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죠

 

'''내일의 죠
あしたのジョー
Ashita no Joe
'''[1]
'''장르'''
스포츠, 권투
'''작가'''
원작: 타카모리 아사오
작화: 치바 테츠야
'''출판사'''
[image] 코단샤
[image] 서울문화사학산문화사[2]
'''연재처'''
주간 소년 매거진
'''레이블'''
코단샤 코믹스
'''연재 기간'''
1968년 1월호 ~ 1973년 5월호
'''단행본 권수'''
[image] 20권[3] (1973. 06. 01. 完)
[image] 20권[4] (2000. 06. 13. 完)
1. 개요
2. 줄거리
3. 발매 현황
3.1. 일반판
3.2. 문고판
3.3. 한국 발매
4. 특징
5. 등장인물
6. 평가
7. 수상
8. 패러디
9. 미디어 믹스
9.2. 실사 영화
9.2.1. 1970년판
9.2.2. 2011년판
10. 기타
10.1. 전공투의 성전
10.2. 엔딩에 대하여
11. 관련 문서
12. 바깥 고리

[clearfix]

1. 개요


1967년 12월 15일 발표된 일본의 전설적인 권투 만화. 원작은 카지와라 잇키이며, 이미 거인의 별로 유명한 터라 독자에게 선입견[5]을 갖지 않도록 타카모리 아사오(高森朝雄)라는 가명을 썼다. 작화는 치바 테츠야가 담당했는데, 후술하겠지만 작화만 담당한 게 아니라 스토리에도 많은 영향을 줬기에 내일의 죠는 두 사람의 공동 창작물이라고 본다.

2. 줄거리


만화사에 이름을 새긴 영원한 명작. 도쿄·아사쿠사의 쪽방 거리에 불쑥 나타난 한 소년. 야부키 죠라고 불리는 이 소년에게 일방적으로 타격을 입은 알코올 중독의 권투 선수 탄게 단페이는 그 움직임에 천부적인 복싱 센스를 찾아 일류의 복서로 만들기로 분투하는데……

일본 아마존 소개글#

고아원 출신인 부랑아 야부키 죠가 권투를 만나 청춘을 불태우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3. 발매 현황



3.1. 일반판


'''1권'''
'''2권'''
'''3권'''
'''4권'''
[image] '''1970년 03월 07일'''
[image] '''2000년 06월 13일'''

[image] '''1970년 03월 07일'''
[image] '''2000년 06월 13일'''

[image] '''1970년 05월 04일'''
[image] '''2000년 06월 13일'''

[image] '''1970년 05월 06일'''
[image] '''2000년 06월 13일'''


'''5권'''
'''6권'''
'''7권'''
'''8권'''
[image] '''1970년 07월 06일'''
[image] '''2000년 06월 13일'''

[image] '''1970년 10월 07일'''
[image] '''2000년 06월 13일'''

[image] '''1971년 01월 18일'''
[image] '''2000년 06월 13일'''

[image] '''1971년 03월 08일'''
[image] '''2000년 06월 13일'''


'''9권'''
'''10권'''
'''11권'''
'''12권'''
[image] '''1971년 05월 05일'''
[image] '''2000년 06월 13일'''

[image] '''1971년 07월 06일'''
[image] '''2000년 06월 13일'''

[image] '''1970년 05월 04일'''
[image] '''2000년 06월 13일'''

[image] '''1971년 12월 08일'''
[image] '''2000년 06월 13일'''


'''13권'''
'''14권'''
'''15권'''
'''16권'''
[image] '''1972년 02월04일'''
[image] '''2000년 06월 13일'''

[image] '''1972년 06월 06일'''
[image] '''2000년 06월 13일'''

[image] '''1972년 08월 08일'''
[image] '''2000년 06월 13일'''

[image] '''1972년 10월 09일'''
[image] '''2000년 06월 13일'''


'''17권'''
'''18권'''
'''19권'''
'''20권 (完)'''
[image] '''1972년 12월 08일'''
[image] '''2000년 06월 13일'''

[image] '''1973년 02월 08일'''
[image] '''2000년 06월 13일'''

[image] '''1973년 05월 07일'''
[image] '''2000년 06월 13일'''

[image] '''1973년 06월 15일'''
[image] '''2000년 06월 13일'''

원작 코믹스는 주간 소년 매거진에서 1968년 1월 1일호부터 1973년 5월 13일호까지 연재. 단행본으론 20권 완결됐다.

3.2. 문고판


'''1권'''
'''2권'''
'''3권'''
'''4권'''
[image] '''2000년 06월 01일'''
[image] '''2021년 ○○월 ○○일'''

[image] '''2000년 06월 01일'''
[image] '''2021년 ○○월 ○○일'''

[image] '''2000년 07월 04일'''
[image] '''2021년 ○○월 ○○일'''

[image] '''2000년 07월 04일'''
[image] '''2021년 ○○월 ○○일'''


'''5권'''
'''6권'''
'''7권'''
'''8권'''
[image] '''2000년 07월 31일'''
[image] '''2021년 ○○월 ○○일'''

[image] '''2000년 07월 31일'''
[image] '''2021년 ○○월 ○○일'''

[image] '''2000년 09월 04일'''
[image] '''2021년 ○○월 ○○일'''

[image] '''2000년 09월 04일'''
[image] '''2021년 ○○월 ○○일'''


'''9권'''
'''10권'''
'''11권'''
'''12권 (完)'''
[image] '''2000년 10월 03일'''
[image] '''2021년 ○○월 ○○일'''

[image] '''2000년 10월 03일'''
[image] '''2021년 ○○월 ○○일'''

[image] '''2000년 11월 01일'''
[image] '''2021년 ○○월 ○○일'''

[image] '''2000년 11월 01일'''
[image] '''2021년 ○○월 ○○일'''

2000년 문고판 12권이 코단샤에서 발매됐다. 2021년 국내에서도 학산문화사가 이 문고판을 판본으로 편집한 완전판을 발매 할 예정이다.

3.3. 한국 발매


한국어판은 2000년 서울문화사에서 '허리케인 죠'라는 제목으로 전 20권 단행본이 번역됐다. 현재는 전부 품절 상태이며 전자책으로도 나오지 않아 내일의 죠의 국내 번역본이 더이상 나오지 않는듯 했다. 참고로 번역의 질도 상당히 좋지 않았다.
그러나 2021년 학산문화사에서 완전판(문고판)을 발매 할 예정이다.# 2021년 1월 하드커버판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으며 100% 달성했다.# 펀딩 종료 후에는 일반 소프트커버 버전을 3월경에 출시 할 예정이라고 한다.

