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태

 






조성태(趙成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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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11월 3일 ~
복무
대한민국 육군
기간
1964년 ~ 1996년
임관
육사 20기
최종계급
대장
최종보직
제2작전사령관
1. 개요
2. 생애
3. 가족관계
4. 기타
5.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군인, 정치인. 제35대 국방장관을 역임했다.

2. 생애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출생했다. 천안중학교,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12회), 육군사관학교(20기)를 졸업하였다.
대령 시절 육군본부 전략기획과장으로 2차 율곡계획 작성에 참여하며 군사력 건설, 기획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했다. 다만 하나회 출신들에 밀려 대령, 준장, 소장 진급은 2차에 걸쳐서야 이루어졌다. 연대장 시절에는 자신의 부대에서 지뢰 사고로 장병 5명이 부상을 당해 하마터면 군 생활을 불명예스럽게 끝낼 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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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제2군 사령관 임명 당시 김영삼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보직 신고를 하는 모습[1]
이후 그의 재능을 눈여겨 봤던 이종구 제2군 사령관이 국방장관에 임명되면서, 1991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으로 발탁되었다. 1992년에는 1군단장, 1993년에는 국방부 정책실장 등의 중장 직책을 거쳐, 1995년에는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2군 사령관으로 재직한 후 이듬해 전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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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장관 시절[2]
군복을 벗은 후 잠시 국방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활동하다가, 율곡사업 시절 상관이었던 임동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추천으로 1999년 김대중 정부의 2번째 국방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해 6월 제1차 연평해전에서의 성공적 대응으로 군 내외의 찬사를 받았고, 당시 개발이 막 끝난 K-9 자주포를 연평도, 백령도의 해병 부대에 가장 먼저 배치시켰다.[3] 덕분에 2010년 11월23일 벌어진 북한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해병대가 반격을 할수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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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에 사상 첫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위해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북한 측의 김일철 인민무력부장과 만난 모습
장관직을 떠난 후인 2004년 ~ 2007년에는 열린우리당의 공천으로 제17대 국회의 국방위 소속 비례대표로 활동했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정부의 전작권 전환 추진에 반대했고, 2007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 공론화된 북방한계선(NLL) 의제화 여부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후 더 이상의 공직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

3. 가족관계


아내 이영숙 여사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다.

4. 기타


공직을 떠난지 한참 지난 2016년에는 김제동영창 발언으로 한때 논란이 되었었다. 김제동이 방송을 비롯한 여러곳에서 자주 이야기한 군생활 에피소드로서 김제동의 발언 내용을 정리하면 "군대행사 사회를 보던중 어떤여자에게 아주머니라고 말했는데 그 여자가 해당지역 별4개 대장의 부인이어서 그 발언에 열받은 바로 그 사령관이 김제동을 영창에 보냈다" 이다
김제동의 군생활시기를 볼때 그 지역 별4개 사령관은 당시 2군 사령관이었던 조성태 대장이고, 김제동은 대구 바로 옆의 50사단 출신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조성태 대장이 아내를 아줌마라고 지칭한 김제동을 영창 보냈다" 인데 전혀 근거가 없는 내용이다 심지어 김제동의 소속 군부대도 어디서는 2군 사령부, 어디서는 50사단 이런식으로 말이 다르다 그러나 여러가지를 확인해본 결과 김제동은 50사단 출신이다. 사실을 확인해보면 발언내용은 완전한 거짓인데 거짓말로 장관급 대우를 받는 군인을 모욕한 것이다. 이것에 대해 해명하라고 하자 김제동은 웃자고 한말에 죽자고 달려든다는 식으로 비겁하게 말을 돌렸다. 결과적으로 가뜩이나 몇년전부터 이미지가 나빠졌던 김제동만 이미지가 더 나빠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바로 위의 가족관계에 썼듯이 자녀는 1남 1녀인데, 개중에 아들 용근씨도 육군사관학교졸업하고 군 복무 중이다.

5. 둘러보기



[1] 사진 속의 해군 제독은 같은 시기에 해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던 안병태 제독.[2] 좌측은 양우천 육군 중장(당시 8군단장), 우측은 장정길 해군 중장(당시 해군참모차장)이다. 이후 두 사람 모두 대장으로 진급해서 양우천이 2군 사령관, 장정길은 해군참모총장을 각각 역임하였다.[3] 제1 연평해전에 패한 북한이 서해 NLL 무효를 선언하고, 그보다 더 이남으로 내려간 서해상 분계선을 선포한 상태였다. 이에 북한의 또 다른 도발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K9 자주포가 육군보다 서해 5도의 해병대에 먼저 배치되도록 조치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