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알다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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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Aldarion
1. 소개
2. 생애
2.1. 초기
2.2. 에렌디스와의 인연
2.3. 즉위 후 치세
3. 업적
4. 그 외


1. 소개


타르알다리온은 누메노르의 제 6대왕이다. 그는 타르메넬두르의 첫째 자식으로 제 2시대 700년에 태어났으며, 본래 이름은 퀘냐로 '''태양의 친구'''라는 의미의 '''아나르딜(Anardil)'''이다. 알다리온이라는 이름은 퀘냐로 '''나무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머리 색은 외가를 닮아 금발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흑발.
그는 883년 183세의 나이에 부왕에게서 누메노르의 홀을 물려받아 제 6대왕으로 즉위하였으며 1075년에 딸 타르앙칼리메에게 양위할 때까지 192년간 재위했다. 1098년 아르메넬로스에서 398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곤도르-아르노르의 2대 왕 엘다리온과는 다른 사람이다.

2. 생애



2.1. 초기


725년~740년 25살이 되던 이 해에 아나르딜은 외조부인 베안투르[2]와 함께 가운데땅으로 첫 항해를 떠났다. 이 항해에서 그는 키르단길 갈라드에게 조선술과 관리법을 배우고, 2년 후인 727년 늦여름에 누메노르로 돌아왔다. 이 떄 항해를 그만두고자 하는 베안투르는 자신의 배를 아나르딜에게 양도하였다. 이후로도 아나르딜은 자주 항해를 떠나 린돈이나 그 외의 지역에서 몇 년간 머물다 온다.
750년에 아나르딜이 모험가조합을 설립하였다. 그는 아르메넬로스를 떠나 누메노르 동쪽에 있는 로멘나의 항구에 배를 건조하고, 조합본부도 그 곳에 설치하여 거기에서 상주했다. 그가 세운 모험가 조합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명세를 얻게 되고 실력있는 누메노르의 선원들이 조합에 가입하게 되었다. 이후 아나르딜은 가운데땅에 선박 수리를 위해 비냐론드(Vinyalondë)항구[3]를 세운다.

2.2. 에렌디스와의 인연


800년. 항해를 마치고 누메노르로 돌아온 아나르딜에게 타르메넬두르는 누메노르에 머물 것을 명령하였다.
그리고 봄 축제에서 메넬두르는 아나르딜을 그의 후계자로 포고하고, '''누메노르 선박과 항구의 군주[4]'''란 직함을 수여하였다. 그 축제에 베레가르(Beregar)[5]는 딸 에렌디스[6]와 함께 참석하게 되는데, 왕비 알마리엔은 그녀가 맘에 들어 왕실에 들어와 살게했다. 하지만 배를 건조하기 위한 목재를 충분히 공급하기 위해 숲을 조성하는데 바쁜 아나르딜은 거의 에렌디스를 보지 못하였다. 임업에 크게 힘쓰는 아나르딜은 '''알다리온'''이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 6년 후, 알다리온은 다시 항해를 떠나기로 결심,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고할 때 에렌디스를 잠시 보게 되고 그녀를 맘에 두게 되었다. 이후 알다리온과 에렌디스는 자주 만나나 알다리온이 조선을 위해 나무를 벌채하는 것을 싫어하는 에렌디스는 이로 알다리온과 자주 다툰다.
항해에 빠진 알다리온으로 인해 결혼은 점점 미루어지다가 제2시대 870년에 알다리온과 에렌디스는 아르메넬로스에서 결혼하였다. 결혼 후 왕세자 알다리온과 신부 에렌디스는 엘렌나를 한 바퀴 순행하고, 마지막으로 한여름의 마지막 축제가 알다리온의 사촌인 안두니에의 영주 발란딜에 의해 준비된 안두니에로 향했다. 에렌디스가 이 지역 출신이었기에 안두니에의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 모였다. 그 곳에는 에렛세아에서 그들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온 엘다르들 도 있었다. 그들은 선물로 아직 잎이 나지 않은 흰 나무의 묘목과 작은 새 한 쌍을 주었다.
2년 후, 에렌디스는 딸을 낳았는데 이 아이는 엘로스의 후손들 중에서 타르미리엘을 제외하고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었다고 전해지는 앙칼리메였다. 에렌디스는 알다리온이 후계자가 될 아들을 얻기 전에는 배를 타고 누메노르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앙칼리메가 네 살 무렵이 되었을 때, 항해를 하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던 알다리온은 2년 후에 돌아오겠다 약조하고 '''항구 발견자( Hirilondë)'''를 타고 떠났다[7]. 에렌디스는 화가 나 귀환의 푸른 가지를 올려놓지 않았다. 알다리온이 돌아온 것은 5년이 지난 후 였다.
882년 알다리온이 5년 만에 누메노르로 돌아오나, 아무도 나와주지 않았다. 그는 에메리에까지 찾아가나, 에렌디스는 차갑게 그를 대하며 이곳에 오지 말라고 요구하였다. 아홉 살이 된 딸 앙칼리메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알다리온은 딸에게 장차 왕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아르메넬로스로 떠나, 다시는 에메리에를 찾지 않았다. 그가 떠난 후 에렌디스는 슬피 우나, 보다 모질어진다.
누메노르에는 왕이 조언을 구하기 위해 만든, 각 지방의 귀족과 왕의 공포된 후계자로 구성된 왕위자문회(Council of the Sceptre)[8]가 있는데, 이 시기 구성원은 알다리온, 안두니에의 영주 발란딜, 하라스토리니의[9] 영주 할라탄 등이었다.

