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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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왕조 현종 원문대왕 대의 문신. 수원 최씨 가문 출신으로 호족 출신인 수원 최씨 가문이 문벌귀족 가문으로 바뀌게 만든 인물이다.
증조부는 호장(戶長) 최서천(崔徐遷), 조부는 최한용(崔韓用), 친부는 한남군 개국남(漢南郡 開國男) 최융예, 친모는 국대부인(國大夫人) 유씨[1] 이다. 아들 6명, 딸 1명을 두었다.
최사위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 최사위 묘지명이 있다.
2. 상세
목종 대에 형부상서[2] 를 지냈다. 이것이 최사위의 최초 기록인데 이를 보아 능력이 뛰어났고 배경인 가문의 세력이나 뒷배경도 꽤 탄탄했던 것으로 보인다.
요성종이 의군천병 40만을 끌고 고려를 침공했을 때 강조(고려)가 이끈 30만 행영 군단의 지휘관 중 한명이었다. 통군사 직을 받아 통주로 출전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후 계속 북방에서 거란과 싸웠지만 성과는 좋지 않았다. 정치적인 능력이나 서무적 능력은 뛰어났지만 그 외에는 별로였던듯 하다.
잦은 패전의 책임자였지만, 서무 능력을 인정받어 계속 고위직에 임명되었다. 중서문하성의 참지정사가 되었다가 이부상서(吏部尙書)[3] 를 겸했다. 현화사비에도 등장하는데 현화사 건설을 위해 별감사(別監使) 직위를 받아 영취산에 대자은현화사를 건축했다. 현화사비에 적힌 직위는:
- 추충좌리동덕공신(推忠佐理同德功臣)[4]
-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5]
- 검교태부(檢校太傅)[6]
- 수문하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守門下侍郎 同內史門下平章事)[7]
- 판삼사사(判三司事)
- 상주국(上柱國)[8]
- 청하군 개국후(淸河郡 開國侯)[9]
- 식읍 1,000호(食邑 一千戶)
이 되었다. 흥료국의 건국을 틈타 거란을 침공하고자 했던 참지정사 곽원의 제안을 반대했다. 후 나이가 들어 퇴직을 요청하였고, 내사령(內史令) 명예직을 받고 퇴직하였다. 정종 대에 사망하였고, 태사(太師)에 추증되었다.
전쟁에서는 큰 역할을 맏지 못했지만 지방 제도의 개혁으로 고려 행정 제도엔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 공으로 현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3. 묘지명 기록
3.1. 본인 묘지명
문종 때 최사위의 막내아들 최영언이 아버지의 무덤을 옮기면서 새로 만든 묘지명이 지금까지 현존하고 있다. 고려사엔 없는 최사위의 가계가 기록되있고 여섯 아들의 이름과 관직을 알수 있다. 각각:
- 1남 어사중승(御史中丞) 최충공(崔忠恭)
- 2남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 최충경(崔忠敬)
- 3남 사재승(司宰丞) 최준검(崔遵儉)
- 4남 내사서령(内史書令) 최충약(崔忠諾)
- 5남 상서호부낭중(尙書戶部郎中) 최충영(崔忠永)
- 6남 시합문지후(試閤門祇侯) 최영언(崔令言)
- 현화사(玄化寺)[14]
- 봉은사(奉恩寺)
- 태묘(太廟)
- 보제사(普濟寺) 금당(金堂), 나한전(羅漢殿)
- 의왕사(醫王寺)
- 사가원(寺家院)
- 서경(西京) 사천삼사(四天三寺)
- 서경(西京) 장락궁(長樂宮)
- 서경(西京) 태조진전(太祖眞殿)
- 연주(延州) 진북영화사(鎭北靈化寺)
- 선주(宣州) 신중사(神衆寺)
- 진도현(珍㠀縣) ?찰원(?察院)
- 시진현(市津縣) 포천(布川) 미륵원(彌勒院)
- 낭천군(狼川郡) 개통사(開通寺)
- 계성사(啓星寺)
- 개차근산(皆次斤山) 정양사(正陽寺)
- 수주(水州) 자복사(資福寺)
- 송림현(松林縣) 보현관(普賢舘)
묘지명에 기록된 최사위의 마지막 관직은 다음과 같다:
- 직위: 태사(太師) - 내사령(內史令)
- 향직 품계: 삼중대광(三重大匡)
- 시호: 정숙공(貞肅公)
최사위의 현종 옹립 시기의 일화, 여요전쟁 때의 일화가 실려있다. 방금성고(方今聖考)[15] 께서 잠룡(潜龍)[16] 시절 대량원(大良院)[17] 에 머물고 있을 때, 여후(呂后)[18] 가 김치양과 성고를 죽이려하자 이를 막고 대보(大寶)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여요전쟁 시기, 거란국(契丹國)이 병마를 끌고와 배주신좌(背主臣佐)[19] 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사위는 그런 사람이 없다며 일축했다. 거란군이 돌아가던 중, 그들을 습격해 크게 격파했다고 한다.
