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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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SG워너비는 2004년[4] 에 데뷔해 2000년대 중후반을 휩쓴 3인조 남성 보컬 그룹이다.
데뷔부터 2007년까지 채동하(리더), 김용준, 김진호 세 명의 멤버로 활동하다가 2008년 채동하의 탈퇴와 함께 새 멤버 이석훈의 영입으로 현재 김용준(리더), 이석훈, 김진호 체제로 유지중이다. 이석훈의 영입 이후 노래 스타일이 바뀌었다.[5]
이름인 SG 워너비(SG Wanna Be)는 레전드 포크 락 그룹인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처럼 되고 싶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사실상 사이먼 앤 가펑클 스타일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음악을 하다가 6집에서 초심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사이먼 앤 가펑클 스타일의 곡을 타이틀로 내기도 했다. 사실 3집의 「내 사람」에는 아이리쉬 스타일의 악기, 4집의 「아리랑」은 국악과의 콜라보 등으로 새로운 시도들을 많이 하다가 5집의 「라라라」부터 미국 컨트리 음악을 시도하긴 했었다. 6집 타이틀 「사랑해」는 거의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Boxer」를 벤치마킹한 느낌. 실제로 후렴의 라이엘라 랄라랄라랄라 라이엘라 부분은 「The Boxer」에서 사용된 가사다. 이지리스닝을 따르고 싶었다면 괜찮은 작명이긴 하다.
2020년까지 8장의 정규 앨범[6] 과 스페셜 앨범 3장[7] , 그리고 2장의 미니앨범[8] 을 냈으며, 콘서트DVD, OST, 디지털 싱글 등 많은 앨범을 발매했다. 일본에서도 정규 1집을 비롯해 여러 싱글앨범을 발매했으며 마니아층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실상 음반위주의 음악시장의 문을 닫은 마지막 가수라고 할 수 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음반시장이 이미 기울어가는 상황에서도 발매하는 앨범마다 수십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골든디스크 대상을 세 번이나 수상했지만 이를 마지막으로 음악시장은 음원 위주의 시장으로, 또한 안타깝게도 가요계는 아이돌 위주의 시장으로 완전히 넘어가버렸다.
2005년~2008년의 가요계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SG워너비의 미디엄 템포곡의 히트 이후 수많은 아류 그룹들이 생겨나 가요계를 가득 채웠다.[9] 이는 곧 가요계의 획일화를 뜻하고, 현재 아이돌 그룹으로 점철된 가요계에 대한 비난이 많은 것처럼 이 때는 일명 소몰이로 획일화된 가요계에 대한 비난이 거셌다. 그 중에서도 SG워너비는 소몰이 유행의 선두주자이자 대명사에 가까웠기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30대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젊은세대와 기성세대 모두에게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룹이다. 2.5집으로 리메이크 앨범을 발매했을 때 기성세대에게 많은 어필을 한 듯하다. 과거 20대시절엔 거의 유일하게 연말 디너쇼를 열었으며, 나이 지긋하신 분들도 상당히 많이 오셨었다.
또한 방송보다는 콘서트에 집중하는 가수이다보니 20대 시절까지 가수로서는 유일하게 라이브 공연 300회를 돌파한 그룹이기도 하다. 200회 기념으로 3집 전국투어 라이브 DVD가 발매되었고(2006년), 300회 기념으로 6집 전국투어 라이브 DVD가 발매되기도 했다(2009년). 이 라이브 DVD에 실린 6집 전국투어 콘서트 <인연>의 서울 공연은 대중가수에게는 인순이, 이승철 등 최고의 가수에게만 그 문을 열어주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신세대 가수로서는 최초의 세종문화회관 입성이었다. 반면 이렇듯 왕성한 콘서트 활동은 리드보컬 김진호가 성대결절에 걸리게 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2020년 현재까지 SG워너비의 통산 앨범 판매량은 '''280만 장이 넘는다.''' 특히 음반시장이 이미 급속도로 위축된 2000년대 중반에 데뷔하여 기록한 수치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1.1. 멤버
1.2. 소몰이창법
좋게 말하면 가창력 그룹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이들의 창법은 한국 가요계를 획일화시키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16] 좋게 평가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17] 이미 이전에 유행을 했거나 인기 있던 가수들, 브라운 아이즈나 조성모 같은 가수들의 노래와 히트 방식을 답습하며 개성 없이 노래해온 점은 비판의 여지가 많다. 조성모가 사용했던 드라마식 M/V 구성과 박효신, 환희 등이 먼저 구사해온 소몰이 창법, 같은 소속사 대선배인 조성모와 비슷한 보컬 구성의 서브 보컬, 투박하고 자극적으로 뽑아낸 듯한 현악 세션 구성 등등 이전 발라드 가수들의 성공 방식을 그대로 모방해 성공을 해왔고, 그 뒤 무수히 많은 양산형 아류들을 만들어냈다.
