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닌 얀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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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네덜란드의 바이올리니스트.
2. 생애
가족들 모두가 음악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2][3]
원래는 오빠를 따라 첼로를 배우고 싶어 했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6살때 바이올린을 시작했으며, 필립 히르쉬호른[4] 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웠다[5] . 그러나 필립은 얀센을 만난지 2년만에 뇌종양으로 사망하게 되었고, 이어서 러시아의 연주자인 보리스 벨킨에게 배우게 되었다.
첫 공연은 아버지가 연주하는 교회에서 가졌으며, 멘델스존과 브람스 콘체르토를 연주했다고 한다. 18살에 무려 RCO와의 협연을 통해 네덜란드의 슈퍼스타로 거듭나게 되었으며, 이후 베를린필, 런던필, RCO등 명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베르비에 페스티벌과 카네기홀 연주등 세계를 휩쓸며 클래식계의 거물이 되었고,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자국의 음악상중 최고 권위의 상인 네덜란드 음악상[6] 을 수상했다.
하지만, 세계를 넘나드는 고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던 중 돌연 휴식기를 가지게 되었다. 정확하게 밝혀진 이유는 없으나, 후술할 다큐멘터리에서 번아웃을 겪고 있는듯한 뉘앙스를 보였다[7] . 5달의 휴식을 가진 후[8] , 지금은 전과 같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데카와 독점 녹음 계약을 맺고있다.
3. 음악적 스타일
강력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섬세한 연주부터 파워풀한 연주까지 선보이는것이 특징.
얀센은 활을 가장 잘 쓰는 바이올리니스트중 하나인데, 자신만의 수많은 보잉법을 갖고 있으며, 마치 활과 악기가 몸에 붙어있는듯한 연주를 보여준다. 스타카토를 할때 활을 크게 튀기지 않게 연주하는것도 특징이다.
표현도 굉장히 풍부한데, 비슷한 나이대의 슈퍼스타인 힐러리 한의 연주가 얼음이나 로봇같다는 평이 많은 반면, 얀센의 연주는 따듯하고 열정적이다. 연주할때 액션도 화려하다. 이러한 다이내믹하고 감정적인 스타일때문에 가끔씩 질질 끄는듯한 연주를 할때도 있는데, 이것은 취향의 영역이긴 하다.
많은 비 바로크 전문 연주자들과 달리 바로크 음악인인 부모님의 영향덕분인지 제대로 바로크 스타일로 바로크곡를 연주하는 연주자이며[9][10] , 비발디/바흐부터 현대음악 작곡가인 브리튼의 협주곡까지 연주하는 음악의 범위또한 굉장히 넓다.
3.1. 실내악 활동
(2019년 위트레흐트 국제 실내악 페스티벌 )
어렸을때부터 솔로활동 이외에 실내악 활동도 했다. 처음 바이올린을 가르쳐준 선생님께서 실내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신이 만든 여러 실내악 앙상블에 얀센을 데리고 다녔으며, 얀센은 실내악에게서 음악을 만드는것의 본질과 소통을 배웠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여러 아티스트들과 실내악 활동도 병행하고 있으며, 1993년부터 약 13년동안 자신의 고향인 위트레흐트에서 IKFU[11] 라는 실내악 축제의 연주와 음악감독, 운영업무까지 맡아왔다. 이 축제에서는 이구데스만&주, 미샤 마이스키같은 클래식계 유명인사부터 베를린필 수석내지 유명 음대 교수급의 연주자등 얀센의 황금인맥들이 공연했으며, 감독직을 사임한 지금도 연주자로 참여하고 있다.
4. 여담
현재 쓰는 악기는 '''Rode, Duke of Cambridge'''라는 1715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이며, 노르웨이의 한 재단에서 대여해주었다.[12]
실력만큼 뛰어난 외모로도 유명하다. 본인 인스타에 올라오는 오피셜 포토나 인터뷰 영상을 보면 웬만한 배우 뺨칠정도. 여기에 공연때마다 하고 나오는 반묶음머리와 커다란 키[13] 까지 더해져 여신같다(?)는 찬양의 댓글이 많다.
