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2000년/신인드래프트
1. 개요
2000년 KBO 신인 드래프트 (공식 명칭: '''200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1차 지명과 2차 지명으로 진행되었다.
2. 1차 지명
1999년 10월 13일까지 각 팀에서 팀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 중 1명을 뽑았다.
3. 2차 지명
1999년 11월 2일 서울특별시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개최되었다.
고등학교 및 대학교 졸업 예정자, 상무 소속 선수들 등 총 606명이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1]
3.1. 지명방식
1라운드부터 12라운드까지 진행되며 각 팀은 최대 12명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단,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
지명방식은 매 라운드마다 1999 시즌 성적 역순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3.2. 지명 결과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쌍방울 레이더스에 지명된 선수들은 지명권이 SK 와이번스로 인계)
@표시는 고졸로 지명받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대학 진학 후 중도하차한 선수.
4. 드래프트 평가
- 고졸우선지명이 폐지되었으며, 지명된 92명의 선수 중 대졸 이상인 선수가 8명에 불과해, 고졸 선수 선호가 높았던 신인지명 중 하나로 꼽힌다.
- 쌍방울 레이더스: 쌍방울의 지명권이 신생구단 SK 와이번스로 넘어갔기에 이 당시 지명된 선수들 중 실제 프로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은 모두 쌍방울 유니폼이 아닌 SK 유니폼을 입었다. 모기업의 부도로 인한 팀 해체 직전이었음에도 예상 외의 대박픽으로 진정한 승자가 되었다. 1차지명으로 SK 암흑기의 외로운 에이스이자 왕조 시절 불펜의 기둥이었던 이승호를 획득. 이후 라운드에서는 와일드씽 엄정욱, KBO 가을야구의 역사를 바꾼 가을여포 박정권(지명 후 동국대학교 진학)을 픽하며 알짜배기 픽을 완성했다. 현대로 팔아먹은 마일영만 있었으면 화룡점정이었겠으나 지금 와서는 결국 야만없. 한편 11라운드에서 아무 생각 없이 픽해서 계약금 없이 입단시킨 무명의 사이드암 투수 김명완은 2003년 양친의 이혼 후, 어머니의 성을 따르며 개명했고 2005년부터 각성하게 된다.
- 해태 타이거즈: 드래프트도, 모기업도 망했다. 강영식은 롯데에서나 터졌고, 나머지는 고스란히 자취를 감췄다. 특히 2차 1지명이었던 전하성은 지명을 거부하고 고려대에 진학했다가 중퇴, 병역을 해결한 후 해태 구단을 인수한 기아에 2004년 입단했지만 이미 거듭된 혹사로 망가져 1군에 데뷔조차 못한 채 방출되었고, 결국 전과 34범의 사기범으로 전락하며 인생을 완전히 망치고 만다. 그나마 LG로 트레이드되었다 친정으로 돌아왔던 김상현이 12년만의 우승에 크게 일조하고 떠난 것이 정말 유일한 위안거리. 2차 3라운드로 지명된 김현률도 전하성과 마찬가지로 지명을 거부하고 고려대로 진학했다가 부상 때문에 야구를 그만두고 현재 중학교 체육 교사로 있다. 학교 스포츠클럽 연식 야구부 담당을 하며 야구와의 인연은 이어가고 있는 중.
- LG 트윈스: 얼핏 보면 썩 훌륭하진 않아 보이나, 2000년에 인재가 많이 모자랐기 때문에 저 정도면 중박(...). 특히 서울 쪽 유망주가 궤멸 수준이여서, 29세였던 마이너리거 최경환을 픽하는 초강수를 두었으나 말아먹었고[3] , 계약금 올려받을 목적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주장해서 삼성이 거른 경상권 넘버원 투수 유망주였던 대구상고의 장준관을 2차 1라운드에 픽하여 2억 8천을 안겨주며 입단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그 이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4] 2차 2픽 김광수는 병역비리로 구속수감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4년을 날려먹고 복귀, 고작 LG 말기 딱 2년 팀에 도움이 되었다. 정작 만개한 곳은 한화에서 불펜으로 반짝하다가 기아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그나마 여성팬 증가에 지대한 공헌을 한 심수창을 담합 통수로 얻었고, 소소하게나마 김태완, 박기남(둘다 대학 진학 후 2004년 입단) 두 명의 내야 백업을 얻었다. 한편 경남고 재학 당시 6경기 연속 홈런 기록을 세웠던 2차 4라운드픽 포수 김진욱은 한양대학교 진학을 택했는데, 이후 몰락하면서 끝내 입단에 실패했다.
- 현대 유니콘스: 나름대로 성공픽. 1차픽은 망하고 2차 1라운드픽은 역대 최악의 신인왕이 되었지만, 쏠쏠한 대타 자원 오윤과 십여년 뒤 대활약을 펼친 소리없는 강자 유한준(동국대학교 진학 후 입단)과 투수 김성태, 그리고 거의 말번에 로또픽으로 현대 왕조의 든든한 필승계투 신철인까지 얻는 행운을 누렸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는데 그건 밑에 글을 참조하길 바란다.
