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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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7년 12월 15일 발표된 일본의 전설적인 권투 만화. 원작은 카지와라 잇키이며, 이미 거인의 별로 유명한 터라 독자에게 선입견[5] 을 갖지 않도록 타카모리 아사오(高森朝雄)라는 가명을 썼다. 작화는 치바 테츠야가 담당했는데, 후술하겠지만 작화만 담당한 게 아니라 스토리에도 많은 영향을 줬기에 내일의 죠는 두 사람의 공동 창작물이라고 본다.
2. 줄거리
고아원 출신인 부랑아 야부키 죠가 권투를 만나 청춘을 불태우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만화사에 이름을 새긴 영원한 명작. 도쿄·아사쿠사의 쪽방 거리에 불쑥 나타난 한 소년. 야부키 죠라고 불리는 이 소년에게 일방적으로 타격을 입은 알코올 중독의 권투 선수 탄게 단페이는 그 움직임에 천부적인 복싱 센스를 찾아 일류의 복서로 만들기로 분투하는데……
3. 발매 현황
3.1. 일반판
원작 코믹스는 주간 소년 매거진에서 1968년 1월 1일호부터 1973년 5월 13일호까지 연재. 단행본으론 20권 완결됐다.
3.2. 문고판
2000년 문고판 12권이 코단샤에서 발매됐다. 2021년 국내에서도 학산문화사가 이 문고판을 판본으로 편집한 완전판을 발매 할 예정이다.
3.3. 한국 발매
한국어판은 2000년 서울문화사에서 '허리케인 죠'라는 제목으로 전 20권 단행본이 번역됐다. 현재는 전부 품절 상태이며 전자책으로도 나오지 않아 내일의 죠의 국내 번역본이 더이상 나오지 않는듯 했다. 참고로 번역의 질도 상당히 좋지 않았다.
그러나 2021년 학산문화사에서 완전판(문고판)을 발매 할 예정이다.# 2021년 1월 하드커버판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으며 100% 달성했다.# 펀딩 종료 후에는 일반 소프트커버 버전을 3월경에 출시 할 예정이라고 한다.
4. 특징
당대 만화계 최고의 인기 스토리 작가였던 카지와라 잇키는 많은 작품의 원작을 맡고 있었던 탓[7] 에 내일의 죠에는 그다지 간섭을 하지 못했고, 전체적으로 치바 테츠야의 각색이 많이 들어가 두 사람의 공동 창작물에 가까운 작품이 되었다.
카지와라 잇키의 내일의 죠 원작은 소설 형식으로 쓰여져 있다. 대부분 대사 중심이고 정경(情景)묘사는 최소한 필요한 부분만 있다. 어떤 부분은 대사만 있고 정경묘사도 없다. 예를 들어 원작에는 '멱살을 잡고'가 아니라 '멱살잡기만'이라는 대사가 있다. 이렇게 쓰여지면 만화가로서는 멱살을 잡힐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원작자 카지와라가 만화가 치바에게 그냥 맡긴 것이다. 그래서 치바 테츠야의 경우 원작을 자유롭게 각색했다. 완성된 만화는 카지와라 원작의 형태를 거의 간직하고 있지 않을 정도. 치바 테츠야의 각색력, 연출력, 구성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러한 이유로 원작자 카지와라 잇키는 말년에 "'''내일의 죠는 치바 테츠야의 작품이며, 사회 현상도 그의 덕분이다.'''(あしたのジョーはちばてつやの作品であり、社会現象も彼のおかげだ)''라고 자주 말하며 치바 테츠야를 극찬했다.[8] 치바 테츠야는 "죠는 내 것이 아니면 원작자의 것도 아닙니다. 이미 죠는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의 것이니까요.(ジョーはね、私の物でなければ原作者の物でもありません。もうジョーは読んで下さった読者のみなさまの物ですから)"라고 만화가 니시하라 리에코의 저서 "니시하라 리에코의 인생화력 대결"에서 말했다.