4. 특징



''' 【「내일의 죠」전설~카지와라 카즈키·치바 테츠야 남자의 싸움~】[6] '''
당대 만화계 최고의 인기 스토리 작가였던 카지와라 잇키는 많은 작품의 원작을 맡고 있었던 탓[7]에 내일의 죠에는 그다지 간섭을 하지 못했고, 전체적으로 치바 테츠야의 각색이 많이 들어가 두 사람의 공동 창작물에 가까운 작품이 되었다.
카지와라 잇키의 내일의 죠 원작은 소설 형식으로 쓰여져 있다. 대부분 대사 중심이고 정경(情景)묘사는 최소한 필요한 부분만 있다. 어떤 부분은 대사만 있고 정경묘사도 없다. 예를 들어 원작에는 '멱살을 잡고'가 아니라 '멱살잡기만'이라는 대사가 있다. 이렇게 쓰여지면 만화가로서는 멱살을 잡힐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원작자 카지와라가 만화가 치바에게 그냥 맡긴 것이다. 그래서 치바 테츠야의 경우 원작을 자유롭게 각색했다. 완성된 만화는 카지와라 원작의 형태를 거의 간직하고 있지 않을 정도. 치바 테츠야의 각색력, 연출력, 구성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러한 이유로 원작자 카지와라 잇키는 말년에 "'''내일의 죠는 치바 테츠야의 작품이며, 사회 현상도 그의 덕분이다.'''(あしたのジョーはちばてつやの作品であり、社会現象も彼のおかげだ)''라고 자주 말하며 치바 테츠야를 극찬했다.[8] 치바 테츠야는 "죠는 내 것이 아니면 원작자의 것도 아닙니다. 이미 죠는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의 것이니까요.(ジョーはね、私の物でなければ原作者の物でもありません。もうジョーは読んで下さった読者のみなさまの物ですから)"라고 만화가 니시하라 리에코의 저서 "니시하라 리에코의 인생화력 대결"에서 말했다.
두 사람의 합작의 발단은, 치바 테츠야가 권투 만화 '해리스의 선풍(ハリスの旋風)'을 그리기 위한 과정에서 사전 답사를 하던 중 권투에 감명을 받아 후속작으로 구상했던 것이 원점이다. 정확히 같은 시기에, 원작자 카지와라 카즈키는 복싱 작품의 연재처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이걸 본 주간 소년 매거진의 편집부가 이 둘을 데리고 와서 합작 합의를 한 것이다.[9] 소년 매거진 부편집장 미야하라 테루오가 당시 거인의 별 집필중의 카지와라 잇키에게 치바 테츠야가 카지와라의 원작 '내일의 죠'의 만화를 그리는게 어떠냐는 이야기를 꺼낸다. 카지와라 잇키도 원래는 자신의 원작을 고치는 것을 극히 싫어했지만, 데즈카 오사무와 치바 데츠야라면 격이 다르다며 응했다. 카지와라는 치바 테츠야를 두고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한사람이다. 하지만,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라고 답변을 남긴다. 부편집장은 원작자가 있는 작품을 그려보라고 치바 테츠야에게 권했고, 치바는 원작에 손을 대서 바꿀수 있다면 하겠다는 조건으로 승낙한다.
치바가 당시 카지와라를 처음 만났을 때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카지와라 씨는 몸집이 크고, 선글라스를 하거나 머플러를 하거나 하기 때문에 조금 무서워 보였지만, 매우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골목대장이 그냥 커진 것처럼요. 굉장히 수줍고 부끄러하며, 조금 핵심을 찌르고 놀리거나 하면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는 아주 귀여운 사람이었어요. 제목을 내일의 죠라고 정할 때도 회의실에서 수줍게 내일의 죠, 그러면 어떨까?라고 쑥스러워하시면서 말씀하셨죠. 맞아요. 좀 빨개져서요. 다같이 그거 괜찮지 않아? 했더니 점점 빨개지더라구요 (웃음). 순진한 분이셨어요."[10] 그렇게 시작된 작품의 첫연재를 보고 카지와라는 격노한다.

치바 테츠야 "원작이라면, 갑자기 헬스클럽에서 서로 치고받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되었네요.이것은 좀 저도 감이 오지 않았고, 소년 매거진이라는 잡지는 아이가 읽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싸움이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뒤로 돌리고, 그 전에 어떤 상황으로 어떤 소년이 거리에 들어왔는가 하는 것으로 들어갔지요. 그래서 잠시 도입부 부분은 카지와라 씨의 원작을 사용하지 않고 그린 것입니다. 한 3번? 그랬더니 카지와라씨는 「나의 원작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만두겠다」라고. 편집자님이 이야기를 하러 가서 달랬다고 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나중에 되서, 아이들에게 알기 쉽게 하기 위해서 '나 나름대로 각색하고, 카지와라씨의 세계를 알기 쉽게 표현했습니다'라고 카지와라씨에게 설명했더니, 「아, 그런 것이었구나」라고 답하셨죠. 카지와라 씨는 소년 만화 잡지의 만화를 만드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치바 테츠야 "카지와라씨는 우람한 어른들의 세계를 쓰는 것이 특기인 편이라, 그런 인간들이 많이 나옵니다만, 저는 그런 어른들만 그리고 있으면 지쳐 버립니다. 죠 자신도 아직 소년이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죠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촉매제로 사이에 넣었어요. 그러면 죠의 아이다움, 막 어른이 된 죠라든지 여러 부분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각색했습니다."#

