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 매튜슨

 

'''크리스티 매튜슨의 주요 수훈 /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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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올센추리 팀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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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크리스티 매튜슨
Christy Mathewson
'''
'''포지션'''
'''투수'''
'''}}}#ffd700 득표수}}}'''
'''}}}#ffd700 249,747}}}'''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color=#373a3c> '''1905'''
<color=#373a3c> '''1921'''





'''메이저 리그 투수 트리플 크라운'''
사이 영
(보스턴 아메리칸스, 1901년)

'''크리스티 매튜슨
(뉴욕 자이언츠, 1905년)'''
루브 워델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05년)

크리스티 매튜슨
(뉴욕 자이언츠, 1908년)
'''메이저 리그 투수 트리플 크라운'''
크리스티 매튜슨
(뉴욕 자이언츠, 1905년)
루브 워델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05년)

'''크리스티 매튜슨
(뉴욕 자이언츠, 1908년)'''

월터 존슨
(워싱턴 세네터스, 1913년)


<colbgcolor=#000000>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No. NY'''
'''크리스토퍼 "크리스티" 매튜슨
(Christopher "Christy" Mathewson)[1]
'''
'''출생'''
1880년 8월 12일
'''사망'''
1925년 10월 7일
'''국적'''
[image] 미국
'''출신지'''
펜실베이니아주 팩토리빌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00년 뉴욕 자이언츠 입단
'''소속팀'''
뉴욕 자이언츠(1900~1916)
신시내티 레즈(1916)
'''감독'''
신시내티 레즈(1916~1918)
1. 소개
2. 선수 시절
2.1. 데뷔 과정
2.2. 뉴욕 자이언츠의 에이스
3. 연도별 기록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5. 감독 시절
6. 제1차 세계 대전
7. 투구 스타일
8. 모데카이 브라운과의 라이벌 관계

[clearfix]

1. 소개


[image]

'''승리를 통해서는 작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패배로부터는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초창기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이자 '''역사상 최고의 우완투수중 한 명'''으로 피트 알렉산더와 함께 다승 공동 3위에 올라있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최초의 5인 중 한 명이다. 스크류볼의 대가이자 당대 최고의 투수이지만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커리어를 일찍 끝내고 요절해버린, 루 게릭과 비슷한 수준의 기구한 삶을 산 인물이기도 하다.
뛰어난 성적에 더해 금발벽안의 미남으로 17시즌 동안을 뉴욕 자이언츠에서 뛴 당대의 슈퍼스타였고, 역사상 최고의 투수라 불리는 아메리칸리그의 월터 존슨과 쌍벽을 이루었다.
통산 성적은 373승 188패. 4788.2이닝. ERA 2.13. 2504삼진. BWAR 103.7.

2. 선수 시절



2.1. 데뷔 과정


[image]

'''"하버드 졸업생처럼 교양있게 말하고, 배우처럼 잘생겼고, 비지니스맨 같이 행동하고, 그리고 매우 신사적이죠."'''[2]

호머 크로이, 작가

매튜슨은 1899년 뉴잉글랜드 리그의 야구팀과 계약을 맺고 그 다음 시즌, 캘리포니아 리그의 노포크 팀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20승 2패'''를 기록한 후 뉴욕 자이언츠가 덥썩 그와 1500불에 계약을 맺는다. 그러나 바로 선발로 나선 세 경기에서 내리 '''3패(...)'''를 기록한 후 계약 파기 및 계약금을 환불(...) 곧바로 신시내티 레즈에서 100불에 드래프트로 그를 뽑아갔으나 다시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다.(응?).[3][4]