두 사람의 합작의 발단은, 치바 테츠야가 권투 만화 '해리스의 선풍(ハリスの旋風)'을 그리기 위한 과정에서 사전 답사를 하던 중 권투에 감명을 받아 후속작으로 구상했던 것이 원점이다. 정확히 같은 시기에, 원작자 카지와라 카즈키는 복싱 작품의 연재처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이걸 본 주간 소년 매거진의 편집부가 이 둘을 데리고 와서 합작 합의를 한 것이다.[9] 소년 매거진 부편집장 미야하라 테루오가 당시 거인의 별 집필중의 카지와라 잇키에게 치바 테츠야가 카지와라의 원작 '내일의 죠'의 만화를 그리는게 어떠냐는 이야기를 꺼낸다. 카지와라 잇키도 원래는 자신의 원작을 고치는 것을 극히 싫어했지만, 데즈카 오사무와 치바 데츠야라면 격이 다르다며 응했다. 카지와라는 치바 테츠야를 두고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한사람이다. 하지만,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라고 답변을 남긴다. 부편집장은 원작자가 있는 작품을 그려보라고 치바 테츠야에게 권했고, 치바는 원작에 손을 대서 바꿀수 있다면 하겠다는 조건으로 승낙한다.
치바가 당시 카지와라를 처음 만났을 때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카지와라 씨는 몸집이 크고, 선글라스를 하거나 머플러를 하거나 하기 때문에 조금 무서워 보였지만, 매우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골목대장이 그냥 커진 것처럼요. 굉장히 수줍고 부끄러하며, 조금 핵심을 찌르고 놀리거나 하면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는 아주 귀여운 사람이었어요. 제목을 내일의 죠라고 정할 때도 회의실에서 수줍게 내일의 죠, 그러면 어떨까?라고 쑥스러워하시면서 말씀하셨죠. 맞아요. 좀 빨개져서요. 다같이 그거 괜찮지 않아? 했더니 점점 빨개지더라구요 (웃음). 순진한 분이셨어요."[10] 그렇게 시작된 작품의 첫연재를 보고 카지와라는 격노한다.
치바 테츠야 "원작이라면, 갑자기 헬스클럽에서 서로 치고받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되었네요.이것은 좀 저도 감이 오지 않았고, 소년 매거진이라는 잡지는 아이가 읽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싸움이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뒤로 돌리고, 그 전에 어떤 상황으로 어떤 소년이 거리에 들어왔는가 하는 것으로 들어갔지요. 그래서 잠시 도입부 부분은 카지와라 씨의 원작을 사용하지 않고 그린 것입니다. 한 3번? 그랬더니 카지와라씨는 「나의 원작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만두겠다」라고. 편집자님이 이야기를 하러 가서 달랬다고 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나중에 되서, 아이들에게 알기 쉽게 하기 위해서 '나 나름대로 각색하고, 카지와라씨의 세계를 알기 쉽게 표현했습니다'라고 카지와라씨에게 설명했더니, 「아, 그런 것이었구나」라고 답하셨죠. 카지와라 씨는 소년 만화 잡지의 만화를 만드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원작에 손을 댄다는 것은 허락했지만, 아예 원작 자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카지와라의 원작에서는 야부키 죠는 링 위에서 싸우고 있는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치바는 거리의 부랑자로 마을에 흘러 들어가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그만두겠다는 카지와라와 이를 설득하는 부편집장은 치바 데츠야에게는 당신이 잘하지 못하는 생활감과 서정적인 묘사가 있다며 좀 더 지켜본 다음에 그만둬도 되지 않느냐며 물과 기름과 같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작가를 조율했다. 이후 두 사람은 어떤 때는 날을 새워가면서 작품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2인3각 체제로 스토리를 진행했다. 치바 테츠야는 쪽방 거리를 그리기 위해 실제 노동자의 마을에 취재하러 갔다. 치바는 당시를 회상하며 "내가 살고 있던 곳에서 강 건너로 항상 그런 거리가 보였거든요. 단지 어릴 때이기 때문에 주위의 어른들로부터 아이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근데 멀찍이서 그런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드나드는 건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에게는 매우 가까운 곳이었군요."라고 말했다.치바 테츠야 "카지와라씨는 우람한 어른들의 세계를 쓰는 것이 특기인 편이라, 그런 인간들이 많이 나옵니다만, 저는 그런 어른들만 그리고 있으면 지쳐 버립니다. 죠 자신도 아직 소년이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죠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촉매제로 사이에 넣었어요. 그러면 죠의 아이다움, 막 어른이 된 죠라든지 여러 부분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각색했습니다."#