집에 있을때는 생강과 시금치를 때려박은 그린 주스(...)를 아침으로 자주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그 일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언젠가 굴을 먹은적도 있는데, 그 이후로 굴을 무서워 한다. 노력했지만 그 뒤론 다신 굴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언젠가 연주의 조용한 부분에서 음료수 뚜껑을 따는 소리를 들었을때 매우 화났다고 한다. 기침이야 종종 있는일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병뚜껑을 따다니 세상에..
무대에서 연주하는것도 좋지만, 산 정상에서 하이킹 후 찾아오는 평화로움과 조용함, 소음이 없는 환경에서 행복하다고 한다. 바쁜 일상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기에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것도 좋아한다[14] .
2000년, 발레리 게르기예프로부터 '3달뒤 차이콥스키 협주곡 공연을 하고 싶다' 라고 연락이 왔으나, 얀센은 이 곡을 살면서 제대로 연주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던터라 3달동안 미친듯이 배우고 연습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연의 리허설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얀센 본인도 연주 자체에 만족스럽진 않은듯 하지만 좋은 경험이였다고 말한다. 물론 지금이야 완벽한 연주를 보여주지만..
콩쿠르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메이저 콩쿠르에 참가한 경력은 없다[15] . 얀센에 따르면, '콩쿠르에 참가했던것은 내가 한 일중 가장 끔찍한 일이였으며, 그곳에선 자유롭게 음악을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의 영어실력에 종종 고통받는듯 하다. '영어가 짧아 설명을 못하겠다' 라며 자폭드립을 자주친다.[16]
스웨덴의 첼리스트겸 지휘자인 다니엘 블렌덜프와 결혼했다.
TwoSetViolin의 브렛이 엄청 팬이다
2010년에 제작된 얀센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제목은 '''JANINE'''.
[1] 네덜란드어 발음[2] 할아버지도 음악인이였고, 아버지와 오빠는 오르간/하프시코디스트, 어머니와 삼촌은 바로크 가수, 다른 오빠는 첼리스트.[3] 재닌의 사계 앨범에서 하프시코드를 친 얀 얀센이 재닌의 아버지다.[4] 1967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인 라트비아의 바이올리니스트[5] 그에게서 얀센은 음악에 올바른 방법과 완벽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배웠다고 한다.[6] Nederland Muziekprijs[7] “Day in and day out, you give all these emotions, you give all of yourself. That’s how I want it—I wouldn’t want it any other way. Somehow you need love and support. That’s just something to help you come back into balance.”[8] 이때 악기도 두달간 잡지 않았다.[9] 바흐의 대표적인 바이올린 곡인 소나타와 파르티타의 수록곡들의 리듬은 쿠랑트, 지그처럼 고전 춤곡의 박자인 경우가 많은데, 수많은 비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이런 특징을 무시하고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10] 물론 얀센도 완벽한 시대연주를 구사하지는 않는다. 바로크 연주의 필수적인 요소를 지키면서 자신의 스타일로 풀어나간다.[11] International KamermuziekFestiva Utrecht, 위트레흐트 국제 실내악 축제[12] 명장이 만든 네임드 올드악기는 기십억이 훌쩍 넘어가기때문에, 아무리 유명한 연주자라도 소유하는게 거의 불가능하다. 과르네리를 갖고있는 정경화는 워낙에 엄청난 부자라..[13] 네덜란드 여성의 평균키는 171로 세계에서도 가장 큰데, 얀센은 그보다 더크다. 실제로 본 사람들은 175 이상으로 보인다고..[14] 이것은 'niksen'(빈둥거리기)이라고 하는 네덜란드인들의 공통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멍을 때리거나 단순히 창밖을 보는것만으로 뇌를 쉬게 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다.[15] 네덜란드 내 콩쿠르에는 참가한 적이 있다[16] 의사소통과 인터뷰에는 전혀 무리가 없지만 비 영어권 출신이다 보니 음악에 대한 감정을 표현할 영어 단어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다. 근데 네덜란드인은 유럽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비영어권 민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