이후 그 뒤에 나온 많은 소몰이 가수들까지 덩달아 인기를 끌면서 한국 가요계가 획일화되었다. 하지만 유행에 편승한 작곡가, 가수는 물론이고 "소몰이면 어때 노래만 좋은데 ㅋ" 하더니, 듣다 질릴 때쯤에 "노래가 소몰이밖에 없어"하며 무작정 까기만 한 청자들 또한 문제점이 없지는 않다.
2009년 이후 아이돌이 다시 대세로 기울어지면서 소몰이 가수들의 거품이 다 꺼지면서, SG워너비 역시 스타일의 변화를 시도하여 컨트리와 가벼운 발라드 곡들이 SG워너비의 새로운 스타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원더걸스와 빅뱅 등의 너도나도 아이돌이 대세를 탄 뒤에는 이들의 인기는 비교적 사그라든 편. 게다가 SG워너비의 노래 스타일이 소몰이에서 벗어나 편안한 발라드를 지향하자 음원시장에서의 반응도 예전처럼 뜨겁지는 않다. 한 편에선 가요계에 가득한 후크송에 질렸다며 예전처럼 정통 소몰이 노래를 내달라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이건 뭐… 그래도 콘서트에서는 항상 매진을 기록한다.
김진호는 소몰이라는 말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별명은 소몰이만 아니면 상관 없다고. 언제는 실제로 시골에 내려가서 자기 목소리로 소가 몰아지는 지 해 봤다고 연예가중계에서 그렇게 말했는데, 당연히 안 되었다고 한다. 소는 그냥 눈만 꿈뻑꿈뻑 거렸다고(...). 심지어 콘서트에 '''소를 타고 나오는 것도''' 고려해봤다고(…)
그 외 감성적인 발라드와 모던 록[18] , 심지어는 댄스 곡[19] 과 일렉트로닉까지 상당히 다양한 스타일의 곡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특히 4집 2번 트랙 「은(恩)」이 매우 특이한 스타일인데 반주는 힙합에 노래는 발라드인 힙합발라드(?) 스타일이다. 그러나 창법은 여전히 소몰이일 뿐이고 히트곡들도 별반 차이점이 없는 소몰이 최루성 발라드인지라 크게 인식을 바꾸는데는 도움이 안 되었다. 오히려 안 어울리는 창법을 억지로 다른 장르에 우겨넣는 바람에 노래만 더 이상하게 들리는 현상(...)마저 느껴진다. 5집에는 일렉트로니카 장르인 KISS도 있다.
일각에서는 소몰이창법이 소를 몰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체력을 요구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불러진 명칭이라고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노래방에서 SG워너비 노래를 선곡하면 1절 하이라이트 부분을 다 듣기도 전에 꺼버린다고. 그렇다고 클라이맥스 부분까지 잘 부르는 경우도 흔치 않다. 대부분 클라이맥스에서 삑사리가 대부분.
하지만 이런 창법이 결국 본인들의 발목을 잡고 수명을 단축시킨 원인이 되어버렸다. 소몰이창법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 테크닉적인 발성이 아닌 피지컬적으로 쥐어짜고 몰아붙여서 내뱉는 창법이 소몰이창법인데, 정석적인 발성이 아닌 목을 몰아붙여 내는 이 창법이 가수에게 좋을리가 없었다. 거기다 SG워너비는 음악방송 외에도 개인 콘서트를 비롯해 온갖 행사장을 다 누비고 다녔는데, 이러다보니 목의 내구도가 금새 닳아버렸고 이는 결국 성대결절과 목소리 변화의 변화를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다.
