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와라 잇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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梶原一騎
(1936.9.4 ~ 1987.1.21)
1. 개요
2. 상세
2.1. 최영의와의 애증
3. 여담
4. 원작을 맡은 만화


1. 개요


일본의 만화 원작자(만화 원작자라는 직업의 선구자). 본명은 타카모리 아사키(高森朝樹). '극화계의 (Don)'이라고 불렸던 사나이. 도쿄도 다이토구 출신. 《거인의 별》, 《내일의 죠》, 《타이거 마스크》, 《공수도 바보 일대》, 《사무라이 자이언츠》,《인간흉기》 등의 원작자이다.
많은 히트 만화의 원작을 썼으며, 거인의 별 히트로 시작 된 극화, 스포콘(스포츠 근성물) 붐을 창시한 인물로, 1960년대 말 70년대 초에 걸쳐 일본 만화의 트랜드를 이끌었다. 전성기 때는 수면 시간은 하루 3~4시간, 한 달간 쓴 원고지는 1300매를 넘었다고 한다. 미완성작 '사나이의 성좌'를 포함해서 134편의 만화 원작을 남겼다.
작품의 특징으로는 피와 땀, 노력, 근성, 강한 남자, 우정 등 당시 기준으로도 이미 고리타분했던, 거칠고 땀내나는 사나이들의 이야기를 즐겨 다루었다.

2. 상세


작품을 보면 주로 거의 자기학대 수준의 과격한 자기 수양을 미화하고, 주인공들의 정신상태가 매우 반항적이고 자기파멸적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전자의 경향은 소위(所謂) "근성스포츠물"의 원조가 되었고, 후자의 경향은 《내일의 죠》와 같은 작품을 통해 당시 일본 운동권 학생들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기도 했다.
실존인물들을 만화의 캐릭터로 자주 등장시킨 것도 특징인데, 최영의, 왕정치, 안토니오 이노키, 김일 등이 그 예다. 다만 만화적 재미를 위해 현실과 동떨어진 과장된 묘사를 굉장히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팩트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는 것은 감안해서 봐야 한다.
소년원 출신이었다고 하며, 때문에 작중에 소년원 출신의 주인공이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타이거 마스크》, 《내일의 죠》.
작가 생활이 상당히 방종했다고 하며, 말년에 이르러서는 그 탓으로 인기가 쇠락해졌다. 소년 매거진 부편집장 상해사건으로 경찰에 체포되었고, 그 과정에서 야쿠자들과 벌인 안토니오 이노키 감금사건[1], 호스티스 폭행 미수사건, 압둘라 더 부처의 책으로 발표된 《프로레슬링을 10배 재미있게 보는 방법》의 실질적 대필작가인 후부 칸 ゴジン・カーン[2]에게서 10만엔을 강탈한 사건 등이 줄줄이 터져나왔다. 이로 인해 한때 만화계에서 퇴출되다시피 했다[3]. 우여곡절 끝에 복귀하기는 했지만, 이후로는 그런저런 3류 만화를 양산하면서 초라한 말년을 보냈다.
만화 원작자로 유명해졌지만, 원래는 소설가 지망으로 만화 원작을 쓰는 걸 탐탁치 않게 여겼으며, 소년 매거진의 마키노 타케로가 일 얘기를 가지고 갔을 당시에도, 잡지나 신문 지상에 통속물을 쓰면서 연명하는 처지였음에도 내심 분개했다고 한다. 그 곪은 앙금이 터진 게 편집자 폭행 사건. 그런 카지와라가 이래저래 마음에 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만화 원작을 쓰게 된 이유는, 결국 집을 살 때 쓴 은행의 대출금을 갚기 위해서 였다고.
참고로 말년에 원작을 맡은 작품이 바로 전설의(?) 《인간흉기》.(…) 다만 일본에선 별로 유명한 만화는 아니다.
근성 스포츠물을 자주 연재하다 보니 이 사람의 만화를 읽고 몰입하여 실제 스포츠 계에 투신한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당시 잇키의 작품을 감명깊게 본 일부 체육교사들 중에는 잘못된 정보를 함부로 받아들여서, 근성론만을 내세우며 무모한 오버 트레이닝을 강요하거나 잘못된 훈련법을 고수하여, 청소년들의 신체발달에 악영향을 주는 경우도 나왔다고 한다.(…) 참고로 한국에서도 공식적으론 수입금지였지만 카지와라 잇키의 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수입되거나 아니면 해적판 만화책으로 암암리에 들어왔고 개중에는 인기를 끈 작품들도 상당수 있었기 때문에[4] 한국 스포츠계에도 일부 안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하여간 ''이란 주제에 심취한 사람으로, 막장으로 치닫은 자신의 말년을 정리하고, 개심하여 자신이 왜 그렇게 폭력에 매료되었는지를 알리기 위해, 자전적 만화 《사나이의 성좌》를 그리다가, 완결내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각종 스캔들[5]과 말년에 보인 막장스러운 모습 때문에 사후 몇 년간은 카지와라 잇키의 존재를 논하는 것 자체가 터부시 되기도 하였으나, 일본만화계의 한 시대를 풍미하며 후세만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거물임에는 틀림없기에, 1990년대 중반부터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애당초 이사람의 존재를 빠트리고서는 일본의 70년대 만화계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사실 만화계 뿐 아니라 극진공수도라든가 일본 프로레슬링(특히 안토니오 이노키) 쪽에서도 엄청나게 영향력이 있던 사람이라서, 그쪽의 역사를 조금만 파보면 온갖 곳(주로 안좋은 쪽으로)에서 카지와라의 이름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만화계와는 달리 극진이나 프로레슬링쪽에서는 아직까지도 카지와라의 이름은 터부시되고 있고, 진상을 아는 사람들도 저마다 입을 다물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하는 실정. 특히 프로레슬링계의 거물 이노키와도 엄청나게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노키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재평가가 힘들 듯.

