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성

 



'''臺灣省'''
타이완성 / Taiwan province

[image]
[image]
'''정부기'''
'''휘장'''

'''구 성정부청사 소재지'''
난터우현 난터우시 중싱신촌
'''대륙'''
아시아
'''국가'''
중화민국
'''지역'''
타이완 지구
'''면적'''
25,110.0037 km²
'''하위 행정구역'''
3시 11현
'''인구'''
7,095,464명[1]
'''인구밀도'''
280명/km²
'''시간대'''
UTC+8
'''한국과 시차'''
1시간
'''성장'''
없음[2]
'''자의회'''
없음[3]
'''ISO 3166-2'''
없음

[4]

1. 개요
2. 역사
2.1. 전근대
2.2. 국민당 일당제 시기
2.3. 민주화
2.4. 타이완성 정부 간소화
2.5. 성 정부 해산
3. 역대 주석
4. 여담

  • 한자
    • 정체자(정체): 臺灣省, 台灣省[5]
    • 간화자(간체): 台湾省
  • 중국어 발음
  • 한국어 한자음: 대만성[6]
  • 영어: Taiwan Province
[image]
중싱신촌[7]에 있는 옛 타이완성 정부 건물.[8] 사진 중간에 꽂혀있는 깃발은 중화민국국기청천백일만지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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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부분이 타이완성이다.

1. 개요


'''타이완성'''은 푸젠성과 함께 중화민국[9]의 실질 통치 지역에 있는 두 개의 성(省) 중 하나이다.
중화민국 6대 직할시[10]를 제외한 대만 섬의 대다수 지역과 대만 섬이 아닌 펑후 제도(팽호 제도), 타이둥현 소속인 뤼다오향(녹도향)과 란위향(난서향) 등을 관할한다.
성정부 소재지는 난터우현 난터우시에 있는 신도시인 중싱신춘(중흥신촌)에 있다. 본래 타이베이가 성도였지만 1956년에 옮겼다.[11]
본래 타이완성은 대만 섬 전역과 인근 도서를 관할 구역으로 했다. 그러나 1967년에 실질수도 타이베이를 타이완성에서 독립시켜 직할시로 삼고 1979년에 가오슝도 직할시로 삼았다.[12] 2010년에는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타이베이현을 신베이 직할시로, 구 타이난시와 구 타이난현을 타이난 직할시로, 구 타이중시와 구 타이중현을 타이중 직할시로 독립시키고 구 가오슝현을 가오슝 직할시에 편입시켰으며, 2014년에는 구 타오위안현을 타오위안 직할시로 삼아 타이완성에서 독립시켰다. 이렇게 인구 많은 주요 도시들이 타이완성에서 떨어져나가, 현재 타이완성의 인구 비율은 중화민국 인구의 30%밖에 안 된다.
2018년 7월 1일을 기해 타이완 성 정부가 완전히 해산되어 소속된 사람은 아무도 없는, 이름만 남겨진 조직이 되었다.

2. 역사



2.1. 전근대


타이완 섬청나라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이래 타이완 섬은 복건성(福建省) 관할이었으나, 청불전쟁일본 제국류큐 왕국 병합으로 갑작스레 타이완 섬이 국방 요충지가 되자 청나라 중앙정부에서는 타이완 섬의 인프라를 정비하기 위해 1885년에 타이완 섬을 복건성에서 독립시켜 복건대만성(福建臺灣省/푸젠타이완성[13])을 설치하고 통치 중심도 타이난에서 타이베이로 옮겼다. 이것이 오늘날 타이완성의 시초이다.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인해 타이완 섬이 일제 식민지로 넘어가면서 복건대만성도 폐지되었다.