원작에 손을 댄다는 것은 허락했지만, 아예 원작 자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카지와라의 원작에서는 야부키 죠는 링 위에서 싸우고 있는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치바는 거리의 부랑자로 마을에 흘러 들어가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그만두겠다는 카지와라와 이를 설득하는 부편집장은 치바 데츠야에게는 당신이 잘하지 못하는 생활감과 서정적인 묘사가 있다며 좀 더 지켜본 다음에 그만둬도 되지 않느냐며 물과 기름과 같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작가를 조율했다. 이후 두 사람은 어떤 때는 날을 새워가면서 작품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2인3각 체제로 스토리를 진행했다. 치바 테츠야는 쪽방 거리를 그리기 위해 실제 노동자의 마을에 취재하러 갔다. 치바는 당시를 회상하며 "내가 살고 있던 곳에서 강 건너로 항상 그런 거리가 보였거든요. 단지 어릴 때이기 때문에 주위의 어른들로부터 아이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근데 멀찍이서 그런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드나드는 건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에게는 매우 가까운 곳이었군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연재를 시작하고 5년, 최종화의 원고를 보고 얌전했던 치바가 화를 냈다. 카지와라가 보내온 원고에는 죠는 호세에게 지고 단페이가 "너는 시합에서는 졌지만 싸움에서는 이겼다." 라고 말하는데 '여기까지 와서 싸움에는 이겼다고 위로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 라고 생각한 치바는 카지와라에게 전화로 라스트 씬을 바꾼다고 전한다. 카지와라도 맡긴다고 대답. 이때 카지와라는 내일의 죠의 히트로 원작만 동시에 8개를 써야해서 내일의 죠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치바가 어시스턴트와 상의하고 고민한 끝에 탄생한 것이 전설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치바 테츠야는 당시를 회상하며 "마지막 장면이 좀처럼 정해지지 않아서 괴로워하고 있던 것이, 얼마 전처럼 기억하고 있군요. 그리고 나면 저도 조처럼 불태운 것 같아서 공원에서 멍한 적도 있었는데, 그 공원도 아직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서 몇 년 지나지 않은 것 같네요."라고 밝혔다.#
한 기자가 치바 테츠야에게 당시 그가 내일의 죠를 어떠한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는지에 대해서 물었는데, 치바는 "스포츠 근성물이라고 생각되고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그리지는 않았습니다"라고 답했으며 원작을 맡은 카지와라 잇키의 에피소드가 밝혔다. 치바는 "그 당시는 「거인의 별」도 있었고, 카지와라씨가 다양한 스포츠 근성물 작품을 그려 활약하시던 시기였으므로, 「내일의 죠」도 그런가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저는 스포츠 근성물이라고는 별로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나중에 들어 봤더니 카지와라씨는 '「 거인의 별」에서는 스포츠 근성물이지만, 「내일의 죠」에서는 나는 문학을 그리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라고 들었습니다. 카지와라씨는 쭉 작가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의 만화를 통해서 문학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요. '거인의 별'이 나오키상이라면 '내일의 죠'는 아쿠타가와상[11]을 노리고 싶을 정도의 기분이었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카지와라씨의 기분이 나에게 옮겨 가고, 단순한 스포츠 근성이 아니고 인간의 갈등이나 사는 모습 등을 그리거나 좌절하거나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밖에 살 수 없는 사람도 많이 나오는군요. 그런 사람들을 많이 써 줬기 때문에 노리코나 도야마타 사람들이나 밝은 태양 아래를 걷는 사람들을 더 빛나게 그릴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라고 답했다.#
또한 1960년대의 일본 빈민층의 생활과 인생을 매우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빈민촌 사람들은 전기도 수도도 없고 비바람만 가려주는 나무집에서 살고있는데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도 빌딩과 시가지가 있다. 이게 1960년대 일본의 풍경이다. 오죽하면 차별 발언이 너무 많아서 2010년대 이후 지상파 재방송이 불가능하며 현재 출간된 만화책에선 원본 대사를 수정해서 없애고 있다. 참고로 일본은 병신, 부랑자, 폐인, 거지, 정신이상자, 애꾸 같은 말들도 방송불가 용어인데 카지와라 작품은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이런 단어를 마구 쓰는 경향이 있었다.

5. 등장인물



본작의 주인공.
죠의 트레이너.
본작의 히로인.
죠의 라이벌.
  • 고로마키 곤도
험상궂은 인상에 트렌치 차림을 한 뒷골목 야쿠자 요짐보이자 해결사로 같은 요짐보인 울프 카나구시를 직접 두들겨 패고 안 그래도 불구가 되버린 턱을 처참하게 박살내버린 교활하고 무서운 인물이다.나중에 따라온 죠의 보디블로를 맞고 나가 떨어지지만. 고로마키, 즉 싸움이라는 뜻의 이명을 가진 사내로 주먹 하나로 일본 전국구를 제패했다고 하니 뒷세계 싸움실력 또한 제법 뛰어난듯.하지만 죠 야부키는 자기보다 특별히 강한 남자임을 인정하고 여러가지 도움을 주기도 한다.

6. 평가


[12]

Ashita no Joe has been considered one of the most influential manga

'''내일의 죠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일본 만화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영어 위키백과#

일본 대중 문화의 진정한 아이콘: 내일의 죠(영어)
내일의 죠의 유산(영어)
'''1960년대~1970년대 일본 만화를 대표하는 걸작'''이자 연재된지 56년이 지난 현재까지 '''일본 만화계를 대표하는 국민 만화 중 하나다.'''
카지와라 잇키, 치바 테츠야가 커리어 동안 만들어낸 최고 걸작을 물어보면 대중들과 평론가들은 내일의 죠를 꼽는다. 두 작가 모두 이후에도 꾸준히 창작을 하며 히트작을 냈지만 내일의 죠가 워낙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이다보니 이 작품을 뛰어넘는 명작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치바 테츠야 역시 훗날 "다시는「내일의 죠」와 같은 작품은 그릴 수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작가 자신도 그만큼 을 갈아 그린 역작이다. 치바 테츠야에 따르면 "특히 주간연재를 할때는 일주일 일주일동안 목숨을 깎을 생각으로 그렸습니다. 내일의 죠는 마지막을 그려냈을때 죽어도 좋을 심정으로 그렸어요."라고 밝혔다.[13]#
작품성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폭발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연재되고 있던 주간 소년 매거진의 발행부 부수를 비약적으로 늘리는 등 일본 전국의 사회현상[14]을 일으킨다. 심지어 현실의 일본의 권투계에서도 영향을 끼쳤으며[15] 내일의 죠 이후에 나온 권투 만화는 이 만화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6] 이러한 사회적인 현상으로 이 만화는 '전후 최대의 히트 만화 중 하나'로 꼽힌다.[17] 만화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역시 애니메이션 감독 데자키 오사무가 훌륭한 원작 이해도와 뛰어난 연출을 보여주며 원작을 매우 잘살려 당대 최고의 애니메이션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다.
애니메이션 또한 대히트를 기록하며 1970년대 최고의 히트 애니메이션 중 하나가 된다. 당시 최고 시청률 29.2%[18]를 기록, 10년 뒤 재방송했을 때는 시청률이 더 높아 31.6%를 기록하는 등 역대급 흥행을 거둔다.# 한마디로 만화와 애니메이션 모두 한 시대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공동 창작자 치바 테츠야는 훗날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일본 정부에서 표창하는 일본 문화계 최고 영예 중 하나인 자수포장을 2002년 수상했으며, 2014년에는 일본 문화공로자 칭호를 받기도 했다.[19] 그 위상과 인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2021년 일본인 15만명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만화 총선거'에서 29위를 기록했다.# 1960년대에 연재가 시작된 만화인것을 생각해보면 대단한 순위다.[20] 주간 소년 매거진 연재 만화 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이기도 하다.

