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시나메
1. 개요
کوش نامه
중세 이란 서사시. 배경으로 한국사의 신라(시기상 통일신라)가 등장해 여러 차례 한국에 소개되기도 했다.
쿠시는 사람 이름이고 나메는 책이란 뜻이므로 쿠시의 책이다. 나메는 서사시나 사전의 의미로도 쓰이니 대충 "쿠시의 서"나 "쿠시 서사시"라고 보면 된다.
2009년 영국국립도서관에서 이 서사시의 필사본이 발견되어 이희수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연구팀과 이란,영국등 관계국 학자들의 공동연구와 해석을 통해 2014년 펴낸 것이 쿠시나메.
2. 주요 등장인물
- 아비틴 : 페르시아의 왕자
- 프라랑 : 신라왕 타이후르의 공주로 아비틴과 결혼을 하게 된다.
- 페레이둔 : 아비틴과 프라랑의 아들로, 페르시아를 되찾은 영웅
3. 줄거리
내용은 사산조 페르시아가 아랍인(이슬람 제국) 군대의 침공으로 멸망하자 페르시아의 왕자 아비틴이 도망쳐서 당나라로 망명했으나, 중국의 대혼란기에 이란인들의 안전이 위협받자 주변국 마친왕의 주선으로 신라로 망명했다. 신라에 도달하니 신라왕 타이후르[1] 가 환대하였고, 아비틴은 신라왕 타이후르와 폴로 경기를 하거나 사냥을 즐기기도 했다.[2] 또 신라-이란 연합군(!)을 결성하여 신라에 침입해 온 중국군을 물리치고,[3] 중국의 성을 두 달간이나 봉쇄하고 마침내 함락시켜 세력을 대륙에까지 떨쳤다.
전쟁 후 신라로 돌아온 아비틴은 신라 공주 프라랑과 결혼했다. 아비틴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렸고, 공주 프라랑은 아들을 임신했다. 그런 어느 날, 그의 꿈에 신이 나타나 계시했다. 그대의 아들이 아랍의 폭정자 자하크를 물리치고 멸망한 페르시아를 위해 복수하리라는 것이었다. 이에 아비틴은 프라랑과 함께 이란으로 귀국했다.
이란에 온 프라랑이 아들을 낳았으니 이름을 페레이둔이라 했다. 그러나 아비틴은 자하크에게 잡혀 곧 처형당하고 말았다. 훗날 아들 페레이둔은 원수 자하크를 철끈으로 묶고 그의 군대를 물리쳐 이란의 구국영웅이 되었다. 페레이둔은 이 소식을 외조부 타이후르에게 보냈으나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고, 왕위를 이어받은 아들 가람에게 전달되었다. 페레이둔과 가람의 우정과 친선은 대를 이어 계속되었다.
이상의 이야기는 신라와 페르시아 간에 어느 정도의 교류와 교감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4] 다만 실제 역사라기보다는 적당히 신비롭고 막연한 이국적 이미지를 활용한 신화로 이해하는 편이 온당할 듯. 예를 들면 나비부인이나 투란도트의 사례처럼 말이다.
상세 내용은 #1, #2
여기서 나오는 'Silla'가 신라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그 근거로써 중국 앞바다 해안에 '6개의 섬'으로 된 신라가 있다는 구절이 틀렸다는 것.# 신라는 섬이 아니라 실제로는 한반도이므로 묘사가 다르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인데, 사실 중국에서 신라로 가기 위해서는 당나라의 산동반도에서 배를 타고 한반도 해안선을 따라 4~7번 육지에 배를 대어 보급을 하면서 신라에 도달했다. 고구려와 발해는 신라의 적국으로 북쪽 육상통로는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5] 따라서 중국이나 그 서쪽 나라 사람이 신라에 배를 타고 가면 해당지리를 잘 모르는 페르시아인 입장에서는 신라를 섬으로 이뤄진 나라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쿠시나메뿐 아니라 다른 중세 이슬람권 지도나 좀 더 나중에 근세 서양에서 동아시아를 그린 지도를 보면 한반도를 섬으로 잘못 그린 케이스가 계속 나온다.
그리고 줄거리 자체가 실제로는 일어나지 못한 '아랍에 대한 복수'로 끝나는 데서 알 수 있듯 애초에 이 이야기는 현실적인 역사 기록이 아니라 임진록[6] 이나 박씨전과 비슷한, 페르시아의 고전 대체역사물 문학이다. 즉 전제부터가 그런데 신라사 파트라고 꼭 실제 역사와 일치해야 할 필요는 없다.
[image]
2013년에 KBS에서 2부에 걸쳐 쿠쉬나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도 했다.
[1] 사산조 페르시아 멸망 당시 신라왕은 무열왕-문무왕이었다. 여러가지 기록을 참고해서 볼 때 문무왕시기일 가능성이 높다.[2] 이 폴로라는 경기는 신라시대와 고려시대 때 격구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널리 성행했던 스포츠이다.[3] 실제로 신라가 사산왕조 멸망 19년 후 중국과 전쟁을 하긴 했다. 물론 실제 역사에선 이란과 연합을 하진 않았다.[4]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 페르시아(파사국)을 여행한 것이 나오고, 반대로 중동 측의 지리서나 세계지도에서도 신라가 등장한다. 원성왕릉의 호인석이나 처용을 중동인으로 보기도 한다.[5] 실제로 김춘추가 중국을 사신으로 갔다오다가 황해 바다에서 고구려 수군을 만나서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온군해 문서 참조.[6] 조선시대에 쓰인, 임진왜란의 보복으로 조선군이 일본에 쳐들어가고 항복을 받아내는 내용의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