2.2. 국민당 일당제 시기


중화민국중일전쟁 승리로 타이완 섬을 넘겨받은 이후 잠시 군정체제로 타이완 섬을 다스리다가 1947년에 타이완성을 다시 설치하고 성도를 타이베이에 두었다.
이 때 타이완성은 명목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중화민국의 하나의 행정구역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국민당이 대륙에서 중국 공산당에 패배하고 타이베이로 정부를 옮긴 후 1950년대부터는 중화민국 정부가 다스리는 영토의 대부분이 타이완성의 관할구역과 그대로 일치하게 된다. 이에 따라 원래는 성정부가 해야 하는 지방의 정무가 사실상 중앙정부의 일과 같게 되면서 심각한 비효율이 발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륙을 찾아야 하는 중화민국은 타이완성을 그대로 유지했고, 중앙정부는 대륙 수복에 전념하고 대만의 내정 중 상당부분을 '지방정부'의 사무로서 타이완성에 담당하게 했다.[14] 그래서 장제스장징궈 시절 타이완성 주석은 중화민국 고위직으로 올라가는 1급 라인이었다.

2.3. 민주화


1994년까지 타이완 성장은 중앙정부에서 임명하는 관선제였으나 1994년에 헌법을 수정함으로써 최초의 직선제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중국 국민당은 총통이자 당 주석인 리덩후이가 민주화를 추진하면서 타이완 성의 지방자치를 실현하고자 헌법 수정을 추진했고, 민주진보당은 타이완 성장에 대한 선거가 실현돼서 자당의 인물이 당선되면 타이완 성이 중화민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특성으로 인해 국민당이 장악한 중앙정부의 권위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라 보아[15] 헌법 수정에 동의했다.
그렇게 하여 타이완 성의 성장[16]을 민선으로 전환하였다. 이때 민진당에서는 이란현 현장을 역임한 천딩난이 출마했고, 국민당에서는 리덩후이 총통의 측근이었던 쑹추위가 출마했다. 선거에서는 최초이자 마지막 민선 타이완성장으로 중국 국민당쑹추위(송초유)가 뽑혔다. 민진당의 의도는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2.4. 타이완성 정부 간소화


