송의 목소리 주인공이 바로 장혜진이기 때문이다. 2001년 김수철의 제안으로 버클리 음악대학에 유학 전 녹음했다고 한다.[13]
2019년 9월 2일 보도에 의하면 배우자인 강승호와 27년만에 합의이혼을 했다고 전해졌다
2020년 1월 31일 신곡 “이별에게 졌나 봐”를 발표했다. 꽤 마음에 들었던 곡인데도 불구하고 코로나19로 인해 활동을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고 이야기했다.
2020년 4월 24일 드라마 “화양연화” OST “너라는 계절은” 을 발표했다.
2020년 6월 3일 듀엣곡 “서쪽 바다” 를 발표했다. 장혜진이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 한동근의 곡 “그대라는 사치” 를 커버한 이후 듀엣이 성사된 것 같다.
2020년 7월 24일 드라마 “우아한 친구들” 의 OST “어디에 있나요” 를 발표했다.
2020년 12월 19일 한미공조 자살방지 프로젝트 ‘Never Give Up’ 캠페인에 하동균과 함께 “감사해 덕분에” 라는 곡을 발표하였다. 특히 장혜진의 “내게로” 의 작곡가인 유정연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3. 나는 가수다
2011년 MBC의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에 출연했다. 1등을 하고 싶다는 말을 가수 중에서도 꽤 많이 하는 편인데, 5위-4위-'''7위'''를 거친 3차례의 경연 동안은 스스로의 기대에 많이 못 미친 성적을 보였다. 특히 1차 경연 7위를 차지했을 때는 하차의 위기를 맞았으나, 바이브의 '술이야'로 2차 경연에서 2위를 차지하며 반전에 성공했다. 연이은 5라운드 1차 경연에서도 2위를 차지. 상승세를 타고 1위의 숙원을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작 본인은 갈수록 1위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게 된다고 하지만. 그리고 결국 6라운드 1차 경연에서 진최종보스 인순이를 제치고 압도적인 득표율로 1위에 등극했다.[14]
어느새 명예졸업까지 바라보는 장기 출연자인데다 타가수들에 비해 보여줄 수 있는 스타일이 한정되다보니 살짝 존재감이 옅어지고 그 반증으로 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편이다. 10월 9일자 방송에서 6위를 하여 또 다시 위기가 찾아왔으나 이젠 본인도 시청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
허나 10월 19일자로 국내 대형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서 터트린 오류로 인해 살았다는 게 밝혀진...줄 알았으나, 그게 단순한 실수라는 게 밝혀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라운드만 살아남으면 명예졸업을 할 수 있다.
실제로 7라운드에서부터 8라운드 중간점검에서 부른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마저도 최하위를 하자 의외로 담담한 반응을 하면서도 "이제 정말 그만 하라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고요.." 라는 약간 체념적인 인터뷰를 통해 안타까운 반응을 보였다.
9라운드 1차 경연에서 차분한 곡이 아닌 발랄한 분홍립스틱으로 장스터 때의 부진을 말끔히 씻고 중위권인 4위에 안착. 어지간한 실수만 하지 않으면 명예졸업이 가능해 보인다. 그녀 자신에게도 장스터의 충격이 컸는지 안정적인 선곡만 하며 늘 하위권에 머물렀는데, 마지막 라운드에 와서 다시 용기를 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것에 대해 팬들은 물론 시청자들도 반기고 있다.
곡 바꿔 부르기 미션으로 진행된 2차 경연 중간평가에서 바비킴의 사랑 그놈을 선곡해서 3위에 랭크되는 등 명예졸업의 가능성을 높였으나...
2차 본경연에서 중간평가보다 더 좋은 공연을 보였으나 1차 경연에서 자기보다 순위가 낮았던 바비킴(7위), 윤민수(6위), 자우림(5위)이 모두 장혜진보다 높은 순위[15] 6위에 랭크되었고, 결국 종합득표율에서 최종 7위가 되면서 명예졸업은 하지 못했다.
참고로 순위 7위는 두번만 기록했고 '''6위를 다섯 번 하셨다.'''
명예졸업 문턱까지 간 것치고는 임팩트가 많이 적었는데, 그 이유로는 역시 음악적으로는 일관된 패턴을 보여주고 예능에서도 지상렬로 인해 뚜렷한 캐릭터가 없기 때문일 듯. 그나마도 초기에 붙여준 호칭이 돌아온 팝발라드의 여왕, 원조 요정[16] 이었다.
