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 챠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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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라 켄과 함께.[3]
본명은 카토 히데유키(加藤英文)였으나 팬들로부터 얻은 별명인 카토짱을 변형시켜 카토 챠가 되었다.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처음 이 예명을 받았을 때는 상당히 뜨악했었으나 지금은 좋게 생각한다고. 콩트에서도 자기 이름을 밝힐 때 상대가 '이름이 챠(茶)라고?' 되묻는 장면을 가끔 넣곤 한다.
더 드리프터즈가 밴드였던 시절에는 기본적으로 드럼을 맡았고, 대부분의 노래에서 특유의 간드러지는 흡입력있는 목소리로 리드보컬도 겸했다. 개그맨 시절에는 시무라처럼 이카리야에게 깐족대는 역할로 큰 인기를 끌었다. 사실 시무라가 카토 챠의 역할을 물려받았다고 보는것이 맞다. 실제로 시무라는 카토의 심부름꾼으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고 브레이크 한 뒤로도 주로 카토와 합을 맞췄다.
활동 중간에 속도위반 주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그리고 '만약에 OO가 있다면' 코너에서 이걸 또 개그로 승화시켰다(...). 경찰관이 운전자를 검문하는 콩트에서 카토가 호기롭게 차를 운전하며 나타나자 이카리야가 "넌 이 콩트에 참가할 자격이 없어" 하면서 끌어내고, 머쓱해진 카토는 강제 퇴장.
1985년 8시라구! 전원집합(8時だョ!全員集合)이 종영한 이후 시무라 켄과 함께 독립, 이듬해 같은 시간대에 '카토짱 켄짱의 기분좋은 TV'라는 쇼를 별도로 차렸다. 이 '카토짱 켄짱' 콤비는 한동안 명맥을 유지했으나 헤이세이 시대에 접어들며 카토가 점차 코미디언으로서의 활동을 줄이면서 자연스럽게 해산되었다. 다만 시무라는 계속 현역을 유지했기 때문에, 이후로도 과거 코미디를 회상하는 다큐멘터리나 토크쇼 프로그램에는 시무라와 동반으로 간간이 출연했다. 드리프터즈 시기가지만 해도 곱상한 동안이였는데, 은퇴한 이후로 노화가 갑작스레 와서 놀란 사람들이 꽤 많다.
1987년에 18세 연하의 아내와 결혼식을 올렸으나 2003년에 아내와 이혼했다. 그래도 3년 뒤 심혈관계 질환으로 몸져누웠을 때 전처가 그를 간호해 주었다고.
2004년 이카리야 쵸스케의 장례식장에서는 더 드리프터즈의 남은 멤버 중 대표로서 추도문을 낭독하기도 했다. 생존 멤버들 중 나이는 타카기가 제일 많지만 드리프터즈로서의 활동 경력은 카토가 가장 길었기 때문.
2011년 무려 45세 연하와 재혼을 하게 되는데 2011년 당시 카토 챠는 만 68세였고 장인이 만 37세 장모가 만 44세였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나이 차 심한 처와 재혼한 이력 때문에 카토의 노화와 건강상태를 트집잡아 찌라시 등지에서 부인을 음해하는 온갖 음모론이 돌기도 했다."(당신이) 갑자기 '전원집합'이라고 말한다 한들, 우리 4명은 모일 순 없으니까... 40년간 정말 고마웠어요. 수고했어요. 아무 걱정말고 편히 쉬어줘요." (추도문 중)
이경규가 일본 유학을 하던 때에 카토 챠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경규가 저서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카토가 당시 이경규를 잘 몰랐었는지 만남은 그냥 인사만 가볍게 한 것으로 끝났고, 이경규는 내심 자신을 듣보잡 취급하는 것 같아 속으로 이를 불쾌해했다고 한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팬이며, 왕년의 드러머 실력을 살려 랜디 존슨과 TV 프로그램에서 드럼 배틀을 펼친 적도 있다.
1992년 신춘 장기자랑 대회에서는 당시 인기였던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 을 패러디한 드라마에서 T-1000 역을 맡았는데 반응은 원작의 T-1000과 동떨어진다는 것이다. 참고로 터미네이터 역은 이노우에 준이 맡았다.
2020년 3월 30일 시무라 켄의 사망 보도와 함께 카토 챠의 트위터 계정이 등장하여 트위터를 시작함을 보고함과 동시에 시무라를 추도하는 코멘트를 올렸다. 카토 챠가 트위터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화제가 되어 순식간에 2만명 이상이 팔로우했으나, 이는 한 유투버가 팔로워 수를 벌기 위해서 가짜 계정을 만든 것임이 밝혀졌다. 소동이 커지자 계정주는 곧바로 가짜 어카운트임을 인정했으며, 현재 해당 계정은 폐쇄되었다.
