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혼

 


早婚
1. 개요
2. 사례
3. 참고 개념들
4. 여담
5. 조혼한 인물
6. 그의 부모가 조혼한 인물
7. 관련 문서


1. 개요


혼인적령기에 이르지 않은 미성년자결혼하는 것. 만혼의 반대말.
전세계 여성 중 5명 중 1명이 성인이 되기 전 결혼했다.[1] 2초에 1명꼴로 어린 신부가 생겨나고 매년 3만 5천 명의 여아들이 조혼을 한다. 당연히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할 수 있거나 힘이 있는 성년이 아니니,[2] 부모와 어른들의 강요로 결혼하는 것이다.
단어의 정의상 성년의 연령이 몇 살인가에 따라 조혼의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2차 성징 이전, 그러니까 여자의 경우 초경 이전의 결혼은 어느 사회에서도 조혼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데, 이건 개인차가 있는지라 현대에선 그냥 남자든 여자든 20대 이전에 하는 결혼을 조혼으로 간주한다.[3] 예를 들어 여자가 20세이고 남자가 40대 후반이면 법률상 둘 다 성인이기 때문에 조혼이 아니다. 반대로 여자가 20세여도 남자 쪽이 18세 미만이면, 현행법상 남성이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남성 한정으로 조혼이 성립된다.
일반적으로, 대가족제가 발달한 사회일수록 조혼이 성행한다. 즉 남자의 입장에선 성인이 되지 않아도 대가족의 일원으로서 아내를 부양하는 게 가능하고, 시가(媤家)나 남편의 입장에서는 여자아이가 어릴수록 자기 입맛에 맞게 길들이는 게 쉬우므로 조혼을 선호하게 된다. 다만 여자아이가 성인이 된 뒤까지는 기다려 주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부부의 나이 차는 보통 15~20세 정도다.
나이가 비슷한 미성년자끼리 결혼하기도 했지만 나이차가 심한 경우도 많았다. 여자가 어린 경우 보통 합방을 초경 이후로 미루는 일이 많았으나, 여자가 더 나이가 많았을 경우 남자가 12세 정도만 돼도 바로 합방하여 빨리 자식을 갖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특히, 대를 이을 남자가 부족하고 몸이 약한 경우는 대가 끊기지 않기 위해 빨리 수태가 가능한 여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이런 이유로 빨리 합방하게 할 목적으로 조선시대 왕자들은 대체로 연상의 여성과 결혼했다. 당시 성행위 가능 여부를 부인 신체의 성숙 정도로 판단했기 때문. 첫경험 시 트라우마를 고려한 조상들의 혜안이긴 한데 여자는 성교로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지만, 남자는 그럴 일 없으니 그냥 나이 상관없이 시키면 된다는 뉘앙스가 숨어 있다. 믈론 이 또한 편견일 뿐 남자도 지나치게 어린 나이에 성경험을 겪는 것이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4]
그 외에는 정략결혼이 있다. 사춘기쯤 다른 사람과 사고치기 전에 미리 정해진 혼사대로 결혼시켜버리는 것. 또는 정치적 동맹을 위해 두 집안의 결혼을 이용하는 경우 애가 다 자랄 때까지 기다리면 그 사이에 동맹이 깨질 위험이 있으므로 나이에 상관없이 바로 혼례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2. 사례



2.1. 아시아


중국에서는 현재 전통적인 인식의 조혼이 부활하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남녀성비가 극심하니, 아들 있는 잘 사는 집안이 여자아이를 구해[5] 미리 결혼을 시키는 것이다. 또한 중국 정부에서는 출산율이 낮으니 이것을 방치하고 있다.


