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국 지방공직인원 선거
中華民國地方公職人員選舉
중화민국(대만)에서 4년마다 실시되는 지방선거이다.
원래는 성급 및 현급 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원과 직할시장/의원은 서로 선거를 다른 연도에 치렀다. 반세기 조금 넘도록 그렇게 치르다가 2014년 지방선거부터 통합하여 선거를 치를 수 있었다.
선출되는 직위는 다음의 9개이다.
단체장에 대한 선거는 최다득표자가 당선되는 방식이며, 지방의회는 단원제로서 오랫동안 소선거구제가 적용되어왔으나 2018년부터 직할시와 성할시, 현의 시/현의회를 '''대선거구제로 변경'''하였다. 대한민국의 전국동시지방선거처럼 한 정당이 지방의회를 독식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이에 따라 직할시와 성할시, 현의 각 '''향진시구 단위 전체를 선거구'''로 한다. 각 정당은 최대 선거구 인원의 절반까지만 공천이 가능하며, 홀수인원이면 딱 과반수(9명 선거구면 5명까지)까지는 공천이 가능하다. 인구가 과소한 지역은 1명 소선거구제가 되는 경우도 있으나 시의원 선거구는 보통 7~8명을 뽑으며, 최대 선거구는 '''16명'''까지 뽑았다.
대만의 구는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므로 구청장을 시장이 임명하고 구의회도 없으니 지방선거가 따로 치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직할시 안에서도 원주민이 많이 거주하여 따로 지정된 지역은 구청장을 선거로 선출하고 구의회가 설치되는데, 여기 구의원은 원주민들만 선거하여 비례대표로 선출한다.
그리고 한국의 읍면동에 해당하는 지역인 리와 촌이 있는데, 리와 촌의 장, 즉 이장과 촌장도 지방선거로 선출하며, 정당 공천이 금지된다.
한국의 교육감이나 교육의원/교육위원에 해당하는 직위는 대만에 없고, '''성급 지방자치단체장'''이 교육감 지위를 겸임한다. 당연히 성급 지방의회 의원들이 교육의원 지위도 맡는다.
임기는 4년이지만,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해 3선(12년)까지 가능한 한국과 달리 재선(8년)까지만 허용한다.
대만 섬에서 첫 선거는 1935년 대만일치시기에 실시된 선거로, 시의회 의원만 뽑는 선거였다. 물론 당시에는 만 25세 이상, 5엔 이상 세금을 내는 사람만이 선거권을 주는 제한이 있었고 시의회에 별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선거는 아니다. 다음 해에는 현의회 선거만 치르게 된다.
한편 대륙에 있던 중화민국은 1946년에 성(省)의원, 현(縣)의원, 시의원 선거를 치렀고, 1948년에는 향진시구 의원 선거를 치렀다. 이것이 공식적으로 중국 전역에서 치러진 첫 지방선거였다. 그러나 당시 타이완 섬은 다른 중국 대륙의 지방들과는 다르게 지방선거가 치러지지 않았다. 2.28 사건 당시 대만 지식인들의 요구사항 중에는 지방선거의 전격적인 실시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2.28 사건이 유혈진압으로 끝나면서 지방선거 실시 요구는 묵살되었다.
국부천대의 혼란을 어느 정도 수습한 1950년에 장제스가 총통으로 복귀하면서 국민정부의 타이완 통치가 완전히 자리잡았고, 국민정부는 행정명령을 통해 타이완 성에 지방자치를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1950년과 1951년 사이에 향진시구 및 성할시의 수장과 의회에 대한 선거가 치러졌고, 임기는 4년이었다. 그러나 타이완 성 주석과 타이베이 시장, 가오슝 시장은 중앙정부에서 임명했고, 직할시의회, 성의회 선거만 치러졌다. 당시 지방선거는 국민당과 관제야당들의 잔치에 가까운 중앙선거와는 다르게 야당 세력들이 무소속으로 등록해서 의석을 확보했지만[2] 여전히 국민당 일당체제에 가까웠었다. 본격적인 야당의 참여가 시작된것은 1989년 입법원 증원선거와 같이 치러진 지방선거부터였다.