현재는 멤버 모두 소몰이창법은 버린지 오래며 김용준과 이석훈도 트랜드에 맞게 부드럽고 소프트한 보컬스타일로 바뀌었고 소몰이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김진호는 김광석, 김현식과 같은 포크송적이고 목소리 포장없는 담백하고 말하듯이 부르는 보컬스타일로 변했다.[20]
2. 활동 및 음반 목록
3. 수상 경력
3.1. 시상식
3.2. 음악 프로그램 1위
4. 여담
- 처음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할때, 멤버들이 와이미(김용준), 데이빗(채동하), 찰스(김진호)라는 이름을 썼던 흑역사가 있다(…). 이미 1집 가수였던 채동하가 얼굴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가명을 쓰려고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곧바로 철회하긴 했지만 기억하고 있는 팬도 있는 듯. 김진호의 찰스는 데뷔 전에 철회된 이름이라, 아는 사람은 정말 극초기 팬들 밖에 없는 듯하다. 김진호가 "이 외모에 찰스가 웬 말이냐"(...)라고 강력하게 어필해서 본명을 사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단, 요즘 아이돌처럼 성을 빼서 예명 아닌 예명으로. 여차저차해서, 데뷔 후 처음으로 나온 방송에는 데이빗, 와이미, 진호로 나왔었다. 하지만 김진호와 함께 채동하도 자기 예명을 두고 영어 이름을 쓰기 싫다고 어필했고, 김용준은 와이미의 스펠링이 Whyme임을 지적하며 "왜 나야?"라는 예명이 말도 안 된다고 주장해서, 결국 접고 셋 다 이름으로 그냥 활동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김용준은 나중에 삼성카드 광고에서 Why not?이라는 광고를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고 한다.
- 수상경력에 2005년 MBC 가요대제전 본상 수상이라고 적혀있지만[27] , 사실 수상을 거부했다. 거부한 이유는 당시 기획사였던 GM기획과 MBC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서 2004년 데뷔 때부터 2006년 연말 연기대상 축하공연 때까지 MBC에 단 한 번도 출연하지 않았기 때문.당시 기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에서는 10대 가수로 선정했다.
- MBC 10대가수 가요제가 제법 권위 있는 시상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SG워너비 측에서는 나름대로 명분이 있는 수상 거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양 쪽 모두 논란이 있었다. 결국 10대 가수가요제는 SG워너비를 시작으로 많은 가수들의 보이콧으로 인해 폐지되었고[28] , 지금의 MBC 가요대제전으로 바뀌었다.
- 2009년 골든디스크 본상 수상으로 인해 SG워너비는 골든디스크 본상을 5년 연속 수상하는 진기록을 달성했다!
- 채동하가 탈퇴한 이후 이석훈을 영입해서 발표한 5집 앨범은 그럭저럭 성공했지만, 많은 팬들은 이석훈과 채동하의 목소리와 가창력을 비교하면서 채동하의 빈 자리를 아쉬워했고 이석훈 안티가 상상이상으로 많았다. 그로 인해 상처를 받은 이석훈은 라디오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마음을 잡고 꾸준히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간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 줄거라는 믿음으로 꾸준한 노래연습과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당시 채동하와 비교하며 욕하던 안티들이 서서히 줄어들더니 현재는 거의 사라졌으며, 채동하와는 다른 맛의 매력적인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 채동하는 탈퇴 이후 뮤지컬 출연과 솔로앨범 2집, 미니앨범과 싱글앨범 등을 발표하며 활동했는데 솔로 2집 내부에 본인이 과거에 쓴 일기가 담겨있다. 일기를 읽어보면 채동하는 어릴적부터 심장 질환으로 잘 뛰어놀지 못했고, 거의 항상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음이 느껴진다. 일기를 통해 들여다본 그의 삶에서 SG워너비 활동은 몸은 힘들었지만 멤버였던 동생들과 활동하며 그를 행복하게 만든 몇 없는 일이었고, 그룹 탈퇴 후 다시금 심한 우울증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채동하의 첫 매니저가 자살한 것도 자신에게는 큰 충격이였다고. 최측근인 가수 수호의 말에 따르면, 씨야 해체도 큰 충격을 줬다고..[29] 결국 채동하는 2011년 5월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여 그 당시 많은 팬들과 동료 가수들이 그를 추모하였다. 채동하의 죽음은 김진호의 음악 인생에 많은 변환점을 가져다 주었다.
- 이석훈은 국립발레단 출신 최선아와 약혼을 하였다. 결혼은 SG워너비 활동이 먼저라고했는데 과연 언제할지? 2015년 9월 11일 방송된 마녀사냥 방송에서 밝힌바 혼인신고는 이미 했고 결혼식은 내년 초에 한다고 했다. 김진호는 일본 잡지 인터뷰에서 35살에 결혼하고 싶다고 하였다.