아랍이나 인도, 서남아시아 등 아시아에서도 은근히 많다.[6] 아랍권에서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처럼 잘사는 나라에서는 조혼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중간급의 경제수준을 지닌 나라 정도는 조혼이 꽤 이루어지고 있고 예멘이나 수단, 모리타니처럼 극도로 못사는 나라에서는 조혼이 굉장히 흔해진다.[7] 이 경우에는 가난한 집안에서 자식교육에 신경쓸 여유가 안 되니 딸을 일찍 시집보내서 지참금을 미리 받아 생계를 유지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과정에서 딸들의 의사가 무시되는 건 당연지사. 예멘 같은 경우에는 12살에 강제로 결혼하는 일이 있어서 엄청난 논란이 되었는데 일단 법적으로는 17세 이상 결혼이 허용됨에도 경제사정이 위낙에 시궁창이다 보니 불법적으로 많이 벌어지는 것. 다른 나라들도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기에, 밤중에 서둘러 결혼하고 이웃이나 경찰에게는 먼 친척 아이라고 속이며 몇 년을 끌다가 밝히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학생백과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의 예를 간단히나마 들며 조혼의 문제점을 설명한다. 관련기사
레바논에서는 부모의 허락이 있으면 9살에 결혼할 수 있고, 부모의 허락이 없어도 14살이면 결혼할 수 있다. # 또한 이스라엘은 혼인법에 따라 혼인증명서 발급을 정부에서 하는 게 아니라 각 종교 교단에서 하므로 유대인들은 유대교의 율법에 따라 성인이 되는 13살 때부터 부모의 허락이 없어도 결혼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20대나 30대에 결혼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조혼은 민도가 낮은 일부 마을이나 자식을 교육시킬 여유가 없는 난민, 하레디 같은 일부 골수집단에서나 하는 일로 치부된다. 레바논은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소녀들이 꽤 있지만 서남아시아치고 잘사는 나라라 비율이 낮은 편이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도 6살인 아이샤 빈트 아부 바크르와 결혼하였는데, 이는 반이슬람 세력의 공격을 빌미가 되기도 하고, 무슬림들이 조혼을 정당화할 때 이용되기도 한다. 아이샤와의 결혼이 다른 세력의 포섭을 위한 상징적인 결혼일 뿐 실질적인 결혼의 의미는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정략결혼 등이 흔하던 당시 아랍인의 시선에서 봐도 이는 지나치게 어린아이와의 결혼이었고, 성관계 등 실제 부부생활은 아이샤가 9살일 때부터 시작했다는 기록도 있다.[8]
선진국, 특히 일본이나 미국, 유럽에서 어린 여자를 선호하거나 국내에서 결혼 시기를 놓친[9] 중장년 남자들이 후진국에 들어와 부모 혹은 보육원에서 아이를 돈주고 사서 결혼식까지 올려 사회 문제화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은 중고등학생 연령대이지만 간혹 아동과 결혼하는 정신나간 자들도 있는데, 물론 후자는 발각 즉시 처벌이지만 국적을 그 나라로 바꾸면 그런 거 없고, 사라지지도 않고 있다. 간혹 이런 나라에서 터지는 8세 소녀 임신, 12세 소녀 출산 등의 아동 성범죄 관련 사건의 상당수가 이 경우로 추정된다.

2.1.1. 한반도


대한민국 민법 제807조(혼인적령) 18세가 된 사람은 혼인할 수 있다.

