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외교문서상 하자로 연장된 전쟁
1. 개요
실질적으로 전쟁은 끝난지 오래 되었으나 종전협정에서 서류상 미비로 인해 '''서류상으로는 여전히 전쟁 중인''' 외교 스캔들을 일컫는다. 흔한 사례가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인 명칭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로 평화협정 당시에 평화협정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국가가 멸망하여 그 국가를 대변할 정부가 사라졌거나 평화협정에서 특정 전쟁 당사국이 협정에 참여하지 못했다던가, 단순히 서류상 미비로 당사국을 누락하는 실수가 벌어지는 바람에, 내지 주요 당사국과 협정을 맺어놓고 듣보잡들은 잊어버리는 바람에 종전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일컫는다. 또한 고대에는 선전포고나 종전협정을 공식 문서로 남기지 않고 군대를 진군시키거나 후퇴하는 것만으로 전쟁을 개시/종료하는 경우도 흔했다.
물론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쟁이라기보다는 외교적 스캔들에 가까우며, 이 사실을 역사학자들이 발견해서 양국 친선의 의미로 이런 의미없는 전쟁을 종결하는 경우에 주로 쓰인다. 특히 왕정과 봉건제의 전통이 남아있던 국가들 에 이런 황당한 절차가 남아있어서 아무도 모르는 전쟁이 발견되어 끝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이런 떡밥들 중에는 그냥 사실과 다른 도시전설인 경우도 많다. 심하게 말하면 민간에 구전되는 헛소리란 뜻이다. 그리고 뒤늦은 평화 조약을 체결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사실 그냥 퍼포먼스에 불과하며 외교적 측면에서 효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조약 체결을 통한 종전이라는 개념이 희박했던 고대의 전쟁을 후계 국가/지역끼리 조약을 체결한다든지, 외교권이 없는 지역이 조약 체결에 낀다든지 등등... 다만 이런 전쟁을 굳이 밝혀내서 종전 선언 쇼까지 하는 이유는 당사자들끼리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과시하거나, 해당 지역에 전쟁 당사국의 외교관이나, 지자체장이 방문한 김에 덤으로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하고자 하는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아래의 포에니 전쟁 종전 선언.
2. 사례
- 335년 전쟁(영국-네덜란드 전쟁, 실제 전쟁은 1651년부터 1654년까지 3년 만에 종전)
잉글랜드 서남부의 실리 제도(Isles of Scilly)[2] 와 네덜란드 간에 335년동안 벌어진 전쟁으로 본래 이 섬은 청교도 혁명 당시 밀린 왕당파의 해군이 피신한 곳이었다. 이 당시 네덜란드는 의회파의 편을 들어 이 섬을 공격했다가 철수하고, 의회파가 잉글랜드 공화국을 설립한 뒤 1차 영란전쟁이 벌어졌을때 의회파는 이 섬을 장악하고 왕당파의 항복을 받아낸다. 1654년 잉글랜드와 네덜란드는 종전에 합의하지만 네덜란드가 선전포고를 했던 왕당파가 장악했던 실리 섬은 어느새 잊혀지고 만다. 그후 1985년 역사학자이자 실리 제도의 의장인 로이 던컨이 역사 기록을 뒤져내어 런던의 네덜란드 대사관에 아직도 실리 제도와 네덜란드가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통보했고 섬에 네덜란드 대사를 초빙하여 335년간의 전쟁을 끝내는 조약을 형식상 체결한다. 어차피 실리 제도는 독자적인 주권을 가져 본 적이 없으니 이 조약 자체는 법적으로 무효이고 그냥 퍼포먼스에 불과하다.
- 베릭-러시아 전쟁(크림 전쟁, 실제 전쟁은 1853년 ~ 1856년까지 3년 만에 종전)
베릭어폰트위드(Berwick-upon-Tweed)와 러시아 제국 사이에 117년간 전쟁이 지속된 촌극.
마을 하나 정도야 누락되어도 상관없지 않나 싶겠지만 이 마을은 브리튼 섬 역사상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에서 몇 번이나 그 주인이 바뀌었고, 그 때문에 두 나라가 연합하여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되었을때 베릭시는 상징적으로 두 나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치시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영국 국왕은 관습적으로 외교 문서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와 더불어 베릭의 군주임을 명시했는데 실제로 빅토리아 여왕이 크림 전쟁 선전 포고에 서명할때 "빅토리아, 대 브리튼, 아일랜드, 베릭과 모든 브리튼 세력권의 국왕"이라고 하였다. 정작 종전 협정에서는 베릭을 빼먹고 "빅토리아, 대 브리튼, 아일랜드와 모든 브리튼 세력권의 국왕"이라고 적어넣어 베릭시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는 소련이 등장했음에도 변하지 않았다.