2020년 4월 1일 시무라 켄 추모 특집방송에 출연하며 조사를 읊었다.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스다 마사키와 상당히 닮았다. 구글에 두 사람 이름을 일본어로 동시에 입력 시 似てる가 자동검색어에 뜬다."(조사) 시무라. 너무한 거 아냐. 이 자식아. 우리 중 가장 젊은 니가 우리들을 제끼고 먼저 천국으로 가버리니 말야. 아직, 우리들과 해야 할 일이 아직도 있는데 말야. 그런데 너 혼자 먼저 가버리니... 넌 끝까지 바보구나. 하늘에 있는 쵸 씨(이카리야 쵸스케)도 니가 먼저 온다라고는 생각도 안될걸. 엄청 놀랄걸? 지 다음주자는 타카기 부라고 생각했을텐데 말야. 그래도 오랜만에 둘이서 여러 얘기를 할 수 있을테니 쵸 씨도 즐거워할거야. 뭐, 우리도 가까운 날에 너 뒤로 따라오는 걸 생각하면 그때까지 쵸 씨와 술도 마시면서 드리프터즈 새 개그라도 짜렴. 우리 5명이 천국에 전원집합한다면, 그 쪽(천국) 사람들을 재밌게 해주자. 약속이다. 그럼, 그 때까지 편히 쉬어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시무라.
레이와 2(2020)년 4월 1일 더 드리프터즈 카토 챠 배상
2. 주요 기믹
'どうもスンヅレイしました(실례 많았습니다)'[4] 등의 후쿠시마 사투리로 유명하다.[5] 그 외 더 드리프터즈에서 만들어낸 수많은 기믹들 중 대표적인 것들은 다음과 같다.
- 카토짱(加トちゃん)
정수리에 머리칼 한 가닥만 난 대머리에 동글안경, (한국인들이 일본인 하면 흔히 떠올릴) 콧수염을 장착한 중년 아저씨. 고전적인 일본인의 선입관을 극대화시킨 캐릭터 덕분인지 현재까지도 일본 현지에서는 관광지의 가면이나 식당, 선술집의 소품 등으로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주로 술에 취해 있을 때가 많으며 몹시 가부장적이고 다혈질적인 성격이다. 샐러리맨, 신사, 경비원 등 여러 가지 복장으로 등장할 때도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옷차림은 일본식 옷에 나막신. 지금도 일본인들이 카토 챠 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캐릭터로서, 카토 챠의 예능인생 50주년(2011년)을 맞는 행사에서도 이 복장으로 등장했고 다운타운과의 특집 대담에서도 세 명이 동시에 이 복장을 하고 토크를 진행했다. 가키노츠카이의 '웃으면 안 되는' 기획에서도 이 대머리 분장&동글안경&콧수염이 이름하여 '카토짱 3종 세트'로 등장했다. 두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카토짱뻬~' 하는 대사도 유명.
- 잠깐뿐이에요(チョットだけよ)
특히 '8시야! 전원집합'에서 많이 나왔던 기믹으로, 난데없이 무대 중앙에 분홍색 조명이 쏘아지면 잠깐뿐이에요'라는 말과 함께 난데없이 카토가 Perez Prado의 Tabu라는 음악에 맞추어 스트립 댄스를 펼친다. '당신도 참 (이런 거) 밝히네(あんたも好きだね)' 하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 포인트. 후일 시무라와 함께 한 토크쇼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후쿠시마의 스트립 바에서 실제로 마담한테 들었던 대사를 베낀 거라고. 이 기믹은 나중에 시무라 켄도 바보 영주에서 간혹 써먹는다.
- 가부키 배우
카토가 가부키 특유의 발성을 잘 흉내내어 생긴 기믹으로,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콩트 내의 역할 역시 사극이나 가부키 배우인 경우이며 두 번째는 촬영해야 할 극의 종류를 사극으로 착각하여 얼굴에 쿠마도리 화장을 그린 채로 현대극에 나타난 경우. 후자에서는 평범하게 말해야 할 현대극에서 사극풍으로 과장되게 말하는 직업병으로 인해 시무라 감독의 NG와 분노를 유발한다.
- 우유 광고 모델(또는 어묵 광고 모델)
우유를 원샷하는 광고를 찍는데 자꾸 NG가 나서 몇 번이고 원샷을 할 처지에 놓인 캐릭터. 결국 광고는 OK컷을 얻지 못한 채 끝나게 된다. 어묵 광고에서는 얼굴에 쿠마도리 화장을 그린 채 사극풍으로 과장되게 말하는 것과 뜨거운 어묵 때문에 전자의 우유 광고처럼 끝난다.[6] 시무라의 수박 광고 콩트에서는 감독과 모델 역할이 뒤바뀌어 똑같은 병렬구조로 진행되기 때문에 두 콩트는 거의 예외없이 쌍으로 나온다. 같은 시기 기타노 타케시도 아카시야 산마와 함께 비슷한 내용의 맥주 광고를 콩트로 찍었다. 원래 아이디어가 누구의 것인지는 불명. 한참 후에 미무라 마사카즈가 시무라 켄과 함께 더 드림매치에서 같은 콩트를 선보인 바 있다
[1] 대한민국 배우 주현과 생년월일이 똑같다.[2] 와타나베 엔터테인먼트 계열로 이시다 아유미도 같은 소속.[3] 이 컨셉으로 나온 게임이 시무라 켄 항목에 있는 카토짱 켄짱 전원집합이다.[4] 실례라는 뜻의 '시츠레이' 발음을 방언으로 '신즈레이'처럼 뭉개는 것이 포인트.[5] 참고로 카토는 도쿄에서 태어났으나 곧 후쿠시마로 이주하여 어린 시절을 보냈다.[6] 80년대, 이주일과 이상해가 콤비를 이루어 하던 콩트가 이쪽에서 컨셉을 베낀 것이다. 저작권 개념도 없고, 일본 문화 수입이 금지되던 90년대 이전은 일본 것을 마구잡이로 베껴 쓰던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