한편 푸젠 성 지역은 계엄령을 통한 군정이 시행되어 타이완 성 지역과 달리 지방자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1992년에 푸젠 성 지역에 계염령이 해제되었고, 1993년부터 지방선거를 치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푸젠성의 수장인 성 주석은 여전히 중앙정부에서 임명했고 성의회는 설치되지 않았다.
1994년부터는 직할시장(타이베이, 가오슝)과 타이완 성 성장을 임기 4년짜리 민선으로 선출하였다. 이 때 1989년 지방선거에서 뽑힌 직할시 및 성 의회 의원에 한정해 임기를 5년으로 연장하면서 직할시의회/성의회 선거와 직할시장/성장 선거를 동시에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1998년에는 타이완 성의 실질적 기능을 제거해 형식화하면서 타이완 성의 수장 직함을 '''주석''', 성의회를 자문의회로 개편하고 주석과 자문의회 의원을 다시 중앙정부에서 임명한다.
그 뒤로 한동안 직할시 단위의 선거와 그 이외의 지방선거가 다른 주기로 돌아갔는데, 2010년 행정구역 대개편을 계기로 2009년에 선출된 직할시 시장 및 직할시의원을 제외한 모든 지방 선출직에 한정해 임기를 5년으로 설정하면서 2014년부터 모든 지방 선출직을 같은 날에 뽑게 되었다.
1. 개요
중화민국(대만)에서 4년마다 실시되는 지방선거이다.
원래는 성급 및 현급 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원과 직할시장/의원은 서로 선거를 다른 연도에 치렀다. 반세기 조금 넘도록 그렇게 치르다가 2014년 지방선거부터 통합하여 선거를 치를 수 있었다.
선출되는 직위는 다음의 9개이다.
- 직할시 시장
- 직할시 의원
- 시장[A] /현장
- 시의원[A] /현의원
- 향, 진, 시[B] 의 수장(鄉鎮市長)
- 향, 진, 시[B] 의 대표(鄉鎮市民代表, 한국의 기초자치단체 지방의원에 해당됨)
- 직할시 산지원주민구 수장(直轄市原住民區長)
- 직할시 산지원주민구 대표(直轄市原住民區民代表, 한국의 기초자치단체 지방의원에 해당됨)
- 이장/촌장(村里長)
단체장에 대한 선거는 최다득표자가 당선되는 방식이며, 지방의회는 단원제로서 오랫동안 소선거구제가 적용되어왔으나 2018년부터 직할시와 성할시, 현의 시/현의회를 '''대선거구제로 변경'''하였다. 대한민국의 전국동시지방선거처럼 한 정당이 지방의회를 독식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이에 따라 직할시와 성할시, 현의 각 '''향진시구 단위 전체를 선거구'''로 한다. 각 정당은 최대 선거구 인원의 절반까지만 공천이 가능하며, 홀수인원이면 딱 과반수(9명 선거구면 5명까지)까지는 공천이 가능하다. 인구가 과소한 지역은 1명 소선거구제가 되는 경우도 있으나 시의원 선거구는 보통 7~8명을 뽑으며, 최대 선거구는 '''16명'''까지 뽑았다.
대만의 구는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므로 구청장을 시장이 임명하고 구의회도 없으니 지방선거가 따로 치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직할시 안에서도 원주민이 많이 거주하여 따로 지정된 지역은 구청장을 선거로 선출하고 구의회가 설치되는데, 여기 구의원은 원주민들만 선거하여 비례대표로 선출한다.
그리고 한국의 읍면동에 해당하는 지역인 리와 촌이 있는데, 리와 촌의 장, 즉 이장과 촌장도 지방선거로 선출하며, 정당 공천이 금지된다.
한국의 교육감이나 교육의원/교육위원에 해당하는 직위는 대만에 없고, '''성급 지방자치단체장'''이 교육감 지위를 겸임한다. 당연히 성급 지방의회 의원들이 교육의원 지위도 맡는다.
