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란 밀라노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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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크로아티아의 좌익 성향 정치인이자, 대통령 당선자. 2020년 1월 5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오는 2월부터 직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4년간 크로아티아의 총리를 지냈으며, 2007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9년동안이나 사회민주당의 당대표를 지냈다. 브뤼셀 자유 대학의 법학과를 졸업했지만 법조인 출신 정치인은 아니다.
2. 생애
1966년 10월생. 아버지는 공산당 당원이자 경제학자였고, 어머니는 학교에서 영어와 독일어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고 운동에 두각을 드러냈지만 대학은 법학과로 들어갔다. 자그레브 대학교에서 좌익 운동에 투신하였고, 네덜란드어를 배운 뒤 브뤼셀 대학교의 법학과에 입학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자그레브 상법원의 인턴으로 활동했다. 1994년 아르메니아 - 아제르바이잔 분쟁 때 OSCE에 참여해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결혼에도 골인한다. 1996년, 브뤼셀 자유 대학원 법학과의 석사학위를 최종적으로 따냈다. 1999년 부터 그는 외교부에서 일했다.
2.1. 정계 입문
2.1.1. 사회민주당 당대표
2007년 그는 사회민주당의 대표로 선출되었다. 공산당의 후계 정당인 사회민주당은 보수적인 분위기가 많았는데, 때문에 41세의 젊은 나이였던 밀라노비치가 대표로 선출된것은 당시 정계에서 큰 충격이었다. 2007년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은 그 여파를 몰아 창당 이후 2번째로 많은 의석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비록 선거에서는 패했지만 당원들 사이에서는 졌잘싸로 인식되어, 2008년 당수 재신임 선거에서 무려 '''80%'''에 달하는 당대표 연임 찬성표를 받았다.
그는 야당 리더로서 큰 활약을 보였다. 특히 2009년 지방선거에서 자그레브 시장직을 탈환해 우파 정권을 위기에 처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아니다 다를까 여당이었던 크로아티아 민주연합은 국정 운영 실패를 거듭했고 지지율도 폭락했다. 크로아티아는 2000년대 초반부터 유럽연합에 가입하려고하였으나, 2009년, 정부에서 슬로베니아와의 국경 문제로 유럽연합 가입을 보류시키자 많은 국민들이 반발하였다.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에서 민주연합은 대처에 완전히 실패해 경제를 말 그대로 주저 앉혀버렸고,[1] 국민들은 폭동에 준하는 반정부시위를 일으켰다.
2.1.2. 총리
2011년 총선 결과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밀라노비치의 사회민주당은 '''87석'''을 차지해 단숨에 제1정당이 되었으며, 기존 여당이었던 민주연합은 '''47석'''까지 의석이 줄어들었다. 이 선거 결과는 2000년대 들어서 제1정당과 제2정당의 의석수 차이가 가장 크게 난 선거였다. 밀라노비치는 총리로 취임했다. 그의 나이 45세였으며, 그는 크로아티아의 최연소 총리로 기록되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4년동안의 집권기동안 진보적이고 좌익적인 개혁안을 많이 내놓았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보건교육 확대, 의료보험 개혁, 그리고 동성결혼 권리 보장 등이 있었다. 또 밀라노비치는 유고 내전 당시의 전사자들과 참전용사에게 확실한 국가유공자 복지를 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이런 파격적인 개혁에 지지율은 한때 70%까지 올라갔지만, 집권 2년차부터 집권 피로기에 밀라노비치 정부의 불안정한 내각 운영 때문에 정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밀라노비치가 압도적으로 선거에서 승리한것은 민주연합 정부에 대한 피로감도 있었지만 뭣보다도 민주연합의 긴축 정책 때문에 대폭 축소된 복지정책을 좌파 사민당이 다시 복구시켜줄것이라는 기대감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밀라노비치 총리는 독일이 권장한 긴축정책에 의외로 순순히 따르면서 경제를 더욱 악화시켰고 국민적 지지를 크게 잃었다.
2013년 국민투표에서 동성애자 권리를 제한하자는 안건이 부쳐졌는데 당연히 진보적 성향의 밀라노비치 총리는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찍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레임덕에 시달리던 밀라노비치의 말을 들을 사람은 없었고, 국민투표는 고작 38% 투표율에 65% 찬성으로 통과되고 만다.