공식적으로는 '타이완성 정부의 기능, 업무 및 조직 조정'(臺灣省政府功能業務與組織調整)이라고 하며, 현지에서는 통상적으로 '성 기능 동결(凍省)', '타이완성 허급화(臺灣省虛級化)'라고 한다.
1994년 지방선거에서 최초로 타이완성장을 선출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위 지도에서 보다시피 타이완성은 사실상 중화민국 그 자체나 다름이 없다보니 실질적으로 2중 정부나 다름이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중화민국 정부(행정원)와 타이완성 정부가 중첩되는 사무를 가지고 의견이 달라 충돌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차라리 수도인 타이베이라든가 가오슝 등의 다른 대도시라면 정부와 갈등을 빚더라도 어느 정도 서로 타협을 보는게 일반적이지만, 타이완성 정부는 중앙정부와 맞먹는 수준이라서 문제가 된 것이다. 나중에라도 총통과 타이완성장이 서로 당적이 다르면 그 혼란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었다.
민주진보당은 타이완성의 입지에 따른 혼란에 더해 타이완성의 존재가 숙원인 대만 독립, 즉 중화민국을 대만 공화국으로 바꾸려는 계획에 걸림돌이 되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타이완성을 없애거나 그 존재를 형식화하는 데 긍정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타이완성의 자치 기능이 유지될 경우 국민들 사이에 '대만(타이완)'이 나라가 아닌 일개 지방이라는 인식이 은연 중에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1997년 여름 양당이 전격적으로 합의하여 헌법을 개정(정확히는 증보수정조문을 추가)하면서 쑹추위 성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1998년 12월 21일부터 성 정부의 기능을 간소화해 명목상으로만 성 정부를 남겼다. 그에 따라 타이완성은 중화민국 정부(행정원) 산하 기관이 되어, 민선성장과 민선성의회 의원은 다시 없어졌다. 대신 성장은 성 주석으로 바뀌어 다시 중화민국 행정원에서 임명하는 직위로 바뀌었다. 그리고 성 의회[17]도 없어지고 행정원이 선출하는 타이완성 자의회(諮議會)[18], 즉 일종의 자문 기구로 개편되었다.
그 뒤로 성에서 하는 일은 대부분이 중화민국 정부로 넘어가고 타이완성에서 실질적으로 하는 일은 없다. 그러다 보니 현지인들 중 성이 폐지된 것으로 잘못 아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 위에 있는 지도를 딱 보여주고 빨간 부분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물었을 때 정답 맞힐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타이완성의 개편에 대해서 중화민국에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다. 타이완성(과 푸젠성)을 아예 폐지하는 방안, 또는 서너 개의 성으로 쪼개는 방안 등도 있었는데, 결국 결과는 성의 권한을 거의 없애 형식에 가깝게 하는 현재와 같은 방식이 채택된 것이다.
이후 2010년대부터 직할시를 추가 지정하여 주요 대도시를 아예 타이완성의 영역에서 분리하였다. 이러한 직할시 추가 지정으로 인구와 경제력에서 타이완 성이 관할하는 규모보다 직할시의 규모가 훨씬 커지게 된다. 타이난, 가오슝, 타이중처럼 구심점이 되는 대도시가 존재하는 현만 직할시에 편입시킨 게 아니라 하나의 도시라고 보기 어려운 신베이, 타오위안까지 직할시로 승격시켜 타이완성으로부터 분리시킨 것은 타이완성을 실질적으로 폐지하는 것에 가까운 적극적인 조치이다.