그렇게 연재를 시작하고 5년, 최종화의 원고를 보고 얌전했던 치바가 화를 냈다. 카지와라가 보내온 원고에는 죠는 호세에게 지고 단페이가 "너는 시합에서는 졌지만 싸움에서는 이겼다." 라고 말하는데 '여기까지 와서 싸움에는 이겼다고 위로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 라고 생각한 치바는 카지와라에게 전화로 라스트 씬을 바꾼다고 전한다. 카지와라도 맡긴다고 대답. 이때 카지와라는 내일의 죠의 히트로 원작만 동시에 8개를 써야해서 내일의 죠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치바가 어시스턴트와 상의하고 고민한 끝에 탄생한 것이 전설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치바 테츠야는 당시를 회상하며 "마지막 장면이 좀처럼 정해지지 않아서 괴로워하고 있던 것이, 얼마 전처럼 기억하고 있군요. 그리고 나면 저도 조처럼 불태운 것 같아서 공원에서 멍한 적도 있었는데, 그 공원도 아직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서 몇 년 지나지 않은 것 같네요."라고 밝혔다.#
한 기자가 치바 테츠야에게 당시 그가 내일의 죠를 어떠한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는지에 대해서 물었는데, 치바는 "스포츠 근성물이라고 생각되고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그리지는 않았습니다"라고 답했으며 원작을 맡은 카지와라 잇키의 에피소드가 밝혔다. 치바는 "그 당시는 「거인의 별」도 있었고, 카지와라씨가 다양한 스포츠 근성물 작품을 그려 활약하시던 시기였으므로, 「내일의 죠」도 그런가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저는 스포츠 근성물이라고는 별로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나중에 들어 봤더니 카지와라씨는 '「 거인의 별」에서는 스포츠 근성물이지만, 「내일의 죠」에서는 나는 문학을 그리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라고 들었습니다. 카지와라씨는 쭉 작가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의 만화를 통해서 문학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요. '거인의 별'이 나오키상이라면 '내일의 죠'는 아쿠타가와상[11] 을 노리고 싶을 정도의 기분이었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카지와라씨의 기분이 나에게 옮겨 가고, 단순한 스포츠 근성이 아니고 인간의 갈등이나 사는 모습 등을 그리거나 좌절하거나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밖에 살 수 없는 사람도 많이 나오는군요. 그런 사람들을 많이 써 줬기 때문에 노리코나 도야마타 사람들이나 밝은 태양 아래를 걷는 사람들을 더 빛나게 그릴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라고 답했다.#
또한 1960년대의 일본 빈민층의 생활과 인생을 매우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빈민촌 사람들은 전기도 수도도 없고 비바람만 가려주는 나무집에서 살고있는데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도 빌딩과 시가지가 있다. 이게 1960년대 일본의 풍경이다. 오죽하면 차별 발언이 너무 많아서 2010년대 이후 지상파 재방송이 불가능하며 현재 출간된 만화책에선 원본 대사를 수정해서 없애고 있다. 참고로 일본은 병신, 부랑자, 폐인, 거지, 정신이상자, 애꾸 같은 말들도 방송불가 용어인데 카지와라 작품은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이런 단어를 마구 쓰는 경향이 있었다.
5. 등장인물
- 고로마키 곤도
6. 평가
일본 대중 문화의 진정한 아이콘: 내일의 죠(영어)Ashita no Joe has been considered one of the most influential manga
'''내일의 죠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일본 만화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내일의 죠의 유산(영어)
'''1960년대~1970년대 일본 만화를 대표하는 걸작'''이자 연재된지 57년이 지난 현재까지 '''일본 만화계를 대표하는 국민 만화 중 하나다.'''