'''내일의 죠는 어떻게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을 변화시켰는가'''
'일본 만화 역사의 길이 남을 걸작 쇼와 시대 만화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한[21]# 작품이다. 또한 역대 최고의 만화 중 하나이자 권투를 소재로 한 만화 중 No.1 만화라고 평가받는 작품인 일본 만화계의 금자탑이다. 카지와라 잇키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특히 거인의 별에 비해 등장인물들이 별로 과격하지 않고 순수함을 가지고 있어 카지와라 잇키의 색은 약하지만, 그래도 썩어도 카지와라 잇키라고 과격한 부분도 꽤 많고, 그의 평소 성격하고 비슷한 부분도 많다. 카지와라의 인생을 어느정도 알고서 내일의 죠를 다시 읽어보면 죠라는 캐릭터의 고독한 아웃사이더스러운 면모에는 카지와라의 테이스트가 굉장히 많이 묻어나오고, 이것은 치바 테츠야의 다른 작품들과는 매우 이질적인 부분이라서 '아 이 부분은 카지와라 스타일이구나' 라고 납득이 가게 된다. 단지 치바 테츠야가 그것을 담담하게 묘사해서 그런 것이지 표정만 좀 과격하게 붙였어도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22][23]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사람이 서로의 단점을 끌어안으면서 걸작이 탄생한 것이다.
만화평론가 이시카와 쥰은 그의 만화평론서 '만화의 시간'에서 내일의 죠를 '같은 원작임에도 거인의 별은 지금에 와선 패러디 거리로 여겨질 뿐이지만 내일의 죠는 여전히 내일의 죠다.'라고 평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내일의 죠에 대해 "신기한 작품이라고 곰곰이 생각한다. 우선 만화는, 치바씨의 것이며, 카지와라씨의 것이기도 하다. 전혀 개성이 다른 작가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 그리고, 애니메이션은 치바씨도 카지와라씨도 아니고, 데자키스기노의 작품이 되어 있다. 애니메이션 그림은 누가 봐도 치바씨와는 전혀 다른 작가의 것으로 보이니까."라고 평했다.#

'''내일의 죠는 1960년대 일본의 시대정신을 사로잡았다. 죠가 무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오랜 전후 황폐화 끝에 조국이 번영하는 것을 보고 있던 일본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 토마스 조스 (만화 비평가)#

쉽게 말해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 일본 만화사에 대해 말할 때, '''내일의 죠를 빼고는 제대로 된 설명이 이뤄질 수가 없다.''' 심지어 일본 근현대사 관련 연구에서조차, 정치사회적으로 이 만화의 영향력을 따로 다루면서 연구하는 학자가 있었을 정도로 엄청난 작품이며[24], 연재된지 50년이 지난 후인 현대의 만화에 대한 작품성 평가 관점에서 볼 때에도 탁월함을 인정받고 있는 걸작이다. 억지 근성과 근거가 빈약한 비인간성을 추구하는 부분이 많아 후대에 대부분 안 좋은 평가를 받는 근성스포츠 및 범죄 수준 격투 위주의 카지와라 원작 작품들과 달리, 내일의 죠만큼은 이들과 다르게 평가받는다. 치바 테츠야의 각색이 많이 들어가서 그 근성을 억지가 아닌, 시공을 초월하여 누구나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절실함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되도록 표현한 인물 묘사 및 배경 묘사가 뛰어나다.
또 탄탄한 스토리, 최고의 결말, 훌륭한 캐릭터성, 뛰어난 연출 및 전개, 치바 테츠야의 전성기 시절의 절정에 다다른 극화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서 21세기인 현재에도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현 시대의 평가에서도 큰 가치를 인정받는 대단한 만화다. 이른바 '''일본 만화계의 불멸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 중 하나다.'''