- 삼성 라이온즈: 2라운드 픽 유망주들이 남김없이 폭망하며 전체적으로 재미는 못 봤으나, 1차픽에서 대구상고 투수 장준관을 거르고 향후 삼성의 황금기를 책임질 푸른 피의 에이스, 배영수를 뽑으며 역대급 1차지명 흉년의 승리자가 되었다. 한편 1년 후, 감독의 눈 밖에 나 롯데로 트레이드시킨 모 선수는 후에 협상왕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 두산 베어스: 두산 역사상 희대의 망픽. 다른 데엔 타 팀에서 터진 선수들이라도 있었지, 두산엔 그런 선수조차 없었다. 1차지명 문상호는 망했고 가장 오래 뛴 선수가 5년 뛴 2차 2픽 방승재. 그나마 이 해에 픽한 선수 중 가장 이름있는 선수가 투수 전향 후 대학과 상무를 거쳐 6년 뒤 신고선수로 입단한 작은 정재훈인데, 이 정재훈조차 고작 2년 뛰었을 뿐이다.
- 롯데 자이언츠: 만만찮은 망픽. 뼈밖에 없는 한때 국대 유격수가 유일한 소득. 1차픽인 강민영은 단 1승도 못 올리고 은퇴하였으며, 7라운드 지명자인 강관식은 성균관대학교 4학년 때 노히트노런을 달성했으나 입단에 실패하며 1년 쉬고 왼손 투수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두산에 입단했으나 단 1경기만 1군에 모습을 보인 채 방출되었다.
- 한화 이글스: 삼성과 비슷하게 재미는 못 봤으나, 주요선수를 얻은 케이스. 정민철의 번호를 물려주면서까지 기대했던 1차 지명자인 조규수는 결국 무너지고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되며 쓰라린 기억으로 남았지만, 노쇠한 강석천과 바톤터치하며 한화의 핫코너를 맡아준 꽃같은 국대 3루수와 고동진을 얻었다.
5. 이모저모
- 지명된 선수 고졸선수 84명 중 55명이 대학행을 선택했다. 대학 졸업 후 지명된 팀에 입단한 선수는 그 절반가량인 27명뿐.
- 쌍방울에 1라운드 지명된 마일영은 지명되자마자 현금 3억 원에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모기업의 재정난으로 인한 궁여지책이었으나 논란이 일었고 결국 2019년까지 19년간 신인지명권 트레이드가 금지되는 계기가 됐다.
- 현대에 7라운드 지명된 사이드암 투수 김기식은 영남대로 진학했다. 고 3이었던 1999년 이미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수투수상을 수상했었던 그는 대학에 간 후 포텐이 폭발하여 2학년이었던 2001년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춘계리그 감투상, 4학년이었던 2003년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최우수선수상과 제일화재 아마추어부문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현대가 뽑아놓고 대학보내서 터진 투수중 한 명이며 똑같은 케이스인 1년 후배 손승락[5] , 2년 후배 장원삼,이현승[6] 과 함께 현대팬들이 기대를 많이 하던 선수였으나 대학 졸업을 앞두고 배아종(뇌종양의 일종) 진단을 받으며 수술을 받고 6개월간 투병생활을 했다. 당연히 그의 건강을 미심쩍게 생각한 현대는 입단을 미뤘으나 본인이 야구에 대한 의지를 엄청나게 보여준 결과 2006년에 마침내 현대에 입단하게 되었다. 뇌종양 자체와 투병생활의 여파로[7] 불과 2년만에 은퇴했지만 병마에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것은 박수 받을 만하다. 은퇴 후 사회인 야구와 유소년 야구 지도자로 활동했다.
- LG에 11라운드 지명된 심수창은 당시 부상을 빌미로 경기 출장을 하지 않으면서 한편으로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준비했기 때문에 스카우트들끼리 지명하지 않기로 담합했다. 그러나 지명식 당일 LG가 담합을 깼다.
- LG에 12라운드 지명된 이준은 이해창의 아들. 이준은 이전 1996 신인지명 때 삼성에 지명된 바가 있었으나 대학 진학을 선택했었다. 이준은 미국 진출을 하겠다며 LG 입단을 거부하고 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무에 입대했고, 제대 후 삼성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 LG의 2차 2라운드 지명자인 김광수는 후에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의 스타트를 끊게 된다(...).
- 쌍방울의 2차 11라운드 지명자인 전주고의 무명 장신 옆구리 투수 김명완은 2003시즌 이후 양친의 이혼으로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되면서 개명을 하게 되는데, 개명한 이름이 바로 신승현.
- 2000년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서 해태의 지명을 받았던 전하성이 전과 34범이 되었다고 한다. 고교시절 혹사로 선수생활이 끝장난 후 안 좋은 길로 빠진 것으로 보인다. 도덕을 저버린 개인의 잘못이 가장 큰 문제이기는 하지만 당시 해결이 미흡했던 아마야구 혹사 문제와 아마선수들의 인성 교육 문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사건이기도 하다.#
- 해태의 2차 3라운드 지명자인 김현률은 고려대로 진학했으나 대학에서 부상으로 부진하면서 입단이 좌절되었고, 이후 LG트윈스의 신고선수로 마무리 훈련까지 따라갔었지만, 포기하고 이후 임용고시에 통과하여 선생님이 되었다. #
[1] 주의해야 할 것은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2] 상무 전역 후 신고선수로 입단[3] 98년 드래프트 때 두산에 유재웅의 고졸우선지명권을 양도하는 대신 귀국썰이 돌고 있던 최경환의 우선지명권을 양도받았는데, 그걸 사용하였다.[4] 삼성이 장준관 대신 뽑은 배영수는 삼성에서 장준관의 약 22배의 이닝을 책임졌으며, 장준관의 약 41배(...)의 승리를 팀에 안겨주었다.[5] 김기식이 대학 선배이기도 하다.[6] 역시나 김기식이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하다.[7] 운동능력이 확 떨어져 포구를 제대로 못 하는 정도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