카지와라 잇키, 치바 테츠야가 커리어 동안 만들어낸 최고 걸작을 물어보면 대중들과 평론가들은 내일의 죠를 꼽는다. 두 작가 모두 이후에도 꾸준히 창작을 하며 히트작을 냈지만 내일의 죠가 워낙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이다보니 이 작품을 뛰어넘는 명작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치바 테츠야 역시 훗날 "다시는「내일의 죠」와 같은 작품은 그릴 수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작가 자신도 그만큼 혼을 갈아 그린 역작이다. 치바 테츠야에 따르면 "특히 주간연재를 할때는 일주일 일주일동안 목숨을 깎을 생각으로 그렸습니다. 내일의 죠는 마지막을 그려냈을때 죽어도 좋을 심정으로 그렸어요."라고 밝혔다.[13]#
작품성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폭발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연재되고 있던 주간 소년 매거진의 발행부 부수를 비약적으로 늘리는 등 일본 전국의 사회현상[14] 을 일으킨다. 심지어 현실의 일본의 권투계에서도 영향을 끼쳤으며[15] 내일의 죠 이후에 나온 권투 만화는 이 만화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6] 이러한 사회적인 현상으로 이 만화는 '전후 최대의 히트 만화 중 하나'로 꼽힌다.[17] 만화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역시 애니메이션 감독 데자키 오사무가 훌륭한 원작 이해도와 뛰어난 연출을 보여주며 원작을 매우 잘살려 당대 최고의 애니메이션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다.
애니메이션 또한 대히트를 기록하며 1970년대 최고의 히트 애니메이션 중 하나가 된다. 당시 최고 시청률 29.2%[18] 를 기록, 10년 뒤 재방송했을 때는 시청률이 더 높아 31.6%를 기록하는 등 역대급 흥행을 거둔다.# 한마디로 만화와 애니메이션 모두 한 시대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공동 창작자 치바 테츠야는 훗날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일본 정부에서 표창하는 일본 문화계 최고 영예 중 하나인 자수포장을 2002년 수상했으며, 2014년에는 일본 문화공로자 칭호를 받기도 했다.[19] 그 위상과 인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2021년 일본인 15만명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만화 총선거'에서 29위를 기록했다.# 1960년대에 연재가 시작된 만화인것을 생각해보면 대단한 순위다.[20] 주간 소년 매거진 연재 만화 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이기도 하다.
'일본 만화 역사의 길이 남을 걸작 쇼와 시대 만화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한[21]# 작품이다. 또한 역대 최고의 만화 중 하나이자 권투를 소재로 한 만화 중 No.1 만화라고 평가받는 작품인 일본 만화계의 금자탑이다. 카지와라 잇키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특히 거인의 별에 비해 등장인물들이 별로 과격하지 않고 순수함을 가지고 있어 카지와라 잇키의 색은 약하지만, 그래도 썩어도 카지와라 잇키라고 과격한 부분도 꽤 많고, 그의 평소 성격하고 비슷한 부분도 많다. 카지와라의 인생을 어느정도 알고서 내일의 죠를 다시 읽어보면 죠라는 캐릭터의 고독한 아웃사이더스러운 면모에는 카지와라의 테이스트가 굉장히 많이 묻어나오고, 이것은 치바 테츠야의 다른 작품들과는 매우 이질적인 부분이라서 '아 이 부분은 카지와라 스타일이구나' 라고 납득이 가게 된다. 단지 치바 테츠야가 그것을 담담하게 묘사해서 그런 것이지 표정만 좀 과격하게 붙였어도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22][23]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사람이 서로의 단점을 끌어안으면서 걸작이 탄생한 것이다.