- 김용준은 2011월 4월 뺑소니를 쳐서 기소당했다. 황당한 건, 인근 경찰서에 뺑소니 신고된게 없는지 전화 문의를 하다가 경찰이 네가 범인이냐? 라는 말에 깜짝 놀라서 자수(…)했다는 것. 결국 징역 8월, 집유 2년, 사회봉사 80시간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 것 때문에 MBC, KBS에서 방송 출연 금지를 시켰다가, 2015년 현재는 모두 풀린 상태.
- 재밌는 점이라고 한다면 SG워너비의 팬층이 대부분 20대중반~30사이 남성(!)층(...) 이다. 그래서 그런지 SG 워너비 본인들도 말하길 다른 남성 그룹들은 오빠~ 소리 듣지만 이상하게 우리 콘서트에는 형~ 또는 형님~ 소리를 많이 듣는다고...[30] 그래서 그런지 본인들은 여성팬들이 많이 늘어나길 원하지만 정작 남성팬들이 더 많은 편이다. [31]
- 국내에서 김진호의 긴 샤우팅 때문에 해외에도 약간이나마 SG워너비가 알려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해외에서는 김진호가 맴버중에서 인기있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SG워너비 노래에서 외국인들이 김진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거론하는 편이다. [32]
- 2014년 12월 23일, 멤버들의 군입대로 약 2년간의 공백기를 가졌던 SG워너비가 그들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CJ E&M으로 돌아와 재결합 계획을 확정지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 2015년 7월 22일, 완전체 화보 촬영 기사가 뜨면서 컴백이 가시화되었다.##
3명이 완전체로 화보를 촬영하는 건 처음이라고. 에스콰이어 8월호에 새 앨범 관련 소식과 함께 수록 되었다.
- SG워너비의 새 앨범 티저 영상을 촬영 중이라는 사실이 스타일리스트 박만현의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사진과 함께 밝혀졌지만, 현재는 사진을 내렸다.
- 2004년 데뷔한 이래 GM기획, 엠넷미디어, IS엔터미디어그룹, CJ E&M 이라는 거대 기획사에 속해있으면서도 2016년까지 공식 팬클럽 조차 없었다. 정확히는 CJ E&M에 이적 후 생겼다. 멤버 전원이 가입했고 팬들이 스스로 모여서 만들어진 다음카페 SG워너비 사랑방과 각 멤버들의 개인 팬카페 별속에동하, 이치고이치에, 천상의목소리김진호, 수윗트피이석훈 등이 연합하여 팬클럽 단관 등의 일들을 자원해서 진행해왔다. 소속사로부터 조금의 지원도 없이.
더 어이없는 건 일본에서 공식 팬클럽 '내사람(NAESARAM)'이 먼저 만들어져서 국내 팬들에게 빅엿을 선사했다. 애초에 소속사에서 조차 국내 팬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였으며, 네이버 팬카페 파미유[33] 또한 2년 연속 네이버 대표 팬카페로 자리 잡았던 적이 있었으나, 소속사는 거들떠도 안 봤었다.[34] [35][36][37]
- 2013년 김진호의 공식 개인 팬클럽이 생겼으며 이름은 목소리. 이 '목소리'가 생기면서 기존 '천상의목소리김진호' 카페와 마찰이 생길 뻔 했지만 여차저차 넘어가게 되었고, 지금은 잘 교류하고 있다.
- 현재는 SG워너비 공식 페이스북과 김진호 개인 팬클럽 목소리 페이스북에서 각종 소식들과 이벤트를 접할 수 있다.
- 2021년 1월 20일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90회에는 신축년 '소' 특집을 맞아 소몰이 창법으로 출연한 김진호가 SG워너비 해체설에 대해 "SG워너비는 해체한 게 아니라 형들과 언제든지 자주 만날 수 있고, 형들이랑 미래도 많이 얘기하고 있다. 내일도 만나서 밥 먹기로 했다"라고 답했다.
5. 다른 아티스트와의 관계
- M TO M : 김진호가 1집 때 객원멤버로 참여했으며, 2집 때는 SG워너비 3명이 모두 객원 멤버로 참여했다. 같은 소속사여서 콘서트 게스트와 합동 콘서트 등으로 함께 활동했다. 이후 김진호가 솔로활동을 시작할 2013년 무렵엔 엠투엠의 리더 손준혁이 대표로 있는 기획사 '뮤니트엔터테인먼트'에 몸 담기도 했다. 2013년부터 엠투엠이 손준혁 1인 그룹이 되면서 그룹간의 큰 접점은 사라졌지만, 손준혁과 김진호의 친분은 유지하고 있는듯 하다.