지방 도시의 고등학교는 사립을 제외하면 거의 국립인데, 이게 바로 성 정부 간소화 때문이다. 공립학교(성립 또는 직할시립) 중 직할시립학교는 그 지위를 계속 유지하였지만 성립학교는 이 때 국립학교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19]. 그래서 신베이시의 경우는 타이완성 타이베이현 시절 성립 학교였다가 국립 학교로 전환된 뒤 이제 다시 직할시립학교로 전환된 사례들도 있다(타이베이와 가오슝은 간소화 전 직할시가 됐지만, 나머지 직할시들은 간소화 후이므로). 이제 아마 예전에 타이완성 타오위안현이었던 타오위안시도 비슷한 일을 겪게 될 것이다.
법원 조직은 아직도 성 단위를 의식하여 조직돼 있다. 그래서 고등법원도 타이완 고등법원, 푸젠 고등법원으로 나눈다. 타이완 고등법원의 관할구역은 타이완성과 직할시들이다. 중화민국 정부가 타이완 고등법원을 설치한 1945년(정확히는 일제의 대만총독부 대만고등법원을 개칭한 것)에는 직할시들이 전부 타이완성의 일부였으므로 이 역시 타이완성이라는 단위를 의식해서 고등법원이 설치된 것이다. 타이완 고등법원 산하에는 분원이 네 개 있어서(타이중, 타이난, 가오슝, 화롄 분원 - 위치한 시·현의 이름을 따서 분원의 이름을 붙임) 본원(타이베이에 위치)까지 총 다섯 관할구역이 있다. 다만 2011년부터 향후 네 분원을 별도의 대등한 고등법원으로 승격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이 방안대로 되면 '타이완 고등법원 타이중 분원'은 그냥 '타이중 고등법원'으로 바뀌는 식(다른 분원도 마찬가지). 그러면 분원이 떨어져 나간 타이완 고등법원은 본원이 위치한 지역명을 따서 타이베이 고등법원으로 개칭될 것으로 보인다.[20] 참고로 푸젠 고등법원의 명목상 관할구역은 푸젠성 전체지만 실제로는 진먼현 전체와 롄장현 일부(마쭈)만 관할하고 있다. 또한 본원을 두지 않고 진먼 분원만 운영하고 있다.[21]
타이완성 주석(민선 시절에는 성장)은 중앙정부의 무임소장관(별다른 담당 중앙 부처가 없이 재임하는 특임장관 또는 정무장관) 중 한 명이 겸직했다. 타이완성 주석은 평소에는 중화민국 중앙정부가 있는 타이베이에서 일하고 타이완 성 주석 자격으로 할 일이 있을 때만 난터우 중싱신촌에 있는 타이완 성 정부에 가서 일을 처리한다. 마잉주 정권 시절 가장 오래 재임하였던 성 주석은 국민당의 린정쩌(林政則)[22]이며, 신주 출신이고 신주시장이었다가 임기 만료로 퇴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2010년 2월에 임명되었다. 임명제라 임기는 따로 없다. 재임 기간이 6년을 넘어가면서 역대 타이완성장/주석 중 두 번째로 장기간 재임하였다. 타이완성은 미국 주 대부분과 자매 결연을 맺고 있는데, 그는 자매주 방문 명목으로 재임 중 미국에 자주 다녔고, 그래서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인)성의 주석이 예산을 낭비한다고 뉴스에서 때린 적이 있다. 본인은 이런 방법을 통해서라도 외교관계가 없는 미국과 교류가 필요하다고 항변하는 듯하다. 차이잉원 정권에서는 스쥔지(施俊吉) 민진당 중앙위원과 우쩌청(吳澤成) 공공공정위원회(公共工程委員會)[23] 위원장이 차례로 타이완 성 주석을 겸임했다.
타이완성 간소화는 시각에 따라서는 대만 독립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조치이기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격하게 비난했다.
한편 타이완 성 허급화에 대만 국민들 모두가 찬성했던 것은 아니었다. 반대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는데 그 중 하나가 당시 타이완성 성장 쑹추위였다. 그는 리덩후이 총통의 타이완 성 허급화를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흔드려는 행위로 해석했다. 타이완 성장이었을 때 쑹추위의 시정에 대한 만족도가 90%를 넘었기 때문이다. 표면상 리덩후이쑹추위는 관계가 돈독했지만 물밑에서는 대만 독립정체성 문제[24]로 갈등을 빚고 있었으며, 쑹추위는 타이완 성 허급화에 반발하여 타이완 성장직을 사퇴하려고도 했다. 이러한 대립이 쌓이면서 리덩후이는 2000년 총통 선거 때 쑹추위 대신 롄잔을 밀어주고, 쑹추위는 국민당을 탈당해 독자 출마했다.