2.2. 뉴욕 자이언츠의 에이스


다시 자이언츠로 트레이드 된 매튜슨은, 1901년 만21세의 나이로 ERA 2.41에 20승을 기록하며 놀라운 활약을 하였다. 하지만 이 젊은 투수가 얼마나 오래 활약할 지 의문이었던 감독은 유격수와 외야수 연습을 지시했지만, 자이언츠로 온 감독 존 맥그로가 이를 중단시켰다. 그 후 1903년부터 1914년까지 매튜슨은 '''매년 22승 이상'''을 기록하는 투수가 된다.
1905년에 다승, ERA, 탈삼진에서 1위를 달성하며 투수 부문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했고, 같은해 월드 시리즈에서는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를 상대로 '''1차전 4피안타 완봉승, 이틀 후 4차전 4피안타 완봉승, 3일 후 5차전 6피안타 완봉승'''을 기록하며 자이언츠를 우승으로 이끈다.
다음 해인 1906년에는 디프테리아에 걸려 고생했으나 ERA 2.97에 22승-12패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5] 물론 병이 나은 다음 해 1907년에 다승왕, 탈삼진왕을 차지하고 1908년에 또 한번 트리플 크라운(...)[6]
[image]
1913년, 뉴욕 자이언츠
그러나 그 해 페넌트레이스는 통과하지 못했다. 1908년은 바로 시카고 컵스가 우승한 해(...)
그 다음 해 1909년에는 아깝게 2승 차이로 다승왕을 놓쳤지만 '''ERA 1.14'''와 승률왕을 기록하였다. 특히 1.14의 방어율은 밥 깁슨의 1.12에 이은 역대 5위. 데드볼 시대라는 점을 물론 감안해야 하지만 조정 ERA로도 222다. 그 다음 해에는 다시 한번 다승왕을 차지하고 1911년에는 루브 마콰드[7]와 원투펀치를 이루며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둘 모두 프랭크 베이커[8]에게 결승홈런을 얻어맞고 우승 문턱에서 패배한다.
다음 해 1912년에 또 다시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다. 상대는 보스턴 레드삭스. 매튜슨은 '''3경기 3완투 ERA 0.94'''라는 환상적인 투구를 보여줬지만, 야수들은 이에 전혀 보답하지 못해 실책을 연발하면서 '''0승 2패'''로 고배를 마셨다(...)
1913년에 다시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여 필라델피아를 상대로 '''2완투 1완봉 ERA 0.95'''를 기록하였으나 1승 1패에 그쳤고, 팀은 다시 우승을 놓쳤다. 그나마 정규 시즌에서 다시 한번 방어율왕을 기록한 게 위안.

3. 연도별 기록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fWAR
bWAR
1900
NYG
6
33.2
0
3
0
.000
5.08
37
1
20
15
32
19
1.693
-0.1
-0.6
1901
40
336.0
20
17
0
.541
2.41
288
3
97
221
131
90
1.146
5.4
9.0
1902
35
284.2
14
17
0
.452
2.12
246
3
77
164
118
67
1.135
3.8
4.0
1903
45
366.1
30
13
2
.698
2.26
321
4
100
'''267'''
136
92
1.149
7.5
9.9
1904
48
367.2
33
12
1
.733
2.03
306
7
78
'''212'''
120
83
1.044
6.7
5.4
1905
43
338.2
'''31'''
9
3
.775
'''1.28'''
252
4
64
'''206'''
85
48
'''0.933'''
7.4
9.6
1906
38
266.2
22
12
1
.647
2.97
262
3
77
128
100
88
1.271
3.7
2.5
1907
41
315.0
'''24'''
12
2
.667
2.00
250
5
53
'''178'''
88
70
0.962
'''6.8'''
'''8.6'''
1908
'''56'''
'''390.2'''
'''37'''
11
'''5'''
.771
'''1.43'''
'''281'''
5
42
'''259'''
85
62
'''0.827'''
'''10.8'''
'''11.8'''
1909
37
275.1
25
6
2
'''.806'''
'''1.14'''
192
2
36
149
57
35
'''0.828'''
6.9
'''9.7'''
1910
38
318.1
'''27'''
9
0
.750
1.89
292
5
60
184
100
67
1.106
7.5
8.1
1911
45
307.0
26
13
3
.667
'''1.99'''
'''303'''
5
38
141
102
68
1.111
6.8
7.9
1912
43
310.0
23
12
5
.657
2.12
311
5
34
134
107
73
1.113
6.2
7.7
1913
40
306.0
25
11
2
.694
'''2.06'''
'''291'''
8
21
93
94
70
'''1.020'''
5.3
7.1
1914
41
312.0
24
13
2
.649
3.00
314
'''16'''
23
80
133
'''104'''
1.080
3.3
0.5
1915
27
186.0
8
14
0
.364
3.58
199
'''9'''
20
57
97
74
1.177
1.7
-1.0
1916
12
65.2
3
4
2
.429
2.33
59
3
7
16
27
17
1.005
0.3
-0.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fWAR
bWAR
1916
CIN
1
9.0
1
0
0
1.000
8.00
15
1
1
3
8
8
1.778
0.0
-0.3
1916 시즌 합계
13
74.2
4
4
2
.500
3.01
74
4
8
19
35
25
1.098
0.3
-0.4
<color=#373a3c> '''MLB 통산
(17시즌)'''
<color=#373a3c> 636
<color=#373a3c> 4788.2
<color=#373a3c> 373
<color=#373a3c> 118
<color=#373a3c> 30
<color=#373a3c> .665
<color=#373a3c> 2.13
<color=#373a3c> 4219
<color=#373a3c> 89
<color=#373a3c> 848
<color=#373a3c> 2507
<color=#373a3c> 1620
<color=#373a3c> 1135
<color=#373a3c> 1.058
<color=#373a3c> 90.0
<color=#373a3c> 99.8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크리스티 매튜슨
92
350
303
84[9]
HOF 입성자 평균
40
185
100
50
  • JAWS - Starting Pitcher (7th)