- Gavy NJ : 2005년에 데뷔한 후배 그룹으로, 데뷔 당시 3인조 보컬 그룹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여자 SG워너비'라는 컨셉으로 화제가 됐었다. 가비엔제이가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하여 이에 대해 언급하며 「죄와 벌」을 훌륭하게 소화하기도 했다. 이후 씨야의 등장으로 '여자 SG워너비'라는 별칭을 넘겨주었다.
- 씨야 : 가비엔제이보다 데뷔는 늦지만, SG워너비가 직접 보컬트레이닝과 프로듀싱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키워낸 진짜 '여자 SG워너비'. 씨야 1집 「사랑하기 때문에」를 같이 불렀고, SG워너비 3집 「선인장」에는 코러스로 참여한 김연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앨범 발표 순서도 벤치마킹했는데, 2008년 5집에서 컨트리로 변화를 시도한 「라라라」는 성공한 반면, 동시기에 씨야는 3집에서 하우스로 변화를 시도하고 시원하게 망해버렸다. 씨야는 2011년 해체했고, 2020년 슈가맨3에 출연하며 재결합이 가시화되었지만 상호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최종 무산되었다.
- V.O.S : 2004년 데뷔 동기. 데뷔 당시에는 SG워너비만 주목 받았지만, 2007년 쇼바이벌 이후에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약간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 것 외에는 큰 연관은 없었으나 2008년에 영입된 이석훈이 김경록과 친구고, 최현준과는 보컬트레이너 시절부터 친분이 있다. 2009년에 조영수 올스타 앨범에서 「사랑합니다」를 함께 했다. 또 각 팀의 리더였던 채동하와 박지헌이 탈퇴 후 듀엣으로 싱글음반 「어제 같은데」를 발표하기도 했다.
- 케이윌 : 김진호와 언더그라운드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사이. 2007년에 뮤직뱅크 스페셜스테이지에서 「왼쪽 가슴」과 「아리랑」을 함께 했고, 그 이후에 활동을 계속 하면서 이석훈, 김용준과도 친분이 생긴듯 하다. 김진호가 혼자 케이윌 콘서트 '케대박' 게스트로 참여하기도. 여담으로 언더그라운드 시절 케이윌이 김진호의 노래스타일을 보며 '노래부를때 너처럼 그렇게 부르면 안된다'는 식의 디스를 당한적이 있다며 케이윌이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우스갯소리로 김진호가 썰을 푼적이 있다. 그 덕에 SG워너비 멤버와 케이윌 모두 빵터진 일이 있었다.
- 이현 : 김진호, 케이윌과 함께 언더그라운드 흑인음악동아리 SOULIST 출신. 2009년 엠카운트다운 스페셜스테이지 「Break Away」를 함께 한 것 외에 활동 상 접점은 없다.
- 김종국 : 2005년 가요계와 시상식을 양분했던 라이벌/동료. 2005년 Big4 콘서트를 함께하며 「Untouchable」, 2006년 「바람만바람만」까지 함께 하면서 김진호의 두꺼운 목소리와 김종국의 미성이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극찬 받았으나 김종국의 군복무 이후로 접점이 없다.
- FT아일랜드 : FNC의 매니지먼트를 잠시동안 엠넷미디어가 분담하던 시절 2007년 Big4 콘서트와 연말 시상식 등에서 함께 무대를 가졌다. FNC가 제대로 독립한 이후에는 활동 접점이 없다. 2016년에 출연한 이홍기의 키스더라디오를 보면 농담도 스스럼없이 하는 편한 사이인듯.
- 이효리 : 엠넷미디어 시절 한솥밥. 김용준과 함께 「Sexy Back」 무대를 꾸민 적이 있다. '엠카운트다운'에서 「빨간 자동차」에 김건모를 대신하여 김진호가 피처링 무대를 가진 적이 있다.
- 옥주현 : 2.5집에 「유리창엔 비」의 여자 파트너가 원래 옥주현이었지만 작업 과정에서 다른 가수로 변경되었고, 4집 「한 여름날의 꿈」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그 후 옥주현 3집 「My Romeo」에 김용준이 코러스로 참여했고, 김진호와 함께 「페이지원」을 발표했다. 활동은 2007년에 「한 여름날의 꿈」만 잠깐씩 함께 했다.
