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쿠라니

 

''' 독일의 前 축구선수 '''
'''이름'''
'''케빈 쿠라니
Kevin Kurányi'''
'''본명'''
케빈 데니스 쿠라니
Kevin Dennis Kurányi
'''출생'''
1982년 3월 12일 (42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국적'''
'''독일''' [image]파나마 [image]
브라질 [image]헝가리 [image][1]
'''신체'''
190cm, 79kg
'''직업'''
축구선수(스트라이커 / 은퇴)
''' 소속 '''
''' 선수 '''
세라노 (1988~1993/유스)
라스 프로메사스 파나마(1993~1994/유스)
스포르팅 89 (1995/유스)
라스 프로메사스 파나마(1996/유스)
세라노(1996~1997/유스)
VfB 슈투트가르트 (1997~2001/유스)
VfB 슈투트가르트 II (2001~2003)
'''VfB 슈투트가르트 (2003~2005)'''
'''FC 샬케 04 (2005~2010)'''
디나모 모스크바 (2010~2015)
TSG 1899 호펜하임 (2015~2016)
'''국가대표'''
52경기 19골(독일 / 2003~2008)
1. 소개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여담
5. 기록
5.1. 득점 기록


1. 소개


독일의 은퇴한 축구선수.
독일 축구의 암흑기인 2002년 당시 VfB 슈투트가르트 소속으로 20살의 나이에 32경기 출전하여 15득점을 기록해 베냐민 라우트와 함께 당시 독일 축구의 희망으로 떠올랐으나 요아힘 뢰프 감독과의 불화로 2008년 이후에는 국가대표에 더 이상 뽑히지 못했다. 전성기로 불릴 28살에 러시아 프리미어리그로의 이적, 그리고 뒤이어 등장한 루카스 포돌스키, 마리오 고메즈, 토마스 뮐러 등으로 밀리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2. 클럽 경력



2.1. 유소년


1982년 헝가리인 아버지와 파나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지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어린 시절 브라질 세라노 유소년 클럽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그 뒤 파나마의 라스 프로메사스, 스포르팅 90에서 유소년 생활을 한 뒤 1997년 독일 VfB 슈투트가르트의 유소년 팀에 입단하게 되었다. 그 뒤 브라질파나마에서 국가대표 제의가 왔으나 케빈 쿠라니는 월드컵 진출을 위해 모두 거절하고 독일 국적을 선택하였다.[2][3] 브라질의 경우 두터운 선수층으로 국가대표 선발을 위한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월드컵에 진출한다 하여도 발탁될 여부가 희박하며 파나마의 경우 월드컵 진출이 절망적이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한다.

2.2. VfB 슈투트가르트


21세 이하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뒤 2001년 VfB 슈투트가르트와 프로 계약을 체결하였고 그 뒤 3부 리그에 속한 리저브 팀인 VfB 슈투트가르트 2팀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2001/02시즌 VfB 슈투트가르트 2팀에서 33경기 출전, 10득점으로 가능성을 보인 케빈 쿠라니는 해당 시즌 후반부에 A팀으로 콜업되어 5경기 출전 1득점을 기록하며 A팀과 분데스리가에 데뷔하였다. 2002/03시즌 본격적으로 A팀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고 리그에서 32경기 출전 15득점, 인터토토컵과 유에파컵에서 9경기 출전 5득점으로 가능성을 보이며 당시 이렇다 할 스트라이커가 없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특히 2002/03시즌 32경기 15득점은 해당시즌 독일인 최다 득점이었다. 펠릭스 마가트 감독의 지휘 아래 당시 VfB 슈투트가르트에 소속된 티모 힐데브란트, 알렉산드르 흘렙, 안드레아스 힌켈 그리고 당시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임대 온 필립 람 등과 함께 슈투트가르트 돌풍을 일으키며 2002/03 시즌 리그 준우승과 2003/04 시즌 리그 4위를 차지 했다. 2004/05시즌에는 새롭게 부임한 마티아스 잠머 감독이 팀 내 선수들과의 불화를 겪으며 제대로 팀을 통솔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VfB 슈투트가르트의 주전선수로 리그 내에서 13득점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다.

2.3. FC 샬케 04


잠시 돌풍을 일으켰지만 팀의 한계를 느낀 케빈 쿠라니는 더 높은 목표를 위해 FC 샬케 04로 이적하였고 2005년부터 2010년까지 5시즌 동안 팀의 최다 득점자로 활약하며 2006/07시즌과 2009/10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2007/08시즌에는 리그 3위로 팀을 이끌었다.