만화평론가 이시카와 쥰은 그의 만화평론서 '만화의 시간'에서 내일의 죠를 '같은 원작임에도 거인의 별은 지금에 와선 패러디 거리로 여겨질 뿐이지만 내일의 죠는 여전히 내일의 죠다.'라고 평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내일의 죠에 대해 "신기한 작품이라고 곰곰이 생각한다. 우선 만화는, 치바씨의 것이며, 카지와라씨의 것이기도 하다. 전혀 개성이 다른 작가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 그리고, 애니메이션은 치바씨도 카지와라씨도 아니고, 데자키와 스기노의 작품이 되어 있다. 애니메이션 그림은 누가 봐도 치바씨와는 전혀 다른 작가의 것으로 보이니까."라고 평했다.#
쉽게 말해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 일본 만화사에 대해 말할 때, '''내일의 죠를 빼고는 제대로 된 설명이 이뤄질 수가 없다.''' 심지어 일본 근현대사 관련 연구에서조차, 정치사회적으로 이 만화의 영향력을 따로 다루면서 연구하는 학자가 있었을 정도로 엄청난 작품이며[24] , 연재된지 50년이 지난 후인 현대의 만화에 대한 작품성 평가 관점에서 볼 때에도 탁월함을 인정받고 있는 걸작이다. 억지 근성과 근거가 빈약한 비인간성을 추구하는 부분이 많아 후대에 대부분 안 좋은 평가를 받는 근성스포츠 및 범죄 수준 격투 위주의 카지와라 원작 작품들과 달리, 내일의 죠만큼은 이들과 다르게 평가받는다. 치바 테츠야의 각색이 많이 들어가서 그 근성을 억지가 아닌, 시공을 초월하여 누구나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절실함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되도록 표현한 인물 묘사 및 배경 묘사가 뛰어나다.'''내일의 죠는 1960년대 일본의 시대정신을 사로잡았다. 죠가 무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오랜 전후 황폐화 끝에 조국이 번영하는 것을 보고 있던 일본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 토마스 조스 (만화 비평가)#
또 탄탄한 스토리, 최고의 결말, 훌륭한 캐릭터성, 뛰어난 연출 및 전개, 치바 테츠야의 전성기 시절의 절정에 다다른 극화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서 21세기인 현재에도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현 시대의 평가에서도 큰 가치를 인정받는 대단한 만화다. 이른바 '''일본 만화계의 불멸의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 중 하나다.'''
7. 수상
8. 패러디
이나중 탁구부부터 이말년까지, <내일의 죠>의 흔적들
서양권에서 분석한 내일의 죠 패러디
TV Tropes에서 만든 내일의 죠 를 패러디한 작품들
- 작품의 유명세 답게 패러디가 엄청 많다. 엄청나게 많은 작품들에서 레퍼런스되거나 패러디되어 역사상 가장 많이 패러디된 일본 만화 중 하나다. 이렇게 많이 패러디되다 보니 일본에서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인지도가 있는 만화다. 1968년부터 10여 년간 연재된 만화나 1980년부터 만들어져 1993년 MBC를 통해 방송된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야부키 죠의 명대사는 어디에서 들어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르고 인용하는 레퍼런스 속에는 처절하게 살아 온 한 남자의 인생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인생은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만큼 충분히 강렬한 것이었다. ‘하얗게 불태웠어’라는 대사와 마찬가지로 이 장면 역시 개구리 중사 케로로를 비롯해 다양한 작품에서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패러디 된다. 누구든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떨구고 미소를 띈 흑백의 모습이라면 ‘상황의 종료’를 의미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장면은 일종의 아이콘이 되었다.
- 여러 매체에서 수없이 불태운다. 특히 새하얗게 불태워 버렸어등등. 최지룡의 양아치 흉내내기가 내일의 죠를 비튼 만화다. 이나중 탁구부에서 패러디 캐릭터가 나온다. 이러한 죠의 스타일 철학은 <렛츠고 이나중 탁구부>의 이자와 히로미에게 그대로 투영된다. 하루에 초강력 스프레이 2통을 써야 유지된다는 문제의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는 이자와에게 아부키 죠는 본받아야 할 남자의 표본이다. 그러나 이자와는 짝사랑하던 리에꼬 선배가 자신의 헤어스타일을 놀리자 목숨 다음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앞머리 단발식을 거행한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이자와의 앞머리를 잘라낸 사람이 다름 아닌 치요꼬이며, 이후 치요꼬는 이자와의 여자친구가 된다는 점이다. 허리케인 죠의 스타일이 사라지는 순간, 고독한 남자로서의 운명 또한 끝이 났다. 참고로 공상과학대전의 원작자에 의하면, 죠의 머리는 권투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 이 명대사 말고도 유명한 패러디가 바로 크로스 카운터다. 가장 마지막의 승부수를 던지 듯 주먹을 맞고, 던진 후의 고요함은 이제 타격 액션의 주요 클리셰가 되었을 정도다. 심지어 이 크로스카운터 시퀀스는 레이저와 미사일을 사용할 것처럼 생긴 로봇들에게도 해당된다. 애니메이션 <천원돌파 그렌라간 3화에서 합체까지 한 로봇들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크로스카운터를 나누는 장면은 누가 보더라도 내일의 죠에 대한 오마주다. 로봇도 사나이라면, 포기 할 수 없는 로망이 있는 법이다. 천원돌파 그렌라간에서는 내일의 죠를 오마주를 많이 했다.