7. 수상









8. 패러디




''' 내일의 죠의 패러디들 '''
이나중 탁구부부터 이말년까지, <내일의 죠>의 흔적들
서양권에서 분석한 내일의 죠 패러디
TV Tropes에서 만든 내일의 죠 를 패러디한 작품들
  • 작품의 유명세 답게 패러디가 엄청 많다. 엄청나게 많은 작품들에서 레퍼런스되거나 패러디되어 역사상 가장 많이 패러디된 일본 만화 중 하나다. 이렇게 많이 패러디되다 보니 일본에서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인지도가 있는 만화다. 1968년부터 10여 년간 연재된 만화나 1980년부터 만들어져 1993년 MBC를 통해 방송된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야부키 죠의 명대사는 어디에서 들어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르고 인용하는 레퍼런스 속에는 처절하게 살아 온 한 남자의 인생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인생은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만큼 충분히 강렬한 것이었다. ‘하얗게 불태웠어’라는 대사와 마찬가지로 이 장면 역시 개구리 중사 케로로를 비롯해 다양한 작품에서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패러디 된다. 누구든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떨구고 미소를 띈 흑백의 모습이라면 ‘상황의 종료’를 의미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장면은 일종의 아이콘이 되었다.
  • 여러 매체에서 수없이 불태운다. 특히 새하얗게 불태워 버렸어등등. 최지룡의 양아치 흉내내기가 내일의 죠를 비튼 만화다. 이나중 탁구부에서 패러디 캐릭터가 나온다. 이러한 죠의 스타일 철학은 <렛츠고 이나중 탁구부>의 이자와 히로미에게 그대로 투영된다. 하루에 초강력 스프레이 2통을 써야 유지된다는 문제의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는 이자와에게 아부키 죠는 본받아야 할 남자의 표본이다. 그러나 이자와는 짝사랑하던 리에꼬 선배가 자신의 헤어스타일을 놀리자 목숨 다음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앞머리 단발식을 거행한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이자와의 앞머리를 잘라낸 사람이 다름 아닌 치요꼬이며, 이후 치요꼬는 이자와의 여자친구가 된다는 점이다. 허리케인 죠의 스타일이 사라지는 순간, 고독한 남자로서의 운명 또한 끝이 났다. 참고로 공상과학대전의 원작자에 의하면, 죠의 머리는 권투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 이 명대사 말고도 유명한 패러디가 바로 크로스 카운터다. 가장 마지막의 승부수를 던지 듯 주먹을 맞고, 던진 후의 고요함은 이제 타격 액션의 주요 클리셰가 되었을 정도다. 심지어 이 크로스카운터 시퀀스는 레이저와 미사일을 사용할 것처럼 생긴 로봇들에게도 해당된다. 애니메이션 <천원돌파 그렌라간 3화에서 합체까지 한 로봇들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크로스카운터를 나누는 장면은 누가 보더라도 내일의 죠에 대한 오마주다. 로봇도 사나이라면, 포기 할 수 없는 로망이 있는 법이다. 천원돌파 그렌라간에서는 내일의 죠를 오마주를 많이 했다.
  • GTO에서 (더빙판 한정?) 차도둑들이 쿠니오 삼총사에게 샌드백지옥을 선사할때 패러디가 등장한다.(내일을 위한 첫번째~, 하얗게 불태우겠어 등)
  • 이상한 쪽(?)으로도 패러디가 조금 되었는데 탄게 단페이노노무라 병원 사람들변태 캐릭터 이상한 아저씨로 패러디 되었다던가, 아예 내일의 유키노죠라는 뻔히 보이게 제목을 빌린 경우도 있다.[25] 그 외 이브 버스트 에러 시리즈에서도 죠와 단페이를 배경에 꾸준히 넣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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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만에서도 오마쥬 되기도 하였는데 자세한 것은 새하얗게 불태워 버렸어항목 참고.
  • 은혼에서도 패러디됐다.

  • 김진태의 만화 시민 쾌걸에도 허리케인 조라는 이름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매번 기발한 전법[26]을 생각해 내고 경기에 임하지만 결국 털리기만 하는 안습 복서.

9. 미디어 믹스



9.1. 애니메이션




9.2. 실사 영화



9.2.1. 1970년판


내일의 쵸의 첫 실사영화화. 죠 역에는 이사바시 쇼지, 리키이시 역에는 카메이시 세이이치로, 단페이 역에는 타츠미 류타로. 한국에서는 개봉하지 않았다.

9.2.2. 2011년판


2011년에도 실사영화가 개봉되었다. 1970년 작품과는 무관하게 원작의 초반 스토리부터 진행되며 딱 리키이시 전까지 나오고 끊는다. 죠 역에는 NEWS의 야마시타 토모히사, 단페이 역에 카가와 테루유키, 리키이시 토오루 역에는 이세야 유스케, 시라키 요코 역에는 카리나. 한국에도 2011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었으며, 6월 30일에 정식 개봉했다.
일본에서의 반응으로는 탄게 단페이의 경우엔 카가와 테루유키의 검증된 연기력에 절륜한 메이크까지 겹쳐서 개봉전부터 호평을 받았으나, 시라키 요코의 경우는 털털한 이미지의 카리나가 미스캐스팅이라는 말이 많았다. 특히 주인공인 야부키 죠의 경우는 거친 야생마같은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예쁘장한 미소년 아이돌에게 맡겼다는 이유로 원작 팬들의 반발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개봉 후에는 개봉 전까지는 별로 화제가 되지 않았던 리키이시 역의 이세야 유스케의 싱크율이 엄청나다고 화제가 되면서 정작 개봉 전에 화제를 모았던 미스캐스팅 문제는 화제에서 거의 사라졌다.