임기는 4년이지만,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해 3선(12년)까지 가능한 한국과 달리 재선(8년)까지만 허용한다.
2. 역사
대만 섬에서 첫 선거는 1935년 대만일치시기에 실시된 선거로, 시의회 의원만 뽑는 선거였다. 물론 당시에는 만 25세 이상, 5엔 이상 세금을 내는 사람만이 선거권을 주는 제한이 있었고 시의회에 별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선거는 아니다. 다음 해에는 현의회 선거만 치르게 된다.
한편 대륙에 있던 중화민국은 1946년에 성(省)의원, 현(縣)의원, 시의원 선거를 치렀고, 1948년에는 향진시구 의원 선거를 치렀다. 이것이 공식적으로 중국 전역에서 치러진 첫 지방선거였다. 그러나 당시 타이완 섬은 다른 중국 대륙의 지방들과는 다르게 지방선거가 치러지지 않았다. 2.28 사건 당시 대만 지식인들의 요구사항 중에는 지방선거의 전격적인 실시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2.28 사건이 유혈진압으로 끝나면서 지방선거 실시 요구는 묵살되었다.
국부천대의 혼란을 어느 정도 수습한 1950년에 장제스가 총통으로 복귀하면서 국민정부의 타이완 통치가 완전히 자리잡았고, 국민정부는 행정명령을 통해 타이완 성에 지방자치를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1950년과 1951년 사이에 향진시구 및 성할시의 수장과 의회에 대한 선거가 치러졌고, 임기는 4년이었다. 그러나 타이완 성 주석과 타이베이 시장, 가오슝 시장은 중앙정부에서 임명했고, 직할시의회, 성의회 선거만 치러졌다. 당시 지방선거는 국민당과 관제야당들의 잔치에 가까운 중앙선거와는 다르게 야당 세력들이 무소속으로 등록해서 의석을 확보했지만[2] 여전히 국민당 일당체제에 가까웠었다. 본격적인 야당의 참여가 시작된것은 1989년 입법원 증원선거와 같이 치러진 지방선거부터였다.
한편 푸젠 성 지역은 계엄령을 통한 군정이 시행되어 타이완 성 지역과 달리 지방자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1992년에 푸젠 성 지역에 계염령이 해제되었고, 1993년부터 지방선거를 치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푸젠성의 수장인 성 주석은 여전히 중앙정부에서 임명했고 성의회는 설치되지 않았다.
1994년부터는 직할시장(타이베이, 가오슝)과 타이완 성 성장을 임기 4년짜리 민선으로 선출하였다. 이 때 1989년 지방선거에서 뽑힌 직할시 및 성 의회 의원에 한정해 임기를 5년으로 연장하면서 직할시의회/성의회 선거와 직할시장/성장 선거를 동시에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1998년에는 타이완 성의 실질적 기능을 제거해 형식화하면서 타이완 성의 수장 직함을 '''주석''', 성의회를 자문의회로 개편하고 주석과 자문의회 의원을 다시 중앙정부에서 임명한다.
그 뒤로 한동안 직할시 단위의 선거와 그 이외의 지방선거가 다른 주기로 돌아갔는데, 2010년 행정구역 대개편을 계기로 2009년에 선출된 직할시 시장 및 직할시의원을 제외한 모든 지방 선출직에 한정해 임기를 5년으로 설정하면서 2014년부터 모든 지방 선출직을 같은 날에 뽑게 되었다.
3. 역대 선거[3]
- 2014년 11월 29일 : 2014년 중화민국 지방공직인원 선거
- 2018년 11월 24일 : 2018년 중화민국 지방공직인원 선거
[1] 통합 선거 이후[A] A B 타이완성 휘하의 시를 의미한다. 지룽, 신주, 자이가 해당됨.[B] A B 각 현 휘하의 시를 의미한다.[2] 당시 대만에서는 이를 당외세력이라고 했다. 후에 총통직에 오르는 천수이볜도 1981년 지방선거에 출마해서 타이베이 시의원으로 일한 적이 있었으며 1985년 지방선거에서 타이난 현장 선거에 나선적이 있다.[3] 통합 선거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