2.3. 즉위 후 치세


883년 제5대 왕 타르메넬두르가 340세의 나이로 물러나고[10], 아들 타르알다리온이 누메노르의 제6대 왕위에 오른다. 그는 별거 중인 아내 에렌디스에게 왕비로서 '''타르엘레스티르네(Tar-Elestirnë)'''라는 칭호를 내렸다. 이후 누메노르의 왕과 왕비는 왕관 대신에 별처럼 하얀 보석을 이마에 두르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왕이 되자마자 곧 그는 가운데땅을 방문하니, 누메노르를 떠난 첫 왕이 되었다.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는 하라스토리니의 영주인 8촌 할라탄이 섭정을 맡았다. 앙칼리메는 아르메넬로스와 에메리에를 왕래하면서 자라났다.
이즈음 타르알다리온은 길 갈라드에게 말로른의 열매를 선물하였다. 길 갈라드는 열매를 린돈에 심으나 뿌리를 내리지 않았다. 그는 후에 열매 몇 개를 갈라드리엘에게 주었다.
그 후에도 가운데땅을 자주 가는 알다리온은 비냐론드를 재건하기 시작하고, 회색강을 따라 올라가 훗날 사르바드 지역에서 에레기온갈라드리엘을 만나기도 한다. 이 당시 갈라드리엘은 에레기온에 거주하고 있었다.
누메노르인들은 또한 그곳 인간들에게 철을 이용하는 방법 등, 여러 지식과 기술을 전수해주었다.
892년 타르알다리온은 열아홉살인 딸 앙칼리메를 후계자로 선포하였다. 이는 이전의 왕들보다 훨씬 이른 시기로 그들은 100세를 넘긴 나이에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902년에 딸만 하나인 타르알다리온은 세습법을 개정하였으니, 앞으로는 남자든 여자든 제일 맏이가 후계자가 된다. 만일 여자가 맏이이면, 그녀에게는 후계자 거부권이 주어진다. 만일 거부하게 되면, 남자 쪽이든 여자 쪽이든 가장 가까운 친족이 후계자가 된다. 남자가 맏이이면 그에게는 후계자 거부권이 주어지지 않으나 바르다미르의 전례처럼 즉시 양도가 가능하다. 이 경우, 그는 1년간 통치한 것으로 간주된다. 후계자는 반드시 엘로스의 혈통을 이은 사람하고만 결혼해야 하는데 이것은 엘로스의 혈통이 아닌 에렌디스와의 파경 때문에 추가된 것이었다.[11]
이후 알다리온은 종종 앙칼리메를 섭정으로 두고, 자신은 가운데땅으로 항해를 떠났다.
1075년에 딸 타르앙칼리메가 202세의 나이로 누메노르의 제7대 왕이자 첫 여왕에 오른다. 그녀는 엘로스 타르미냐투르 이후로 최장기집권자가 된다. 1285년에 412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는 훗날 누메노르인들이 대양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한 왕이었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그의 딸 타르앙칼리메는 그의 정책을 무시하고, 길 갈라드에게 더 이상 원조를 주지 않았다.

