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열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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曺烈承
1920?[1] ~ ?
1. 소개
2. 대중매체에서
2.1. 드라마 야인시대


1. 소개


실존했던 정치깡패로 동아일보의 1961년 10월 24일자를 통해 동대문파에서 동대문시장상인련부회장을 지낸 것으로 나오며, 제1공화국 당시의 여러가지 폭력 사건으로 인해 1961년 12월 23일 혁명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65년에 가석방되었고 이후 행적은 불명. 약 20여 년 뒤에 동대문파 분석기사로 잠시 등장하는 것 외에는 소식을 알 수 없다. 아마 80년대 후반이나 90년대 초반쯤 사망한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조열승 및 이석재 등과 인연있는 이천출신의 사람들과 제보자의 말에 의하면 이석재유지광처럼 석방 후 이천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개인 사업을 하며 지냈고 이천에서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석재가 운영하는 고아원에 매달씩 돈을 기부했다고 한다고 하는데 조열승은 이천 출신이 아니다..

2. 대중매체에서



2.1. 드라마 야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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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차룡'''
'''등장 에피소드'''
'''62~122화'''

'''보아한께 힘좀 쓰는 모양인가 본데, 상대를 영 잘못 골라부렀어. 나는 시끄러운거 좋아 안해부러.'''

'''아 염병허고 자빠졌네'''

담당배우는 차룡.[2][3] 극중 동대문파의 고문으로 동대문에게서 임화수에게 형님대접받는 인물. 비록 실권은 임화수보다는 딸리지만 나름 큰 영향력을 떨친 인물이다. 말그대로 서열만으론 김기홍 다음이었지만 그가 떠난 후 1.5위쯤 된다. 이정재가 단성사 저격 사건으로 구속되었을 때 2인자격인 임화수가 병원으로 피해서 농땡이를 치는 동안 회장대행 역할을 맡기도 했다. 서남 방언을 사용한다. 실제 조열승의 고향은 김천시 봉산면이라고 전해지나, 배우 차룡씨가 전남 목포시 출신으로 서남 방언에 익숙하다는 점 때문에 그렇게 설정한 것으로 추정된다.[4]
처음 등장은 동대문 지게꾼 왕초로 나오며 임화수와 같이 극중 장사장[5] 이라는 인물을 협박해 점포를 날로 먹으려고 나온다. 그리하여 장사장의 요청을 받은 이정재와 1:1로 맞붙어 초반에는 대등하게 싸웠으나 점차 밀리면서 결국 이정재에게 항복하고 점포를 포기한다.[6] 본인 말로는 맞장떠서 진 건 이정재를 상대로 처음이라고 한다. 참고로 싸우기 전 카페에서 이정재에게 '''"당신은 상대를 잘못 골라부렀구먼, 나 동대문 지게꾼 왕초 조열승이요."'''라며 도발했지만 정작 이정재와 붙었을 때는 오히려 일방적으로 얻어 터지면서 '''"한 가닥 하는구만 괜찮은 실력이야.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어!"'''라고 그대로 되돌려받으며 완벽하게 굴욕을 당한다.
그 후로 이정재를 형님처럼 모시게 된다. 그래서 동대문파가 결성되었을 때 동대문파가 배신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주먹패들마저 이천출신들 위주로 모은상황에서도 이천출신이 아님에도 고문역할로 취임했고, 똑같이 이천 이외의 출신인 김동진과 달리 차별받지 않았다.[7] 김기홍이 조직을 떠난 후로는 그를 대신해 참모직을 맡기도 했으며 극중 대사와 비중도 약간은 더 늘어났다. 하지만 초반에 나름 한주먹하는 이미지와는 달리 시라소니에게 손도 못쓰고 당하는 등 전투력 측정기로 전락하는 인물.[8][9]
이정재가 동대문파 회장에서 물러날때 이석재, 이억일과 더불어 일선에서 은퇴한다. 이석재와 함께 초야에 칩거한 이정재의 집을 방문하거나 고대생 습격 사건을 터트린 임화수에게 이정재의 명령을 받고 직접 찾아가 따지는 장면이 몇번 묘사된다. 실제 인물 조열승이 이정재 실각 이 후에도 주먹계에서 손을 씻지 못했다가 혁명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가 몇년후 석방된 것을 생각하면 작중 대우가 나름대로 좋은 편이다. 조열승에게 도움을 받은 인연이 있었던 이천 출신의 제보자들에 따르면 담당배우인 차룡은 실제 조열승과 매우 닮았다고 한다.

[1] 신문에서 1961년 당시 41세라고 표기한 신문도 있고, 43세라고 표기한 신문도 있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는 자신보다 한 살 많다고 임화수가 직접 언급했다. 임화수가 1921년 생이니, 조열승#s-2은 작중 1920년생이 되는 셈이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는 나이가 불명확하나, 아마도 임화수와는 비슷한 나이대고 이정재하고는 연배 정도쯤 될 것으로 추정된다.[2] 1962년생, 전남 목포시 출신으로 덕인고등학교를 졸업했다.[3] 드라마 왕초에서는 시라소니로 나온다. 그 이전에는 시라소니(도전자편)이라는 영화에서 봉천두란 별호가 있는 이상대를 맡았다. 이상대에 대해서는 각종 백과에서도 나오지 않아, '봉천두' '이상대' 2개 키워드를 같이 넣어 검색해야 겨우 블로그를 통해 다소나마 알 수 있다. 영화 복수혈전에서는 조폭 중간보스로 나오는 등 주로 액션 위주의 배역을 맡는다.[4] 원래 대본상에 조열승은 서울 표준 말투였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이 표준 말투에 서툴어 전라도 사투리로 바꾸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제작진에서 OK사인이 나와 촬영을 했는데 코믹한 역할이 아님에도 말투로 소소한 재미를 줬다. 결국 비중이 늘어나 동대문 사단 고문으로 까지 승진했다고 한다.[5] 이정재의 학교 선배라고 한다. 하지만 6.25 전쟁 이후 행방불명. 덕분에 장사장이 갖고 있던 동대문은 이정재의 것이 된다.[6] 이 때 임화수가 스틸레토를 꺼냈지만 그를 제지하고 패배를 인정했다.[7] 김동진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도 이천출신이 아니란 이유로 차별받았던게 직접적인 원인이었다.[8] 심지어 시라소니를 상대로 독사, 백장미, 보스, 고릴라보다도 더 쉽게 깨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실력이 그들보다 아래는 아니다.[9] 다만 명동파 맨발의 대장보다는 확실히 강하다. 맨발의 대장은 57화에서 이정재와 붙어서 일방적으로 털리기만 했지만, 조열승은 그래도 초반에는 이정재와 어느정도 대등하게 싸웠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