2.5. 성 정부 해산


성의 존재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민주진보당차이잉원 정부는 취임 이후부터 타이완 성 정부 예산을 대폭 깎아나가다가, 2018년 7월 1일에 이미 허울뿐이었던 타이완성 정부와 자의회를 이름만 남겨 놓고 사실상 해산했다. 2018년 6월 28일에 입법원에서 성 정부의 허울뿐인 기능마저 중앙정부와 입법원으로 이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성 주석도 임명되지 않는, 완전히 이름뿐인 조직이 되었다.[25]
완전히 없애지 못하는 이유는 타이완 성 정부가 헌법기관이기 때문. 물론 이에 대해 중국 국민당은 격렬한 반발을 내보였다. 당연히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2019년 1월 "핵무기 맞고 싶냐"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그런데 옆동네 빨간 나라가 핵드립을 친 덕분에 2018년 지방선거 참패 이후 그로기 상태였던 차이잉원 총통의 지지율을 올려주는 자폭이 되고 말았다. 차이잉원 지지율이 10%를 찍었는데, 옆동네 빨간 나라에서 타이완성 복구하라며 핵드립을 친 덕분에 2019년 3월부로 차이잉원 지지율이 36%까지 급등했다.

3. 역대 주석


타이완성 역대 정부주석 문서 참조.

