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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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수도(朱水道)
(1956년 11월 25일 ~ )
1. 소개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1] 로 큰 피라미드사기사건을 저지른 범죄자이자 기업인이며, JU그룹 창업주이기도 하다. 바다이야기 파동 등과 더불어 참여정부 말기를 뒤흔든 스캔들 중 하나다.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피라미드 사기사건의 범인이며, 적발 당시에는 최대였다.
1956년 당시 경상남도 울산 조개섬에서 염전업을 하는 집안의 2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2] 하지만 그 당시 조개섬은 울산 동구 쪽에 위치하였고 염전은 남구에서 이뤄져 앞뒤가 맞지않고 어느 곳에 살았어도 20리 먼 초등학교로 나오는 주수도 출신학교가 나오지 않아 위조로 의심된다는 의견이 있으나 조개섬에서 염전업이 이뤄졌다는 이야기도 찾아볼 수 있어 이 부분은 사실여부가 불투명하다.# 그냥 그런 얘기도 있다는 것으로 보면 된다.
어쨌든 어린 시절이 매우 불우했다. 아버지가 집을 나갔으며, 그 충격으로 인해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설상가상으로 형제들까지 모두 죽어 거의 고아나 다름없이 컸다고 한다. 당연히 집안 형편은 매우 어려웠다. 초등학교는 매일 20리를 걸어다녀야 했고 중학교 진학후에 서울로 상경했는데 이때는 학원가에서 칠판닦이 고학생으로 독학했다. 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 후 미국으로 건너가 아르바이트로 미국 컬럼비아 퍼시픽대학 영문과를 어렵사리 졸업했다고 주장하는데 주변인들은 주수도가 공부를 잘한것은 사실이나 미국에 건너가기에는 시간상 여유가 없었다고 증언한것을 보면 아마 명예박사학위를 돈으로 산 것을 정식학위로 속이거나 아니면 아예 100% 사기거나 둘중의 하나일것이다.
어쨌든간에 당시에는 학력위조를 해서 서울대 출신이라고 속이기는 했지만 어차피 당대에는 학력위조가 그리 드문일이 아니기도 한데다가 원체 출세욕이 왕성했던 인물인지라 공부를 죽어라 했기때문에 당대 기준으로는 꽤 실력도 있는데다[3] 유머감각도 같이 갖춘 달변가라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능력 자체는 좋았기 때문에 성문종합영어 단과반 강사로 일명 "낙원동 주선생"이라는 별명이 붙으며 서울 학원가에서 명성을 날렸으며 고관대작들 자녀들을 상대로도 고액과외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여들였고, 이렇게 해서 번 돈으로 1983년에 서초학원이라는 명칭으로 자신의 학원을 차려서 서운로 서초삼호아파트·진흥아파트 인근에 있는 영동프라자 상가건물에서 원장으로 학원 운영을 직접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주수도는 강남역 태극당 예식장 앞에 영재학원이라는 재수생 대상 종합반학원을 만들었고, 이때 각 과목별로 일타강사라는 선생들을 모두 끌어온게 된다. 당시 장위동에 살았던 강사의 말을 빌리면 주수도는 일타강사를 끌어오기 위해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서 일타강사 부인에게 제공하며 환심을 사 해당 강사가 결국 영재학원으로 합류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수도는 이후로 정계진출까지 노려서 학원을 담보로 빚을 내다가 파산하게 되었고 영재학원까지 덤으로 부도위기까지 직면했으나 당대 최고의 일타강사들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강사주주제로 전환하고 국내 최고의 전설적인 화학 1타강사였던 홍석주씨를 대표원장으로 학원운영을 이어간다. 이후 형집행을 마치고 학원으로 돌아온 주수도는 학원지분을 다시 사들여 대표원장으로 자리매김하고 1990년대 중반까지 학원사업에 전념했지만 명예욕때문에 학원사업과 관계없는 사업들에 기웃거리다가 결국 폐업했다. 당시 영재학원은 국어, 영어, 수학, 국사에서 각 과목 최고라는 1타 강사들이 종로학원, 대성학원 및 노량진 단과학원에서 전강좌 마감시키는 최고의 강사들이 모두 모여 있어 종로학원 대성학원에 이어 재수종합학원 3위까지 단번에 뛰어오르는 기염을 토했었다. 