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올림픽

 


1. 개요
2. 타 무술단체들의 견제
4. 올림픽 입성, 하지만 불안했던 출발
4.1.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기 전까지
4.2. 정식 종목 진입 후의 퇴출 논란
4.3. 판정 의혹
4.4. 올림픽 퇴출 위기의 고찰
5. 라이벌 종목의 올림픽 입성?
6. 변화의 바람으로 세계인의 스포츠가 되다
6.1. 실력의 상향 평준화
6.2. 공격 태권도 지향
6.3. 핵심 종목 진입, 그리고 계속되는 혁신
6.4.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의 평가


1. 개요


올림픽 종목으로서의 태권도와 그에 관련된 내용을 다루는 문서.
태권도2000 시드니 올림픽 때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이는 굉장히 힘들었던 국가간 힘겨루기와 정치적 대결 끝의 결과물이다.[1]
후술하겠지만 태권도의 올림픽 채택은 종목 승리라고 볼수 있다. 아무도 기대 안 하던, 아시아의 반도에서 만들어진 무술로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았으며 세계적으로도 듣보잡이던 종목이 올림픽 종목에 선정되고, 믿기 힘들 정도로 재미있어지고 있으며, 종주국 뿐만 아니라 선진국부터 소말리아나 아프가니스탄같은 최후진국들까지 웃고 울린 세계인의 종목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정말 힘든 고난과 역경 그 자체.

2. 타 무술단체들의 견제


초창기 태권도는 당연히 해외에서 세력이 가라테쿵후 계열 중국무술보다 약했으며 80년대까지 올림픽 차기 종목으로 유력한 것은 가라테였다. 그러나 각 분파가 나뉘어진 가라테는 올림픽 위원회와 교섭할 가라테 전체를 대표하는 단체가 없었다. 그에 반해 태권도는 1978년 9대관 통합을 하는 등 단일화의 길을 걸었다. 또 세계 단체도 WTFITF 이 두 거대단체로 통일되어 있었다. 특히 WTF가 국가적 지원을 받는 국기원에 의해 관리받기에 좀더 공신력이 있어보였을 뿐더러 스포츠화가 많이 진행되어 있던 등의 요소가 뒷받침되었다. 결정적으로 김운용 IOC 위원의 정치적 협상력도 한몫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가라데 유파나 중국무술 단체들 중에는 올림픽에 '전혀' 관심 없는 곳들도 많다. 올림픽에 나가려면 스포츠화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이로인해 수련 체계가 바뀌어야 하고, 더불어 IOC의 입김에 단체가 영향을 받는가 하면, 정치적으로도 연결이 되는 골치아픈 일들이 산더미처럼 생기기 때문. 그러느니 자기들 유파의 순수성이나 무도이론을 계속 지키고 싶어하는 곳들도 많다. 태권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태권도계의 통합에 큰 잡음이 없었던 건 위에서 설명한 이유도 있지만 70년대에 박정희 정권의 강압적인 통합 정책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로, 태권도를 세계에 내놓을 국기로 키우기 위해 국가권력을 통해 반박의 목소리를 누르고 힘으로 밀어붙인 면이 컸기에 단일화가 이뤄진 거였다. 태권도 항목을 봐도 알 수 있듯이 70년대 전만 해도 태권도는 공수도, 당수도 등등 여러 이름으로 부르며 많은 분파로 나뉘어져 있었다. 우슈도 태권도의 이러한 통합 과정을 참고해 중국공산당에서 통합하려 했으나, 엄청나게 많은 우슈 분파들이 그래봐야 다른 이름으로 만들 거라며 반발을 하도 심하게 해 포기한 바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태권도를 사실상 하나의 조직으로 단일화하는 데 성공했고, 장기간의 적극적인 홍보와 전파로 세계 전역에 많은 경기 인구와 수련 인구를 쌓게 된다. 그리고 신생 독립국으로서 국격 향상을 위해서 국제적 이벤트에 목을 메게 되었다.
태권도는 유도가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올림픽 종목인 된 것을 벤치 마킹하여 스포츠화하면서 올림픽 종목 진입을 목표로 하였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정식종목에 진입과 1988년 서울 올림픽 시범종목으로 됐으나 이러한 급격한 성장은 가라테, 우슈, 북한 및 ITF의 견제를 받게 된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측은 경악하게 된다. 아시안게임에서 태권도가 종목에서 제외되고 대신 우슈가 정식 종목으로 진입한 것. 한국측의 강력한 항의와 1994년 IOC에서 태권도를 2000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결정하면서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종목에 재진입하지만 가라테도 이때 아시안게임 종목에 진입한다.

