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츠담 선언

 

'''Potsdam Declaration'''
1. 개요
2. 전문
3. 선언문의 해석
4. 일본의 반응
5. 관련 문서


1. 개요


'''포츠담 선언'''은 나치 독일의 항복 이후에도 전쟁 수행 의지를 꺾지 않는 일본 제국무조건 항복[1]을 촉구하면서 독일 포츠담에서 미국 대통령 트루먼, 영국 총리 클레멘트 애틀리중화민국 주석 장제스가 1945년 7월 26일 포츠담 회담 도중 발표한 선언문이다.
이 최후통첩문에서 연합군은 일본 제국이 이 통첩의 수락을 거부했을 시 즉각적이면서도 완전한 파멸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결과적으로 일본 제국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사건 이후 항복하였다.[2]

2. 전문


Proclamation Defining Terms for Japanese Surrender

일본의 항복 조건을 규정하는 선언

Issued, at Potsdam, July 26, 1945

1945년 7월 26일 포츠담에서 발표

1. We-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the President of the Nat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China, and the Prime Minister of Great Britain, representing the hundreds of millions of our countrymen, have conferred and agree that Japan shall be given an opportunity to end this war.

1. 수억의 우리 동포들을 대표하여 우리들 미합중국의 대통령, 중화민국 국민 정부의 총통, 그리고 영국의 수상은 일본에게 이 전쟁을 끝낼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협의했고 합의에 이르렀다.

2. The prodigious land, sea and air forces of the United States, the British Empire and of China, many times reinforced by their armies and air fleets from the west, are poised to strike the final blows upon Japan. This military power is sustained and inspired by the determination of all the Allied Nations to prosecute the war against Japan until she ceases to resist.

2. 서부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지상군과 공군 전력을 증강해 온 미합중국, 대영제국과 중국의 엄청난 육해공군은 일본을 향한 최후의 일격을 가할 태세를 마쳤다. 이 군사력은 일본이 저항을 멈출 때까지 전쟁을 수행할 연합국의 투지에 의해 유지되고 또 고무되었다.

3. The result of the futile and senseless German resistance to the might of the aroused free peoples of the world stands forth in awful clarity as an example to the people of Japan. The might that now converges on Japan is immeasurably greater than that which, when applied to the resisting Nazis, necessarily laid waste to the lands, the industry and the method of life of the whole German people. The full application of our military power, backed by our resolve, will mean the inevitable and complete destruction of the Japanese armed forces and just as inevitably the utter devastation of the Japanese homeland.

3. 각성한 전 세계 자유인들의 힘에 대한 독일의 무의미하고 헛된 저항의 결과는 일본 인민들에게 하나의 사례로써 지독하고 명확하게 다가온다. 이제 일본에 집중되는 그 힘은 저항하는 나치에 가했을 때, 어쩔 수 없이 모든 독일 인민들의 산업과 삶의 터전인 땅들을 초토화시켰을 때보다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우리의 결의가 지지하는 우리의 모든 군사력의 적용은 일본군의 완벽하고 필연적인 전멸과 그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일본인의 고향의 철저한 파멸을 의미할 것이다.

4. The time has come for Japan to decide whether she will continue to be controlled by those self-willed militaristic advisers whose unintelligent calculations have brought the Empire of Japan to the threshold of annihilation, or whether she will follow the path of reason.

4. 일본이 일본 제국을 절멸의 문턱까지 끌고 온 우둔한 계산을 한 아집에 찬 군국주의자 조언자들에게 계속 지배당할 것인지, 아니면 이성으로 향하는 길을 따를 것인지를 결정할 시간이 도래했다.

5. Following are our terms. We will not deviate from them. There are no alternatives. We shall brook no delay.

5. 아래는 우리의 요구 조건이다. 우리는 이 요구 조건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대안은 없다. 우리는 어떤 지연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6. There must be eliminated for all time the authority and influence of those who have deceived and misled the people of Japan into embarking on world conquest, for we insist that a new order of peace, security and justice will be impossible until irresponsible militarism is driven from the world.