career WAR
7yr-peak WAR
JAWS
크리스티 매튜슨
101.7
66.5
84.1
선발투수 HOF 입성자 평균
73.9
50.3
62.1

5. 감독 시절


1916년 에드 로시[10]와 함께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 되었다. 그 해 플레잉 코치로 전향하여 단 1승만을 거두고 이듬해와 그 다음 해 중반까지 감독으로 재직하여 164승 176패를 기록했다.

6. 제1차 세계 대전


[image]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매튜슨은 아내의 결사 반대에도 불구하고(이미 당시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군 면제 대상이었다.) 대위의 계급장을 달고 화학병으로 참전했다. 타이 콥, 조지 시슬러 등과 함께 독가스 제거, 오염지대 개척 임무를 담당하였으나 '''훈련 과정에서 실수로 화학 가스를 흡입하고 만다.''' 전쟁이 끝난 후 3년간 뉴욕 자이언츠에서 코치직을 맡았으나, 대부분의 시간을 가스 흡입으로 인한 후유증과 싸우는 데 보냈다.
[image]
그가 말년에 지냈던 휴양지의 저택
1923년에 그는 다시 현장에 복귀했으나, 이미 병세가 너무 위중한 상태였고 그로부터 2년 후인 1925년, 45세의 나이로 아깝게 요절하고 만다. 그가 죽기 전 유언은 다음과 같다.
'''‘나는 결코 야구든, 인생이든 비겁하지 않았다.’'''

7. 투구 스타일



선수생활을 했을 때의 체격은 신장 6피트 2인치(188cm), 체중 90kg로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큰 체구였다. [11] 동시대의 월터 존슨이 불같은 강속구로 리그를 호령했다면 매튜슨은 '''통산 BB/9'''이 '''1.6개'''인 것에서 알 수 있는 정교한 제구력과 '''80구 이하의 완투 경기가 9경기'''나 될 정도의 공격적인 피칭으로 타자들을 제압했다. 그야말로 19세기의 그렉 매덕스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매튜슨의 연속 69이닝 무볼넷 기록을 경신한 것도 그렉 매덕스. 다만 그렉 매덕스가 엄청난 무브먼트를 지닌 투심 패스트볼과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는 체인지업을 가지고 있었다면, 매튜슨에게는 당시 '페이드어웨이'라고 불린 스크류볼과 커브가 있었다. 투수가 동일한 투구폼에서 다른 구종을 던질 수 있을 때가 가장 이상적인 경우인데, 매튜슨의 경우는 커브와 스크류볼을 던질 때의 투구폼이 똑같았다. 같은 투구 동작에서에서 한 놈은 이리 오고 다른 놈은 반대쪽으로 날아오니 타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죽을 맛.
1911년 월드시리즈 당시 찍힌 그의 투구폼 사진이 현대 야구팬들을 놀래킨 적이 있다. 스트라이드가 톰 시버를 연상시킬 정도로 엄청나게 넓다. 데드볼 시대에 투수들이 설렁설렁 던졌다는 편견에 일침을 가하는 자료중 하나.