게다가 본인의 장점인 중저음의 창법을 버리고 청평단의 취향을 고려해 곡의 연결성을 해치고 고음 위주의 편곡만을 하여 본인의 장기를 살리지 못한 것도 문제.[17] 사실 그녀도 변화를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하필 다른 편곡자를 기용한 무대가 미스터. 하지만 본인은 '''미스터'''가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라고 한다. 이후에 양화진밴드와 같이 부른 버전이 있는데, 준비기간이 짧고 긴장을 많이 했던 나가수와는 달리 훨씬 좋은 무대를 보여주었다! 멘붕한 팬이 있다면 챙겨보도록 하자. 평화콘서트에서 부른 미스터
4. 복면가왕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2차 경연에서 우아한 석고부인라는 가명으로 참가해서 이상한 나라의 여우, 남산 위에 저 소나무를 이겼으며 결승전 상대인 정확하게 반 갈렸네에게 패하면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가면을 벗은 뒤에 그녀는 3라운드까지 진출해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컨디션이 좋을 때 한 번 더 도전해 보고 싶다는 소감을 전했다. 준결승에서 불렀던 '''윤종신의 '1월부터 6월까지''''가 시청자들에게 특히나 호평을 받았으며 당시에는 복면가왕에서 불렀던 곡들이 따로 음원으로 나오지 않았던 시기였으나 장혜진의 음원을 듣고 싶다는 시청자들의 요구에 복면가왕 special 앨범에 수록되는 영광을 얻었다. '''복면가왕 초창기에 레전드 곡을 남기면서 프로그램의 화제성에 큰 기여'''를 했다. 그 뒤에 이 바통은 김연우가 이어받게 된다.
그 뒤에 여러분의 선택! 복면가왕에서 대답없는 거울공주로 재도전했을 때 예선 상대인 카리스마 LP소년을 이겼는데 집계 결과의 오류로 '''승패가 바뀌는 사건이 벌어졌다.'''[18]
그 바람에 준비한 2라운드 노래를 부른 카리스마 LP소년의 정체가 드러나는 사고가 벌어졌으며 나중에 그녀도 가면을 벗게 되었다. 이 때 그녀는 판정 번복 상황에 이 날 컨디션 때문에 떨어질 줄 알았는데 이겼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살짝 당황했다고 말했다. 사실 판정 번복 자체가 제작진의 실수이기 때문에 기분이 굉장히 상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인배의 면모를 보여주며 쿨하게 노래를 부르고 퇴장했다. 이 때 부른 노래는 김장훈의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또한 승자인 카리스마 LP소년은 복면가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 3라운드 곡을 부른 다음에 자진 하차했으며 그의 프로 정신에 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보냈다. 나중에 29차 경연에서 판정단으로 참가했다.
5. 관련 문서
[1] 한때 1968년생이라는 설이 떠돌았지만 1965년생이 맞다.[2] 실제로 음색이 시대를 안타는 편이다. 데뷔 때와 거의 크게 변하지 않은 목소리이나 전혀 촌스럽지 않고 외려 세련되게 들린다.[3] 개리가 피쳐링에 참여하였다.[4] 바이브의 곡에 장혜진이 피처링.[5] 바이브의 윤민수와 그 남자 그 여자 이후의 13년만의 듀엣곡.[6] 재미있는 점은 장혜진의 딸이 펜싱 선수로 활동 중이라는 것.#[7] 원래는, (장혜진이 정식데뷔하기 전 코러스로 인연을 맺은) 김영이 만든 '내 슬픈 이야기'가 타이틀이었다. 한편 김영 역시 2집 당시 김광수와 강승호의 이오스사운드 소속으로 냈었고, 이후에도 강승호의 캔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남아있었다.[8] 다만 박완규의 경우 1집이 큰 성공을 했음에도 제대로 된 보수를 받지 못하는 등, 캔 엔터테인먼트는 뒷소문이 매우 구리다. 지금은 먼데이 키즈 등의 경우를 볼 때 꽤 나아진 듯. 다만 비틀즈코드에서 먼데이키즈와 출연했을 때 녹음이 마음에 안 들면 때린다고 하니...[9] 히트곡들이 댄스 넘버에 집중되어 있는 주영훈의 보기 드문 발라드 명곡으로 주영훈이 가장 큰 애착을 가진 곡 중 하나라고 한다. 본래 육각수의 1집 타이틀곡 '다시'가 장혜진에게 가고 이 곡이 육각수에게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주영훈이 실수로 CD를 뒤바꿔 주는 바람에 장혜진이 부르게 되었다고.[10] 동명이곡이 있다. SG워너비가 다시 불렀던 건 1980년에 열린 MBC 대학가요제에서 이범용과 한명훈이 불렀던 것.[11] 윤상과 동시기에 유학 생활을 하면서 친분을 쌓았다.[12] 이후 이 곡은 박초아가 다시 불렀다.[13] 지금은 사용되지 않지만 2TV 로고송도 같이 녹음했다.[14] 27.7%. 나가수 역대 4위의 성적이다![15] 각각 바비킴 2위, 윤민수 4위, 자우림 5위[16] 보면 알겠지만 박정현이 처음 나가수 들어올때 들은 소리들이다. 팝발라드의 여왕, 요정[17] 편곡자도 대부분 황세준. 이 부분은 다행히도 마지막 무대 '사랑 그 놈'에서 자신이 어떤 가수인지 보여주면서 많은 여론을 돌리는데 성공했다.[18] 참고로 현장 투표는 108:92로 거울공주가 앞섰으나, ARS 결과는 9366:5404로 LP소년이 크게 앞섰는데 앞의 숫자의 잘못된 표기로 결과가 뒤바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