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

 


1. 개요
2. 역사적 관점
3. 현대의 가부장제
4. 대한민국의 가부장제
5. 같이 보기


1. 개요


'''가부장제'''(, patriarchy)
한자를 그대로 풀어쓰면 ''집(家)에서는 아버지(父)가 제일 높은 사람(長)인 제도(制)''라는 뜻으로 일단 아버지라고는 하지만 정확히는 ''가정 내 남성 최연장자가 집을 이끌어가는 제도''를 뜻한다. 이는 어느정도는 "관습적•법률적''으로 남성 중 최연장자가 가정의 최고 책임자로 있는 것을 뜻한다.
남자가장(가부장)이 가족성원에 대하여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가족을 지도·통솔하는 가족형태이다. 농경산업의 시대를 지나 점차 개인주의의 사회로 빠르게 변화함으로서, 현대에는 남성만의 통솔력 및 독점적인 힘 자체가 급격하게 약화되었다. 이에 따라 을 제외한 아들만이 가정의 무조건적인 직속후계자로 결정되는 분위기가 크게 퇴색됨으로 인해 가정의 후계자와 거대한 사회적, 경제적 통솔력을 독점하게 되는 즉, 오로지 아들만을 기대하던 남아 선호 사상 또한 지극히 격감하는 결과를 낳았다.

2. 역사적 관점


현대적 사회 제도, 인권 개념이 정비되어있지 않고 치안이 좋지 못했던 옛날에는 집단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남성의 신체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신체력이 남성에 비해 떨어지는 여성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남성의 신체력에 의존하게 되었고, 이에 남성에게는 여성과 어린이, 나아가 집단을 보호할 책임을 부과했다. 남성이 이러한 역할을 맡게 되자 여성은 자연스레 육아와 가사일을 중점적으로 맡게되었다.
'아이와 여자들(아녀자)'[1]이라는 표현은 가부장제를 상징하는 표현이라 봐도 좋다
그리고 인류가 수렵단계에서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며 남성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급증하면서, 인류의 대다수 문화권에서 가부장제가 주류로 떠오르게 된다. 일단 위에서 언급한대로 육체 노동이 기반이 된 고대 농경에는 남성이 체력적으로 유리했다. 또한 고대에는 비료가 없어서 농사를 지을수록 땅이 황폐해졌기에 끊임없이 땅을 확장해야되었고, 농경과 전쟁을 위해 많은 수의 남성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고대부터 존재하던 ''연장자가 오래 산만큼 제일 지식이 풍부하다.''라는 관념과 동방 등에선 유교등을 통해 특히 연장자과 관리자의 지위가 강해지면서 이런 가부장제로 자리잡게 된것이다.
단, 여성이라고 권력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과거, 권력은 주로 신분과 재산을 따라갔었다. 높은 신분이거나 재산이 많은 경우 여성도 권력을 가진 경우가 존재한다. 다만 상술했듯이 사회안전망 시스템이 잘 정비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신체력이 약한 여성이 스스로를 지킬 수단이 별로 없는데다가 모든 활동에 신체력이 많이 필요하던 과거에는, 남성에 비해 권력을 유지하기 더 어려운 상황에 자주 노출되었다. 극단적인 상황으로 맨몸뚱이 빈털터리로 무연고자가 살아가야 할 때(전근대 사회에서 재난이나 전쟁, 불상사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밭을 갈거나 산이나 숲, 강에서 먹을 것을 찾거나 누구 밑에 들어가 일을 해주며 살거나 어떠한 생존 방식을 선택하더라도 단독 생존을 시도하려면 노동력이 높은 남성의 생존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결국에 여성이 자신의 생존 확률을 높이려면 상호보호를 보장하는 어떠한 집단에 소속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가부장이 되는 남성은 집안에 속해있는 모든 재산(토지, 동산을 포함)에 대해서 그 처분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며, 가문의 재산권은 가부장에게 속해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가부장은 가문 내부에서 아내와 자녀 등 가문의 구성원에 대하여 인신구속권을 가지며, 결혼 등으로 가문을 나갈 때는 미리 가부장의 허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부장의 허가를 받지 않은 무단 결혼은 간통과 같이 취급된다. 노예가 허용되는 사회에서는 구성원을 노예로 파는 것도 용인된다.[2] 또한 중국에서도 1911년 중화민국이 성립하기 전에는 법률에 의해서 가부장이 자식들을 노비로 팔거나 죽일 수도 있었다.[3] 가부장은 인신구속권에 따라서 구성원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경우 처벌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처벌은 많은 경우 폭력적이다. 처벌을 내릴 권한은 법률적으로 인정되거나 사회적으로 용인받는다. 극단적인 경우, 가부장은 구성원을 살인하는 것도 허용받는 '''생살여탈권'''까지 가진다. 아프간의 탈레반들이 바로 이런 극단화된 가부장제의 가장 명확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가장은 (집단의 위기 상황에서) 구성원들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절대적인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맡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군대의 사령관을 떠올려 보면, 사령관은 부하인 군인들을 지킬 의무를 가지지만 동시에 전쟁에서 승리하고 더 많은 부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소수의 부하들에게 사망확률이 지극히 높은 임무를 강요할 권한 역시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과거 여성들이 가부장제로 인해 겪은 대표적 폐단이 남아선호사상이다. 과거사회에서 여성은 내부활동이, 남성은 외부활동이 잦았기에 대다수의 책임을 부여받게되었다. 때문에 관직에 오르거나 높은 자리로 진출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따라서 집안의 대를 잇는 것 역시 자연스럽게 남성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대한민국에선 변질•심화된 남아선호사상이 80-90년대의 여아 낙태 문제 같은 사회적으로 매우 좋지 못한 사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998년까지만 해도 한국은 부계혈통주의였으며, 2008년까지만 해도 기혼녀는 호주제로 인해 남편 호적에 들어갔다. 심지어 남편이 사망 시 장남이 호주가 되어 어머니가 어린 아들의 호적 아래 들어가는 이상한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4]
한편 동성애남색을 강하게 혐오하는 종교가 영향력이 강한 지역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가 가부장제가 매우 심한 지역들이라는 것이다.[5] 그러나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가부장적이면서 동성애가 만연한 고대 로마와 그리스, 중세 일본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실 가부장적인 문화에서는, 특히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및 문화권에서는 게이나 레즈비언뿐 아니라 남녀간의 결혼을 통한 성행위 이외에는 전부 안 좋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6][7]