6. 반드시 일본의 인민들을 세계 정복에 착수시킴으로써 기만하고 잘못 이끈 자들의 권력과 영향력을 영원히 제거해야한다. 우리는 새로운 평화의 질서, 안전과 정의가 무책임한 군국주의를 지구상에서서 몰아내지 않는 한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7. Until such a new order is established and until there is convincing proof that Japan's war-making power is destroyed, points in Japanese territory to be designated by the Allies shall be occupied to secure the achievement of the basic objectives we are here setting forth.

7. 이러한 새로운 질서가 확립될 때까지, 그리고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생길 때까지, 우리가 주장한 필수적인 목표들을 확실하게 달성하기 위해 연합군은 일본 내의 특정 지점들을 지정하고 점령할 것이다.

8. The terms of the Cairo Declaration shall be carried out and Japanese sovereignty shall be limited to the islands of Honshu, Hokkaido, Kyushu, Shikoku and such minor islands as we determine.

8. 카이로 선언의 요구 조건들이 이행될 것이며 일본의 주권은 혼슈홋카이도, 큐슈시코쿠, 그리고 우리가 결정하는 부속 도서로 제한될 것이다.[3]

9. The Japanese military forces, after being completely disarmed, shall be permitted to return to their homes with the opportunity to lead peaceful and productive lives.

9. 일본군은 완전히 무장해제된 후, 평화롭고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10. We do not intend that the Japanese shall be enslaved as a race or destroyed as a nation, but stern justice shall be meted out to all war criminals, including those who have visited cruelties upon our prisoners. The Japanese Government shall remove all obstacles to the revival and strengthening of democratic tendencies among the Japanese people. Freedom of speech, of religion, and of thought, as well as respect for the fundamental human rights shall be established.

10. 우리는 일본 민족이 노예가 되거나 일본국이 멸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포로들을 학대한 자들을 포함한 모든 전범들은 엄격하게 재판[4]

받을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일본 인민들의 민주주의적 성향의 부활과 강화를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기초적인 인권을 존중하는 것 뿐만 아니라 언론, 종교 그리고 사상의 자유가 확립되어야 한다.

11. Japan shall be permitted to maintain such industries as will sustain her economy and permit the exaction of just reparations in kind, but not those which would enable her to re-arm for war. To this end, access to, as distinguished from control of, raw materials shall be permitted. Eventual Japanese participation in world trade relations shall be permitted.

11. 일본은 자국을 전쟁을 위한 재무장을 시킬 수 있는 산업을 제외하면 경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각종 산업들을 유지할 수 있고, 현물로써 적절한 배상에 대한 징수를 허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배와는 구별되는, 원자재에 대한 접근이 허가될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일본의 세계 무역 거래의 참여가 허가될 것이다.

12. The occupying forces of the Allies shall be withdrawn from Japan as soon as these objectives have been accomplished and there has been established in accordance with the freely expressed will of the Japanese people a peacefully inclined and responsible government.

12.연합국의 점령군은 이러한 목표가 완수되고 일본 인민들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평화를 지향하는 책임 있는 정부가 수립되는 즉시 일본에서 철수할 것이다.

13. We call upon the government of Japan to proclaim now the unconditional surrender of all Japanese armed forces, and to provide proper and adequate assurances of their good faith in such action. The alternative for Japan is prompt and utter destruction.

13. 우리는 일본 정부에게 이제 일본군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하고 이러한 조치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적절하고 충분한 성의있는 보장을 제공할 것을 촉구한다. 이에 대한 일본의 다른 대안은 '''즉각적이고 완전한 파멸이다.'''

선언문 원문

3. 선언문의 해석


"우리는 결코 이 요구 조건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대안은 없다. 어떠한 지연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We will not deviate from them. There are no alternatives. We shall brook no delay.)"라는 단호한 문장으로 일본 제국의 무조건 항복에 대한 그들의 굳건한 의지를 표현하면서, 연합국은 그들의 조건을 세세히 설명 해주었다.
덧붙여서 이러한 조건이 달성된다면 연합국의 점령군은 일본에서 곧 철수할 것임도 명확히 밝혔다.
항목별로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제1~5항: 서문. 일본의 무모한 군국주의자들이 세계 인민과 일본 인민에 지은 죄를 뉘우치고 이 선언을 즉각 수락할 것을 요구.
제6항: 군국주의의 완전한 배제.
제7항: 연합군의 일본 점령.
제8항: 카이로 선언의 실행과 일본 영토의 한정.
제9항: 항복한 일본군의 무장 해제와 귀국 보장.
제10항: 전쟁 범죄자의 처벌, 민주주의의 부활과 강화, 언론, 종교, 사상의 자유 및 기본적 인권 존중의 확립.
제11항: 군수 산업의 금지, 그 외 산업 및 경제 유지, 원자재의 수탈 금지 및 수출입의 허가.
제12항: 민주주의 정부 수립과 동시에 점령군의 철수 약속.
제13항: 일본 군대의 무조건 항복.