순우리말 가운데 감정아이라는 단어가 있다. '첫 배란 때 잉태한 아이. 즉, 초경보다 임신을 먼저 해서 낳은 아이'를 의미하는 단어다.
아직 초경도 하지 않은 어린 소녀와 결혼해서, 그때부터 부부관계를 해서 아이를 낳은 경우다. 요즘도 빠르면 11~12세 이전부터 성에 눈을 뜨는 경우도 있다. 다만, 대체로 그 나이 즈음에 초경을 시작하는 최근에 비해, 과거에는 초경의 나이가 조금 더 늦었다. 옛날 의학서적에서도 초경의 나이를 대략 만 14세 경으로 잡는다. 성적 성숙은 영양 상태와 비만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영양 결핍이 거의 없는 현대에는 초등학교 5~6학년 정도가 초경을 하는 일반적인 연령이다. 하지만 현 60대 이상 세대에서는 일반적으로 중학교 2~3학년, 늦는 사람의 경우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초경을 했다는 분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혼례만 어려서 하고, 부부관계는 초경 이후로 미루는 경우가 많았다. 최소한 조선 시대에도, 자식을 건강하게 낳으려면 모체가 어느 정도 성장해야 한다는 개념은 있었다.
어린 나이에 성관계/임신/출산을 하면 어린 소녀의 몸에 엄청난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신체가 완전히 성숙하고 성장이 끝난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출산 시에 산모와 태아 모두 사망할 위험성이 성인에 비해 몇배로 훨씬 높아진다. 모체의 안전을 최대한 생각한다면 적어도 만16세는 되어야 한다.[10]
고려 후기에 공녀 공출을 막기 위해 조혼하는 풍습이 정착되었는데, 조선이 건국된 이래 주자가례에 따라[11] 조혼을 악습으로 보고 논의하고 금지하려 했다. 하지만 갈수록 흐지부지되어 버렸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네이버캐스트)[12]
조선 영조 시절에 한국 나이로 7살인 종단이라는 여자 아이와 소금장수 송지명이 성관계를 하여 임신한 사건이 있었다. 영조는 종단이, 송지명, 종단이의 어머니, 그리고 갓난아기인 종단이의 아들을 섬에다 나누어 귀양 보내 노비로 삼으라고 명했다.(#/부흥 카페)
조선은 1894년의 갑오개혁 때 "남자는 20세 이상, 여자는 16세 이상이어야 혼인이 가능하다"고 법으로 공포하여 조혼을 금지하였지만,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았었다.(#) 다만 1906년에서 1910년 사이의 조선시대 임금을 제외한 백성들을 고려해보면, 조혼이라고 하기에는 또 애매하다. # [13][14]
1886년 미국인 여성 선교사들이 세운 한국 최초의 여학교였던 이화학당은, 신체적·정신적으로 아직 미성숙한 어린 소녀들을 강제 조혼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재학 중 금혼'이라는 학칙을 만들기도 했다.[15] 소녀들이 부모의 손에 이끌려 시집가는 것을 막기 위해, 교사들은 부모를 설득하기도 하고, 심지어 방학을 없애기도 했다고.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금혼 학칙은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 되었고, 2003년 이화여자대학교는 금혼 학칙을 폐지하였다. 이후 기혼 여성들도 학부 신입생으로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이대의 아줌마 신입생들, 첫 기혼 입학생 졸업 또한 금혼 학칙 때문에 학교를 중퇴했던 사람들의 재입학을 허용하여, 그녀들이 뒤늦게라도 졸업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가정학과 입학 58년 만에 졸업한 할머니
원불교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성직자인 여성 교무의 금혼을 규칙으로 내걸기도 했다. 물론 원불교 또한 마찬가지로 현대에는 이 금혼 규칙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강하다.
일제강점기 시대에도 조혼은 매우 빈번하였다. 초기에는 연애 문화가 보편화되는 과도기였기 때문에, 이 시대의 조혼은 그 이전 시대보다 더 큰 갈등을 야기했다. 젊은이들은 연애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하는데, 윗 세대는 이미 그들이 연애에 눈 뜨기 전 나이에 결혼을 시켜 놓았거나 집안에서 정한 혼처와 결혼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세대 갈등을 유발했던 것. 조혼 상대에 대한 불만으로 화목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영위하거나, 이미 배우자가 있음에도 연애 욕구를 참지 못해 바람을 피우고 마음에 드는 상대와 결혼하기 위해 이혼을 청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16]
박정희가 첫 아내인 김호남과 이혼한 이유이다. 박정희는 나이를 먹은 후에 본인이 좋아하는 여성을 만나면 결혼하고 싶었으나, 집안에서는 아직 어린 그를 억지로 김호남과 결혼시켰던 것. 둘 사이에 박재옥이라는 딸도 태어났으나, 박정희는 내내 김호남에게 무관심하며, 아내와 딸의 존재를 숨기고 이현란과 동거를 하거나, 자신의 제자인 초등학생에게 청혼까지 했지만 그녀의 부모님에게 거절당한 적이 있었다. 결국 이러한 바람둥이 기질 때문에 김호남과 이혼하고 말았다.
하지만 중기부터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는 일을 막기 위해 다시 조혼이 늘어났다.
고대에 있었다는 민며느리제는 일종의 조혼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의외로 한국 역사에서 사회적으로 대대적으로 조혼을 한 경우는 고려 시대에 발견된다. 원 간섭기 때 공녀로 차출되는 걸 최대한 피하기 위해 일찌감치 자식들을 결혼시켰다고 한다. 조선에선 주자가례와 경국대전에 규정되어 있는 17세, 16세 이후에 결혼하는 게 일반적이었고 보통 이 즈음부터 성인으로 간주했는데, 저 나이보다 더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사례가 있었다. 조선 시대에 꼬마 신랑은 조혼 풍습으로 빨리 자손을 보려는 뜻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대략 신랑이 12살 정도이고 신부는 신랑의 나이보다 6살~10살 가량 많았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대한민국에선 2006년까지 법적으로 결혼이 가능한 나이가 여자는 만 16세, 남자는 만 18세였다.(현재 일본에서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어린 신부가 이걸 소재로 한 것이다. 2007년 이후로는 둘 다 만 18세로 고정되었다. 그러나 만 19세 이전, 즉 생일이 지나지 않은 한국 나이 20세는 고등학교 재학 중에 있는 학생들이 많으므로 (빠른 연생으로 입학을 일찍 하거나 과학고등학교영재학교 등을 조기 졸업하더라도) 미성년자 시기로 보기 때문에 만 18세에 하는 결혼에는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조혼이 딱히 범죄로 규정된 것은 아니다(애초에 상기 법규도 민법이다. 형법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비합법이며 확실히 금지된 것도 아니다. 실제 대한민국 형법에서도 조혼을 가지고 처벌을 명시하는 규정은 없다. 법률혼을 인정하지 않는다는[17] 점만 빼면 둘 그리고 가족의 상호 합의하에 실질적인 혼인 관계처럼 행세하든 동거를 하든 어쩌든 주변에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나 뭐라 그러지 딱히 공권력이 잡아가거나 처벌하는 것도 아니며 근거도 없다. 민법 807조는 조혼을 금지하려고 명시되었다 보기는 무리가 있고[18] 18세 이상의 결혼권과 성인의 자유연애를 천명하는 성향이 더 강하다.

대한민국 형법 제305조(미성년자에 대한 간음, 추행) 13세 미만의 사람에 대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제297조, 제297조의2, 제298조, 제301조 또는 제301조의2의 예에 의한다

다만 이 형법 조항은 확실히 신경써야 한다. 이 조항에 의거해 13세 미만의 사람과 성관계를 할 경우 무조건 불법이며, 화간일지라도 강간에 준하는 처벌을 받게 된다. 즉 13세 미만인 상대와 그 보호자의 동의를 다 받고 성관계를 했다 할 지라도 친고죄가 아니므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쌍방합의, 가족합의가 다 된 상황이기에 실제 강간과 같이 큰 처벌은 받지 않을 수는 있다. 물론 성관계를 안 한다면 상관은 없다. 혹은 양쪽 모두 14세 미만이라면 형사미성년자라 처벌되지 않을 수도 있다.
즉 대한민국에선 조혼을 법률혼으로 인정을 안 해 줄 뿐이지 서로 좋아 동거를 하거나 사실혼 관계처럼 지내는 것은 하등의 문제가 없다. 13세 이상이라면 성행위를 해도 무방. 하지만 일반적으로 미성년자끼리 혹은 미성년자와 성인이 결혼한 것 마냥 동거를 하는 것, 성행위를 하는 것 등을 법원의 판단과는 관계 없이 사회에선 대단히 좋지 않게 본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특히 성인과 미성년의 관계라면 원조교제로 의심받을 위험성도 있다.