2.4. 디나모 모스크바


그러나 2010년에는 28살이라는 전성기 나이에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팀인 디나모 모스크바로 돌연 이적하였다. 3년 계약으로 당시만 해도 곧바로 분데스리가에 복귀할 것이라는 의견이 강했으나 연장 계약을 체결하며 2015년 7월 까지 러시아에 머물렀다. 호펜하임 이적 후 인터뷰에서 디나모 모스크바의 5년 계약은 단순히 돈 때문이었다고 언급했다. 디나모 모스크바에서 뛰는 동안 연봉은 570만 달러, 5년동안 총 2850만 달러. 2011/12 시즌에는 41경기에 출전하며 전 경기에 출전하기도 하였으나 그 여파로 2012/13 시즌에는 27경기, 2013/14 시즌에는 15경기 출전에 그쳤다. 2014/15 시즌에는 24경기 출전 10득점을 기록하며 디나모 모스크바의 주전 선수로 활동했고 시즌 종료 후 계약이 만료되자 연장하지 않고 팀을 떠났다.

2.5. TSG 1899 호펜하임


2015년 호펜하임과 1년 계약을 체결하며 6년 만에 독일 분데스리가로 복귀했다.
2015/16 시즌 리그 14경기, 포칼 1경기에 출전하였으나 무득점에 그치는 최악의 모습을 보였다. 결국 계약 연장에 실패하고 1년 만에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팀을 구하지 못했고, 2017년 3월 24일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클럽에서 이렇게 활약을 하는 동안 국가대표팀에서는 2002년에 발탁된 이후 2008년까지 유로 2004, 유로 2008 등에 출전했다. A매치 52경기 19득점을 기록하였으나 요아힘 뢰프 감독과의 불화가 생기면서 유로 2008을 끝으로 더 이상 발탁되지 못하고 있다. 이게 그냥 불화가 생긴 정도가 아니고, 출전 명단에 안 넣어줬다고 무단 이탈이라는 대형 사고를 터트렸기 때문에 영원히 보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되었고, 현역 은퇴와 함께 그대로 경력이 끝났다.

4. 여담


  • 국내에서 쿠라니가 유명한 이유는 바로 피파 온라인(...). 피파 온라인 1 시절 FIFA 06 버전 로스터일 당시엔 별 주목을 못 받다 1차 로스터 패치 후 육성시 전 능력치 99라는 충공깽한 위력을 보여주며, 아드리아누, 뱅상 콩파니, 다니엘레 데 로시, 파블로 사발레타와 함께 끝판왕으로 유명했다(...). 위닝이나 FM에서도 당시 독일 대표팀에 스피디한 공격 자원이 포돌스키 뿐[4]이라 애용되었다.

5. 기록



5.1. 득점 기록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 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2001/02
VfB 슈투트가르트
독일 분데스리가
5
1
2
1
-
-
2002/03
VfB 슈투트가르트
독일 분데스리가
32
15
2
2
9
5
2003/04
VfB 슈투트가르트
독일 분데스리가
33
11
3
1
8
3
2004/05
VfB 슈투트가르트
독일 분데스리가
29
13
4
2
6
3
2005/06
샬케 04
독일 분데스리가
30
10
4
1
12
3
2006/07
샬케 04
독일 분데스리가
34
15
2
2
2
0
2007/08
샬케 04
독일 분데스리가
32
15
4
2
8
3
2008/09
샬케 04
독일 분데스리가
33
13
4
2
7
1
2009/10
샬케 04
독일 분데스리가
33
18
4
2
0
0
2010
디나모 모스크바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16
9
0
0
0
0
2011/12
디나모 모스크바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41
13
6
0
0
0
2012/13
디나모 모스크바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27
10
3
1
0
0
2013/14
디나모 모스크바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15
8
0
0
0
0
2014/15
디나모 모스크바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24
10
1
0
14
5
2015/16
TSG 1899 호펜하임
독일 분데스리가
14
0
1
0
-
-
[1] 4중 국적으로 헝가리인 아버지, 파나마인 어머니, 본인은 브라질 출생, 그리고 성장을 독일에서 했다.[2] 엄밀히 말하면 아버지 국적인 헝가리, 어머니 국적인 파나마, 출생지 브라질, 이주한 독일까지 4중 국적이다.[3] 아버지가 헝가리인이기 때문에 헝가리 국적도 선택할 수 있었으나 헝가리에서 제의가 왔다는 기록은 없다.[4] 베른트 슈나이더는 나이 때문에, 다이슬러는 지독한 유리몸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