4. 일본의 반응


연합군도 당시 일본 국민들에게 있어 천황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 존폐에 관해선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전범 재판의 당사자들인 핵심 지도층은 둘째치더라도 다른 일반인들에게도 이 선언이 '천황을 재판장으로 끌어내려는 연합국의 뜻'이란 식으로 해석될 여지는 충분히 있었고, 결국 일본 정부는 이 포츠담 선언을 "묵살"한다고 밝혔으나, 미국은 몰락 작전으로부터 발생할 미군의 천문학적인 인명피해를 막고자 다시 한번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유도할 거대한 사건을 일으킨다.
사족으로 이 '묵살'의 경우 한국어로는 묵살이 '완전히 무시한다' 정도의 의미밖에 없지만 일본어로는 1. '무시한다', 2. '보류한다'라는 2가지 뜻이 있었다는 소리도 있고, 그래서 당시 일본의 입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 중에 2번으로 해석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었고, 당연히 연합군도 1로 받아들였다. 애초에 패배가 거의 확정난 마당에 보류하고 싶었으면 연기나 보류하겠다고 직접적으로 발표를 했어야 했고, 특히 이를 발표한 스즈키 간타로는 대놓고 ''''(포츠담 선언은)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전쟁을 지속할 노력을 할 뿐이다''''라고 발언하며 1의 의미가 맞다는 것을 확인사살하였다. 아니, 애당초 5조에서 어떤 지연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한 이상 보류를 한다고 해도 무시와 다를 게 없다. 즉, 전후 사정을 볼 때 '오역'을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역/일반사회 문서에도 이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있다.
사실, 포츠담 선언의 내용은 애매한 선전포고선빵을 때린 일본의 전적, 그리고 연합군과의 격차를 고려하면 '''매우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이후의 경제제재에 대한 논의도 없었고, 재무장 제한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으며, 식민지에 대한 배상 따위도 전혀 없었다. 이는 일본을 멸망시려는 의도가 아니라 일본을 점령하여 동아시아에서 장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미국의 의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는 독일에 제시한 항복 조건과 비교했을 때 더욱 의도가 선명했다.
  • 일본군은 무장해제 후 고향에 복귀할 수 있다. 독일군은 영미에 항복해도 소련군의 포로가 된 것으로 간주한다. 물론 말은 이렇지만 안 지켜진 경우도 엄청 많다. 고위직 포로들의 경우 자기들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소련이 넘겨달라고 요구해도 거부했을 정도. 소련군은 독일군이 저지른 만행 때문에 독일 대해 엄청난 악감정을 갖고 있었으니 고생할 각오를 해야했을 것이다. 5월 8일 주코프가 서명한 이 항복조건은 일부 독일군이 산발적인 저항을 계속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일본군은 만주 작전 때 소련군에게 직접 포로가 된 병력을 제외하면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물론 이 경우는 소련이 다른 연합군에 잡힐 포로를 요구할 명분이 없는게 소련은 그냥 마지막에 숟가락만 올렸기 때문이다.[5] 반면 독소전의 경우 수천만명의 군인과 민간인의 생명을 지불하면서 독일 지상군의 등뼈를 꺾었으니 소련의 목소리도 클 수 밖에 없다.
  • 일본군은 항복 후 산업 복구를 위한 무역에 참가할 수 있음을 명시했으나, 독일은 이런 수혜조건이 없었다.
  • 이후 베를린 패전선언(Berlin Declaration)에서, 독일은 일단 존재하지 않는 것(not exist)으로 간주되었다. 물론 국제법상 문제가 있었으므로 실제로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포츠담 선언에서 일본은 여전히 국가지위를 유지한다.
  • 독일 군대를 연합군의 평화유지 목적을 위해 사역에 동원할 수 있었다. 말이 평화유지 목적이지 실제로는 지뢰 제거 등 매우 위험한 업무에 투입되었다. 애초에 문서 자체에 '지뢰 제거 등'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일본군은 단지 무장해제 후 고향에 복귀하는 것뿐이었다.
  • 독일 민간인에 대한 처분도 애매하게 표시되었다. 독일의 민간 기구는 연합군 명령에 의하여 얼마든지 소환될 수 있었으며 독일 시민은 연합군의 지시에 불응할 경우 '적절한 조치'가 취해질 수 있었다. 이는 사실상 독일의 민간인이 연합군에 의해 사법처리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칼 되니츠 수반 임시정부는 즉각 체포되었으나 쇼와 덴노는 천황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했고 천황제는 존속했다. 다만 천황이 일본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던 시기 자체가 극히 제한적이며, 따라서 상징적 존재와 마찬가지였음을 고려하면 이 부분은 딱히 의미가 없고 실권을 흔들었던 도조 히데키 및 군국주의자들은 사형되었다. 그리고 초기 영국미국은 내심 되니츠를 인정하는 태도를 취하였으나 소련의 반발로 체포한 거라 딱히 혹독하다고 말할것도 없다.
  • 일본은 대체로 영토에 대한 손해 보단 식민지를 포기하는 조건에 불과했으나 독일의 경우 일부 독일 영토가 할양되는 조건이었다. 가령 1차 세계 대전 때부터 논란거리였던 자르 지역(Saargebiet)은 결과적으로 프랑스 보호령이 되었다. 프랑스는 이 지역을 완전히 자국에 귀속시키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고, 1957년에서야 서독에 반환된다. 그 외에도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의 구 프로이센 지역 영토는 영구히 폴란드 및 소련 영토가 되었다. 이 부분의 설명은 복잡하므로 종전 후 독일과 폴란드 영토의 논란 문서를 참고할 것. 일본의 경우 얄타회담에서 소련에게 남사할린쿠릴 열도를 양도하는 걸로 결정되어 있었다. 공통적으로 영지토 할양의 원인은 소련 때문인데 동아시아에서 소련이 영토 욕심을 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이후 SCAP의 행정,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등 전후 처리까지 미국일본의 편의를 봐준 일화가 많다. 이 경우는 주변 강대국과 이해관계가 충돌한 독일과 달리, 일본은 그런 강대국이 없어서 미국이 독자적으로 일본을 쥐고 흔들려던 것도 있다. 중국이 건재했다면 엄청난 반발에 부딪쳤겠지만, 치열한 국공내전 중이라 외교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5. 관련 문서



