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본햄

 




'''존 본햄
John Bonham
'''


[image]
'''본명'''
존 헨리 본햄(John Henry Bonham)
'''출생'''
1948년 5월 31일, 잉글랜드 워세스터셔 레디치
'''사망'''
1980년 9월 25일(향년 32세) 잉글랜드 버크셔
'''국적'''
'''영국''' [image]
'''배우자'''
팻 필립스(Pat Philips)
'''자녀'''
제이슨 본햄(Jason Bonham)(1966년 ~)
조이 본햄(Zoë Bonham)(1975년~)
'''소속'''
레드 제플린
'''활동'''
1962년 ~ 1980년
'''직업'''
음악가
'''장르'''
록 음악
'''악기'''
드럼, 퍼커션
1. 소개
2. 생애
3. 레드 제플린
4. 죽음
5. 영혼의 드러머


1. 소개


레드 제플린의 드러머. 현대 드럼의 기본 주법을 완벽하게 정리하였다는 점에서 업적을 높게 사 '''만세불변의 역사상 최고 락 드러머''', 내지는 '''록 드럼의 신'''으로 꼽힌다.[1] 지미 헨드릭스라는 천재가 오늘날의 기타 사운드를 정립했다면 드럼에는 존 본햄이 있었다. 그의 드러밍은 드럼 소리를 표현할 때 흔히 표기되는 '쿵 - 빡'을 가장 잘 살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록 음악 최초로 컴비네이션 주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거대한 투베이스 드럼 세트는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한 것일 뿐 드럼 연주에는 불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기본적인 드럼 세트만 있어도 모든 리듬을 표현 할 수 있다는 자신의 이론을 컴비네이션을 폭넓게 사용한 드럼 솔로로 입증했다. 그리고 2016년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드러머 순위에서 1위로 뽑히기도 했다.
그의 이름을 '''존 보냄'''이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많으나 이름의 실제 발음에 근거한 표기는 '''존 보넘'''이다. Beckham을 벡햄이라고 하지 않고 베컴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한국의 록팬들 사이에서는 "본햄"이라는 표기가 예전부터 너무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는 바람에 본햄이라는 한글 표기로 정착되었다.

2. 생애


존 본햄은 1948년 잉글랜드 우스터셔 주 레디치에서 조안과 잭 본햄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부엌의 냄비와 팬을 두드리길 좋아했고, 다섯 살 때는 빈 통과 커피 깡통으로 첫 번째 드럼 키트를 만들기도 했다.[2] 열 살쯤에는 진짜 드럼을 연주하기 시작했으며, 열 다섯 살에는 아버지의 선물로 중고 드럼 키트를 갖게 되었다.

3. 레드 제플린


존 본햄은 마지막으로 레드 제플린에 합류한 구성원이다. 밴드 오브 조이에서 함께 활동했던 로버트 플랜트가 새로 가입한 밴드에서 드러머로 그를 추천하였으나, 처음에는 합류하기를 주저했다. 플랜트는 본햄을 설득하기 위해 본햄의 단골 술집인 'Three Men in a Boat'로 8통의 전보를 보냈으며, 이어 매니저 피터 그랜트가 40통의 전보를 보냈다. 당시 본햄은 여러 밴드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으나 그 중에서 음악이 가장 마음에 든 뉴 야드버즈(레드 제플린의 전신)를 선택했다.
레드 제플린은 1968년 12월에 바닐라 퍼지의 오프닝 밴드로 미국 공연을 시작했다. 본햄은 이때 친분을 맺은 바닐라 퍼지의 드럼 연주자 카마인 어피스의 권유로 드럼을 루딕으로 바꾸고, 이후 평생 동안 루딕 드럼을 사용했다. 드럼 연주자로는 드물게 공연에서 일상적으로 30분 이상을 솔로로 연주하였으며, 《Led Zeppelin II》에는 드럼 중심의 연주곡 〈Moby Dick〉이 수록되기도 하였다. 참고로 딥 퍼플리치 블랙모어와 친했다고 한다.[3]

4. 죽음


존 본햄은 1980년 9월 25일, 지미 페이지의 저택에서 사망하였다. 향년 32세. 밴드의 말기, 지미 페이지로버트 플랜트의 계속되는 친목질에 지친 존 폴 존스가 탈퇴하는 등, 긴장감 넘치는 밴드의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어했던 존 본햄은 원래 술이 약한 체질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술을 찾기 시작했다. 1980년 9월 24일 리허설을 하기 위해 지미 페이지의 저택에 온 본햄은 아침부터 하루 내내 서른 잔이 넘는 보드카를 마셨고 결국 자정이 넘어서 존 폴 존스와 다른 한 사람이 만취한 그를 침대로 옮겼는데 25일 오후 1시 45분, 존스가 본햄이 숨을 쉬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4] 부검 결과 본햄은 수면 중 구토로 질식사한 것으로 밝혀졌다.[5]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10월 4일, 우스터셔의 교회에 묻혔고 이후 레드 제플린은 12월 4일 성명을 내고 해체를 선언했다.
존 본햄 사망후 아들 제이슨 본햄(Jason Bonham)이 아버지를 이어 전업 드러머로 활동 중이다. 66년생으로 존이 18세때 낳은 아들인 제이슨은 아버지가 사망한 다음해인 15세때 처음으로 밴드활동을 시작해[6] 88년 아빠친구 지미 페이지의 솔로 앨범 투어에 따라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UFO,포리너,마이클 잭슨등 여러 밴드에서 세션 드러머로 활동중이다. 실제로 2007년 아버지가 계시던 밴드의 생존한 들과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손자 제이거 본햄(Jager Bonham)은 보디빌더 일을 하고 있는 동시에 겸사겸사 '''드럼도 연주한다!!'''

5. 영혼의 드러머


말이 필요 없다. 보면 안다.


지식채널ⓔ <심장의 고동> 편에 존 본햄이 소개되었다. 지식채널에서 락 뮤지션이 소개된 건 지미 헨드릭스 이후 두번째였다. 여담으로, 해당 방송분에는 '다른 드러머들'로 더 후키스 문딥 퍼플의 이언 페이스도 짤막하게 등장한다.

[1] 최고의 드러머가 누구냐 하면 재즈 드러머의 최고봉 버디 리치의 존재때문에 이견이 상당 수 존재할 수 있으나, 락 드러머 한정으로 하면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다수의 사람들이 존 본햄을 최고로 칠 것이다.[2] 스네어드럼 소리를 내기 위해 커피 깡통에다가 느슨한 철사를 감았다고 한다.[3] 여담으로 리치와 어느 작은 클럽에서 술마시면서 같이 얘기하고 있었는데, 그 클럽에서 연주를 하던 무명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리치를 알아보고 환희의 인사를 건네자 리치가 "넌 뭐야? 빨리 꺼져."라고 말했다.(...) 참고로 그 기타리스트는 다름아닌 '''에디 밴 헤일런'''.(!!!)[4] 당시 지미 페이지가 그를 살리기 위해 흑마술 주문을 외웠으나, 실패했다고 한다.[5] Volcano라고 불린다.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라고 불리우는 지미 헨드릭스 역시 같은 사인으로 사망했다.[6] 18세 경에는 Airrace라는 밴드에서 활동했는데, 당시 퀸(밴드)The Works 투어의 서포트 밴드로 활동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