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머만 전보

 

영어: Zimmermann Telegram
독일어: Zimmermann-Depes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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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
3. 진행
3.1. 멕시코의 반응
3.2. 영국의 해독
3.3. 미국의 반응
3.4. 독일의 대처
4. 관련 문서


1. 개요


1917년 1월 독일 제국의 외무장관 아르투어 치머만이 멕시코에게 보낸 밀지. 미국이 독일과의 전쟁을 개시할 경우를 대비해 멕시코의 참전을 부탁하면서 그 대가로 뉴멕시코, 텍사스, 애리조나미국-멕시코 전쟁의 패배로 상실한 지역을 되찾아주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 밀지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전세계 외교가는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그렇지 않아도 미국 국내의 반독 여론이 심해진 상황에서 이 사건을 결정타로 미국은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2. 배경


1차대전이 발발한 지 3년째 되어가는 1917년 2월, 독일 제국은 영국의 해상봉쇄와 그로 인한 물자부족을 타개하고자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개시한다. 사실 이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라는 것은 1915년에도 독일이 일시적으로 실시했었지만, 루시타니아 호가 격침되면서 미국인 100여명이 사망하자 중립을 지키고 있던 미국 내 대독일 여론이 격앙되었다. 이미 사방이 적이었던 상황에 굳이 미국이라는 강국을 적으로 추가하고 싶지 않았던 독일은 작전을 중단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영국의 해상봉쇄는 강화됐고, 독일의 물자 부족은 심화됐기에 독일 군부 측은 정치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재개할 것을 결정한다.
문제는 이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재개할 경우 미국이 연합국의 편에 붙어 전쟁에 참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독일 제국의 외무 장관 치머만은 주멕시코 독일 대사였던 하인리히 폰 에커르트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문서를 보낸다.

„Streng geheim

Wir beabsichtigen, am ersten Februar uneingeschränkten U-Boot-Krieg zu beginnen. Es wird versucht werden, Amerika trotzdem neutral zu halten. Für den Fall, dass dies nicht gelingen sollte, schlagen wir Mexiko auf folgender Grundlage Bündnis vor. Gemeinsame Kriegführung. Gemeinsamer Friedensschluss. Reichlich finanzielle Unterstützung und Einverständnis unsererseits, dass Mexiko in Texas, Neu Mexico, Arizona früher verlorenes Gebiet zurückerobert. Regelung im einzelnen Euer Hochwohlgeborenen überlassen. Euer Hochwohlgeborenen wollen Vorstehendes Präsidenten streng geheim eröffnen, sobald Kriegsausbruch mit Vereinigten Staaten feststeht, und Anregung hinzufügen, Japan von sich aus zu sofortigem Beitritt einzuladen und gleichzeitig zwischen uns und Japan zu vermitteln. Bitte Präsidenten darauf hinweisen, dass rücksichtslose Anwendung unserer U-Boote jetzt Aussicht bietet, England in wenigen Monaten zum Frieden zu zwingen. Empfang bestätigen.“

극비

2월 1일부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개시할 예정. 그렇지만 본국은 미국이 중립을 유지하기를 바람. (미국의 중립 유지가) 실패할 경우 다음 조건을 바탕으로 멕시코에게 동맹을 제의할 계획. 공동 전쟁 수행, 공동 평화 조약, 텍사스/뉴멕시코/애리조나 등 상실지역을 되찾는데 독일의 절대적인 지원 및 동의 보장. 세부 사항은 귀하에게 일임하며, 미국이 참전할 시 극비리에 멕시코 대통령에게 해당 조건을 제시할 것. 일본이 자발적으로 개입할 것을 유도함과 동시에 본국과 일본 사이의 중재를 맡아줄 것을 요청할 것. 또한 우리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인해 영국이 몇 달 안에 평화조약에 굴복할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도 언급해주길. 수취주의.