2.1. 최영의와의 애증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당시 무술관계자들 사이에서만 유명했던 최영의를 본인의 만화 공수도 바보 일대에 등장시켜서 일본에서 전국적인 유명인사로 만든 것도 바로 이 카지와라 잇키다.[6] 카지와라는 젊을 때부터 최영의에게 심취해서 극진공수도에 입문하기도 했던 인물이며, 만화 원작자로 유명해지기 전에도 이런저런 작은 단편에서나마 최영의의 대단함을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했었다.[7]
하지만 카지와라가 만화원작자로 성공하고, 최영의도 극진공수도가 성장하면서 둘 사이는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만 나빠진다. 최영의를 모델로 한 영화, 만화 등의 개런티 문제라든가, 극진공수도 간부들 사이에서의 파벌문제라든가... 결국 카지와라는 극진공수도에서 파문당하고, 두 사람은 완전히 갈라서게 된다. 이때부터 카지와라는 기존의 최영의를 칭송하는 작품을 벗어나, 은근슬쩍 최영의를 까는 내용의 작품을 그리곤 했다. 대표적인 것이 《인간흉기》. 하지만 최영의를 까면서도, 한편으로는 칭송하는 내용도 계속 담고 있었으니, 둘 사이의 애증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8]
이후 카지와라가 각종 스캔들로 완전히 몰락하고 세월도 지나고 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화해의 조짐이 조금씩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투병 중이던 카지와라에게 익명의 위로편지가 전해졌는데, 이것을 읽어본 카지와라는 '이건 관장님이 보내신 거다' 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고 전한다. 그러나 카지와라의 죽음으로 완전한 화해는 이루지 못했다. 최영의는 이것을 못내 아쉬워하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고...

3. 여담


잇키는 대만 여가수인 백빙빙과의 사이에 이 하나 있었는데, 백빙빙은 가정폭력과 혼외정사를 이유로 카지와라 잇키와 별거하고 딸을 대만에서 홀로 키웠다. 그런데 딸 백효연은 잇키가 사망하고 10년이 지난 1997년, 고등학생 시절 돈을 노린 강도단에 납치되었다가 살해당하는 안타까운 일을 당하고 만다. 바이샤오옌 사건이라 불린 이 사건은 대만 범죄사에서 지금도 악명 높은 사건으로, 강도단은 납치살해사건을 시작으로 연쇄살인, 대사관 인질극 등 가혹한 흉악범죄를 저지른 인간이길 포기한 작자들이었다. 이 사건 이후, 백빙빙은 사회운동(사형제 폐지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동생인 타카모리 마츠치(高森 真土, 1940~2012)도 마키 히사오(真樹 日佐夫)란 명의로 작가로 활동했다.