3. 효자 종목


예전부터 대한민국 선수단이 투기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처럼, 태권도 역시 효자 종목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출전 전체급 금메달[2]을 획득하면서 태권도 종주국의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다만 다른 나라 선수들의 실력도 월등히 좋아지면서 한국의 태권도 우위는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실제로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금메달 1(황경선), 은메달 1개(이대훈)에 머물렀으며 금메달을 2개 이상 획득한 나라가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태권도가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되면서 각국 선수들의 실력이 상향평준화되는 과정이라며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더 많다. 유도도 일본이 금메달 효자종목이었으나 이젠 서구권도 강세이듯이, 그리고 유도계의 상층부에 일본 외의 다른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이고 있는 것처럼 머지않아 태권도도 그렇게 될 거라는 전망이 있다. 물론 이는 한국인 사범들이 해외에 많이 나가서 태권도를 전파한 결과로, 실제로 태권도에서 금메달을 딴 외국 선수들을 살펴보면 감독이 한국인인 경우가 많다.

4. 올림픽 입성, 하지만 불안했던 출발



4.1.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기 전까지


태권도 협회에서 올림픽에 태권도를 도입시키기 위해서 세부 종목을 2가지 방향으로 논의했는데, 하나는 현재와 같은 대전 방식이고, 또 하나는 품새를 시전하고 이를 점수로 매겨서 평가하는 방식[3]을 고려했다고 한다. 후자의 경우는 보나마나 '판정 비리'가 나올 게 너무나 뻔했는데,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일단 재미가 없었다. 결국 이 방식은 포기하고, 대전 방식으로 올인했다고 한다.
대전 방식으로 결정하고 나니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은 선수 보호 문제였다고 한다. 경기중 선수가 부상당해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태가 발생하면 안된다고 IOC 에서 요구했다. 태권도에서 가장 특징적으로 내세우는 것이 '다리를 이용한 공격'인데, 주먹보다 훨씬 파괴력이 큰 다리로 상대방의 머리를 직격하면 뇌진탕으로 병원 실려가는 사태가 발생하기 쉽다는 점이다. 권투권투글러브가 어느 정도 완충 작용이라도 해주지만, 태권도 선수에게 말랑말랑한 글러브 신발(...)을 신고 경기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먼 훗날 비슷한 물건이 나오긴 하나, 이것도 사실 완벽히 충격흡수가 된다고 할 만한 물건은 아니다.
결국, 헤드기어와 가슴보호구를 착용하고 경기하도록 규칙을 만들고 나서야 겨우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4.2. 정식 종목 진입 후의 퇴출 논란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문서들을 통해 태권도 관계자들의 현실 인식을 볼수 있다. 이런 신문 사설도 있었다. 올림픽 퇴출 종목에 대한 네이버 지식인 답변도 있다.
요약하자면, 당장 전직 국기원장과 태권도 전문 무술 웹진에서도 재미없는 시합이다라고 밝히고 있을 정도로, 이전의 시합 진행방식은 처참하게 흥미끌기에 실패했다. 사실 올림픽에서 태권도 퇴출 논의가 2004년부터 있어왔고, 그때에도 이미 재미없는 시합이란 반응이 많았으나 거기에 대해서 태권도인들이 별로 심하게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다가, 2008년 즈음에나 룰과 장비의 개선이 시도되었다.
올림픽 태권도 시합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살펴보자면, 태권도 시합은 포인트제다. 발차기를 제대로 명중시키면 점수가 크게 올라가게 되고, 서로 점수를 얻고 잃지 않기 위해 빠르게 치고 빠지는 공방을 통한 호쾌한 경기를 기대받았다. 그러나 실제 경기 양상이 기대와 완전히 정반대로 나타났는데, 양 선수가 서로 점수를 잃지 않으려고 눈치보고 스탭만 계속 밟다가, 먼저 점수를 딴 선수는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지 않고 도망가는 양상이 벌어진것이다. 게다가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는 선수보다, 눈치보다가 한대 치고 도망가는 선수가 유리한 룰[4] 때문에 태권도 시합의 절반 가량은 두 선수가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서로의 눈치만 보는것으로 진행이 되었다. 여기에 문제를 느낀 태권도인들에 의해 국기원에서도 룰 개정이 논의가 진행이 되었으나, 위에서와 같이 진짜로 심각하게 받아들여 룰 개정이 이뤄진 것은 올림픽 퇴출종목 투표에서 겨우 2표차로 살아남은 뒤다.
한국인들에게도 거의 잊혀진 태권도 경기는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문대성 선수가 결승에서 뒤돌려차기 KO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따면서 주목을 받았으나, 이 역시 문대성 선수 개인에 대한 관심 차원에서 머물렀다.