3. 진행



3.1. 멕시코의 반응


당시 멕시코 대통령 베누스티아노 카란사는 잠시 동안 고민한 끝에 독일의 제안을 물리친다. 미국의 군사력을 도저히 멕시코가 극복할 수도 없을 뿐더러, 독일 측의 허풍 섞인 장담과 달리 거대한 대서양을 건너 독일이 멕시코를 지원해 줄 방법이 사실상 없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매우 현명한 결정. 만일 멕시코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70년 전 국토의 절반을 날려먹은 전쟁의 후속편을 찍었을 것이고 당연히 멕시코는... 망하진 않더라도 처참한 패배를 당한 뒤 바하 칼리포르니아, 소노라, 치와와, 리오그란데 등 멕시코 북부만 미국에 바치는 비참한 꼴로 끝났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멕시코는 이미 멕시코 혁명 이후 전국적으로 터진 내전으로 인하여 남의 분쟁에 개입하고 말고 할 여건 자체가 안 되었다. 멕시코 혁명 도중 정부 수반에 오른 카란사 정권은 1915년 셀라야 전투에서 판초 비야에밀리아노 사파타의 연합군을 격파한 이후 당장 급한 불을 끄는데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전국에서 비야, 사파타를 비롯한 혁명 군벌 세력들은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멕시코 자체가 미국에게 비벼볼 건덕지가 없고 내전까지 터진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서 외국과의 전쟁이 가능할 리가...
멕시코 혁명은 포르피리오 디아스 정권에 반대하는 지주, 군벌, 좌파, 농민들이 딱히 구심점 없이 대대적으로 봉기를 일으킨 것이고, 이들은 쉴 새 없이 서로 통수와 배신을 때리고 있었다. 당장 제헌파 (constitucionalista)라고 불린 카란사 정권의 군권을 잡고 있던 알바로 오브레곤 장군부터 언제든지 정권 상대로 칼을 돌릴 수 있던 상황이었고, 치머만 사건이 터진 지 얼마 안돼 오브레곤은 카란사 정권의 통수를 때렸고 1919년 카란사가 암살당한 이후 정권을 차지한다.
이렇게 당시 멕시코는 멕시코 혁명으로 자국이 내전 상태였기 때문에 비단 미국이 상대가 아니라도 외국을 상대로 개입할 여건 자체가 안됐다. 형식적으로는 카란사가 정부 수반이었지만 당시 멕시코에는 유의미한 국가 지도자가 있다고 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1914년에 발생한 탐피코 사건으로 미국-멕시코 관계는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으며, 치머만 전보도 이런 반미감정을 어느 정도 고려한 전략적인 선택이었으나, 독일은 당시 멕시코의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최악의 실수를 범했다

3.2. 영국의 해독


그리고 멕시코가 이 제안을 한 큐에 거절한 것과 별개로 영국이 치머만이 보낸 문서를 중간에 가로채 버렸다.[1] 독일과 멕시코 사이에 대서양과 영국이 존재한다는 걸 감안하면 당연하기도 한 결과였다. 그렇기에 이 문서가 영국 손에 들어갈 것이야 독일도 예상할 수 있었고, 문서는 암호로 전송되었다.

이 당시 독일은 훗날의 에니그마와 달리 코드북으로 암호를 주고 받았는데, 문제는 전쟁 초기였던 1915년 러시아 제국 러시아 해군이 항행 실수로 좌초한 독일 제국 해군마그데부르크급 경순양함을 나포하며 독일 측의 암호책까지 득템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나포함 함장도 나포되기 직전에 기밀문서를 소각 등 파기하고 암호책은 납덩이를 달아서 바다에 던졌는데, 러시아 해군이 잠수사까지 동원해서 몇 달동안 뒤진 끝에 침몰한 함내 함장실에서 기뢰 부설 위치가 기록된 해도와 암호책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이 코드북의 내용은 자연스럽게 동맹국 영국에게도 전달된다. 마그데부르크에서 건진 것은 코드북 13040이었는데, 이게 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전설적인 암호 해독 부서 '룸 40'에 넘어간다. 치머만 전보의 경우 코드북 13042라는 다른 암호 체계를 사용했지만 두 코드북이 비슷해서 해독에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었다.
  • 어떻게 미국인들에게 미국의 전신을 도청하지 않고 이 암호 전문을 입수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야 하는가?
  • 이 사실이 알려지면 코드북의 해독에 성공했다는 게 밝혀질 테니까 독일 암호가 뚫린 것을 독일 측에 숨길 수 있을 것인가?
  • 해독한 내용이 너무나 황당무계한 나머지 미국인들이 조작으로 믿을 수도 있지 않을까?[2]
이 때문에 영국 정보원은 '쇼'를 계획했다. 우선 이들은 멕시코의 전보국에 잠입해 암호화된 전문이 이 전보국을 거쳐갔고, 영국 정보원이 이 곳에서 전보를 빼돌린 것으로 처리했다. 당시 멕시코에 있던 영국 정보원 "미스터 H[3]"가 이 역할을 맡았다. 또 어느 인쇄업자로부터 해독 문서를 입수한 것으로 위장했다.[4] 이로서 첫 번째 문제와 두 번째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세 번째의 경우, 일단 미국 측도 이 코드북 13040을 소유하고 있었던 터라 큰 문제는 없었다. 영국 정보원들은 직접 미국으로 날아가 우드로 윌슨 당시 대통령 앞에서 이 암호를 해독하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치머만 사건의 전보를 알게 되었고, 바로 다음 날 전 신문의 헤드라인에 크게 보도되었다. 그리고 아침 식사 도중 이 소식을 신문으로 알게 된 치머만은 너무나 당황&분개해 '어디서 암호가 새었는지'를 알기 위해 일부러 구식 암호로 여러 곳에 전보를 보냈고, 대사 에커르트(Eckert)에게 '배신자'를 찾으라는 지시도 내렸으나 이미 늦은 일이었다.