2.2. 유럽


주로 동양만의 풍습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건 전근대까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였다. 생각해보자.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이 13살인데 줄리엣 엄마가 "내가 네 나이 때 널 가졌다"고 한다. 물론 만 13살이므로 세는나이로 14살~15살. 막 2차 성징이 올 때 즈음 결혼하는 건 범세계적으로 당연히 여겨졌다.
십자군 시절 레몽 드 푸아티에는 30살의 나이로 안티오크 공국의 콩스탕스 (당시 8-9세)와 결혼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에 장로교회를 수립한 종교개혁가 존 녹스는 50세의 나이로 17세의 마가렛 스튜어트와 결혼하기도 했다.
질량 보존의 법칙을 발견한 프랑스의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28살이던 1771년에 13살의 마리 앤 피에레테 폴즈와 결혼하였다.[20]
라부아지에는 1771년 어려움에 처한 13세 여자아이를 보살피면서 낭만적 성향을 보여주었다. 친구인 자크 폴즈의 딸인 여자아이가 어마어마한 부자에다 괴물같이 음침한 남자[21]와 강제 결혼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폴즈는 라부아지에의 직장 상사이기도 했으므로 그의 딸 마리 안에게 도움을 줄 만큼 잘 아는 사이였다.
마리 안을 돕는 방법은 그 아이와 결혼해주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나이 차이가 많았지만 잘생긴 28세의 청년 라부아지에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결혼 직후, 공동 농장에서 폴즈를 보좌하며 지루한 회계 일에 파묻혀 지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매우 성공적인 결혼이었다.
공동 농장은 진짜 농장 형태가 아니었다. 루이 16세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징수하던 독점 조직이었다. 세금을 내고 차익이 생기면 그때서야 농장 주인들은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공동 농장은 이익이 많이 남는 사업이었으며, 그런만큼 부패도 심했다.
- 데이비스 보더니스, 김민희(옮긴이), E=mc2, 생각의 나무, 2001, pp. 50-51

2.3. 아메리카


브라질에선 21세기에도 10대 조혼을 하거나, 10대 부인을 둔 축구선수들이 꽤 많다. 브라질의 축구선수 파비우 다 실바는 한국 나이 17살에 결혼을 했고[22], 네이마르도 고교시절 여자친구와 빠른 결혼[23]으로 아들을 봤고, 몇 년 안 가서 이혼했다. 카카 역시 결혼 당시 부인 캐롤라인 첼리코의 나이는 18세였다. 이 경우에는 성의식이 자유로워졌으나 낙태피임이 터부시되는 경우가 많은데다가 낙태 규정도 까다롭기 그지없어서 현재도 10대 결혼이 성행하고 있는 것(...).
현대 멕시코에서는 조혼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13세 이하 미혼모가 꽤 흔한 편이다. 대개 아빠는 20대 청년들인데, 대부분 임신 사실을 안 순간 야반도주하는 경우가 많아 해당 미혼모들은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한다고 한다. 멕시코의 이웃 국가 미국은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및 아동 인권에 관해 굉장히 엄격한 국가이기 때문에, 10대 미혼모가 많고 미성년자를 임신시킨 남성의 책임은 적은 멕시코인 사회를 좋게 보지 않는다.

2.4. 아프리카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빈곤국에서는 아직도 매우 많은 사람들이 조혼을 한다. 대부분은 40대 이상 나이 많은 남자와 10세 전후의 소녀가 결혼하는 경우이다. 여성이 성인이 되어 결혼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 정도. 결혼할 때 신랑 측이 신부 측에 막대한 지참금을 내야 하는 풍습이 남아 있어 젊은 남자들은 사실상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으며, 어느 정도 일을 해서 재산을 축적한 나이 많은 남자 혹은 이 결혼 방식에 반대하던 부모가 돌아가신 남자가 어린 소녀를 신부감으로 탐내기 때문이다.
이 정도까지 어린 소녀가 결혼하게 되는 이유에는 크게 2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문화적으로 남성들의 처녀성에 대한 집착이 매우 심한 것이고, 2번째는 신부의 나이가 어리면 신랑에게 더 많은 노동력과 자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신부가 어릴수록 신랑이 신부 집에 지불해야 하는 지참금이 어마무지하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AIDS가 등장해서 맹위를 떨치던 시기에는 터무니없게도 '초경 전의 소녀와 성관계를 가지면 바이러스가 옮겨가서 남성은 치유된다'는, 어떤 돌팔이 의사라도 차마 못 권할 말도 안 되는 민간요법이 성행하는 바람에 많은 여아들이 피해자가 되었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빈곤국에서는 미성숙한 소녀가 임신할 시 산모가 성인인 경우에 비해 산모사망 및 태아의 사망률이 엄청나게 올라가게 되므로 신랑 측에 별 이득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이런 악습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소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신부 가정과 신랑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소녀를 사고 파는 일종의 매매혼이며 심각한 아동 인권 유린이다.