4.3. 판정 의혹


판정 의혹과 판정 불복이야말로 태권도 퇴출 논의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으로, 아마추어리즘의 스포츠 정신을 강조하는 올림픽에서 당장 심판진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불만이 나온다는것은 큰 문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결국 판정에 불만을 갖고 선수 코치들과 심판진이 대립하는 모습이 나왔다.
게다가 전자호구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기술이 맞았는지 안맞았는지를 판단할 수단이 심판진의 눈과 귀 밖에 없었기에, 많은 선수들이 몇번 발차기 후 '맞췄다'라는것을 어필하려고 두손을 번쩍 들던지 환호성을 지르던지 액션을 취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호쾌한 발차기가 주를 이루는 태권도의 이미지와 다르게, 올림픽에서의 태권도는 눈치보면서 제자리에서 뛰다가 발차기 하고서 환호성 지르고 도망다니는 사람이 이긴다는 이상한 양상이 벌어졌던 것. 실제 경기를 보면 두 명이 똑같은 자세로 서로 걷어차고, 먼저 찬 사람이 뒤로 빠져서 펄쩍펄쩍 뛰고, 다시 두 명이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서로 걷어차고, 한 명이 다시 손을 들고 펄쩍펄쩍 뛰는 것이 경기 끝날 때까지 끝없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그러다보면 게임이 끝나고 채점에 들어가는데, 일반인의 눈으로 봐서는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점수에 포함되는지 클리어하지 않기가 일수였다.
한국인들조차 참지 못하고 채널을 돌려버릴 정도였으니 외국인들 눈에 어떻게 보였을지는 말할 필요도 없던 것.