3.3. 미국의 반응


대중들이야 루시타니아 호 사건 이후로 반독감정이 커졌다지만 우드로 윌슨 당시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수뇌부들은 어떻게든 미국의 중립을 유지하고자 갖은 애를 써왔다.[5]
그런데 정작 독일은 뒤에서 호박씨를 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게다가 당시 치머만이 전보를 보내는 데 사용한 통신선인 롱 아일랜드 무선국은 바로 미국이 독일에게 제공해준 것이었다. 원래는 영국을 거치는 통신선을 썼지만 전쟁 발발 후 당연히 영국은 이 통신선을 절단해버렸고, 윌슨은 독일에게 '그만 싸우고 영국이랑 화해해.' 라는 의미를 담아 자국의 통신선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그런데 그 통신선을 제3국에게 자국을 침공할 것을 사주하는 데 이용해 버렸으니 미국의 배신감은 더더욱 큰 것이었다.

3.4. 독일의 대처


당연히 독일은 잡아뗐다. 미국과 영국의 수뇌부들이야 당연히 저게 독일의 언플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증거로 코드북을 떡하니 들이밀면 자신들이 그들의 코드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꼴이기 때문에 뾰족한 대책이 없어 끙끙 앓았고, 대중 사이에서 과연 전보가 진짜인지 조작된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때 치머만이 스스로 독일 의회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에 ‘완전히 보안이 검증된 방법으로 주멕시코 독일 대사관에 지시를 내린 적이 있다’고 밝혀 전보가 사실임을 사실상 인정해버렸다. 치머만은 미국이 중립을 지키길 원했으며 멕시코에 한 제안은 어디까지나 미국이 참전할 경우에나 유효한 것이라서 미국을 상대로도 떳떳하다고 생각했다. 치머만은 미국이 중립을 깨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치머만 전보에서 언급된 그 땅이 미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쳐도 미국 입장에선 불쾌할 판국에 미국 본토의 1/3은 되는 어마어마한 땅이다. 독일 정부에서 부인할 정도면 이 일의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데 정작 외교를 맡고 있던 사람은 이 따위니...
이렇게 자폭하는 바람에 미국과 영국 내 모든 진위 논란은 종결됐고 이후 전미가 단합하여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다. 그리고 이는 독일의 패전으로 이어졌다.
사실 미국제1차 세계 대전에 뒤늦게 참전한 이유로, 독일이 루시타니아 호 사건 이후로 자제했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재개한 것과, 그동안 영국프랑스에게 돈을 빌려주고 외상으로 물건을 제공했던 미국의 자본가들이 세계 대전에서 영국 & 프랑스가 독일에게 패배하면 빌려준 돈을 못 돌려받을까봐 우려했던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 여론이 참전을 부채질하였다.

4. 관련 문서



[1] 독일은 원래 정기선으로 전보를 보내려고 했는데 이 배의 운항이 취소되어 두 경로로 이 전보를 보냈다. 이들 중 하나가 아래에서 언급될 미국의 롱 아일랜드 전신국 쪽이다. 두 경로 다 영국이 도청하던 곳이기에 독일 입장에서는 극비 문서를 두 번이나 보내 거듭 자신들의 속셈을 영국에게 확인시켜준 셈이 되었다.[2] 보통 암호책이 상대방 손에 떨어졌을 경우를 대비해 이중삼중으로 암호를 거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치머만 문서의 경우 한번에 툭 해독이 돼서 암호 해독원들도 황당해 했다. 게다가 전보의 내용도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던 지라 영국 정보국도 한동안 '이거 독일놈들 페이크 아닐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3] 훗날 당시 멕시코 주재 영국 대사였던 토마스 홀러 경(Sir Thomas Hohler)은 자신이 이 미스터 H라고 자서전에서 주장했다.[4] 전보국과 일하는 이 멕시코 인쇄업자는 어느 날 자신의 직원 중 하나가 자신의 인쇄소에서 위조지폐를 찍어내는 것을 눈치챘다. 멕시코 당시 법으로 위조지폐 제작은 무조건 사형이라 이를 신고하려고 했는데 이 직원이 한 발 앞서서 인쇄업자에게 누명을 씌웠다. 그는 바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주말이 끼여 잠시 사형이 유예되었다. 이 인쇄업자는 평소 친분이 있던 '미스터 H'에게 도움을 요청해 누명을 벗었다. 이에 그 대가로 인쇄업자는 몇 가지 유용한 서류를 정보원에게 건넸는데, 여기에 해독 문서가 있었다는 것이 영국이 짠 시나리오였다.[5] 루시타니아 호 사건도 사실 배상금 지불 정도로 끝내려고 했다. 다만 시어도어 루즈벨트를 비롯한 야당 쪽이나 기업들 쪽에선 참전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