3.2. 증손자 묘지명
최사위의 증손자 최계방(崔繼芳)은 자가 복시(復時)이다. 아들은 장남 최함소(崔諴少), 차남 최관오(崔觀奧), 성명 미상의 딸이 하나있다. 최계방 묘지명에 기록된 최사위의 마지막 관직은:
- 향직 품계: 삼중대광(三重大匡)
- 문산계 품계: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 공신호: 추충동덕진랑위주광국공신(推忠同德盡郎衛主匡國功臣)[20]
- 직위: 내사령(內史令)
- 수직: 수태사(守太師)
- 작위: 한남군 개국후(漢南郡 開國侯)
- 시호: 정숙공(貞肅公)
최계방 묘지명에선 최사위가 성조 현종(聖祖 顯宗)을 지켜 태조의 자리(太祖之位)를 잇는데 도와주었고, 정통(正統)을 만세(萬世)에 전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썼다. 그리하여 수원 최씨가 '삼한의 대족(三韓之大族)'이 되었다고 한다.
3.3. 고손자 묘지명
최사위의 고손자 최우보(崔祐甫)는 최융예 → 최사위 → 최영언 → 최덕준 → 최은 → 최우보 순으로 가계가 이어진다. 그는 역사에 조예가 깊어 낙랑군 후작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당당히 참여했다. 최우보 묘지명에 나오는 최사위의 관작은 수태사 - 내사령(守太師 - 內史令)으로 현묘조(顯廟朝)에 대공덕(大功德)을 세워 묘정에 배향(配食廟庭)되었다고 한다.
[1] 김해 출신이다. 아버지는 김해부 아간(金海府 阿干) 유율행(庾欝行)이다.[2] 형부상서는 '형부상서판사'의 줄임말로 형부의 장관이다. 형부는 지금의 법무부이다. 즉 형부상서는 지금의 법무부장관.[3] 이부의 장관.[4] 현종이 봉한 동덕공신호.[5] 문산계 품계로 종 1품 최고위 품계.[6] 검교직은 실권이 없고 단순히 직위에 이름만 올렸을 때 붙힌다. 태부는 삼사직 중 서열 2위이다.[7] 중서문하성의 차관.[8] 최고위 훈위. 훈위는 신하의 공적을 치하하기 위해주는 명예직이다.[9] 청하군을 분봉받은 후작.[10] 현종이 동덕공신에서 새로 봉한 공신호.[11] 삼사 중 서열 1위로 최고위 칭호.[12] 중서문하성의 최고위 관직.[13] 고려사 기록인데 이미 현화사비엔 후작위를 받은 것이 보이기에 고려사에 착오가 있는 듯 하다.[14] 현화사비와 교차검증이 가능하다.[15] 방금은 지금이란 뜻이다. 성고는 임금의 아버지를 의미하는데, 이 묘지명이 만들어졌을 때가 문종 때다. 문종의 아버지는 현종임으로 '지금 임금의 아버지'는 현종이다.[16] 후계자를 의미하는 단어.[17] 현종은 대량원군 군호를 받아 대량원에 봉해졌다.[18] 천추태후를 한나라의 여후로 비유하여 비난한 것이다.[19] 주인을 배신한 신하, 즉 강조를 의미한다.[20] 현종이 하사한 공신호로 고려사에 나오는 광국공신호의 풀버전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