3. 현대의 가부장제


현대 사회는 정부에 의한 치안이 강화, 신분제의 소멸, 교통과 통신의 발달, 그리고 누구든지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는 지식산업 위주로 개편되면서 여성도 사회생활하고 영리 활동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식산업 위주의 개편이라 함은 과거에 비해 "남성의 신체적 우월함", "남성만이 관직에 오르는 사회적 시스템"이 사라지면서 그 존재의 중요성이 크게 줄어들었단 뜻이다.[8] 그리고 기술의 발달로 가사노동의 난이도가 과거에 비해 감소하였다.[9]
이런 사회 배경에서 더 이상 남성이 여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외부 활동을 더 많이 하지 않을 수 있게 됨과 동시에 성평등 의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현재 대표적인 논란거리는 맞벌이부부의 가사노동이나 육아의 분담 문제로 이건 가정마다 다를수 밖에 없는 문제다 보니 토론에 대해서는 제대로 확답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 현대는 완전히 육체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세대적으로도 기성세대들은 여전히 대부분 남성이 가정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이나 청장년층은 서서히 맞벌이로 바뀌어가고 있는 등 여러모로 과도기적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대 후반의 대세가 된 남성혐오페미니스트들, 기성세대 정치인, 나아지기는커녕 악화되어가는 젠더 문제 등이 짬뽕이 되어 성별에 상관 없이 함께 타파해야할 과거의 잔재라는 시점에서부터, 오직 여성만이 가부장제의 피해자라거나 반대로 가부장제야말로 가장의 권한, 가정 유지를 위한 문화라고 주장하는 등의 주장까지 난립하고 있다. [10] '''요즘이야 뭐 가부장적 사고방식 1도 없을지라도 뭐 하나 트집잡혀서 "가부장이다"라고 욕먹고 비난받고 누명쓰는 게 일상화됐는데 뭐 당연하다.'''

4. 대한민국의 가부장제



한국은 전통적으로 가부장제에 대한 의식이 강고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남녀가 결혼을 하면 남자가 처가에 들어가 살았던 게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이었는데[11]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
사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전통적인 양반층은 여성의 학문 공부를 적극 장려했으며, 부부간엔 서로 존댓말을 썼다 한다. 즉 조선시대에는 남성을 더 우위에 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여성 차별은 현대의 일반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덜 일어났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인의 인식에 박힌 가부장제는 조선 후기 부유해진 평민층 사이에 양반지향 문화가 생기면서(즉, 평민들이 양반 문화를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생겨났고, 일제강점기 일본의 가부장 문화가 들어오면서 고착되어 내려져 온 것이라 한다. 사실 양반 집안에선 아들 못 낳는다 해도 부인/며느리를 구박하지 않았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처가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며, 아들 항렬의 더 똑똑한 친척을 양자로 들이면 해결될 문제였으니... 아들을 못 낳는 게 흠이 아니었고 양자를 들이는 게 굉장히 일반적인 일이었다.
어찌 됐건 조선말 일제 강점기의 영향으로 강력한 가부장 문화가 대한민국에 뿌리내렸고, IMF 경제위기 전까지 이 분위기는 지속되었다. IMF 이후 기존의 역할분담이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다보니 한국 사회도 변화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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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기준 대한민국에서 평균적으로 남편의 집안 권력은 아내의 집안 권력의 1/4에 불과해졌다.기사
한국인의 76%는 육아에 전념하는 아빠를 루저로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으며, 이는 다른 주요 선진국들은 물론이고 인도나 브라질의 2배가 넘는 수치이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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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체육관광부의 '2016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기사
이러한 조사 결과에 대해서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가 온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니 더 없애야 한다고 하며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남성의 집안 권력이 지나치게 낮아졌는데 가부장제 의무만 남아있는 사회적 부조리를 이야기한다.
시대가 이렇게 바뀌어 가면서 아버지는 가정 내 권력은 잃어가고 점차 가족에게서 소외되면서 그저 '돈 벌어다 주는 기계'로 책임만 강요당하는 현실에 절망하며 생활비를 내지 않겠다는 갈등이 점차 커지고 있는 양상으로 바뀌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관련 기사