8. 모데카이 브라운과의 라이벌 관계


[image]

'''"브라운 vs 매튜슨. 야구팬들을 위한 올해 최고의 선물"'''[12]

1900년대 내셔널리그는 자이언츠와 컵스의 양분 체제였다. 그리고 크리스티 매튜슨과 모데카이 브라운은 각각 자이언츠, 컵스의 당대 최고의 에이스였다. 브라운의 통산 승수는 239승에 불과(...)하지만 이는 그가 매튜슨보다 7년이나 늦게 데뷔했기 때문이었으며, 오히려 '''5시즌 연속 1점대 방어율'''을 기록하고 평균 26승을 달성하는 등 사실상 용호상박의 관계였다.
1903년 처음 맞대결을 벌인 이래 총 25번을 격돌하여 브라운이 13승 10패, 매튜슨은 11승 13패를 기록했다. 특히 1908년에 있었던 플레이오프에서의 격돌은 양팀이 98승 55패로 '''동률'''을 기록한 상태에서의 경기였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머클의 본헤드' 사건이 발생하여 컵스와 브라운이 자이언츠와 매튜슨을 제압하게 된다.

[1] 사실 외래어 표기법상 '매슈슨'이 맞지만, 통상 '매튜슨'이라고 쓰므로 이 항목 역시 매튜슨으로 둔다.[2] https://www.si.com/vault/2003/08/25/348692/giants-among-men-exactly-100-years-ago-christy-mathewson-and-john-mcgraw-rescued-the-woeful-new-york-giants-and-helped-make-baseball-the-true-national-pastime[3] 당시 레즈의 구단주 존 T.Bush는 유망한 투수들을 자이언츠로 보내고 자이언츠를 인수할 계획이었다.[4] 이 때 매튜슨과 트레이드되었던 자이언츠의 투수는 에이머스 루지로, 통산 246승을 기록하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대투수다. 선더볼트라는 이름답게 강력한 속구가 주무기였지만, 트레이드 당시에는 이미 부상 및 여러가지 문제가 겹쳐 하락세였고, 1900년 트레이드 다음 해에 3패를 기록하고 은퇴한다.[5] 조정 ERA는 88[6] 이 때 트리플 크라운 뿐만 아니라 '''출장수, 선발 출장수, 완투, 완봉, WHIP, 심지어 세이브까지 전부 1위를 해먹었다,말 그대로 다 해먹은거다'''[7] 본명은 리차드 윌리엄 마콰드(Richard William Marquard). Rube(시골뜨기)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통산 201승을 기록하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좌완투수[8]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와 뉴욕 양키스에서 뛰었던 3루수로 홈런왕의 시초격 되는 인물이다. 홈런 베이커라는 닉네임이 더 유명할 정도.[9] 루스, 콥, 뮤지얼 등이 나눠먹고 있는 타자쪽 HOF 스탯들과는 달리 투수의 각종 HOF 스탯은 월터 존슨이 독주하고 있고, 사이 영이 엄청나게 길고 튼튼한 커리어를 바탕으로 그레이잉크는 1위를 기록중인데, HOF 스탠다드만큼은 매튜슨이 1위다. [10]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신시내티의 외야수로, 2376안타를 기록하였고 역사상 가장 무거운 배트의 사용자이기도 하다. 블랙삭스 스캔들의 상대 팀 외야수이기도 했다. [11] 그의 별명인 Big Six가 그의 큰 키에서 나왔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참고로 베이브 루스가 같은 키인 6피트 2인치이다. 당시로서는 굉장한 체격.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 당시 투수나 타자나 170cm대 선수가 많았고, 160cm대의 작은 체구로 레전드가 된 선수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윌리 킬러나 퍼드 갤빈 같은 왜소한 체격의 레전드들. 현재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 단, 그 시절에도 작은 선수보다는 180cm대의 큰 선수들이 투타 모두 레전드의 주류였다. 사이 영이야 엄청난 체구로 유명하고, 피트 알렉산더나 타이 콥도 185cm였으며, 트리스 스피커, 냅 라조이 등도 다 180cm대였다. 최초의 5인 중 최단신인 호너스 와그너도 5피트 11인치, 즉 180cm였다.[12] 1916년, 9월 1일. 신시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