4.4. 올림픽 퇴출 위기의 고찰


위와 같은 상황에서 차라리 태권도를 빼버리고 다른 종목을 넣자는 의견이 떠올라 위기감이 심하게 돌았고, 실제로 2012 런던 올림픽 개최를 결정지은 2005년 싱가포르 총회에서 종목 퇴출 여부를 결정하는 회의에서 투표를 하였을 당시, 단 두 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남았다. 이후에도 채택 여부를 놓고 가슴을 졸였지만 다행히 2016년 올림픽까진 정식 종목으로 남게 되었다. 이런 불안한 위상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과제였는데, 기껏 올림픽 종목에 포함되는 경사를 만들어 놓고 이제는 어떻게 하면 올림픽 종목에서 빠지지 않을 것인가를 걱정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현재 올림픽 투기 종목의 현황을 살펴보자면, 태권도와 유도, 레슬링, 아마추어 복싱, 펜싱이 있다. 이미 투기 종목이 충분히 있어서 더 늘릴 필요가 있느냐 하는 여론도 있어서 올림픽 종목의 난립을 막기 위해 다른 투기종목이 추가되려면 기존 올림픽 종목에서 비슷한 것을 빼고 들어가야 하는데, 복싱, 유도, 레슬링은 지명도나 배경이 워낙 크기에 사실상 퇴출이 불가능하니[5] 이 중에서 가장 만만했던 게 태권도다. 때문에 비슷한 종목으로 자주 꼽히는 가라테우슈의 추격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태권도는 올림픽의 기준에 맞추려고 개혁을 단행하였으며 전통 태권도의 기술이 제한을 받게 되었다. 경기 태권도가 발차기 특징을 살려 90%의 기술이 발차기법을 차지하여 속칭 발의 예술이라 불리었다. 이러한 동작들의 간결화가 동작들을 장악하여 수치화하여 평가하기에 유리하였다. (중략)

올림픽 경기의 승패에 대한 평가 기준은 모두 표준화와 수치화로 되어 있다. (중략) 태권도의 규칙을 심플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초창기에 격투 박치기 유사 종목의 경기 규칙을 받아들이고 본받았기에 가능했다. 보급하기 편하고 통일된 점은 글로벌 발전에 견고한 초석이 되었다.-무술과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으로서 채택에 관한 연구 #


5. 라이벌 종목의 올림픽 입성?


그런데 가라테와 우슈가 올림픽 종목의 관점에서 태권도보다 유리한가? 막상 실상을 따져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두 종목은 현재로서는 크게 유리한 부분을 집기 어렵다.
일단 올림픽 종목이 포화 상태가 되면서 추가 진입이 매우 어려워졌다.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 진입 후 라이벌들의 우려는 현실화됐다. IOC 총회에서 올림픽 비대화를 막기위해 종목을 28개로 못박으면서 신규 진입은 기존 종목을 밀어내고 진입해야 하는 제로섬 게임이 됐다. 가라테의 경우 2005년 종목 투표에 도전 했으나 실패하고, 2020년 도쿄 올림픽 때 개최국 버프로 겨우겨우 입성하였다. 게다가 올림픽 출전을 위해 일부 선수층이 태권도로 전향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는 셰이카 마이타 알막툼 (Sheikha Maitha Al Maktoum | Sheikha Maitha Bint Mohammad Bin Rashid Al Maktoum). 두바이 공주로 알려진 사람으로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가라테 은메달리스트 이나 올림픽 출전을 위해 태권도로 전향,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나왔다. WTF는 야! 신난다~를 외치며 선전에 써먹고 있다. 우슈의 경우 유도와 태권도의 전례에 따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시범 종목으로 나오려 했으나 이때는 시범종목이 폐지되어서 여의치 않아서 IOC와 쇼부를 봐서 원래 올림픽 기간 동안은 그 개최도시는 다른 스포츠 대회랑 병행 개최갸 금지이나 IOC 측의 특별 대우로 올림픽 기간 동안 무려 베이징에서 우슈 대회랑 올림픽을 같이 개최하게 되는데(즉 편법)..... 그것으로 끝. 2005년 종목 투표에서 도전하지도 못했다.[6]
또한 국가적인 지원과 압박(?)에 힘입어 분파 통합에 성공한 태권도와는 달리, 가라데와 중국 무술 단체들의 단합력은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며 올림픽 종목으로 선정되는 데 관심없는 세력들도 꽤 있다. 가라테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가장 큰 세력 중 하나인 극진가라테의 경우도 수뇌부가 올림픽에 전혀 관심이 없고, 중국 무술의 메카인 소림사는 현재 중국정부의 공인 체육기관 기능에 충실할 뿐이다.
의외로 두 종목은 심하게 말하면 세계구급으로 까이는 태권도의 하위호환 수준이다. 가라데는 우선 '때리는 척하는' 스포츠라 다리 펜싱이라 까이는 태권도보다 못하고, 우슈는 서양인들의 동양무술에 대한 환상을 처참하게 깨트린(...) 대표적인 종목이다.

