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대한민국
1. 개요
국내에는 처음에 '''예수재강림제7일안식회'''라는 이름으로 1904년에 들어왔다.[1] 일본 고베에서 이민하려고 하와이로 가는 배를 기다리던 이응현과 손흥조가 일본인 목사 쿠니야 히데(国谷 秀)를 만나 기독교 성경을 배우고 누노비키 폭포[2] 에서 침례받았다. 손흥조는 조선반도로 되돌아가 재림교회를 세웠다. 일본 담당 선교사까지 내한하며 교세를 확장했다. 이때 초기 교인 중에서는 독립운동가도 일부 포함돼서 미미하지만 조선 독립에 기여했다. 개신교회 목사 중 신사참배를 거부한 첫 순교자가 이 교회 소속으로 순교 전에 삼육대학교의 근간이라고 할 삼육학원을 설립했던 목사 최태현이다. 다만, 공식상으로 교단 차원에서는 신사참배를 용인한 것으로 되어 있다. (출처) 알고 보면, 개신교 여타 교파도 공식으로만 참배를 허용했을 뿐이지 개개인 차원에서 오히려 저항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에 유념하자. 재림교는 교리상 이유로 조선 기독교 중 최초로, 강제로 해산당하였다. 이 밖에 성결교와 동아기독교(현 한국침례회) 등도 같은 이유로 강제로 해산당하였다.
1925년 평안남도 순안 위생병원(현 서울삼육병원의 전신)의 의사였던 허시모(許時模, H. Heysmer)가 과수원에 들어와 사과를 서리하던 김명섭이라는 12살 동네 아이의 양 볼에 초산은(염산이라는 설도 있음)으로 "됴뎍(도적)"이라고 각자(刻字)하는 엽기스러운 일도 있었다. [3] 일이 1년 후 세상에 알려지자 상애회(相愛會)나 여러 애국청년단체가 안식교 반대 운동과 함께 선교사 추방 운동을 벌였다. 결국 안식교에서 허시모를 해임하고 그 해 12월에 본국으로 추방했다.
그러나 실제 내막은 알려진 바와 다르다는 설도 있다. 본래는 선교사 허시모가 한 일이 아닌, 조선인 과수원지기가 감정에 치우쳐 저지른 일인데 사실 그대로 경찰에 알려지면 당시 사회 분위기상 과수원지기가 사법상으로나 사회상으로나 무거운 처벌을 면할 수 없었던 탓에 그 과수원지기를 보호하려고 아메리카합중국 국적의 선교사 허시모가 자기가 한 것으로 하고 조선에서 추방당하는 것으로 결론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조선에 반기독교 운동까지 일어날만큼 후폭풍이 거대했던걸 볼때 선교하는 종교 이미지를 파괴해가며 누명을 썼다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또 그 당시 구타사건과 성추행 사건 때문에 추방당하는등 인격적, 도덕적인 문제가 있는 선교사가 꽤 있었다.
조선 최초 본부는 평안남도 순안군에 있었다. 그러나 북위 38도 이북으로 사회주의 세력이 들어와 기독교를 탄압하여 많은 기독교인이 자본주의 세력이 득세한 남한으로 내려갔다. 또한 재림교인들도 남한으로 대거 이동하였다. 이북에 있던 본부는 이후 순안국제공항 건설에 의해 철거되었다. 현재 본부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1번지에 있다. 이남 본부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건물과 교단 측에서 소유한 출판사인 시조사가 위치한다. 청량리동 1번지의 시조사삼거리라는 명칭은 바로 이 교단의 출판사인 시조사에서 따 온 지명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삼육재단'''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교단의 서울중앙교회는 종로구 견지동에 위치하는데 바로 옆에 조계종 템플스테이 센터가 있고 길 건너에 조계사가 있다.
이남 재림교회의 성경은 대한성서공회가 발행한 개역한글판이 사용된다. 세례라는 단어만 '''침례'''로 대체되었다. (예 : 세례 요한 → 침례 요한)
2. 병역 관련
양심적 병역거부 이야기가 나올 때 재림교회도 언급이 되곤 한다. 다만 교단 차원에서 병역 거부를 주도하거나 신도들에게 병역 거부를 설파하지는 않는다. 입영통지서를 받은 대다수의 재림교회 청년들은 별 말썽없이 군대에 간다. 문제는 이들의 교리상 '''토요일에는 쉬어야 한다'''는 것이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영창의 단골 손님이었고 징계 사유는 지시 불이행[4] 이었다. 다만 2010년부터는 국방부와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논산훈련소 내에 교회를 세우고 자대에서 토요일에 교회에 가는 것도 간부들이 허락해 주도록 약속을 받아냈다고 한다. 다만 종교활동은 입대 전 등록된 신도들만 가능하다.