- 초신성 : 엠넷미디어 한솥밥. 초신성이 신인 시절 SG워너비 콘서트 게스트로 참여한 적이 있고, 김진호와 김성제는 동갑내기 친구이다.
- 다비치 : 엠넷미디어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는 사이. 2008년 SG워너비의 컬쳐엠콘서트에서 게스트 무대로 데뷔했다. 씨야처럼 직접 프로듀싱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소속사 선배로서 트레이닝에 어느 정도 참여한듯 하다. 강민경은 불후의 명곡에서 채동하를 가장 무섭게 혼냈던 선배였다고 회고했고, SNS를 통해 2013년 이후 솔로로 활동 중인 김진호를 응원하는가 하면, 2020년 본인의 유튜브에 김진호의 「가족사진」 커버 영상을 업로드했다. 이해리는 2011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김진호와 듀엣무대를, 2013년에 발매된 김진호 솔로앨범에 피처링을 함께 했다.
- 부활 : 김태원이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프로젝트 앨범을 만든다고 가정했을 때 5명 정도의 보컬을 뽑는다면?" 이라는 질문에 박완규, SG워너비, 이루를 꼽았고[38] , 그 후 부활 25주년 헌정 앨범에 「Never Ending Story」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MNET 20's Choice에서 합동무대를 가졌다.
- 바이브 : SG워너비 2집의 프로듀싱과 「살다가」의 작곡을 류재현이 담당했으며 윤민수가 「살다가」 후반부 애드리브 구간의 코러스를 맡았다. SG워너비 3집에서는 「내가 너를」을 리메이크하여 수록했으며, SG워너비 히스토리 앨범 「사랑가」에도 피처링과 작곡으로 참여했다. 2005년 Big4 활동 당시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를 함께 부르고 콘서트도 함께했다. 단순히 곡만 준 것이 아니라 간단한 보컬트레이닝 정도까지 나눈 사이로 보인다. 2008년 이후에는 함께 활동하지는 않는데, 이석훈과 윤민수가 함께 출연한 '라디오스타'를 보면 종종 보는 사이인듯.
- 브라운 아이드 걸스 : 2006년 「Must Have Love」로 김용준과 손가인이 합작으로 캐롤음반을 발표했고, 활동 중에 두 그룹 전 멤버가 '엠카운트다운'에서 「Feliz Navidad」를 부르는 스페셜스테이지를 가졌다. 그 이후에는 접점이 없다.
- 소향 : 이석훈과 친분이 있는 사이였는데, 2010년 이석훈의 미니앨범 「감사」에 참여했고, 2012년 '나는 가수다'에서 「살다가」를 부른 인연으로 '열린음악회'에서 김진호와 함께 「살다가」 무대를 가진 적이 있다.
- 버즈 : 2000년대 중반 가요계 최대 라이벌/동료. 보컬인 민경훈이 3.5집 「Ordinary People」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한 때 IS엔터테인먼트에서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이 때 시작된 인연으로 민경훈 미니앨범의 「어떡하죠 난」에 동갑 친구인 이석훈이 피처링을 해주었다. 이후 공백기 후 가진 컴백 무대에서 이석훈과 「겁쟁이」무대를 함께했다. 민경훈과 김진호는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
- 동방신기 : 김종국과 2005년 가요계와 시상식을 양분했다면 2006년에는 동방신기와 가요계를 양분했다. 동방신기는 아이돌 그룹, SG워너비는 보컬 그룹이기 때문에 서로 음악적인 성격과 장르는 매우 달랐지만 두 그룹 모두 매우 높은 음반 판매량을 자랑하면서 연간 음반 판매량 1위와 연말 가요시상식 대상을 가지고 경합을 벌였다. 특히 2006년은 두 그룹간의 최대 경쟁 시기로서 서로 연말 가요 시상식 대상들을 양분하였다.[39] 2005년 KBS 가요대상에서 합동 공연도 가진 적이 있다.