3. 참고 개념들


대만을 비롯한 몇몇 문화권에서는 꽤 현대에까지 그냥 조혼도 아니고 아예 유아결혼(Minor Marriage) 또는 동혼(童婚)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건 웨스터마크 효과만 생각해 봐도 예상하겠지만 결혼 당사자들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문화라기보다는 그냥 인습. 양측이 둘 다 10살 이상일 경우는 일반적인 부부에 비해 그나마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지만,[24] 양쪽 모두 10살 이하(!)에 결혼을 하게 되면 이혼율도 급격하게 상승하는 데다 출산율 역시 현저하게 감소하는, 말 그대로 시궁창 같은 결혼 생활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반대로 핵가족이 발달하여 결혼하려면 독립해서 스스로 먹고 살 근거를 마련하고 혼수비용을 마련해야 하는 게 당연한 사회일수록 남성의 만혼이 성행한다. 일단 현대 한국이 그렇고, 대부분의 서양 사회가 근대 이전부터 이러했다. 보통 이런 사회는 진입 초기에는 결혼이 엄청나게 줄다가 점차 인식이 바뀌면서 30대 중후반 이상의 안정된 직업 및 억대 재산[25] 을 가진 남자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빈손에 가까운 일반 여자들 사이의 결혼이 정착된다.
실제 일본의 경우 40대 가까운 장년의 남자가 21세의 여대생과 사귀는 것이 보도되기도 했다. 남자의 스펙은 포기 못하겠으니 대신 나이와 타협한 것으로 보인다.
단, 이 경우는 여자도 성인이기 때문에 조혼으로는 분류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전근대 시대 중에서도 사회적으로 보수적이었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도 여성 평균 결혼 연령이 22세 밑으로 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시기만 되어도 법적 결혼 가능 연령이 남녀 모두 21세로 꽤 높았기 때문이다.
군 문제가 발목을 잡지 않는 국가에서는 10대 후반~20대 초반에도 결혼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야구선수 "켄 그리피 시니어 - 켄 그리피 주니어" 부자는 19년 차이, "할아버지 켄 그리피 시니어 - 손자 트레이 그리피"는 43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바비 본즈 - 배리 본즈" 부자는 18년 차이.
이스라엘에서는 조혼이 병역 면제 사유인지라 군대 안 가려고 억지로 결혼한 뒤 면제 판정을 받고 이혼하는 짓거리가 만연하고 있다. 실제로도 모델 바 라파엘리는 조혼 사유로 병역이 면제된 이후 병역 문제가 해결된 것을 확인사살한 뒤 바로 이혼했다.

4. 여담


  • 현진건의 19금 소설 '불'에서 이 조혼 풍습을 비판한다. 성관계가 뭔지도 모르는 주인공은 남편과의 밤일에서 혼란과 고통만 느낄 뿐이다. 작중 서술에선 '불에 달군 쇠막대기가 뱃속에 들어왔다'는 알기 쉬운 강렬한 묘사로 주인공의 고통을 묘사하고 있다.
  • 꼬마신랑 쿵도령의 주인공 진금룡은 7살에 장가갔는데, 이는 국내 TV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 중 처음으로 조혼 사례가 소개된 케이스이다.
  •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에도, 작품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등장하는 사례이다. 호소카와 카나코의 아버지는, 딸 카나코의 절친한 선배인 유코(夕子)와 눈이 맞아 임신까지 시켰다. 이 일로 카나코의 어머니와는 이혼하게 되었고, 카나코의 아버지는 책임지기 위해 유코와 재혼했다. 당시 유코의 나이는 고1. 이듬해에 카나코의 이복 여동생 치카코(次子)를 낳았다. 유코는 임신, 결혼, 출산으로 인해 고등학교도 중퇴해야 했다.
  • 계용묵(백치 아다다의 작가)의 단편소설 '병풍에 그린 닭이'가 조혼으로 인해 생긴 폐해를 다루었다. 연상의 부인이 연하의 남편을 자식기르듯이 모셨는데, 정작 신랑이 장성하니 기존의 부인을 나이들었다고 소박맞히고 첩살이를 한다. 아내는 아내대로 왜 아이가 없냐며 시어머니에게 구박을 받으며 시달리는 내용이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여자는 18세에 결혼하는 것이 적당하다'라고 주장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마치 조혼을 권장한 주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혼을 반대하느라고 한 주장이다. 그보다도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는 것은 여러 이유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
  • 개발도상국에선 코로나 19가 불러온 빈곤 때문에 미성년자임에도 원치 않은 결혼과 출산을 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UN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 19 때문에 18살 미만 여자 아이들의 결혼이 매년 약 1200만명에서 약 1300만명 이상으로 급증했다고 하며, 실제로는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 미스트롯2 예고편에서는 전작 진(우승자)인 임영웅이 결혼식 차림으로 신부복을 입은 수 많은 여인들에게 도망치는데 그녀들 사이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도 신부복을 입고 있다.