2015년은 그에게 있어서 최악의 해였다. 밀라노비치는 분명 참전용사들에 대한 복지를 약속했지만, 정권이 끝나가도록 국가유공자 복지의 ㄱ자도 나오지 않자 참전용사들과 전쟁 유가족들은 화가나 정부청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밀라노비치는 이들에 대해 '''이 시위는 모두 보수 우파 야당인 크로아티아 민주연합에서 사주한 반정부 폭동이다'''라는 같잖지도 않은 막말을 퍼부었고, 지지율은 20%대까지 떨어졌다. 결국 2015년 총선에서 아무리 못해도 재선은 성공할거라는 예측과 달리 사회민주당은 선거에서 패했고, 연정 구성에도 실패했다.
물론 크로아티아 민주연합도 충분한 의석수를 확보하지 못해, 2016년 재총선이 치뤄졌다. 정치학자들은 모두 사회민주당이 그래도 아직은 인기있었기에 사민당의 승리를 장담했으나... '''선거를 1주 앞두고 민주연합의 지지율이 폭등, 사회민주당은 선거에서 패배해 정권을 잃는다!''' 결국 밀라노비치는 사회민주당 당수 사임은 물론이고 정계은퇴까지 해야했다.
2.1.3. 대통령
정계은퇴 후 몇개의 직업을 전전한 후 별 일 없이 살고있었으나, 느닷없이 2020년 크로아티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면서 정계은퇴를 번복했다. 당연히 크로아티아 중앙정계에서는 이뭥미하는 반응을 보였으나, 당내에서 이미 확고한 입지를 다져놓았던 밀라노비치는 대통령 후보로 손쉽게 당선되었다. 모토는 '인격을 갖춘 대통령'.
그러나 상황은 순탄치 못했다. 이미 2016년 총선에서 패해 정계은퇴한 밀라노비치의 정계은퇴 번복을 곱게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았고, 더군다나 이미 총리직으로 신뢰를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밀라노비치였기에 당선은 힘들다는 예측이 주류였다. 그래서인지 지지율도 20%대를 맴돌았고, 현직 대통령이었던 콜린다 그라바르키타로비치에 비해 크게 밀렸다. 그러나...
그는 2016년 이후 산산조각났던 중도좌파 연합을 재건했고, 크로아티나 농민당, 암스테르담 동맹, 시민자유당 등 중도좌파 성향의 다른 야당들의 지지를 받아내 지지율을 30%대까지 상승시켰다. 게다가 그라바르 키타로비치 대통령의 자살골도 밀라노비치의 지지율을 크게 올려줬다. 그라바르 키타로비치 대통령이 2019년 연말에 부패혐의로 조사를 받고있던 자그레브 시장 반디치 밀란 [2] 에게 '''당신이 철창에 갇히더라도 생일 케이크를 선물해주겠다'''[3] 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져 지지율이 30%대 중반까지 떨어졌다. 결국 압도적인 지지율을 달리던 그라바르 키타로비치와 조란 밀라노비치의 지지율 격차는 10%p 내외로 줄어들었다.
1차 투표 결과, 상상치도 못한 결과가 나오면서 크로아티아 정계는 또다시 요동쳤다. 다름이 아니라 조란 밀라노비치가 '''29%'''를 득표해 '''26%'''를 득표한 그라바르 키타로비치 현직 대통령을 앞지른것. 크로아티아 역사상 대통령 선거에서 1차 선거때 '''현직 대통령'''을 '''야당 후보'''가 앞지른것은 이번 사례가 최초였기에, 크로아티아 민주연합은 충격에 빠졌다.
그럼에도 극우성향의 후보 스코로가 24%를 득표했고, 다른 우파 성향 후보들까지 모두 합치면 55%정도의 지지율은 나왔기에 2차 투표에서 그라바르 키타로비치가 승리할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였다. 한국의 언론들도 밀라노비치의 1차 투표 승리를 일장춘몽 승리라며, 2차 투표에서는 우파가 승리할것이라고 거의 확신하는 보도가 많았다. '''그런데...'''
