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E-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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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시리즈 1 (1961~1968)
2.2. 시리즈 2 (1968~1971)
2.3. 시리즈 3 (1971~1975)
2.4. 기타 특이 모델
2.4.1. Low Drag Coupe(1962)
2.4.2. Lightweight E-Type(1963~1964, 2014~)
3. 여담
4. 둘러보기
5. 관련 문서


1. 개요


Jaguar E-Type / XKE
재규어가 1961년에 출시하여 1975년까지 판매한 스포츠카로 '''재규어를 널리 알린 걸작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클래식 스포츠카로 손꼽히는 차.''' 북미 시장에서는 XKE라는 명칭으로 판매되었다.
엔초 페라리제레미 클락슨은 이 차를 두고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차'''(The most beautiful car ever made)라고 했다. 아름다움, 성능, 낮은 가격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 자동차 역사의 아이콘으로 남기 충분한 차이다. 240 km/h에 달하는 최고속도와, 7초 이하의 제로백을 겸비하는 성능과 모노코크 바디에 디스크 브레이크, 그리고 랙 앤 피니언 스티어링까지 첨단 기술도 모두 도입되었다. 당시 비슷한 성능을 냈던 페라리애스턴마틴, 알파 로메오, 벤츠의 절반 가격에 살 수 있었다고 하며[1] 모터 스포츠계에도 한 획을 그은 차이다. 실제로 공기저항이 매우 낮은 편으로 당시 대부분의 차와는 다르게 에어로다이나믹스에도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2]. 이렇듯 E-타입은 당시 재규어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다.
최근에 "가장 아름다운 차"를 뽑을 때 어지간하면 Top 3 안에는 든다. 재규어는 이 차를 기념하여 현재 정신적 후속모델인 재규어 F-타입을 생산중이다. 또한 그 타이틀 덕분인지 미국 뉴욕 소재의 현대미술관에도 E-타입 한 대가 전시되어있다.

2. 역사



2.1. 시리즈 1 (1961~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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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I 로드스터
Series I 쿠페
흔히 "재규어 E-타입"이라고 하면 이 모델을 가리킨다. 1961년에 처음 출시되었으며, 초창기에는 XK150S 에서 빌린 3.8L 직렬 6기통 엔진을 장착한 모델이었으나 1964년 10월부터 4.2L 엔진으로 교체되었다. 이 4.2L 엔진은 3.8L와 동일한 마력과 최고속도를 내었으나 토크를 10% 정도 향상시키고 스로틀 리스폰스도 향상시켰다.
1965년까지는 로드스터와 2인승 쿠페모델(Fixed Head Coupe)만 생산되었으나 1966년부터는 2+2인승 모델이 추가되었다.

2.2. 시리즈 2 (1968~1971)



2.3. 시리즈 3 (1971~1975)



2.4. 기타 특이 모델



2.4.1. Low Drag Coupe(1962)



2.4.2. Lightweight E-Type(1963~1964, 2014~)



2.4.3. 또 한번의 부활(2019 ~ )


재규어가 만든 클래식카를 전문적으로 복원하는 재규어 클래식 모터스가 E타입을 바탕으로 한 전기차를 만들겠다고 공표했다. 전체적인 모델은 여름에 공개될 계획이며, 로드스터형이 먼저 출시된 뒤에 쿠페형이 나온다고 한다. 가격은 I-페이스 12대 가격으로 추정된다. #