- GTO에서 (더빙판 한정?) 차도둑들이 쿠니오 삼총사에게 샌드백지옥을 선사할때 패러디가 등장한다.(내일을 위한 첫번째~, 하얗게 불태우겠어 등)
- 이상한 쪽(?)으로도 패러디가 조금 되었는데 탄게 단페이가 노노무라 병원 사람들의 변태 캐릭터 이상한 아저씨로 패러디 되었다던가, 아예 내일의 유키노죠라는 뻔히 보이게 제목을 빌린 경우도 있다.[25] 그 외 이브 버스트 에러 시리즈에서도 죠와 단페이를 배경에 꾸준히 넣어주었다.
- 은혼에서도 패러디됐다.
9. 미디어 믹스
9.1. 애니메이션
9.2. 실사 영화
9.2.1. 1970년판
내일의 쵸의 첫 실사영화화. 죠 역에는 이사바시 쇼지, 리키이시 역에는 카메이시 세이이치로, 단페이 역에는 타츠미 류타로. 한국에서는 개봉하지 않았다.
9.2.2. 2011년판
2011년에도 실사영화가 개봉되었다. 1970년 작품과는 무관하게 원작의 초반 스토리부터 진행되며 딱 리키이시 전까지 나오고 끊는다. 죠 역에는 NEWS의 야마시타 토모히사, 단페이 역에 카가와 테루유키, 리키이시 토오루 역에는 이세야 유스케, 시라키 요코 역에는 카리나. 한국에도 2011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었으며, 6월 30일에 정식 개봉했다.
일본에서의 반응으로는 탄게 단페이의 경우엔 카가와 테루유키의 검증된 연기력에 절륜한 메이크까지 겹쳐서 개봉전부터 호평을 받았으나, 시라키 요코의 경우는 털털한 이미지의 카리나가 미스캐스팅이라는 말이 많았다. 특히 주인공인 야부키 죠의 경우는 거친 야생마같은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예쁘장한 미소년 아이돌에게 맡겼다는 이유로 원작 팬들의 반발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개봉 후에는 개봉 전까지는 별로 화제가 되지 않았던 리키이시 역의 이세야 유스케의 싱크율이 엄청나다고 화제가 되면서 정작 개봉 전에 화제를 모았던 미스캐스팅 문제는 화제에서 거의 사라졌다.
10. 기타
- 2018년 내일의 죠의 50주년 기념으로 한 기자가 치바 테츠야에게 "50년이 지난 지금도 (내일의 죠가)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는데 치바 테츠야는 "시대가 변해도 인간의 마음의 갈등이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본인의 그런 부분을 그려왔기 때문일까나"라고 답했다.#
- 미시마 유키오가 좋아한 만화다. 당시 일본의 대중문화에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던 미시마는, 내일의 죠의 열렬한 애독자이기도 했다. 하루는 영화 촬영 때문에 잡지를 구매하지 못해 주간 소년 매거진의 본사에 방문하기도 했으며, 그 뒤를 빨리 알고 싶어서, 잡지 발매 전날 심야의 코단샤에 나타나 「소년 매거진을 팔아 달라」고 하며 무료로 잡지를 받고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후일 내일의 죠가 그의 성향과 정반대인 전공투와 신좌파 노동자들의 상징이 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또한 아이러니한 점.