5. 조혼한 인물


1970년대생 이후이자 25세 이하에 한해서 기재
그 이전까지 가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 김영권: 1990년생, 2014년에 결혼했다.
  • 김우리: 1973년생 스타일리스트. 그의 나이 21세에 결혼했다. 참고로 아내와는 동갑이다.
  • 김율희: 1997년생, 2018년 결혼했다. 물론 남편인 최민환도 요즘 기준으로 따지면 매우 이른 결혼이기는 하지만 여기에 충족되지 않으므로...
  • 나균안: 1998년생 야구선수로 2020년 결혼했다.
  • 동호: 1994년생, 2015년에 1살 연상과 결혼하고 2016년에 아들을 낳았으나 2018년에 이혼했다.
  • 리즈 위더스푼: 1976년생으로 1999년에 딸을 봤다.
  • 박미리: 이주노의 아내. 1990년생으로 22살에 결혼했다.
  • 박호산: 1972년생으로 1994년에 결혼, 1995년에 장남을 낳았다. 그 밑으로 둘째는 고등래퍼, 늦둥이 막내는 영재발굴단에 영어 영재로 나왔다.
  • 밥굽남: 1981년생인데 첫째딸이 2004년생이다.
  • 배재은: 아래 유정호와 부부관계. 2017년에 딸을 낳았다.
  • 봉중근: 1980년생으로 2004년에 결혼하다가 이후 이혼하고 2011년에 재혼했다. 여담이지만 그가 결혼한 두 아내들 모두 본인보다 연상이다.
  • 브리트니 스피어스
  • 서준원: 2000년생 야구 선수로 2020년에 결혼했다.
  • 선예: 1989년생, 2013년에 결혼해 딸만 셋이있다.
  • 소피 터너 : 1996년생으로 2019년에 조 조나스와 결혼했다.
  • 신진식: 1975년생 배구 선수로 1999년에 결혼했다.
  • 안나 박: 1991년생으로 축구 선수 박주호의 아내. 물론 남편도 지금 기준으로 봐도 일찍 결혼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벌써 아이 셋을 봤다.
  • 외질혜
  • 유정호
  • 에덴 아자르
  • 에미넴: 딸이 1995년생이다.
  • 이세돌: 1983년생 바둑기사. 그의 나이 23세에 결혼했다.
  • 이영하: 1997년생. 2020년 1월에 결혼했다.
  • 이인영: 배우 이성재의 장녀. 2018년 12월에 23세의 나이에 결혼했다. 덕분에 아버지는 만 50세를 앞두고 딸의 결혼, 손자 출생으로 겹경사를 맞았다.
  • 임세령: 1977년생, 1998년에 이재용과 결혼 했으나 2009년에 이혼했다.
  • 저스틴 비버 & 헤일리 비버: 1994년생, 1996년생으로 2018년에 결혼했다.
  • 정만호
  • 진화: 1994년생, 함소원의 중국인 남편으로 무려 18세의 나이차를 자랑하며 2018년에 결혼하고 득녀했다. 빨리 결혼한 이유부터가 상술하듯 아내 나이가 상당히 연상이고 임신도 고령이다.
  • 차승원: 고등학교 재학 중에 4살 연상의 여성과 결혼했다.
  • 추신수: 1982년생. 2004년 23살 나이에 동갑인 하원미와 결혼했다.
  • 카일리 제너: 1997년생으로 딸을 2018년에 봤다. 위의 김율희와 비슷한 케이스[26]
  • 표도르 예멜리아넨코: 1976년생으로 1999년에 결혼, 득녀했다. 이후에 이혼하고 재혼해서 또 딸을 봤다.
  • 한가인: 2005년, 그의 나이 24살에 결혼했다. 그 바람에 남편 연정훈은 도둑놈 취급했지만 정작 남편도 비교적 젊은 나이였다. 하지만 자식을 낳은 건 거의 10년도 더 넘은 뒤였다.
  • 한그루:1992년생, 2015년 결혼.
  • 홍영기: 얼짱시대에 나온 인물이다. 그녀의 나이 23살에 결혼했다. 거기다 남편은 3살 연하다.
  • 홍은희: 2004년, 그녀의 나이 24세에 했다. 남편은 유준상인데, 남편과의 나이차가 띠동갑을 웃돈다. 그래서인지 네티즌들로부터 유준상은 "도둑놈"이라고 많이 까였다(...)... 연정훈이 결혼하기 전까지는말이다.
  • 하타나카 타스쿠 & 센본기 사야카
  • 야마모토 아이(1995년 9월생, 당시 24세)