10. 기타


  • 2018년 내일의 죠의 50주년 기념으로 한 기자가 치바 테츠야에게 "50년이 지난 지금도 (내일의 죠가)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는데 치바 테츠야는 "시대가 변해도 인간의 마음의 갈등이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본인의 그런 부분을 그려왔기 때문일까나"라고 답했다.#
  • 2007년 3월 15일 작가 치바 테츠야와 내일의 죠 애니메이션 작품의 감독을 맡았던 데자키 오사무가 만나 특별 대담을 하기도 했다.##
  • 미시마 유키오가 좋아한 만화다. 당시 일본의 대중문화에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던 미시마는, 내일의 죠의 열렬한 애독자이기도 했다. 하루는 영화 촬영 때문에 잡지를 구매하지 못해 주간 소년 매거진의 본사에 방문하기도 했으며, 그 뒤를 빨리 알고 싶어서, 잡지 발매 전날 심야의 코단샤에 나타나 「소년 매거진을 팔아 달라」고 하며 무료로 잡지를 받고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후일 내일의 죠가 그의 성향과 정반대인 전공투신좌파 노동자들의 상징이 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또한 아이러니한 점.
  • 히가시노 게이고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며[27] 그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대학 시절에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거의 다 읽은 적도 있었지만, 내일의 죠의 영향이 훨씬 크다고 밝혔다. 그는 이 책을 항상 읽는 책이라고 말했으며 취침시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고 잔다고 한다.#
  • 치바 테츠야는 내일의 죠 애니판에 대해서 "그 전 '해리의 선풍' 애니메이션 때, 처음으로 제 캐릭터가 TV에서 활약한다고 해서 무척 기대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원작 만화가가 각본가에게 제각각 전달되는 바람에 캐릭터에 통일성이 없었죠. 게다가 TV 애니메이션이라면 스토리 전개가 빠르기 때문에, 제가 3개월 정도 걸려 그린 이야기가 TV라면 1회로 끝나 버립니다. 그래서 '내일의 죠' 때는 애니메이션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단지,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기 때문에 가끔 들여다 보면, 제 캐릭터가 한층 더 어른스러워지거나, 분위기에 사회성이 있다고 할까, 시대를 반영해 생생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에 「아, 제 만화에는 없다, 또 전혀 다른 세계가 되어 있구나」라고 하는 것은 느끼고 있었습니다. 특히 데자키 오사무 감독은 전혀 다른 새로운 '내일의 죠'를 만들어 주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데자키 감독과는 가장 먼저 회의를 하고, 그 후에도 여러 번 만났습니다. 감독님하고는 작품을 통해서 대화를 하고 있더라고요. 애니메이션은 두개로 나뉘었는데, 그것은 첫 애니메이션 때 만화연재를 따라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일의 죠2'까지 좀 뜸해졌는데, 그 사이에 데자키씨 자신이 성숙해진 거겠죠. 확 느낌이 달라져서. 사이를 두는 방법이라든지 말이죠. 그리고 멈추는 그림에서 빛만이 스윽 움직이거나 그러한 연출이 가득 담겨져 있어서, 이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만화로는 할 수 없는 새로운 표현을 애니메이션에 도입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라고 평했다.#
  • 더 화이팅의 작가 모리카와 죠지가 이 작품의 팬으로 알려져있다. 치바 테츠야를 자신에게 하느님 같은 존재라고 밝히기도 했다. 내일의 죠와 비교되는 게 싫어서 아마추어 복싱 만화를 그렸다고 한다.# 치바 테츠야의 강연의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메모하며 듣기도 한다고 한다. 모리카와는 인기 작가라 편집자에게 한마디 하면 강연 티켓은 간단히 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일반 고객으로서 강연을 들었다. 물어보니 모리카와는 맨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입장했다고 한다.
  • 애니메이션화가 결정되었을 때 한창 리키이시와 죠의 시합 파트가 연재되는 중이었는데, 시청률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방송국 측에서 "아직 리키이시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요청을 받은 원작자 카지와라 잇키는 작화가 치바 테츠야와 함께 도쿄 도내의 한 바에서 리키이시를 죽일지 말지 의논하는데, 대화를 엿들은 바의 점원이 대화 내용을 오해하고 경찰에 신고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 제목 최종 후보 중 하나로 '왼쪽의 죠'와 '원 히트 원더 죠'가 있었는데 결국에는 내일의 죠로 결정됐다.
  • 워낙 유명한 만화인만큼 당연히 게임화도 되었다. 가장 많이 알려진건 SNK에서 만든 네오지오용의 액션 게임인데, 권투시합 외에도 길거리에서 깡패와 싸우는 등 원작의 전개를 똑같이 따라간다. 타이토에서 만든 아케이드판과 K어뮤즈월드제서 제작한 슈퍼패미컴용 복싱게임은 순수한 권투경기만을 다루고 특히 타이토 아케이드판에성 올 클리어하면 죠와 요코가 결혼하고 여태까지 싸웠던 라이벌들이 하객으로 참가해 축하해주는 엔딩이 나온다.[28] 죠의 정장 모습을 볼 수 있는 상당히 희귀한 게임.
  • 2010년 시점에서 누계 발행 부수는 2500만부, 권당 판매부수 125만부를 달성. 권투 만화 권당 판매부수 1위를 기록하고 있다.[29]
  • 도쿄도 오이즈미 아니메게이트[30]에는 야부키 죠의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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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동상으로 철완 아톰아톰, 시끌별 녀석들라무, 은하철도 999메텔철이가 있다.
  • 50주년 기념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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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바 테츠야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일본 만화계의 리메이크에 대해 "오퍼를 많이 받았지만 자기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결정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원작자가 사망했기 때문.
  • 카지와라 잇키가 가장 흠모하고 자신의 만화 주인공의 근간으로 생각한 모델은 역도산이다. 역도산을 모델로 한 것이 분명한 만화가 이 내일의 죠다.[31] 근본을 알 수 없는 떠돌이 주인공. 그런 자가 정상에 서기 위해 하는 무리한 짓들. 그리고 파멸. 역도산의 생애와 비슷하다. 강한 남자들에게 매료되어 그들에 대한 이야기만을 줄기차게 한 가지와라 잇키에게 단 하나의 구원은 그가 재일조선인 역도산의 삶에 매혹되어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그가 역도산을 존경하는 마음은 죠의 라이벌이며 단 한 명의 친구를 역도산(=리키도잔)과 비슷한 이름의 리키이시로 만들어 죠에게 죄의식을 부여하고 결코 권투계의 기득권에 있는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게 한다.
  • 더 화이팅과 내일의 죠는 같은 세계관이라고 한다. 작가가 치바 테츠야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중간에 키니스키 박사라는 내일의 죠의 인물이 언급된다고 한다. 야심차게 넣은 복선이었는데 몇 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눈치를 못 채서 작가 본인도 놀랐다고 한다. #

10.1. 전공투의 성전


질문: 이것도 질문을 많이 받으셨다고 생각합니다만, 당시에는 학원 투쟁의 시대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날뛰던 학생이 많았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과격하다고 불리던 적군파가 일본항공기를 납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날아갑니다만.(주:1970년 발생한 요도 호 납치사건) 그때 성명서에서 마지막으로, '우리는 내일의 죠다'라는 성명이 있었죠? 그걸 알았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어요?

치바 테츠야: '''기분적으로는 조금 불편했습니다(웃음). 이런 곳에서 「내일의 죠」를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요. 뭐. 하지만, 제대로 읽어주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니, 귀엽다고도 생각했어요(웃음).'''#