재림교회가 병역거부를 한다는 세간의 인식은 '''비록 숫자가 매우 적긴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 다음으로 종교적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5] 상기한 대로 재림교회 신도들 중에 군복무를 마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주장하는 사람이 여호와의 증인이 절대 다수일 뿐이지만[6] '양심적 병역거부' 자체는 반드시 종교적인 문제가 이유가 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3. 식품 사업
삼육두유로 유명한 삼육식품을 운영하고 있다. 충청남도 천안시에 본사와 제1공장, 전라북도 완주군에 제2공장, 경상북도 봉화군에 제3공장이 있다. 과거에는 삼육대학교 교내에 삼육우유공장이 있었고, 삼육두유를 비롯하여 삼육우유와 아이스크림도 생산했다. 현재 우유공장은 철거되었다. [7]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교인들을 위해 콩으로 만든 햄을 판매하고 있고, 기름에 튀기지 않은 채식라면인 '삼육라면'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또한 이런 채식 요리 메뉴로만 구성된 채식뷔페 식당을 전국에 여러 곳 운영하고 있다. 채식뷔페 식당 중 토요일에 문을 닫는 곳은 십중팔구 이곳 소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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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교육 사업
학교법인 삼육학원에서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전부 운영하고 있다. 삼육대학교에 신학 과정이 있다.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하고 있는 삼육대학교가 대표적이고 4년제 간호보건전문대학인 삼육보건대학 [8] 을 운영한다.
중등교육기관으로는 삼육대학교 구내에 위치한 한국삼육중·고등학교,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서울삼육중·고등학교, 대전삼육중학교, 동해삼육중·고등학교, 서해삼육중·고등학교, 영남삼육중·고등학교, 원주삼육중·고등학교, 호남삼육중·고등학교가 있다. 학교정보공시서비스에 의하면 한국삼육중, 서울삼육중, 호남삼육중, 영남삼육중은 공식적으로 중학교가 아닌 각종학교로 분류된다. 비슷한 사례로 몇몇 예술중이 여기에 해당된다. 가수 BoA가 서울삼육중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했다. 물론 재림교회 신자는 아니고 천주교 신자다.
초등교육기관으로는 홍릉 인근에 위치한 서울삼육초등학교와 삼육대학교 구내에 위치한 태강삼육초등학교, 지방으로는 광주삼육초등학교, 대구삼육초등학교, 대전삼육초등학교, 동해삼육초등학교, ..., 서해삼육초등학교, 원주삼육초등학교, 춘천삼육초등학교가 있다.
유치원으로는 삼육대학교부설유치원이 있다.
외국어 전문학원인 SDA삼육어학원 역시 이 재단 소속이다. 교인이나 삼육대학교 학생한테는 할인 혜택이 있는 듯하다. 지점별로 규정이 다르니 주의하자.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이곳 재단 소속 학교라 해도 예를 들면 모든 메뉴의 고기는 콩고기라든가[9] 처럼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을 뿐 종교행사를 강제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10] 다만 주요 간부나 운영 측이 교인이 많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긴 하다고. 허나 삼육보건대학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있는 종교시간인 채플이 필수참석이고 결석 3번 이상이면 재수강을 해야 한다. 이 시간은 종교행사뿐만 아니라 인성교육(금연교육, 성폭력 예방 등), 총학생회 행사 등 다양한 행사들로서 지성인이 갖추어야 할 면모를 갖는다.
5. 의료 사업
삼육서울병원[11] 과 삼육서울치과병원[12] , 삼육부산병원[13] , 삼육부산치과병원[14] 이 대표적이다.
특히 서울위생병원은 1933년 경성요양병원이라는 이름으로 휘경동에 정착한 이후 일제강점기와 해방전후에 손꼽히는 근대적 의료시설이었고 병원장이었던 류제한 박사가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의 주치의가 되면서 60년대에 '''청량리 위생병원'''이라는 이름은 최고의 의료시설이었다. 피천득 시인은 자신의 시 '나의 사랑하는 생활'에서 청량리 위생병원에 입원하고 싶다는 선망을 표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신축한 삼육서울병원 장례식장으로 유명한데, 서울내에 있는 종합/대학병원 장례식장중 비교적 최근에 지어져 깨끗한 편이라 SBS 드라마 찬란한 유산과 야왕을 촬영하기도 했다. 특히 이곳에 있는 장례식장 VIP실이 굉장히 크다. 서울 내에 이렇게 큰데 찾기 힘들 정도다. 그래서 근처 경희의료원 등의 병원에서 사망한 명사들이 이 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리기도 한다.