1960년대에 언론사 등지에서 이 사실이 알려졌고 당시 베릭의 녹스 시장이 소련의 관리를 초대하여 1966년 베릭어폰트위드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간의 종전 협정을 주도했고, 영국 촌동네와 소련 간의 전쟁은 그렇게 끝나 이를 기념하는 크림 전쟁 리인액트 행사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
....지만 이 이야기는 상당한 과장이다. 고 한다라고 적어 놓은 이유는 도시전설에 따르면 그렇다는 거고 실제와는 맞지 않는 얘기이다. 1970년대에 BBC에서 다시 확인한 결과 사실 베릭시를 외교 공문에 포함시키는 관습은 1746년부터 아무도 쓰지 않는 관습이 되었고 이 해에 '웨일스 및 베릭 법'이 통과되어 법해석상 베릭시는 잉글랜드에 속하게 되었기 때문.[3] 게다가 사실 선전 포고 때조차 베릭시는 서명에 빠져있었다. 소련 사람을 초대한 건 맞지만, 사실 관리가 아니라 프라우다 기자를 초청한 것이었다. 그래도 녹스 시장은 기자에게 "러시아 사람들에게 더 이상 베릭과의 전쟁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신문에 써달라"는 말을 남겼다. 보충글
마을 하나 정도야 누락되어도 상관없지 않나 싶겠지만 이 마을은 브리튼 섬 역사상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에서 몇 번이나 그 주인이 바뀌었고, 그 때문에 두 나라가 연합하여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되었을때 베릭시는 상징적으로 두 나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치시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영국 국왕은 관습적으로 외교 문서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와 더불어 베릭의 군주임을 명시했는데 실제로 빅토리아 여왕이 크림 전쟁 선전 포고에 서명할때 "빅토리아, 대 브리튼, 아일랜드, 베릭과 모든 브리튼 세력권의 국왕"이라고 하였다. 정작 종전 협정에서는 베릭을 빼먹고 "빅토리아, 대 브리튼, 아일랜드와 모든 브리튼 세력권의 국왕"이라고 적어넣어 베릭시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는 소련이 등장했음에도 변하지 않았다.
1960년대에 언론사 등지에서 이 사실이 알려졌고 당시 베릭의 녹스 시장이 소련의 관리를 초대하여 1966년 베릭어폰트위드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간의 종전 협정을 주도했고, 영국 촌동네와 소련 간의 전쟁은 그렇게 끝나 이를 기념하는 크림 전쟁 리인액트 행사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
....지만 이 이야기는 상당한 과장이다. 고 한다라고 적어 놓은 이유는 도시전설에 따르면 그렇다는 거고 실제와는 맞지 않는 얘기이다. 1970년대에 BBC에서 다시 확인한 결과 사실 베릭시를 외교 공문에 포함시키는 관습은 1746년부터 아무도 쓰지 않는 관습이 되었고 이 해에 '웨일스 및 베릭 법'이 통과되어 법해석상 베릭시는 잉글랜드에 속하게 되었기 때문.[3] 게다가 사실 선전 포고 때조차 베릭시는 서명에 빠져있었다. 소련 사람을 초대한 건 맞지만, 사실 관리가 아니라 프라우다 기자를 초청한 것이었다. 그래도 녹스 시장은 기자에게 "러시아 사람들에게 더 이상 베릭과의 전쟁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신문에 써달라"는 말을 남겼다. 보충글
몬테네그로 공국이 일본 제국에게 선전포고하였으나, 그 사이에 세르비아와 합쳐지는 바람에 종전을 선언할 당사자가 없어졌고, 102년에 걸친 전쟁 끝에 2006년 몬테네그로가 독립 이후 일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몬테네그로와 일본의 러일전쟁 종전에 합의했다.
- 제1차 세계 대전(실제 전쟁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4년간)
안도라와 코스타리카는 베르사유 조약에 초대받지 못하고 독일 제국과의 전쟁도 제2차 세계 대전 너머까지 계속되었다. 코스타리카는 나치 독일에 선전포고한 적이 없음에도 포츠담 선언에 초대되어 독일과의 전쟁을 끝냈다. 안도라는 1958년 신문기사를 통해 종전을 선언했다.
- 제3차 포에니 전쟁 (실제 전쟁은 기원전 149년부터 기원전 146년까지 3년간)
카르타고가 로마에게 패배하였지만, 카르타고가 멸망하는 바람에 공식적으로 종전선언을 하지 않았다.
1985년 1월에 이탈리아의 로마 시장 유고 베텔레와 튀니지의 튀니스(현재의 카르타고 지역) 시장 체드리 쿠리빈이 만나 공식적으로 전쟁 종결에 서명함으로써 2131년이 경과한 후에서야 전쟁이 끝났다.
1985년 1월에 이탈리아의 로마 시장 유고 베텔레와 튀니지의 튀니스(현재의 카르타고 지역) 시장 체드리 쿠리빈이 만나 공식적으로 전쟁 종결에 서명함으로써 2131년이 경과한 후에서야 전쟁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