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 힐데브란트

 

''' 독일의 前 축구선수 '''
'''이름'''
'''티모 힐데브란트
Timo Hildebrand'''
'''출생'''
1979년 4월 5일 (45세)
서독 라인란트팔츠보름스
'''국적'''
독일 [image]
'''신체'''
185cm
'''직업'''
축구선수(골키퍼 / 은퇴)
''' 소속 '''
''' 선수 '''
'''VfB 슈투트가르트 (1997~2007)'''
발렌시아 CF (2007~2008)
TSG 1899 호펜하임 (2008~2010)
스포르팅 CP (2010~2011)
FC 샬케 04 (2011~2014)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2014~2015)
'''국가대표'''
7경기(독일 / 2004~2007)


1. 개요


'''올리버 칸 - 옌스 레만의 계보를 이을 독일의 차세대 골키퍼로 주목받았던 선수.'''
독일의 은퇴한 축구선수.
20대 시절부터 한 잘못된 이적이 선수 한 명을 망쳐버린 대표적인 케이스다.[1] '''발렌시아로 가는 것이 최악의 한 수가 되어 버렸다'''. 친정팀인 슈투트가르트를 떠난 후로 영 힘을 못 쓰더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자리를 못 잡아 버렸다. 슈투트가르트는 슈투트가르트대로 예전만 못하니 결국 루즈 - 루즈 게임이 된 셈이다. 더불어 이 시기를 기점으로 유로 2008 독일 대표팀에서 탈락하는 등 그렇게 그야말로 국대고 프로고 몽땅 몰락해 버렸다.

2. 선수경력



2.1. VfB 슈투트가르트


VfB 슈투트가르트 유소년 팀 출신으로, 1999년 프로 데뷔도 슈투트가르트에서 했다. 바이에른 뮌헨으로부터 제의가 들어왔으나 유소년 시절부터 머물렀던 슈투트가르트에 남기로 결심하여 거절했다고 한다. 2000 시즌 그야말로 포텐이 폭발하여 팀의 주축 선수가 되었고 약 9년간을 슈투트가르트의 주전 골키퍼로 지냈다. 2003년에는 '''884분 무실점'''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2] 올리버 칸이 가지고 있던 825분을 넘어서는 등 독일의 미래를 짊어질 수문장으로 여겨졌다. 힐데브란트와 신예 선수들(90년대 말, 00년대 초의 "Stuttgart's young wild ones")의 활약에 힘입어 슈투트가르트는 막강한 수비력을 가진 팀으로 거듭났고 분데스리가에서의 선전을 이어갔다. 2007 시즌에는 마침내 대망의 우승컵을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2.2. 발렌시아 C.F.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자유계약 신분이 된 힐데브란트는 본인이 원했던 프리메라 리가발렌시아 C.F.로 이적한다. 하지만 좀처럼 출전기회를 잡지 못하며 산티아고 카니사레스에게 주전경쟁에서 밀리며 점점 입지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키케 플로레스 발렌시아 감독이 성적부진의 이유로 경질되고 로날드 쿠만이 부임하면서 발렌시아는 암흑기에 빠져들게 되는데, 이때 힐데브란트는 동시에 주전 골키퍼로 승격되나, 화려한 삽질로 발렌시아의 골대를 나락으로 빠트리고 결국 쫓겨나듯이 TSG 1899 호펜하임 등으로 임대되는 신세가 되었다.

2.3. FC 샬케 04


호펜하임에서도 한 시즌만 뛰고 나왔으며, 그 다음인 스포르팅 CP에서는 아예 출장 자체를 못하다가 2012년, FC 샬케 04와 계약했지만 여기서도 미적지근한 상태.

2.4.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2014년 12월 13일(한국시간), 분데스리가 15R 호펜하임 vs 프랑크푸르트 경기에서 2013년 11월 23일 이후 '''첫''' 분데스리가 경기를 뛰었다. 공교롭게도 친정팀 호펜하임 홈이었고, 게다가 마지막 분데스리가 경기가 바로 프랑크푸르트 원정이었다. 1년이나 실전 경험이 없었음에도 괜찮은 선방을 수 차례 보여줬으나, 오프사이드 오심, 판단 미스, 수비 집중력 부족 및 세컨볼 불운으로 3골을 먹히며 3:2로 패배했다. 팀의 넘버 원 케빈 트랍이 복귀하면 다시 밀려날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그래도 다시 프로 무대에서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점으로 위안을 삼자.
MLS 진출을 선언했다.[3] 하지만 어느 팀과도 협상이 진전되지 못했고, 2016년 3월, 현역 은퇴를 선언하게 되었다.

3.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에는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독일에 이름을 올리면서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에 출전하였고,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도 예만과 칸에 이은 3rd 골키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2006년 - 2007년에는 위의 둘과 꿀리지 않는 실력으로 차기 독일 국가대표 넘버원 골키퍼로 손꼽혔고, 계속해서 대표팀에 차출되었다. 슈투트가르트 시절에는 올리버 칸, 로베르트 엔케 등과 더불어 분데스리가 최고의 골키퍼이자, 독일 국가대표 골키퍼의 '''미래였다'''[4].
하지만 발렌시아시절 삽질로 인해 유로 2008 본선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로베르트 엔케, 레네 아들러, 마누엘 노이어 등에게도 밀렸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도 이름을 못 올렸고, 그렇게 잊혀졌다.(...)

4. 여담


[image]
슈투트가르트 시절엔 꽃미남 소리를 들을 정도의 미모를 자랑했으나 발렌시아를 거치고 난 후의 사진들을 보고 단 한 줄로 간단히 요약하자면 '''고생한 티가 난다'''.
[1] 발렌시아에서의 삽질은 쿠만의 괴상한 전술고 그렇고 기형적인 선수 구성도 한 몫 한다. 중앙의 살림꾼인 알벨다와 수비의 핵 아얄라를 급작스레 빼버리는 탓에 수비는 단번에 흔들리고 그대로 망했어요! 쿠만의 기행의 최고봉은 오른쪽 윙어인 호아킨을 공격형 미드필더, 원톱 스트라이커로 기용하고, 30유로짜리 선수라 혹평한 것. 또한 오른쪽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하비에르 아리즈멘디를 풀백으로 기용한 것도 또다른 기행. 오죽하면 국내 발렌시아 당사인 아문트에서는 로날드 쿠만이 영원한 '''금지어'''일 정도다.[2] 그나마 이 골도 크로스가 골라인을 벗어난 후 터진 것이어서 논란이 많았다. 의견이 분분했으나 결국 골로 인정됐다.[3] 프랑크푸르크와 계약 기간이 남아 있었으나, 본인이 계약해지 하길 원했다.[4] 현재의 마누엘 노이어'''보다도''' 더욱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