이승만 전대통령과 얽힌 일화라던가, 장례식장의 유명세와는 별개로 병원 이용에 대한 만족도는 상당히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의료 서비스 만족도라던가 입원생활의 편리성, 간호사의 친절도 등에 대해 삼육병원을 이용했던 환자와 그 가족의 후일담은 좋은 이야기가 없다. 그에 반해 불만족한 사례는 상당하다. 근거리에 안암의 고대안암병원, 회기의 경희의료원이 있는데 굳이 저 상급종합병원 말고 위생병원을 고집하기도 그렇다. 이름의 명성에 비해 만족도나 수준은 그냥저냥하다.
6. 출판 사업
상술하다시피 교단 한국본부가 있는 청량리동 1번지에 교단 출판사인 '''시조사(時兆社)'''를 운영하고 있다. 청량리동 1번지외 회기동 일대의 시조사삼거리라는 지명과 버스 정류소 명칭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 보통 청량리나 회기동 일대 지역 사람들도 시조사를 보면서 저게 무슨 건물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현 위치인 청량리동 1번지에 위치한 것은 1912년부터이고 1920년 한국 최초로 고속인쇄기를 미국에서부터 도입하여 운용한 기록이 있다. 일제의 종교탄압 정책으로 강제 폐간과 몰수를 당한 적도 있었다. 현재는 교단 내 인쇄물과 SDA삼육영어학원 등의 교재까지 이곳에서 출판을 한다. 시조사의 명칭 유래는 이 교단에서 발행하는 대표 잡지가 시조(時兆 = 시대의 조짐)라는 이름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한다.
[1] 대한예수교장로회 등의 칼빈주의 성격의 교단들이 장로회로 통칭되듯이 이 명칭(예수재강림제7일안식회)에서 한국 개신교계 사이에서 안식교 또는 제7일안식교로 통칭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명칭이 과거와 다른 요즘, 재림교회에서는 약칭을 부를 때 안식교라고 부르지 않고 안식일교나 재림교 등으로 불리기를 바란다. 안식은 휴식을 뜻하지 안식일을 완전히 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2] 현재 이 폭포 앞에 신칸센 신코베역이 들어서 있고 폭포 밑으로 한신고속도로 제32 호 신코베 터널이 있다.[3] 처음에는 허시모 측에서 아이에게 사과값 배상을 요구하며 대가로 잡노동을 시키려 했으나 아이의 부모가 거절하자, 얼굴에 낙인을 찍었다고 한다.[4] 그래도 부대별 간부들의 재량에 따라서 이런 상황은 달라지기도 했다. 그냥 근무를 일요일로 밀어줘서 지시불이행을 면하게 해주는 부대도 있었다. 간부가 하급자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관용인데도 영창에 보낸 부대는 그냥 병사들을 노비취급하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보면 된다.[5] 또한 한국 역사상 최초의 집총거부자 또한 재림교회 신자였다. 41페이지 1970년대 중반부터 교단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양심적 집총거부에 대한 입장이 포기되었다고 한다.[6] 이쪽은 아예 군대=죄악이란 인식이 있고, 정치참여 역시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등사회와 충돌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7] 현재는 다니엘-요한관이 위치[8] 2006년 삼육대학교에 통폐합[9] 재림교도 입장에서는 그렇다 쳐도, 타 종교 신도나 무종교자들에겐 꽤나 호불호가 갈린다.[10] 대광고등학교에서 강의석이 종교강제 문제로 한동안 시끄럽게 해서 지금은 웬만한 미션스쿨에선 종교행사 강요는 거의 하지 않는다. 채플엔 참여시키더라도 듣는건 자유로 하는 경우도 많고.[11] 구 서울위생병원, 2009년에 삼육서울병원으로 변경[12] 구 서울위생치과병원. 1992년 개원[13] 구 부산위생병원, 2009년에 서울위생병원이 삼육서울병원으로 변경하면서 부산위생병원도 삼육부산병원으로 변경하는게 맞는데, 부산위생병원 측에서는 '위생병원'이라는 전통을 포기할 수 없다고 판단. 이름 변경을 유보하였다. 그런데 2015년 1월 16일에 부산위생병원에서 삼육부산병원으로 이름 변경을 하였다.[14] 구 부산위생치과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