4. 원작을 맡은 만화


대표작은 볼드체 처리.
  • 챔피언 후토시(만화 : 요시다 타츠오[9])
  • 거인의 별 - 新 거인의 별(만화 : 카와사키 노보루)
  • 유도찬가(만화 : 카이즈카 히로시)
  • 아이와 마코토(만화 : 나가야스 타쿠미)
  • 공수도 바보 일대(만화 : 츠노다 지로, 카케마루 죠야[10])
  • 프로레슬링 슈퍼 스타 열전(만화 : 하라다 쿠니치카)
  • 타이거 마스크 - 타이거 마스크 2세(만화 : 츠지 나오키, 2세는 미야타 준이치)
  • 인간흉기(만화 : 나카노 요시오)
  • 붉은 피의 일레븐 - (만화 : 소노다 미츠요시)
  • 유도일직선(나가시마 신지, 사이토 유즈루[11])
  • 내일의 죠[12](만화 : 치바 테츠야)
  • 킥의 귀신[13](만화 : 나카죠 켄타로)
  • 사무라이 자이언츠(만화 : 이노우에 코오)
  • 사나이의 성좌[14](만화 : 하라다 쿠니치카)
이 작품들 외에도 원작을 맡은 작품이 엄청 많다.

[1] 그 안토니오 이노키가 맞다. 이 사람은 프로레슬링과 인연이 엄청나서, 프로레슬링 단체를 설립하기까지 했던 사람이다.[2] 책에는 번역자로 기록되어 있었다.[3] 연재 중이던 작품은 중단되었고, 단행본은 절판.[4] 일본만화의 수입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고 했지만 사실 합동출판사에서 일본만화의 표절을 작가진에게 강요한다거나 주요 소년잡지에서 일본만화를 해적판으로 수입해서 실어놓거나 했다. 당시 단행본을 내놓았던 업체라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에 클로버 문고에서도 표절작을 일부나마 찾을 수 있기도 한다. 거기에다가 TV에서 방영하는 만화영화는 극장판 만화영화를 제외하면 죄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해온 것이었으니 영향을 안받을래야 안받을수가 없었다.[5] 이소룡의 정부였던 정패와도 스캔들이 있었다. 진상은 알 수 없지만...[6] 참고로 한국에서 최영의가 유명해진건 만화로만 따지면 이 만화보단 박학기가 그린 바람의 파이터 영향이 컸다. 물론 여기도 만만찮게 허구가 들어갔다.(...)[7] 다만 최영의를 띄어주는건 좋았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최영의를 군국주의자 비슷한 극우파처럼 그려낸다거나 터무니없는 판타지같은 에피소드를 제멋대로 창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 그래서 최영의가 공수도 바보 일대에 관련한 질문을 받았을때 상당히 난처해했다고. 따지고보면 최영의도 한 허풍 한 인물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골수 극우파로 그려냈다거나 총알을 손으로 잡는다거나 하는 것은 잇키의 허풍 역시 심했다는 얘기다.[8] 오히려 맹목적으로 칭송만 하는 초기 작품보다, 은근히 까대는 후기의 작품이 "자연인 최영의"의 모습에 더 가깝다는 평가도 있다.[9]타츠노코 프로덕션의 설립자 맞다.[10] 원래 츠노다 지로가 만화를 맡았으나 중간에 강판되고 카게마루 조야가 대신 맡아서 최종화까지 그렸다.[11] 원래는 나가시마 신지가 만화를 맡았으나 중간에 사이토 유즈루로 교체.[12] 타카모리 아사오(高松朝雄)란 명의로 연재.[13] 타카모리 아사오란 명의로 연재했으나 중간에 카지와라 잇키로 바꿔 연재.[14] 그의 유작으로, 이 작품을 연재 중 사망해 미완결 작품. 이미 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는 자서전적인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