5.1. 가라테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종목 진입을 통해 세계화에 힘을 박찬 가라테는 일반적으로 슨도메룰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 흥행의 관점에서 보자면 슨도메의 문제점은 태권도의 보호구 착용 풀컨택트 점수제보다 훨씬 문제가 많다. 태권도는 대충 가져다 대기라도 하지만 슨도메는 아예 몸에 닿으면 실점이라는 룰이기 때문이라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컨택트라는 최소한의 객관적인 기준조차 없기 때문에 심판의 자의성과 판정 불복 가능성이 풀컨택트보다 더 크다. 이것은 전자호구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실제로 아시안 게임에서도 이 문제가 자주 터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소한 어느 정도 힘으로 차기라도 해야 하는 태권도랑은 달리 아예 갖다 대어도 안되는 난해한 룰인지라 위 영상처럼 경기 자체가 굉장히 재미없게 연출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위 영상은 가장 심한 케이스가 아니라 대단히 일상적인 편이다! 참고로 댓글에서 85 % scream 15 % fight라고 까는 게 압권. 가라테 룰 설명 영상이나 경기 영상을 보면 'This is not Karate.'라는 댓글이 상당히 많이 보이는 편이다.
가라테는 통합된 연맹체보다는 각 '도장'의 힘이 강력하며, 단체의 분열이 매우 심하다는 점도 문제점이다. 각 단체별로 제각기 룰을 지정해서 통일성이 약하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라테의 올림픽 종목화에 가장 적극적인 단체가 유럽이 주축이된 세계가라테연맹(WKF)으로 2005년과 2009년 IOC 총회에서 종목 신청도 이 단체가 주도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일본이 주축인 국제가라테연맹(ITKF)과의 알력 다툼은 심각한 상태로 2005년 IOC 총회 당시 세계가라테연맹(WKF)의 올림픽 종목 신청에 반발하여 로게 IOC 위원장에게 항의서신을 보낼 정도 였다. 그 결과 IOC 측에서는 올림픽 종목 신청 이전에 가라데 내부 의견부터 통합하고 오라고 권고 했을 정도.
게다가 이 중에서 많은 단체가 무도의 이념을 중시하기 때문에 굳이 기를 쓰고 올림픽 스포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 한국은 국위선양을 위해서 태권도를 열심히 밀어줬지만[7], 일본은 가라데를 굳이 그렇게 할 생각이 없는 것[8]이며 다른 무술도 마찬가지이다. IOC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어 적극적인 움직임이 별로 없다. 사족으로 일각에서는 '일본은 이미 유도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왜 가라테까지 욕심을 내는가?'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유도가 올림픽에 있을 필요가 있냐고 항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선 정식 종목이 되었다. 추가 이유는 올림픽 개최국이 1~2개의 선택종목을 자국의 특성에 맞춰 추가할 수 있는 방식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퇴출되었고 2028 LA 올림픽에서도 정식 종목 오를 가능성은 그리 좋지 않다.