3. 업적


  • 비냐론드 항구
누메노르 최초로 가운데땅에 비냐론드라는 이름의 항구를 건설하였다. 이 항구는 훗날 사우론에리아도르를 침공하였을 때, 누메노르인들이 그를 저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된다.
  • 모험가 조합설립
그가 세운 뱃사람들의 모임인 '''모험가 조합'''에는 누메노르의 믿을 수 있는 모든 뱃사람들이 가입하였다.

4. 그 외


더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다.
누메노르의 법들 중 잘 알려진 엘로스 혈통은 엘로스 혈통과 결혼해야한다는 법과 남녀를 불문하고 가장 맏이가 왕위를 계승한다는 법을 만든 인물이다. 전자의 경우,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읽지 않는 독자들은 반지의 제왕 부록과 실마릴리온의 설명만 보고 법을 만든 왕이 엘로스 혈통을 아닌 배우자를 맞이하고는 일찍 사별하여 이런 비극이 되풀이하는 것을 막고자 이런 법을 만들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황당하게도 왕비인 에렌디스와의 파경 탓에 만든 것이다. 에렌디스는 알다리온이 가정을 돌보지 않고 바다만 싸돌아다녀서 알다리온을 싫어한 것인데, 알다리온은 에렌디스가 자신의 항해를 못 견뎌하는 이유를 에렌디스가 엘로스 혈통이 아닌 상대적으로 짧은 혈통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판단하고 엘로스 혈통의 혼인에 관련된 법을 만든 것이다.
아울러서 남녀를 불문하고 가장 맏이가 왕위를 계승한다는 법도 알다리온이 집에 별로 없고 바다만 돌아다니느라 아들이 없자, 그냥 딸을 왕위계승자로 내세운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알다리온에게 아들이 없으므로 나라 전체에서 아들을 생산하기까지는 바다에 못 나가도록 방해하자, 딸을 계승자로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바다에서 돌아다니려고’ 만든 법이다.
본인이 뛰어난 선원이자 누메노르를 해양국가로 키운 왕이지만, 정작 가정은 소홀히 한 탓에 왕비인 에렌디스와는 파경에 치닫고, 딸인 앙칼리메는 아버지를 싫어했다. 이 탓에 타르앙칼리메가 즉위한 뒤에는 아버지의 정책 대부분을 폐기했을 정도.[12]

[1] 항해를 떠나는 '''알다리온'''과 그에게 귀환의 푸른 가지(누메노르의 풍습중 하나이다.)를 건네는 에렌디스.[2] 누메노르 왕립함대의 초대함장이다. 가운데땅으로 처음 돌아온 누메노르의 배들도 이 사람이 이끌었다.[3] 퀘냐로 '''새항구'''라는 의미이다.[4] Lord of the Ships and Havens of Númenor[5] 베오르 가문의 계보표에 따르면, 에렌디스는 바라군드와 벨레군드의 누이이자, 따라서 투린 투람바르의 어머니 모르웬과 투오르의 어머니 리안의 고모였던 베레스의 후손이었다.[6] 이 때 에렌디스는 29세였다.[7] 누메노르인들의 관점에서 이는 매우 짧은 시간만 있다가 떠난 것이었다.[8] 누메노르가 타락하기 전의 ‘왕위 자문위원회(Council of the Sceptre)’에 대한 기록에서는 이 자문위원회는 조언을 통해서 말고는 왕을 좌우하는 권력은 없었다고 하는데, 그러한 권력을 필수적인 것처럼 바라거나 꿈꾸지 않았었다. 자문위원회는 누메노르의 각 구획의 회원들로 구성되었으나, 왕세자 또한 책봉되면 회원이 되어서 그 땅의 정치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왕은 또한 만일 다른 이들이 어느 때든 논의 중인 중대사들에 대해 특별한 학식이 있다면, 그들을 소환할 수도, 혹은 발탁되도록 요구할 수도 있었다.[9] 누메노르의 남동부 지역[10] 그는 예정된 때보다 일찍 물러났는데 그 까닭은 가운데땅에서 닥쳐오는 위협을 막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아들이 더 적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11] 에렌디스의 짧은 수명이 그녀가 알다리온의 긴 항해를 견디지 못하고 그와 다툰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12] 그 탓에 가운데땅에서 누메노르의 지원을 받으며 사우론에게 저항하던 길 갈라드에게만 불똥이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