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남북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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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7년 10월 2일에서 10월 4일까지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평양에서 진행한 남북정상회담.
2. 진행
참여정부 수립 이후 임기 초반의 대북송금 특검 등으로 경색된 채 흘러가던 남북관계는 다시 유화 국면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2007년 8월 8일 오전, 대한민국과 북한은 동시에 제2차 남북 정상 회담이 2007년 8월 28일부터 8월 30일에 걸쳐 개최될 것이라 발표했다. 그러나, 2007년 8월 18일 북한은 수해로 인해 회담 일정을 연기할 것을 요청하였고 구체적인 회담 일자 지정을 남측에 일임했다. 이에 남측은 2007년 10월 2일에서 10월 4일 동안 회담을 개최하기로 제안했다.
참여정부는 위원장을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으로 하는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회’와 이재정 통일부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준비기획단’을 구성하고, 준비기획단 산하에 사무처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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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회담과는 달리 2차 회담에서는 평양개성고속도로를 통한 육로 방문이 합의되었고, 일정 첫 날인 10월 2일 9시 5분 대한민국의 대통령 노무현은 국가 원수로서는 최초로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 북한의 국방위원장 김정일은 4·25 문화회관 앞에서 평양으로 들어온 노무현을 맞이했다.'''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입니다.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저의 이번 걸음이 금단의 벽을 허물고, 민족의 고통을 해소하고, 그동안 당해왔던 우리 민족의 그 많은 고통들을 이제 넘어서서, 평화와 번영의 길로 가는 그런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원 영상 54초부터]
-'''노무현 대통령, 군사분계선을 통과하기 전.'''
일정 둘째날인 10월 3일 9시 30분 남북 양측 정상은 소수의 배석자를 대동하고 회담을 가졌고, 일정 마지막 날인 10월 4일 양측은 6·15 남북 공동선언에 기초해 남북의 ‘평화와 번영’을 목표로 한 2007 남북정상선언문을 채택했다.
둘째날의 회담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나전칠기 병풍과 드라마와 영화 DVD, 팔도특산 차 세트를 선물했고, 김정일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500상자의 송이버섯을 선물했다. 청와대에서는 이 송이를 정치인, 소록도 주민, 실향민 단체 등 사회 각계각층과 나누겠다고 공식발표했다. 이 때, 김정일의 특사로 내려온 것이 바로 박재경 조선인민군 대장인데, 이 사람이 바로 1.21사태 때 살아서 북으로 도주한 무장공비라는 설이 있다.
3. 10.4 남북공동선언
이 회담을 바탕으로 10.4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자세한 건 해당 문서 참조.
4. NLL 대화록 논란
2012년 10월,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대선 정국에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본 결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NLL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는 거짓 의혹을 제기한 일이다. 자세한 내용은 NLL 대화록 논란을 참조.
5. 여담
- 남북정상회담의 상징과도 같은 군사분계선 노란선은 기존에는 없던 것이라고 한다. 원래 아무런 표시가 없는 곳에 상징성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 그려 넣은 것이다. 문재인의 <운명>에 따르면 정상회담을 이벤트화 시키지 말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때문에 노란선을 새로 그리는건 허가되지 않았으나 당시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이 책임을 지고 '북한과 합의가 되었다'고 허위보고하여 성사된 장면이라는 것 # 다만, 이를 기획한 문재인 본인은 대통령비서실장 신분으로 서울에 남아 청와대를 지켰다.[2]
- 조중동 같은 보수언론이나 보수 인사들은 국군포로 등 납북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부정적으로 봤는데, 특히 만화가 신경무는 조선일보 <조선만평>에서 비난 일변도로 다룬 바 있다. (관련 기사, 관련 만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