내일의 죠는 1947년~1949년생,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団塊) 세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당시 연재하는 동안 이 만화는 특히 신좌파와 관련된 노동자 계층 사람들과 급진적인 대학생 운동권 연합체인 전학공투회의와 같은 좌파 성향의 시민들에게 성전과 같은 작품이었다. 전공투 학생들은 야부키 죠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했고, 그들에게 내일의 죠는 단순한 만화 이상의 것, 자신들의 교과서가 되었다. 전공투 내에서는 ‘오른손에는 아사히저널[32](당시 좌파 성향의 잡지), 왼손에는 매거진(내일의 죠가 연재된 만화잡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암울한 삶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불사르는 모습이 전공투에 영감을 준 것이다. 전공투 세대가 죠에 빠져들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천생고아이자 가난한 달동네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위해 링에 목숨을 걸었던 죠야말로, 그들의 희망이 투영된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내일의 죠의 배경은 철저하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야기의 상당부분이 빈민가와 소년원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주인공 야부키 죠는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고아에 소년원을 제 집처럼 들락거리는 문제아 중의 문제아. 동네 길바닥에서 싸움질하기 일쑤이며 태연하게 사기를 치기도 한다. 그런 그가 빈민가에서 만난 왕년의 권투선수 출신 단뻬이와 소년원의 리키이시를 통해 권투에 눈을 뜨게 된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 사실적으로 그려낸 빈민가의 모습들은 분명 그 당시의 만화나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지금으로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이러한 점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해방을 꿈꾸는 전공투 학생들의 이념적 성향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계급적 지향의 동일성보다 더욱 강한 영향을 끼친 것은, 쓰러져도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야부키 죠의 모습이었다. 상대 선수의 무차별적 가격에 피투성이가 되어 다운을 당해도 카운트 나인이 되면 무엇에 홀린 듯 다시 일어나 상대에게 전진하는 야부키 죠. 그리고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 노가드(No Guard) 상태로 맞받아치는 크로스 카운터(Cross Counter)는 젊은 대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당겼다.
이것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요도호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일본항공 351편 공중 납치 사건 당시 북한에 망명한 납치범들의 발언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것이 '우리들은 내일의 죠다'였을 정도였다. 이 정도로 상징성이 높다보니 오히려 전공투와의 관계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있을 정도이다. 말 그대로 한 세대를 대표한 작품.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논문이 한국에서까지 나올 정도였다. 링크
그런데 나무위키에 이렇게 써져 있어서인지 굉장한 극좌 사상, 과격파의 생각 담긴 작품으로 여겨지는데 그건 심각한 오해이다. 이 작품은 극복할 수 없는 빈부격차 속에서 점점 망가지고 방황해가는 서민들을 보여주고, 행동으로 옮겨야 그것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적군파가 거기에 자극받아서 들고 일어나서 자신들은 내일의 죠라고 한 거지 이 작품 내용대로 따라해서 그렇게 된 것이 절대 아님을 밝힌다. 또한 정치적 사상이 크게 담긴 그런 작품은 아니다.[33] 그 정도로 자본 주의나 빈부 격차를 지적하는 게 이 작품의 핵심 주제였다면 시라키 요코와 야부키 죠의 관계가 진전되고 죠가 세계의 유명 복서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부분부터 죠는 자본주의에 무릎을 꿇었다는 식이 되어서 작품 내용이 굉장히 이상해지고 주제도 삼천포로 빠진다. 특정한 이데올로기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삶과 열정에 대한 이야기라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10.2. 엔딩에 대하여


'''하얗게 불태웠어.[34]

'''

야부키 죠

고아[35]에다가 망나니 중의 상망나니인 죠는 사고를 쳐 소년원에 들어갔다가 나온 뒤, 자질을 알아보고 접근한 단페이 영감을 만나게 되어 권투를 시작하고 승승장구하지만, 소년원 시절부터 알게 되어 그때부터 쭉 라이벌이었던 리키이시와의 경기에서 패배한다.
그러나 리키이시는 죠와 싸우기 위해 무리하게 체중을 줄여 체급을 낮춘 데다가 경기 도중 죠의 펀치에 치명상을 입어서 죽고, 죠는 자신 때문에 리키이시가 죽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아 상대의 얼굴을 가격하지 못하는 퇴물 복서가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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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후에 카를로스 리베라와의 대결로 징크스를 깨 컴백하고 동양 챔피언의 자리까지 오르지만 경기를 치르면서 펀치 드렁크로 인해 점점 피폐해져간다. 마지막에는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한 요코를 뿌리치고 세계 챔피언 호세 멘도사와의 마지막 경기를 치룬다. 펀치 드렁크 상태에서도 모든 것을 불태워서 세계 챔피언과 명승부를 이뤄낸 후, 모든 것을 불태운 남자는 새하얀 재만 남은 채로 조용히 휴식을 취하게 된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죠가 죽었다 안 죽었다 말이 많지만 원작자의 말에 따르면 "죽은 것은 안 나왔다. 내일의 죠이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애당초 죠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불태운 그 결말은 더이상 이야기가 이어질 여지가 없는 완벽한 결말이기 때문에 이후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참고) 2008년에 작가 본인이 죠는 살아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TV판에서도 이 장면에서는 흥겨운 느낌과 곡조의 오프닝 곡이 흐르며 밝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런데 한국어 더빙판에선 이 노래가 일본어로 되어 있어서 빼버렸기 때문에 비장하게 죽은 것처럼 보이게 되었고 한국에선 죽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이루게 되었다.

마지막 장면을 그릴 때, 저는 사실 조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저는 단지 그가 그의 모든 생명력과 의지력을 다 써버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성취의 장면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연재 작업을 끝냈을 때, 저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치바 테츠야#

원래 카지와라 잇키가 쓴 마지막 장면은 「호세 멘도사에게 진 죠가 시라키 저택의 테라스에서 무릎을 감싸안은 채 앉아있고, 요코가 상냥한 눈길로 죠의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이었지만, 치바 테츠야가 마음에 안든다고 반발했고 다작 중이라 바빴던 카지와라는 치바 테츠야에게 뒷일을 위임하여 지금의 엔딩이 만들어지게 되었다.[36] 카지와라도 바뀐 마지막 장면을 마음에 들어했고, 훗날 카지와라 판의 엔딩은 치바 테츠야가 다시 그려서 소개하기도 했다. 이 엔딩은 치바 테츠야 공식 사이트에 그림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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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의 일생을 보면 행복하다고는 볼 수 없는 인생으로 그야말로 암울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불사르는 모습이 많은 시청자들을 감명시켰고, 그 때문에 명작 중의 하나로 칭송된다.