3. 여담


엔초 페라리의 "가장 아름다운 차" 발언은 1962년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발언인데, '''사실 이 말은 조롱에 가까웠다.''' 엔초 생전에 페라리는 프레임빌더로, 프레임과 구동계만 만들어 피닌피리나, 이탈디자인등에서 만든 캐빈을 결합해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즉 엔초 입장에서는 "진짜 중요한 부분(구동계)은 저급하고 외관이나 신경 쓴 별 볼일 없는 차"라는 뜻이었던 것. 왜냐하면 50년대 재규어는 최고속도가 120-150 mph(약 200-250 km/h)을 돌파하는 시판차(XK120, 140, 150)를 찍어내며 이를 바탕으로 한 C,D-타입으로 르망 24시 경주에서 10년간 7번이나 우승한 무시무시한 신흥강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재규어가 D-타입(50년대 중반에 알루미늄 모노코크 차체, 직분사엔진, 5단수동 등 당시 실험수준이던 첨단기술을 사용했다)을 기반으로 한 시판차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모든 메이커가 1950년대 내내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거듭된 제작연기 끝에 1960년대가 시작되고 나서야 밀라노에서 공개됐던 차는 xk150과 별반 차이없는 구동계(6기통 240마력 카뷰레터 엔진, 1,2단에 싱크로가 없는 4단 수동 기어박스)를 모노코크는 맞지만 강철로 만들어 더 커지고 무거워진 차체에 얹었기 때문에 성능경쟁에서 우위를 잃은게 명백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E-타입의 개발기간 도중 재규어의 하나뿐인 공장이(당시엔 공장 건물에 사무실도 있었고 신차개발도 거기서 했다) 의문의 화재로 전소되었기 때문으로, 이 화재로 모든 연구자료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생산설비, 이미 생산이 완료되어 납품대기중이거나 조립중인 차량, 적재해 놓은 부품중 일부 등 상당한 액수의 물건들이 불타 없어지거나 망가졌다. 재규어는 직접적인 재산피해를 입은것 뿐만 아니라 이를 복구하고 생산을 재개할 때 까지 신차납기를 전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도산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원래 계획했던 알루미늄 모노코크, 직분사장치, 5단수동을 적용하는것은 도저히 무리였기 때문에 방향을 선회하여 XK150의 엔진(3.4L)을 3.8로 배기량만 늘려[3] 저속토크를 강화하고 나머지 구동계는 그대로 가져가게 된다. 여기에다 원래 계획했던 알루미늄 대신 철로 만든 모노코크를 씌웠기 때문에 운동성능만 놓고 보자면 1950년대 초반의 XK120을 살짝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휠베이스가 길어지고 무거워지며 저속토크가 강화된 덕분으로 레이서가 아닌 일반인이 서킷이 아닌 도로에서 타기에는 승차감이나 조작편의성 면에서 훨씬 부드럽고 편안해져서 훨씬 매력적인 차가 되었고[4] 여기에 엔초의 비아냥은 오히려 '''"그 고집불통 엔초가?!?"''' 라는 입소문으로 전해지며 판매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엔초가 그걸보며 배 아파하지는 않았을것이다. 페라리는 차를 10배 더 파는 대신 10배 더 비싼차를 만들어도 팔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높은 브랜드 가치), 무엇보다 엔초는 시판차 사업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죽을때까지 시판차 사업은 단순히 레이스팀 운영자금을 긁어오는 용도로만 여겼지 정작 관심은 오로지 레이스에서 이기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페라리 시판차가 승차감이나 편의성 따위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툭하면 고장과 사고가 빈번하고, 사고가 났다하면 사망사고로 이어지는 과부제조기에서 벗어난 건 엔초 페라리 사망 이후 서서히 진행되기 시작해 페라리 360 모데나가 출시되면서 가시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한 것으로, 실제로는 얼마되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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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련 문서



[1] 당시 비교대상으로 자주 거론되었던 마세라티가 기본가격이 5,000파운드였는데 E-타입은 2,000파운드로 절반이 안되는 가격이었다. 다른 브랜드의 스포츠카들은 수제작에 가까운 상태였고, E-타입은 공장 컨베어벨트라인에서 조립되는 공산품이면서 실제 성능은 뒤지지 않거나 오히려 뛰어났으니, 현재 포르쉐 911이나 박스터가 맡고 있는 역할을 당시에 수행했던 셈이다.[2] 그러나 실제로는 차량 후방의 설계가 잘못되어, 초고속에서는 다운포스가 아닌 양력이 발생하여 컨트롤이 어려운 차였다[3] 이것으로도 약간은 모자랐고 나중에 미국에 수출을 하게되며 켈리포니아주에서 세계 최초로 시행한 환경규제에도 대응하기 위해 4.2L까지 늘렸고 최종적으로는 마력을 더 낮춰 210마력이 되었다.[4] 당시 뿐만 아니라 이후 80년대까지만 해도 스포츠카라는건 기본적으로 레이스카의 시판버젼이었기 때문에 다루기 어렵고 힘들고 살짝만 조작실수를 해도 사고로 이어지는게 당연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