어쨌든 다른데 눈 돌리지 않고 얌전하게 학원을 계속 운영하고 부동산도 굴리고 했으면 그의 인생이 화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인생 밑바닥 영세민에서 사회주류로 진입하여 고위급 인사들과도 연줄을 가진 인물로 입지를 다질 무렵에 출세욕이 절정에 달해 정계진출을 꿈꾸웠고 특히 김종필과 인연이 생겨 13대 대선을 앞두고 신민주공화당 창당멤버가 되었고 강남지구당 위원장을 맡았지만 지구당 운영 및 선거자금으로 전재산을 쏟아붓는 바람에 부도를 냈고(...)[4] 결국 선거운동 기간 동안 선거운동도 못하고 잠적했고, 급기야 3달간 구치소에 수감되기까지 했는데 당연히 13대 총선 출마도 말짱 황이 되었다.[5] 그렇게 정계진출의 꿈을 씁쓸하게 접고 다시 학원경영에 나섰다가 뭐에 꼿혔는지 찰나에 본격적인 사업가가 되겠다며 건설회사를 인수해보았지만 사기를 당해서 대차게 말아먹었고 사채업에도 손을 쓰다가 이것도 신통치가 않았다. 그러다가 1996년에 "일영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컴퓨터 다단계 판매에 손을 댔는데 오래지나지 않아 IMF 외환위기가 닥쳐오면서 실적이 망해버린데다가 사기혐의로 기소당해서 이것도 말아먹었다.
그러나 재기에 성공해서 다단계 업체인 주코를 설립했는데 이건 대박을 쳤다. 뛰어난 말빨과 "소비생활 마케팅"이라고 이름지어진 독특한 마케팅 방식으로[6] 회원들을 35만명씩이나 모았고 2003년에 Amway를 제치고 한때 다단계 사업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사업성공에 자신감을 얻어 백화점, 편의점, 슈퍼마켓 등의 유통업과 건설업, 레저업, 영화제작, 자원탐사개발에도 잇따라 진출하고 대종상에도 협찬을 하는 등 문어발식 확장을 하며 일약 '''21세기의 신흥재벌로 떠오'''를 것 처럼 보였다. 이때 주수도는 학원운영이나 정계에 잠시 입문해있었을 시절에 쌓아올려놓은 인맥을 통해 끈이 떨어진 정치인들이나 유지들을 자문위원으로 영입하면서 사업홍보에 써먹기도 했다.[7] 그러나 사업확장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고 사업성을 감안하지 않은 무분별한 문어발식 확장의 후유증으로 실적이 조금씩 악화되기 시작했지만[8] 주수도는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사업이 잘된다고 투자자들에게 지속적으로 허세를 부렸다.[9] 그러나 이러한 허세에도 2006년 들어 PD수첩을 시작으로 제이유 그룹의 부실경영[10] 과 다단계 판매의 실태에 대한 내용이 보도되기 시작했고, 이에 다급해진 주수도는 최후의 수로 루보 사태라는 최악의 주가조작 사건을 일으켰다 물론 루보사태와 관계없이 구속될 운명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주가조작 사건으로 수많은 회원들이 재산이 날라가고 가정이 파탄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은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히 제이유 그룹은 해체되었으며 주수도 자신도 당연히 사기죄로 감옥에 갔다. 중국에 투자한 회사의 수익으로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애시당초 그게 가능했으면 이 항목에 사건사고 틀이 붙지도 않았을 것이다.
제이유가 패망한 이후에도 제이유 마트라는 간판을 여전히 달고 있는 슈퍼마켓은 잔존해있으나[11] 제이유마트 잔당(?)들은 모기업인 제이유그룹과의 관계가 확실히 단절된 채로 간판만 제이유를 그대로 써 붙이는지는 불명이다.
이후 2007년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이었으나. '''옥중에서 1137억원의 다단계사기를 또 저질렀다.''' 출소 3개월을 앞두고 드러난 것으로 타인 명의로 다단계 업체를 설립해 측근들을 통해 운영했다고 한다. 또 지인에게 자신을 허위 고소하게 해 변호사 접견시간을 늘리는 수법을 써 1년 반 동안 2500번 넘게 변호사를 만났고 이를 통해 경영을 해왔다고 한다. 현재 검찰은 측근 변호사 2명을 구속 기소하였으며 '''2019년 5월에 형기가 만료'''되는 주수도에 대한 구속기한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결국 2020년에 징역 10년이 추가로 선고되었다.