4. 여담


  • 중화민국으로서의 대만이나 대만 섬으로써의 대만은 대만이라고 쓰지만, 타이완성만큼은 주한국대만대표부에서 주소 문제로 인해 "타이완"으로 써달라는 요청이 있던 적이 있다. 실제로 우편을 보낼 때 그냥 한자로 대만 성이라고 쓰면 한자라는 것만 보고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날아가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한다. 물론 서울지방우정청 산하 인천국제공항 구내에 있는 국제우편물류센터의 실수다. 아니면 발신자가 국가명만큼은 만국우편연합 공용어인 영어(Republic of China)나 불어(République de Chine)로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국우편연합이 '중화민국'이라는 명칭을 인정하지 않지만 상관없다. 이 우편물 자체가 스위스의 만국우편연합을 거쳐가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 우정사업본부와 중화우정이 직접 우편물을 주고받는 것이니까. 물론 중화인민공화국중국우정에서 중화민국 중화우정으로 다시 우편을 보내주기는 하지만[26] 일단 대륙으로 들어간다는 게 껄끄러운 일인지라.
  • 타이완성 쪽으로 우편을 보낼때는 대만(Taiwan)성이라고 쓰면 정확하게 바로 중화우정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에는 사소한 문제가 있는데, 타이베이는 타이완성 아닌데 그래도 그쪽의 영문주소를 보면 Taipei, ROC가 아닌 Taipei, Taiwan, ROC다. 이는 Republic of China 내의 '타이완 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이완, 즉 중화민국'을 뜻하기 때문이다. 중화민국과 대만을 동의어로 보고 사용하는 예 중 하나다. 비슷한 식으로 진먼 섬이나 마쭈 열도는 아예 대만성이 아닌 중화민국 복건성의 부속도서인데 Kinmen, Taiwan, ROC라고 표기한다.[27] 본래의 대만에는 진먼, 마쭈,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펑후도 포함하지 않지만, 현재는 이미 중국어로도 '대만 지구'라고 하면 펑후, 진먼, 마쭈도 포함시키는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중화민국 정부에서 그 동안 공식적으로 써온 다른 명칭 중에서는 '중화민국 자유 지구'가 '대만 지구'라는 통칭에 대응되는 명칭이다.
  • 중화민국에서는 댜오위타이(댜오위다오, 센카쿠 열도) 역시 타이완성 소속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선 허울에 불과하다.
  • 오늘날 중화민국은 명목상 자기네 영토라 주장하는 중국 대륙에 1949년 행정구역을 존치시켜 놓고 변경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중화민국의 명목 행정구역상으로는 베이징국부천대 당시 명칭대로 베이핑(北平)으로 돼 있고, 동북 지방에는 쑹장성(松江省) 같은, 현재 대륙에서는 폐지된 행정구역들이 존재한다. 물론 중화민국은 대륙 수복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라 대륙에 설치된 명목상의 행정구역이 사문화돼서 이런 행정구역을 실제론 거의 쓰지 않고, 그냥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쓰는 행정구역을 그대로 쓴다. 중화민국이 대륙에 설정한 행정구역들은 거의 그 지역 태생의 중화민국 국민들의 호적에 기재할 때나 사용하고 있고, 그 외에는 그냥 중화인민공화국의 현행 행정구역명을 쓴다.[28]
  • 명목상 중화민국도 '중국'이지만 현재 중화민국(대만) 사람들은 '중국 타이완성'이라는 표현에 불편함 혹은 불쾌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타이완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타이완 섬을 관할하는 명목상의 행정구역인 타이완성을 두고 있는데, 대만에서도 '중국'이 자국인 중화민국보다 중화인민공화국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아졌고, 타이완성 앞에 구태여 중국이라는 말을 넣는 경우는 십중팔구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만 섬을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맥락에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만의 중국 정체성을 거부하는 대만 독립 지지자가 아니더라도 불쾌함을 느끼는 것이다.
  • 타이완성이 아닌 곳에 타이완성 기관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면 앞서 언급한 타이완 철도관리국. 타이완성 산하 기관 임에도 본부는 타이완성이 아닌 타이베이시에 있었다. 또한 타이완성 바깥의 철로와 역까지 관할했다. 타이베이에 있는 국립대만박물관도 원래 국립이 아닌 타이완성립였다.