선거 승리에 환호하는 밀라노비치
2020년 1월 5일 선거 결과 밀라노비치 후보가 그라바르 키타로비치 후보를 앞서면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것도 1%p 격차가 아닌, 52.7% vs 47.3%로 무려 '''5%p'''가 넘는 차이로 앞서면서 말이다. 외신들은 최근 극우가 득세하는 동구권에서 보기 힘든 좌파의 승리라며[4] 그의 행보에 따라 발칸반도 정세가 변할수 있다고 전했다. 선거 결과에 밀라노비치와 사민당 선거캠프는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반면 승리를 확신했던 크로아티아 민주연합과 그라바르 키타로비치는 거의 초상집 분위기(...)
하지만, 코로나19 정국으로 가면서 총리가 큰 존재감을 보이면서 7월 총선에서 자기 당이 4년 전보다 큰 패배했다.
3. 정치 성향
기본적으로 진보적이며, 사회주의적인 중도좌파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다만 사회적으로는 사회자유주의적이고 경제적으로도 온건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럼에도 동유럽 사회주의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꽤 진보적인 인사로 평가받는다. 젊고 진보적인 동유럽의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로버트 비에드론이나 주르차니 페렌츠와 비교되기도한다. 실제로 공약한 정책도 비슷하기도 하고. 다만 앞의 인물들에 비해서는 좀 더 진보적인 편.
유럽연합 가입에는 긍정적이지만, 의외로 난민 수용에는 부정적이다. 당장 밑의 어록만 보더라도 '우리에게는 가슴이 있지만 두뇌도 있기에 거절한다'라는게 있을정도. 비록 독일같은 다른 국가들에게 비난받는 했어도 현실적으로 공산 독재정에서 민주정으로 바뀐지도 얼마 안된 신생국가 크로아티아에게 난민 수용은 너무 무리한 요구였기 때문에 난민 수용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크로아티아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 발언이 상당히 좋은 평가를 들었다.
2020년 대선 결과 초졸에서 가장 적은 지지를 받고, 대학 졸업자들 사이에서는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또 고소득층과 50 ~ 60대 노인층에서 지지가 가장 높았다. 사회주의자들이 원래 20 ~ 30대 청년, 저소득층 초졸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에서 뭔가 이상한 지지층 분포이다(...) 반면 20대 청년과 저소득층 초졸 노동자들은 극우 성향의 후보들을 찍었다고 한다(...) 사실 고소득층이 좌익 성향으로 회귀하고, 반대로 저소득층, 저학력자들이 극우에 열광하는것은 비단 동유럽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구미권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4. 어록
크로아티아는 살아남고 통합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권리가 있었고,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 권리가 있었고, 도시를 파괴하고 마을을 불태운 사람들에게 인간 방패로 작용하지 않을 권리가 있었다. 오늘날 크로아티아는 전쟁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고, 누구의 고통이나 박해를 축하하는 것도 아니다.
크로아티아는 오늘날 자유와 평화를 찬양하며 또 순수한 마음으로서 승리를 축하한다. 이 전환점은 추악하고 비인간적이었던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유럽 난민위기 당시 난민을 더이상 수용하지 않겠다면서한 발언이다. 메르켈과는 대조되는 부분.우리에게는 가슴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에게는 두뇌도 있다.
5. 기타
다국어 화자이다. 크로아티아어 외에도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네덜란드어를 구사할 수 있다.
나이가 정말 젊다. 당장 대통령에 당선되었을때 나이가 50대 초반, 총리로 당선되었을때는 45세. 우리나라에서 가장 젊은 정치인중 한명에 속했던 안희정보다도 나이가 어린 셈이다. 또다른 한편으로는 유럽의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정치 환경을 옅볼수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사민당과 민주연합의 공식 유튜브에서는 각 대통령의 홍보 영상이 올려졌는데, 밀라노비치 후보의 영상은 대체로 좋은 평을 듣고있다. 반면 그라바르 키타로비치 대통령의 영상은 싫어요 : 좋아요 비율이 3 : 1쯤 된다(...).
노무현과 비슷한 정치 인생을 걸은 사람이기도 하다. 둘다 법학을 공부했고,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중앙 정계에 진출했으며, 진보적 성향의 정치인으로 분류되었고, 천수이볜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밀라노비치는 천수이볜과는 다르게 2020년 대선으로 화려한 재기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