[1] 이석훈이 처음 데뷔한 2008년 5집 활동 때는 이석훈이 채동하가 있던 중앙에 섰으나 2009년 6집 활동부터 김진호와 이석훈의 위치가 바뀌었다.[2] 5집, 6집, 7집 Part.1 타이틀곡까지 시도했던 장르[3] 전 멤버 채동하가 탈퇴하기 전엔 채동하가 팀의 리더였다.(2004~2008)[4] 이 당시의 김진호 나이가 17세였다.[5] 채동하가 멤버였던 시절, 즉 4집까진 구슬픈 발라드가 주 타이틀 곡이었다면 이석훈 영입이후 5집부턴 밝고 컨트리적인 스타일의 노래들이 타이틀곡으로 변했다.[6] 1집, 2집, 3집, 4집, 5집, 6집, 7집 part.1, 7집 part.2[7] 2.5집, 3.5집, 4.5집[8] The voice, Our Days[9] M To M, V.O.S, 먼데이키즈, 가비엔제이, 씨야, 블랙펄, 브라운아이드걸스 등등..[10] 이른바, 롱헤어 3인방(...)이라 불리던 자켓 사진이다.[11] 흔히, 슴갤에서는 얼굴 몰아주기라고 하는 새 멤버 공개 사진. 김용준과 김진호는 웃고 있는데, 이석훈 혼자만 엄격 근엄 진지한 표정이라고 해서 나온 얘기다(...) 새 멤버의 공개 이미지 당시에, 팬들은 드디어 SG워너비도 얼굴을 따지기 시작했다며, 채동하의 빈 자리를 채워주지 못 할 거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너무나도 강했었다. 5집 때 이석훈은 안경을 쓰고 활동했으며, 6집 사랑해 첫 방송 때는 한 번 안경을 벗고 활동 했었다. 5집 활동 때 스타 골든벨에 출연했을 때 안경을 한 번 벗었는데 MC였던 김제동에게 "네, 다시 쓰세요"라고 디스를 당했다(...) [12] 3,4집에 랩이 포함된 곡들이 많이 수록되었는데, 라이브무대에서는 대부분 김용준이 랩을 했다. 개인무대에서도 랩이 있는 곡을... 대표적으로 사랑했어요 같은 곡은 데니 안이 피쳐링했는데, 항상 이 걸 절었다(...) 그래서 못 봐주겠는지 5집 땐 김진호에게 랩을 시켰다.[13] 5집 수록곡 KISS에서 랩을 했었다. [14] 라이브에서는 일부후렴을 배분받아 메인보컬 역할을 하기도했으며 아예 녹음본에서도 후렴을 받는 경우도 꽤 있었다. 채동하의 고음을 감당하기 힘들어 현재는 라이브로 들을 수 없는 노래도 몇 있을 정도... 활동 당시에는 리드보컬 메인보컬을 따로 구분하지 않던 시절이었으나 2010년대 이후 리드보컬 메인보컬을 구분하는 요즘 분류법으로치면 현재 이석훈처럼 리드보컬로 분류하여도 무방하다.[15] 활동 당시 채동하도 공식적으로 메인보컬이었다는 의견, 공식적으론 서브보컬이었으나 가끔 메인보컬 역할을 겸 했다는 의견들로 가끔 나뉘는 경우가 있다. 확실한 것은 라이브에서는 녹음본과 다르게 후렴부를 배분받기도하며 몇몇 곡들은 녹음본에서도 후렴을 배분받는 경우도 있었다. 채동하가 주로 후렴,최고음 담당이라면 김진호는 후렴,폭풍 애드립 담당 정도.[16] 그런데 이 부분은 이들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게 1.어쩌다 히트친 가수, 2.그 스타일이 잘 팔리니 개나 소나 카피한 제작자/가수, 3.그 넘쳐나는 카피들을 또 좋다고 사주고 다른 스타일을 무시한 소비자… 중에서 누가 문제일까?[17] 가수 하나의 등장으로 가요계 전체가 거의 획일화되었다는건 반대로 말하면 그들의 영향력과 대중 및 음악계의 지지가 어마어마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18] 1탄은 4집의 STAY, 2탄은 5집의 멜로디. 둘 다 민명기 작곡이다.[19] 1집의 Don't know why는 뮤비부터 농구선수로 변신한 김진호의 댄스가 나온다(...) 심지어 이 걸 삼속곡으로 활동할라 그랬는데, 도저히 안 될 거 같다고 판단해서 전 소속사 직원이 사장의 의견을 만류했다고 한다(...) 3집 내 사람: Partner For Life의 경우, 아예 안무까지 있었는지, 음악방송 도중에 춤을 췄다. [20] 김진호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원래 이 쪽 음악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여졌다.[21] 현재는 벅스뮤직으로 합병.[22] 뮤즈는 싸이월드와 네이버 등 주요 포털사이트에 배경음악을 공급하는 온라인 음악사이트 어워드다. 현재는 올레 뮤직으로 합병.[23] 비아이돌이 받은 마지막 골든디스크 음반 대상이다.[24] 데뷔부터 2008년까지 사용된 로고. 소속사를 옮긴 2009년 6집부터는 사용되지 않았다.