[1] 2018년 10월 기준[2] 2018년 7월 1일 성 정부 폐지[3] 2018년 7월 1일 자의회 폐지[4] 폐쇄된 것으로 보인다.[5] 원칙적으로는 대만성(臺灣省)으로 써야 하지만 전통적으로 한자 문화권에서 대(臺)를 빨리 쓸 때 발음이 같은(한국어에서는 완전히 같진 않고 비슷한) 대(台)로 쓰는 경우가 많아 관습적으로 대만성(台灣省)도 통용된다. 참고로 중국 대륙의 간화자나 일본의 신자체는 아예 공식적으로 대(臺)를 폐지하고 대(台)에 병합해 버렸다. 그리고 같은 정체자 사용 지역이라도 홍콩 역시 간화자나 신자체와 마찬가지로 臺를 폐지하고 台로 병합했다(마카오도 여기에 따름). 다만 한국어에서는 상기한 바와 같이 음이 같지 않기 때문에 정식 문서에서 한자를 쓸 때는 원래대로 臺로 쓰는 경우가 절대 다수이다. 다만 비공식 표기에서 약자를 쓸 경우에는 역시 臺 대신 台를 쓸 수는 있다.[6] 대만성(臺灣省), 대만성(台灣省) 모두 한국 한자음으로 읽을 때는 '대만성'으로 읽어야 한다. 대(台)의 원래 한국 한자음은 '태'(별 이름에 사용)와 '이'('기쁘다'라는 뜻. 이 때는 이(怡)와 통자(通字))만 있지만 대(臺)를 대신하는 글자로 썼을 때는 당연히 대(臺)의 음을 따라 '대'라고 읽어야 한다.[7] 난터우시에 있는 동네다. 사진만 보면 산골에 있는 것 같지만 저밀도로 잘 계획된 신도심이며 성정부 건물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차오툰진(鎮) 시가지가 나오는 전형적인 도심에 위치해 있다.[8] 지금은 국가발전위원회 중싱사무소와 중싱신춘 활성화 전문 사무실이 들어서있다.[9] 이 문서는 대만중화민국을 최대한 구분하여 정부로서는 '중화민국', 그 외에는 대만을 사용한다.[10] 타이베이, 가오슝, 신베이, 타이난, 타이중, 타오위안시.[11] 1950년대에 중화민국은 일부 중앙 정부 기관과 타이완성 정부 기관을 타이완 섬 중부 지방으로 옮기려고 하였고 타이중시 우펑구(현재 행정구역 기준, 옛 우펑향)와 난터우현 난터우시가 그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타이중 우펑과 난터우에 이러한 기관들이 분산되어 있다. 난터우에는 그 외에도 일부 정부 기관이 있다.[12] 이 때 둥사 군도 지역을 하이난 특별행정구에서 가오슝 관할로 옮겼다. 이곳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은 이곳을 여전히 광둥성 관할로 두고 있다. 하이난 특별행정구가 중화인민공화국 치하에서 광둥성으로 흡수되었기 때문. 하이난성이 나중에 광둥성에서 분리되지만 이 지역은 그대로 광둥성 소속이다.[13]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대만성(臺灣省)이라고 쓰는 게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14] 예를 들면 타이완 철로관리국의 경우 공식적으로는 코레일 지역본부처럼 지역본부 취급이었다. 실질적으로는 본사나 다름 없었지만... 또한 중앙은행중화민국중앙은행 역시 화폐 제조 등에 대해서는 천수이볜 정권이 될 때까지 신 대만 달러 화폐를 중화민국중앙은행 이름이 아닌 '타이완은행' 이름으로 전담했다.[15] 이를 대만에서는 옐친 효과(葉爾辛效應/Yeltsin Effect)라 한다. 당시 소련 대통령이었던 고르바초프를 밀어내고 실권을 잡은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지방 행정구역의 대통령 보리스 옐친에서 따온 말이다.[16] 타이완성의 수장을 이때만 '성장'이라 했다. 그 앞뒤로는 모두 '주석'이라 했다.[17] 의회는 정부 소재지인 난터우가 아니라 타이중현 우펑향(현 타이중시 우펑구)에 있었다. 하지만 난터우시 자체가 타이중과 그리 멀리 떨어진 건 아니다. 타이완성 의회의 후신인 타이완성 자의회(諮議會) 역시 그대로 타이중에 있다. 타이중이 직할시가 돼서 타이완성에서 분리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18] 영어로는 Taiwan Provincial Consultative Council.[19] 중학교는 설립 주체를 현급 행정구역, 고등학교는 성급 행정구역으로 한다는 것이 정착되었는데, 이 덕에 지방 고등학교들이 국립 학교가 되어버렸다.[20] 지방법원의 정식 명칭은 앞에 관할구역의 고등법원명을 붙이게 되어 있다. 분원 산하라도 본원명으로 붙인다. 따라서 타이베이 스린구에는 '타이완 스린 지방법원'이 있다. 만약 타이완 고등법원의 본원과 분원들이 각각 독자적인 고등법원으로 쪼개진다면 이 역시 '타이베이 스린 지방법원'이 될 것이다. 원래 중화민국의 법원 조직에서 고등법원은 성급 행정구역당 하나씩 두게 되어 있다. 국부천대 이후에는 사문화되기는 했다. 다만 분원들이 승격할 경우 어느 정도 맞아지게 된다. 현재 분원 중 '타이완성'에 위치하는 분원은 화롄 분원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물론 화롄 분원이 타이완성 전체를 관할하지는 못한다.[21] 이 진먼 분원은 과거에 명목상의 분원 소재지를 따라 샤먼 분원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중화민국이 샤먼을 지배하지 못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1990년에 진먼 분원으로 변경됐다.[22] 2017년 국민당 주석 선거에서 우둔이가 당시 현직인 훙슈주를 이기고 당선된 후 훙슈주는 임기를 채우지 않고 사임하였다. 훙슈주 사임 이후 우둔이의 취임일까지 이 사람이 주석 권한대행을 맡았다.[23] 국토교통부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24] '''중화민국 총통'''인 리덩후이타이완 독립운동에 유화적이었고 양국론을 설파하는 등 대만 정체성이 강했고, '''타이완 성 성장'''인 쑹추위는 반대로 '중화' 정체성을 강조하며 자신이 중국인이라 생각할 정도로 중국 대륙에서 정체성을 찾는 인물이었다. 쑹추위가 대만인 정체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친민당 창당 이후로 대만성 주석(1994년 ~ 1998년 연초)를 하던 시점에는 쑹추위는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25] 푸젠 성도 2019년 1월 1일을 기해 해산했다.[26] 국제우편물류센터로 잘못 도착한 평양행 우편물도 원칙적으론 한국이 다시 보내줘야 하지만 남북은 우편물 교환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발송국으로 반송하면 발송국에서 다시 발송한다.[27] 현 중화민국 정부나 대만 사람들은 진먼과 마쭈에 대해 '멀리 떨어진 섬(離島)'이나 '바깥쪽 섬(外島)'이라는 표현을 쓴다. 타이완 섬을 기준으로 해서 멀리 떨어졌다고.[28] 실제 중화인민공화국이 이웃나라들과의 국경 협상 등의 결과로 자국 영토에서 제외시킨 지역들이 중화민국의 명목상 영토에는 계속 포함시키고 있는 경우가 여럿 있다. 거기에다가 세계적으로 독립국으로 인정 받는 몽골이나 러시아에 소속된 속국인 투바 공화국 등이 2012년까지는 중화민국에 의해 중화민국 몽골 지방의 일부라고 간주됐었다. 2012년에 헌법 해석을 변경하여 몽골을 독립국으로 승인했지만, 중화민국은 그 이후 자국의 명목상 영토의 변화에 대하여 공식적인 입장을 나타낸 적이 없고, 아직도 중화민국 정통론자들이 제시하는 자국 영토에 이들 지역을 계속 집어 넣기도 한다. 중화민국 해군육전대(대만 해병대)의 휘장과 깃발에도 아직 2012년 이전의 명목상의 강역을 그려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