6. 그의 부모가 조혼한 인물


부모의 경우 1950년대생 이후이자 한쪽만이라도 나이차가 25세 미만에 한해서 기재하며, 자녀의 경우 1970년대생 이후의 인물에 한해서 기재[27] 물론 1990년대 까지는 대학 진학률도 낮고[28] 결혼적령기가 지금보다 빨랐기에[29] 부모세대 생들이 혼인할 당시에는 조혼 취급을 받지 않았다.
  • 김동현: 격투기선수. 그의 어머니 나이 21세에 그를 낳았다. 또 아버지와의 나이차도 24세 차이이다.
  • 김수찬: 1994년생으로 어머니가 1974년생이시다.
  • 김율희: 그녀의 아버지는 1975년생, 어머니는 1974년생으로 이들의 나이 23세, 24세에 그녀를 낳았으며 율희 또한 22세에 짱이를 낳았다. 요즘 시대에는 정말 보기 드문 일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짱이보다 고작 6살 많은 외삼촌(김민재, 율희의 남동생)이 있다.
  • 남보라: 어머니가 1965년생이시지만 오빠가 1988년생이다.
  • 류수정: 어머니가 1971년생이시지만 언니가 1994년생이다.
  • 문별: 1992년 생으로 어머니가 1970년생이시다.
  • 미야와키 사쿠라: 어머니, 아버지와의 나이차가 20세, 23세 차이난다.
  • 박명수: 그의 어머니(신갑순)가 1950년생이다.
  • 박지선: 1984년생으로 어머니가 1961년생이다. 또 1살 위 오빠도 있다.
  • 설리: 어머니가 1971년생이시지만, 1991년생, 1993년생 오빠가 있다.
  • 배수지: 어머니가 1969년생이시지만, 1992년생 언니가 있다.
  • 송혜교: 이 분야의 끝판왕이다. 일단 부모님 나이 19세에 그녀를 얻었다고 하며, 거기다 할아버지 또한 18세의 나이에 송혜교의 아버지를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송혜교의 할아버지와의 나이차도 40살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정작 만혼했다가 이혼.
  • 송민호: 1993년생으로 어머니가 1969년생이시다. 그럼에도 어머니보다 한 살 어린 강호동에게 형이라고 부르며 친구처럼 지낸다.[30]
  • 신비(여자친구): 1998년생. 아버지가 1973년생이지만, 1996년생 오빠가 있다. 그런 즉 신비의 아버지는 최고령이라 하더라도 22살에는 결혼했다는 얘기가 된다.
  • 안보현: 어머니께서 본인을 20살에 낳으셨다고 했다. 그 덕에 50대임에도 170cm의 훤칠한 키와 동안 미모를 자랑했으며 그 덕에 안보현도 상당한 장신이다.
  • 예리: 1999년생으로 아버지가 1976년생, 어머니가 1977년생이다.
  • 오자키 히로야: 아버지가 그 유명한 오자키 유타카 이다.
  •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 어머니 다이애나 스펜서와는 나이차가 21살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나이차가 제법 있는 편이었다.
  • 은지원: 어머니와 24살 차이난다.
  • 이나경: 부모님은 1973년생이시지만, 1997년생 오빠가 있다.
  • 이찬원: 1996년생으로 어머니가 1972년생이시다. 여담이지만 아버지는 1960년생으로 부모님, 자신 모두 쥐띠이다.
  • 이천수: 둘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어머니와 나이차이가 23세이다.
  • 정국: 아버지는 1971년생이시지만, 1995년생 형이 있다. 한끼줍쇼에서 아버지께서 일찍 결혼했다고 언급했으며 어머니께서 연상으로 보기드문 연상연하 부부였다.
  • 차노아: 그의 아버지 차승원과는 불과 18살 차이, 어머니와도 불과 22살 차이이다.
  • 차은우: 1997년생으로 어머니가 1973년생이시다.
  • 찬희(SF9): 2000년생으로 어머니가 1978년생이시다.
  • 최보민: 2000년생으로 어머니께서 1979년생이시다.
  • 최성민: 1995년생으로 아버지가 1973년생이시다. 아래의 최예나와 남매지간.
  • 최예나: 아버지는 1973년생이시지만, 1995년생 오빠가 있다.
  • 풀릭: 아버지께서 1972년생이시만, 1995년생 형이 있다.
  • 혜리: 1994년생으로 부모님은 1970년생 동갑내기이시다.
  • 휘영: 아버지께서 1970년생이시지만, 1994년생 누나를 두었다.
  • G-DRAGON: 어머니는 1959년생이시지만, 1983년생 누나를 두었다. 이후 배우 김민준과 결혼했다. 다만 아버지는 1956년생으로 약간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31]