[25] 2015년부터 사용중인 로고. 2011년부터 4년간 공백기를 가진 후 미니앨범 《THE VOICE》로 복귀하면서 로고가 변경되었다.[26]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일본에서만 사용된 로고.[27] 원래는 MBC 10대가수 가요제의 이름으로 시상식을 열려고 했으나 많은 가수들이 대거불참을 하는 바람에 10대가수 가요제가 아닌, 가요대제전으로 축제 형식으로 열었다.[28] 그리고 2005년에는 동방신기도 일본 프로모션 스케줄과 일정이 겹치게 되어서 불참을 선언하였다.[29] 참고로 씨야는 SG워너비가 보컬 스승을 자처했었던 그룹이다.[30] 실제 콘서트 가보면 여성관객보다는 남성 관객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그 여성관객들도 남성관객들의 여자친구라서 끌려왔다카더라 [31] 남성 팬들이 많은 이유는 노래의 성향이나 뮤비의 성향이 남성의 시점이 중심인데다가 대부분 사랑의 이별에 관한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여성분들이 잘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더군다나 노래방에서 여성이 부르기에는 매우 힘든편. 하지만 그렇다고 여성들이 싫어하냐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SG워너비가 활동하는 시기에 남성 아이돌이 많이 나와버려서 여성들의 관심을 받지 못았다. 특히 가장 경쟁력이 강했던 두 팀은 동방신기와 버즈다. 이 두팀의 여성 팬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 취소선으로 버즈가 남성 팬이 더 많다고 했지만 틀린 말이다. 버즈의 팬은 의외로 성비를 구별하기 힘든 편에 속한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건 다수의 여성 팬이지만 다수의 남성 팬 또한 음지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누가 더 많냐고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버즈가 남성 팬이 더 많다고 인식된 이유는 당시 남성 팬들이 버즈 노래와 SG워너비의 노래를 노래방에서 주야장천 불렀기 때문이다.(...)[32] 물론 일부는 SG워너비의 맴버들을 잘 알고있고 채동하도 많이 거론되었다. 그리고 채동하가 사망했을 때에 많은 외국인 팬들이 슬퍼했었다. 현재는 김진호가 많이 외국인 팬들중에서 많이 거론된다.[33] SG워너비가 CJ E&M으로 이적하기 전부터 네이버 대표 팬카페 이름이 떼어졌다. 네이버 팬카페 이름도 없었거니와, 과거 운영진 간의 알력 다툼도 있어서 대표 팬카페 이름은 떼어진지 한참 됐다.[34] 오죽하면 팬픽으로 사장을 깠을 정도.[35] 소속사가 콘서트를 마련하면, 팬카페에게 주어진 단관석으로 단체 예매를 했었기 마련인데, 사실 사장이 사장인지라.. 그런 거 꿈도 못 꿨다.[36] 명색이 오래된 가수인데, V.O.S에도 있었던 카페 내의 스케쥴표? 당연히 알 방법이 없었고, 팬들이 나서서 스케쥴을 찾고 그랬었다. 펄골드라는 공식 색깔도 소속사가 알려만 주고 땡이였다. 소속사 내 다른 가수도 마찬가지. 대표적으로 씨야가 이러한 중구난방의 대책 때문에 큰 피해를 봤다.[37]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는데, 인피니트가 공식 색깔을 금색으로 했을 때의 얘긴데, 인피니트 팬덤인 인스피릿이 나서서 "대선배가수랑 중복되는 색깔이다. 우린 SG워너비 팬들과 마찰하는 걸 원치 않는다."며, 울림에 항의했었고, 인스피릿의 대표 팬이 사랑방에 방문하여 "팬덤에서 정한 색깔이 아니다. 소속사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색깔."이라며, 공식 사과를 했다. 이후의 인피니트 앨범을 보면 문양 색깔이 계속 변화(...)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SG워너비가 활동이 뜸한 이후는 원만해진 듯 하다.[38] [image][39] 동방신기는 2006년 SBS 가요대전 대상, 골든디스크 음반 대상, 서울가요대상 대상, MKMF 올해의 가수상을 수상하였고, SG워너비는 골든디스크 디지털 음원 대상, MKMF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노래상을 동시에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