11. 관련 문서


  • 카지와라 잇키 - 스토리 작가
  • 치바 테츠야 - 그림 작가
  • 데자키 오사무 - 애니메이션 감독
  • 스기노 아키오 - 애니메이션 캐릭터 디자인, 작화감독
  • 메갈로 복스[37]
  • 새하얗게 불태워 버렸어
  • 완전연소

12. 바깥 고리


  • 치바 테츠야 공식 사이트
  • 코단샤 사이트
  • 50주년 기념 사이트
  • Soul of Joe: 팬 사이트[38]

[1] 'Tomorrow's Joe'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영어권에서 'Ashita no Joe'라고 불린다.[2] 2021년 완전판으로 발매예정.#[3] 문고판 12권.[4] 서울문화사 정발명은 허리케인 죠. 학산문화사는 내일의 죠로 나올 예정이다.[5] 카지와라 잇키의 이름을 이용하면 거인의 별과 같은 열혈 스포츠 근성물 작품이라고 하는 선입견을 갖게 할 수도 있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때문에 당시 연재중인 거인의 별과 동일잡지에 연재하는 것에 있어서, 동일 원작자에 의한 작품을 병재하고 있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타카모리 아사오=카지와라 잇키라고하는 사실은, 연재 개시 후에도 당분간 밝혀지지 않았다. 타카모리 아사오라는 필명은 카지와라의 본명 타카모리 아사키에서 유래했으며 본 작품 이전에도 사용된 적이 있다.[6] '놀라운 모모키 20세기' 1997년 4월 방송분[7] 당시 카지와라는 1968년 한해에만 10개의 작품을 연재를 시작했으며 그 중에 하나가 내일의 죠다.[8] 사이토 타카오에게도 이런 말을 했다.[9] 치바는 당시에, 카지와라와 공동 제작할 생각까지 하지 않고, "지금부터 그리는 복싱 만화의 참고가 되면 된다"라고 말하며 편집부와의 교제 정도의 기분으로 하려고 했다.[10] 카지와라와의 첫 만남으로, 이미 결정 사항의 분위기가 되어 있던 것을 치바는 밝히고 있다.[11] 나오키상은 통속소설, 대중소설 작가들이 받는 최고의 상이라면 아쿠타가와상은 순수문학 작가들이 받는 최고의 상이다.[12] 만화사상 찬란하게 빛나는 불후의 명작 그 제작비화(漫画史上に燦然と輝く不朽の名作、その制作秘話)[13] 치바 테츠야는 당시 '내일의 죠'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는 피로가 극에 달하던 때였다. 불규칙한 생활을 하고 있기도 해서, 컨디션이 나빠져 연재를 쉬거나 입원하기도 했다.#[14] 대표적으로 사망한 캐릭터의 장례식을 치룬 사건보기, 일본항공 351편 공중 납치 사건의 '우리는 내일의 죠다'사건.[15] 대표적으로 이 만화를 좋아해서 복서가 된 전 밴텀급 세계챔피언 다츠요시 조이치로가 있다.[16] 대표적으로 더 화이팅의 작가 모리카와 죠지는 이 만화의 광팬이다.[17] 다른 작품으로는 철완 아톰, 사자에상, 거인의 별, 도라에몽이 있다.[18] 내일의 죠 1기 1970년 10월 14일 제29화[19] 카지와라 잇키는 51세의 나이로 요절해서 받을 수가 없었다.[20] 순위에 든 만화 중 불새(1954년 연재) 다음으로 높은 순위를 기록한 오래된 만화다.[21] 2009년 아사히 신문 조사. 2위는 사자에상.[22] 참고로, 무탈하게 만화만 그리면서 장수한 치바 테츠야와는 달리, 카지와라 잇키는 인생 그 자체가 '야부키 죠'를 연상케하는 열혈한으로, 50살에 숨졌다.[23] 이시카와 준의 만화해설서 <만화의 시간>(한글번역서 있음)에서는 이 작품을 카지와라 잇키의 작품으로서 소개하고 있다.[24] 2020년에도 연구서가 나왔다.#[25] 노노무라 병원 사람들, 내일의 유키노죠 모두 엘프 게열사의 작품.[26] 헌데 그 기발하다는 게 흑인 복서 존경한다고 온 몸을 시커멓게 칠하고 나와 경기를 하는 통에 상대방인 흑인 선수(별명이 링 위의 신사라고 할 정도로 예의바른 선수였다...)가 분노하여 전력으로 덤벼 처절하게 처맞는다든지 기발한 게 아니라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게 태반이다...[27] 다른 하나는 거인의 별.[28] 다만 여기서도 카를로스는 폐인이 되어있다.[29] 더 화이팅은 권투 만화 누계부수 1위인 9,600만부를 기록하고 있지만 권당 판매부수는 100만부도 못넘긴다.[30] 오이즈미가쿠엔역 북쪽 출구 보행자 전용 데크에 있다.[31] 또 하나는 타이거 마스크[32] 아사히신문의 잡지. 당시 정부나 미국 비판을 중심으로 하는 강경한 논조로 학생들에게 인기를 얻은 잡지가 아사히신문사의 아사히 저널이었다.[33] 오히려 카지와라 잇키는 노력하면 성공한다. 개인의 성공은 개인에게 달렸다는 우파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당장 공수도 바보 일대만 봐도 이 사람이 극좌 사상을 가진 사람일 리가 없다는 건 알 수 있다. 한국에서만 유명한 만화 인간 흉기에서도 쿠바를 꽤 부정적으로 묘사하였다. 내일의 죠나 타이거 마스크가 유독 정치 성향이 안 담긴 작품이다.[34] 이걸로 잘 알려져 있지만, 원본은 새하얗게 불태워 버렸어다.[35] 정확히는 몇 살 때 버려졌는지 부모를 아는지 모르는지도 안 나오고, 고아원 출신이라는 것만 나온다. 추후 소년원에서 수감자 심리 검사를 하면서 '부모란 어떤 거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냥 되는 대로 자식 싸질러 놓고 기르다 마음에 안 들면 버리면 그만이라 생각하는 존재'라는 대답을 한 것과 경찰에 잡힌 직후 경찰 조사 상황에서의 묘사를 보면 태어날 때부터 부모를 모르는 고아가 아니라, 부모가 누군지는 아는데 어떤 이유로 버려져서 고아원에 간 아이일 가능성이 있다.[36] 회고 시점에서 카지와라 잇키는 이미 고인이라 치바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회고록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이 엔딩이 치바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건 사실이다.[37] 원작 50주년을 기념해서 제작하는 스핀오프 오리지널 애니메이션.[38] 일본의 유명한 내일의 죠 덕후의 사이트. 직업은 애니메이터다. 내일의 죠 관련 해설서도 발매했다.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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