그런데 또 루보 사태의 '''주 실행범'''이었던 제이유 그룹 부회장 김영모('''8년 복역''')는 주수도랑 갈라서고 말았다. 김영모는 2017년 출소 이후인 2018년 YMK(영모 킴)라는 유사 투자자문사를 세워서[12] 2019년 또다시 주가조작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 기타
- 잘생긴 외모 때문인지[13] 바람둥이였다고 한다. 현재까지 만나본 여자들만 해도 거의 100명이 되며 비교적 최근까지 내연녀를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형제도 없고 부모도 없는 고아라서[14] 환갑이 넘은 현재도 독신이라고 한다. 다만 바람둥이나 내연녀를 둘 정도면 결혼은 가능하나 바람둥이 성향과 본인이 결혼 생각이 없어서 안 한 듯. 물론 사별하거나 이혼해서가 아니라, 결혼을 아예 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자식도 없다.
[1] 1등은 '의료기 역렌탈 계약 사기 사건'의 조희팔이다.[2] 염전업이 서해안에서 발달했다는 점, 울산시청에서 조개섬이라는 섬이 없다고 밝힌 점을 들어 이 이력 역시 위조했다고 주장하는 기사가 있었다. 하지만 이이제이에 의하면 울산에 조개섬이 있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사라진 점, 울산에서도 자염 생산이 이루어진 점을 들어 이 이력은 위조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반론을 제시했다.[3] 물론 어디까지나 "당대 기준"으로 영어를 잘했다는 얘기지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4] 사실 이 당시 선거운동 스케일을 보면 아무리 주수도가 출세를 해서 돈 꽤나 모은 부유층이 되었다해도 재벌급까지는 안되었으니 전재산을 탕진하는것이 결코 이상한것이 아니었다.[5] 다만 주수도는 나중에 JU를 설립하고나서는 이때 총선에 출마했다고 허풍을 쳤는데 이때는 오래전 신문이나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의 DB가 업데이트 되지 않던 시절이라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다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강남 3구 지역은 보수강세 지역은 아니었고, 특히 신민주공화당은 강남에서는 듣보잡 신세였기 때문에 출마하더라도 낙선은 확실했을것이다. [6] 물건을 소비하기만 해도 최대 250%까지 수당을 지급하게 한것이다. 물론 이런 방식의 특성상 그리 오래갈리는 없었다. 일단 단기적으로야 이런저런 사업에 투자하면서 벌어들인 돈으로 수당을 지급할수있었지만 무분별한 문어발식 확장으로 수익성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수익성이 떨어지고 수당지불에 애로사항이 꽃핀것은 당연한 일이었다.[7] 특히 명단에는 1988 서울올림픽과 2002 한일월드컵 조직위원장을 지낸 박세직이나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김원길, 전 제주도 지사 신구범같은 거물급 인사들도 있었다. [8] 애초에 JU그룹이 설립되기 직전인 1990년대에 재벌들이 문어발식 확장을 했다가 파산한 경우가 많았던것을 생각하면 주수도도 이전시대의 재벌들을 그대로 답습한 꼴이었다.[9] 특히 탐사업체와 협력해서 군산 앞바다에 대규모 석유가 나올것이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규모 유전이라면 몰라도 대규모 유전은 그야말로 허풍중의 허풍이었다.[10] 회계사들 말로는 그룹이 망하기 직전에는 빚이 자산을 추월한 상태였기 때문에 자산을 처분해도 10% 겨우 건지면 다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11] 대표적인 예로 춘천 구 강촌역을 조금 넘어가면 바로 볼 수 있는 슈퍼가 제이유마트다. 맞은편에 공공화장실이 있는 위치에 있었으나 강촌내 조금 다른 곳으로 이전.[12]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법 위반자는 자산운용사나 증권사 등 금융사를 직접 세울 수 없다.(대주주 부적격자) 그래서 규제가 없는 유사투자자문사를 세운 것.[13] 특히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정말 잘 생겼다.[14] 실제로 결혼이 거의 필수인 당시(1990년대 이전) 사지팔자 모두 멀쩡한데 결혼을 못 한 사람들을 보면 형제도 없는 고아인 케이스가 많다.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같은 고아 출신인 김우수가 대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