- 히가시노 게이고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며[27] 그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대학 시절에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거의 다 읽은 적도 있었지만, 내일의 죠의 영향이 훨씬 크다고 밝혔다. 그는 이 책을 항상 읽는 책이라고 말했으며 취침시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고 잔다고 한다.#
- 치바 테츠야는 내일의 죠 애니판에 대해서 "그 전 '해리의 선풍' 애니메이션 때, 처음으로 제 캐릭터가 TV에서 활약한다고 해서 무척 기대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원작 만화가가 각본가에게 제각각 전달되는 바람에 캐릭터에 통일성이 없었죠. 게다가 TV 애니메이션이라면 스토리 전개가 빠르기 때문에, 제가 3개월 정도 걸려 그린 이야기가 TV라면 1회로 끝나 버립니다. 그래서 '내일의 죠' 때는 애니메이션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단지,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기 때문에 가끔 들여다 보면, 제 캐릭터가 한층 더 어른스러워지거나, 분위기에 사회성이 있다고 할까, 시대를 반영해 생생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에 「아, 제 만화에는 없다, 또 전혀 다른 세계가 되어 있구나」라고 하는 것은 느끼고 있었습니다. 특히 데자키 오사무 감독은 전혀 다른 새로운 '내일의 죠'를 만들어 주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데자키 감독과는 가장 먼저 회의를 하고, 그 후에도 여러 번 만났습니다. 감독님하고는 작품을 통해서 대화를 하고 있더라고요. 애니메이션은 두개로 나뉘었는데, 그것은 첫 애니메이션 때 만화연재를 따라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일의 죠2'까지 좀 뜸해졌는데, 그 사이에 데자키씨 자신이 성숙해진 거겠죠. 확 느낌이 달라져서. 사이를 두는 방법이라든지 말이죠. 그리고 멈추는 그림에서 빛만이 스윽 움직이거나 그러한 연출이 가득 담겨져 있어서, 이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만화로는 할 수 없는 새로운 표현을 애니메이션에 도입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라고 평했다.#
- 더 화이팅의 작가 모리카와 죠지가 이 작품의 팬으로 알려져있다. 치바 테츠야를 자신에게 하느님 같은 존재라고 밝히기도 했다. 내일의 죠와 비교되는 게 싫어서 아마추어 복싱 만화를 그렸다고 한다.# 치바 테츠야의 강연의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메모하며 듣기도 한다고 한다. 모리카와는 인기 작가라 편집자에게 한마디 하면 강연 티켓은 간단히 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일반 고객으로서 강연을 들었다. 물어보니 모리카와는 맨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입장했다고 한다.
- 만화 나루토의 애니메이션 각색을 한 스튜디오 피에로의 애니메이션 제작자 와카바야시 아츠시는 내일의 죠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것은 대부분 나루토 애니메이션 제작진들이 내일의 죠의 팬이었고, 이 시리즈를 볼 때 우즈마키 나루토라는 캐릭터가 그들이 뿌리를 내린 원형의 형태에 가깝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 애니메이션화가 결정되었을 때 한창 리키이시와 죠의 시합 파트가 연재되는 중이었는데, 시청률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방송국 측에서 "아직 리키이시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요청을 받은 원작자 카지와라 잇키는 작화가 치바 테츠야와 함께 도쿄 도내의 한 바에서 리키이시를 죽일지 말지 의논하는데, 대화를 엿들은 바의 점원이 대화 내용을 오해하고 경찰에 신고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 제목 최종 후보 중 하나로 '왼쪽의 죠'와 '원 히트 원더 죠'가 있었는데 결국에는 내일의 죠로 결정됐다.
- 워낙 유명한 만화인만큼 당연히 게임화도 되었다. 가장 많이 알려진건 SNK에서 만든 네오지오용의 액션 게임인데, 권투시합 외에도 길거리에서 깡패와 싸우는 등 원작의 전개를 똑같이 따라간다. 타이토에서 만든 아케이드판과 K어뮤즈월드제서 제작한 슈퍼패미컴용 복싱게임은 순수한 권투경기만을 다루고 특히 타이토 아케이드판에성 올 클리어하면 죠와 요코가 결혼하고 여태까지 싸웠던 라이벌들이 하객으로 참가해 축하해주는 엔딩이 나온다.[28] 죠의 정장 모습을 볼 수 있는 상당히 희귀한 게임.
- 2010년 시점에서 누계 발행 부수는 2500만부, 권당 판매부수 125만부를 달성. 권투 만화 권당 판매부수 1위를 기록하고 있다.[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