5. 같이 보기


  • 단지(웹툰) - 작가가 가부장제의 피해자고 그 피해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만화다.

[1] 이는 권력적 측면 뿐만 아니라, 의무의 대상으로서도 압력이 가해지는 표현이다. 사고나 재난시 '여자와 아이들 먼저' 탈출시킨다는 서양의 관념이나, 과거로 돌아가서 '여성(과 과부), 아이들을 지키는 기사도' 라는 로망적 계율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2] 로마의 십이표법을 보면 "아버지가 자식을 3번 노예로 팔면 자식은 아버지의 지배권에서 해방된다."는 조항이 있다. 바꿔 말하면 '''3번씩이나''' 노예로 팔 수 있다는 거다.[3] 중국의 오래된 속담인 "아버지가 죽으라고 명령하는데, 자식이 이를 거부하면 불효자식이다."도 이를 반영한다.[4] 다만 이러한 행보는 근대사회에 들어서며 생겨난 폐단들이지, 과거사회에서부터 쭉 이어져온 현상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의 양반가라면 모를까, 일반적인 평민들은 집안의 대를 이을 이유가 없었고, 더욱이 호적•족보가 없없기 때문에 이같은 폐단은 생기기 어려운 환경이었다.[5] 실제로 성소수자 권리가 비교적 잘 보장되어 있는 나라들은 성평등 의식 역시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다.[6] 사실 고대 그리스의 영향으로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큰편이 아닌 고대 로마(기독교 도입 전)조차도 이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부장제의 영향으로 고대 로마에서는 아버지는 자식의 '''생살여탈권'''까지 가지고 있었고, 로마 시민은 '''남자답게''' 박을지언정(penetrate) 박혀서는(penetrated) 안되는 존재였다. 즉, 고대 로마에서 황제원로원 의원 등 높으신 분들동성애자인 경우 전부 다 포지션이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트라야누스 황제가 특히 그러했다. 또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경우 20대 초 청년시절에 술라숙청을 피해 비티니아에 망명해 있으면서 비티니아 왕 니코메데스 4세과 관계를 맺으며 바텀 역을 했다는섹스 스캔들이 퍼진 이유만으로 정계활동 내내 카이사르의 약점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놓고 로마 시민 자신이 바텀임을 주장? 결과가 어땠는지는 엘라가발루스 황제의 최후가 이를 말해준다.[7] 실제로 로마 제국에서든 수메르 신화에서든 "남자로서 삽입 당하는 것"을 그 자체로 사회적 죽음인 것처럼 이야기하며, 수메르 신화에서는 자기가 남자를 강간해 놓고서 "이 남자는 삽입 당했으므로 자유민이 아니다"라고 언플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8] 어디까지나 과거에 비해서다. 여전히 남성의 신체적 우월함이 요구되는 직종은 매우 많다. 물론 현대에는 안정적으로 몸을 덜 쓰며 편하게 머리 굴리면서 하는 고소득 직종이 몸을 혹사시키는 고소득 직종보다 압도적으로 인기가 더 많은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일례로 주변에서 특히 체력 좋다고 소문난 남성조차 힘들고 고된 일보다는 편한 일을 선호하는 일이 더 많다는 걸 생각해보자.[9] 과거에는 가사노동을 전문적으로 해줄 사람이 필요 했지만 현대에 와선 1인 가구로 생활이 가능해졌다.[10] 그래서 최근에 가부장제와 남성혐오페미니즘으로 인한 피해자가 1990년대생~2000년대 중반생인 남성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11] 무려 고구려 시대부터 있었다. 즉 이 전통의 시작을 아무리 늦게 잡아도 기원전인 셈이다. 고려시대 문벌귀족과 조선시대 양반도 당연히 그랬고, 여자가 남자의 집으로 들어와 사는 것은 17세기 이후에야 나타난다. 사실 그렇게 바뀐 것도 남녀문제가 아니라 경제문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