[1] 이 '무조건'이라는 조항이 당시 일본 제국항복을 주저시킨 가장 큰 문제였다는 의견도 있다. 왜냐면 무조건 항복이란 (당시로선) 천황의 안위를 위협하는 것이라 여겨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전후 GHQ의 우두머리였던 더글러스 맥아더가 일본의 사정을 감안해 천황제를 유지하였으나, 원자폭탄은 이미 터진 후였고 결과적으로 그놈의 알량한 존심이 서민들만 여럿 죽인 꼴이 되었다.[2] 원자폭탄의 위력에 관해 특별히 설명하자는 의견이 있기도 했지만, 실제 선언문에선 저런 막연한 경고로 그쳤다.[3] 카이로 선언은 일본이 1914년 이후 태평양에서 강탈한 섬 지역들, 만주, 요동 반도, 타이완 섬등을 포함하는 중국의 영토들, 그리고 '''일제 치하의 한국'''등 일본이 제국주의를 통해 부당하게 획득한 영토의 몰수를 요구한 선언으로, 8번 항목은 이를 재확인하고 전후 일본의 영토를 다시금 규정한 것.[4] 전후 극동국제군사재판이 실시되었다.[5] 소련은 45년 8월의 몇주 간의 만주 전역 기간을 제외하면 태평양 전쟁 내내 일본과 중립관계로 지냈으며, 영국과 중국도 전쟁 내내 탱커로 지내다 말기에서야 일본군에 대한 공세적 작전이 가능했으니, 태평양 전쟁은 사실상 미국이 혼자 딜러/힐러의 역할을 주도적으로 도맡은 절대적인 지분을 가진 전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