7. 관련 문서



[1] 2015년 12월 27일 기준 7억 명.[2] 판단이 가능하더라도 가출 말고는 반항할 방법도 없다.[3] 대부분의 국가의 성인 연령 기준이 만으로 10대 중후반이기 때문이다.[4] 문종(조선)은 13세 때 4살 연상의 휘빈 김씨와 결혼했는데 휘빈 김씨는 얼굴도 못생겼고 당시의 어지간한 남자들보다도 덩치가 더 컸다고 한다. 그리고 문종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고 잠자리를 피하려 하자 이를 해결한다며 온갖 요상한 주술을 행하던 것이 적발되어 폐서인당하고 추방된다. 문종은 휘빈 김씨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이후 거의 무성애자처럼 살게 된다.[5] 대부분 저소득층, 혹은 인신매매로 구한다.[6] 필리핀,인도네시아 같은 섬나라에서도 치뤄진다고 한다.[7] 예멘은 여성의 결혼 적령기가 10대 초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성은 지참금도 준비해야 하고, 남성 부모가 반대하는 경우가 있어 30대 초반 이상이 결혼 적령기다.[8] 참고로 무함마드의 13명 부인들 중 유일하게 처녀성을 유지한 채 무함마드와 결혼했는데, 나머지 부인들은 모두 과부나 이혼녀였고 아이샤는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이 점은 무함마드 사후 아이샤에게 큰 권위를 가지게 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된다.[9] 보통 후자의 이유가 더 크다. 어차피 결혼시기도 놓쳤고, 국내 여자들이 자기를 좋아하지를 않으니 이왕 하는 김에 만족감이 큰 방법을 쓰는 것이다.[10] 웬만한 여성은 만 16세 때 성인의 모습을 다 갖추기 때문이다. 남성의 경우는 만 16세와 만 18세의 차이가 매우 많이 난다[11] 물론 이것도 현재 기준에서 볼 때에는 조혼이다.[12] 흐지부지된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게 왕실에서부터가 조혼이 성행했다. 나이가 10대 초반, 더 아래로는 10살도 안된 어린 왕세자가 세자빈을 간택해 혼인하기도 했다. 물론 이 경우에는 딱 성인이 된 20세에 혼인하기에도 사정이 뭣한 게, 왕위계승자인 세자 입장에서는 빨랑빨랑 아들을 얻어 국본을 튼튼히 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시 법정 연령이라 할 수 있을 15세보다는 어린 나이에 혼인했다. 비단 세자 뿐만이 아니라 후손을 빨리 봐야 하는 방계 왕족들도 대부분 조혼을 했다.[13] 단 이 평균연령에 함정이 있는게, 옛날에는 유아사망률이 높았다. 즉 10살도 못 되어 죽은 아이들이 넘쳐났다는 건데, 이것을 감안하니 평균연령이 낮아지는 건 당연지사. 즉 실질적인 평균연령은 더 높게 봐야 한다. 비슷하게 한때 영국에서도 노동자들 평균 연령이 20대에 불과한 적이 있었는데, 이 역시 아이들이 너무 어릴 적부터 혹사당해 빨리 죽어 그런 거였다.[14] 다만 이렇게 어릴 때 죽어나가는 아이들이 많으니 어찌어찌 자라도 요절할지 모른다른 두려움에 서둘렀을 가능성은 있겠다. 이때는 현대와 같은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니.[15] 하란사는 기혼이었지만, 교장 룰루 프라이에게 간곡히 매달린 끝에 예외적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16] 이는 동서양과 시대를 막론하고 왕들이 후궁이나 정부를 둔 까닭과도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왕비하고 금슬이 좋은데도 후궁을 둔 왕도 없는건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왕들의 평생 짝이 될 왕비가 마음에 들지는 그냥 운빨에 기대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이혼하기는 뭐하니 꽝이 나오면 후궁이나 정부같은 꼼수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17] 위의 저 민법조항 때문에 혼인이 성립 안 된다.[18] 그랬다면, '만 18세 미만의 사람은 결혼할 수 없다.'가 명시되었을 것이다.[19] 훗날 라부아지에가 처형당하자 벤저민 톰슨과 재혼한다.[20] 다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라부아지에 본인도 젊고 촉망받는 학자에 돈도 있는 훈남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래 인용을 보면 알겠지만 마리 앤 피에레테[19]는 라부아지에가 아니었으면 더욱 조건이 나쁜 결혼을 해야할 처지였다는 사실이 명기되어 있는데 이는 즉 그러한 여자측의 절박한 이유와 라부아지에 같은 호조건의 신랑이 아니라면 당시에도 13살 여아와의 결혼은 결코 곱게 보이지는 않았음을 의미한다.[21] 여기엔 자세히 쓰여있지 않지만 50살(!) 먹은 백작이었다고...[22] 그래서 쌍둥이 형제인 하파엘과는 결혼반지의 유무로 둘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23] 참고로 부인은 95년생으로 당시 16세였다. 흠좀무..[24] 결혼 후 20년 이상의 이혼율에 대한 시계열 데이터를 보면 대조군에 비해 높기는 하나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25] 보통 1억에서 1억 5천정도를 독립해서 모으려면 적어도 10년이 필요하다.[26] 심지어 이들의 남편 모두 1992년생이라는 점도 같다. 다만 김율희는 2018년 아들 출산 후 2년 뒤 딸 쌍둥이를 낳으면서 별 탈없이 살고 있는 반면 카일리는 정식으로 혼인 신고한 게 아니라서 별거 중이다.[27] 그 이전에 출생한 인물로 하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28] 석사, 박사에 진학하는 사람들도 30살 이전에 결혼하는게 보통이었다.[29] 2000년대까지도 고작 30살만 넘기면 노총각, 노처녀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2005년 방영된 인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노처녀라고 구박받는 김선아의 극중 나이는 30세다(..)[30] 서로 친구처럼 지내는 삼촌, 조카같은 모습으로 생각하면 된다.[31] 지금은 30대가 적령기이지만 1980년대 당시엔 30대만 넘겨도, 심지어 20대 중, 후반만 되어도 노총각, 노처녀 취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