5.2. 우슈


1990년 북경 아시안 게임을 통해 국제경기로써 데뷔했으며,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을 통해 종목이 구체화 되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으로 개최국 예우 차원에서 올림픽 시범종목이 되었다. 당시 중국은 유도태권도가 거친 과정인 자국 올림픽 개최에서 시범종목 후 정식종목화를 노렸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올림픽 종목 비대화를 막기위해 종목 선정이 매우 폐쇄적으로 변하면서 신규 진입 종목은 기존 종목을 밀어내고 들어와야해서 매우 가능성이 낮아졌다. 우슈는 2012년 종목 투표2016년 종목 투표에는 후보 종목으로 신청하지 않았고 2020년 종목 투표에 후보로 도전했으나 탈락했다. 태권도가 정식 종목으로 남아있고 아직도 우슈의 보급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 사실상 올림픽 정식 종목 진입은 어렵다.
2010년대 현 시점에서 우슈는 경기 종목으로서의 정비 상태가 매우 미흡하며, 비교적 세계에 널리 퍼져 있고, 고른 경기 인구를 가지고 있는[9] 태권도와는 달리 경기 인구가 중국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는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나름대로 세계화된 태권도와는 달리 우슈는 중국 편중이 훨씬 더 심각하다. 심지어 외국인 심판조차도 얼마 없을 정도이다.

5.3. 결론


태권도는 올림픽 경기 종목으로서는 가라데나 우슈보다 제대로 정비되어 있다. 그리고 가라데나 우슈가 어느 정도 보급된다고 해도 태권도가 훨씬 우위에 있는 것이, 가라데나 우슈 선수가 태권도로 전향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실력이 있다면 가라데나 우슈만을 꼭 고집할 필요성은 없고, '이미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완전하게 정착'되어 있는 태권도 종목에 도전하는 것이 더 좋은 셈이다.
결론적으로 태권도가 적어도 가라데나 우슈에 밀려 올림픽에서 퇴출될 가능성은 없다.

6. 변화의 바람으로 세계인의 스포츠가 되다



6.1. 실력의 상향 평준화


전 세계적으로 태권도를 보급하면서 선수들의 실력도 상향평준화되고, 한국 말고도 수많은 태권도 강국들이 탄생하였다. 한국의 전통적인 메달밭을 뺏길 위기(?)에 처했지만, 이것이 오히려 전 세계가 공유할 수 있는 스포츠라는 명분을 강화해주면서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서의 이름값을 유지하는 데에 득이 되었다. 이는 많은 한국인 사범들이 진출하여 태권도를 세계에 전파한 결과이며, 메달 밭을 뺏기더라도 실력있는 지도자를 해외에 보내서 상향 평준화시키고, 올림픽에서는 한국인 감독이 속한 나라에서 메달을 가져간다면 그것도 종주국으로서의 자부심이 있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비슷한 선례로 양궁이 있다. 실력있는 한국인들이 해외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양궁도 상향 평준화가 되었다. 이에 태권도와 양궁은 국제대회가 열릴 때면 한국인 감독끼리 계모임을 한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수많은 지도자를 해외에 내보내는 나라가 종주국이라는 말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부분. 쇼트트랙도 마찬가지로 전이경 코치의 노력으로 동계종목의 불모지였던 싱가포르에서 쇼트트랙 선수를 출전시키면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싱가포르 역사상 첫 동계올림픽 출전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태권도가 퇴출되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약소 국가들의 진입이 쉬운 종목이기 때문이며, 이는 한국인 사범들의 노력이 크기 때문이다. 굳이 선수 배출이 아니더라도 코이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태권도 전파이다. 해외에 봉사단을 보낼 경우 태권도 사범 자격이 있는 봉사요원을 거의 매 차수 뽑으며, 이들이 수원국에 가서 태권도를 전파한다. 다만 단원들에 대한 테러 위협 때문에 보내지 않게 되었다.
실제로 스포츠 약소국으로 올림픽 메달이 한 개도 없었던 국가에서 태권도로 첫 메달, 첫 금메달을 가져가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아프가니스탄의 로훌라 닉파이 선수는 태권도로 자국에 첫 동메달을,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세르비아의 밀리차 만디치 선수는 자국에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주며 세르비아 내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한국의 이대훈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딴 아흐마드 아부가우시 선수는 요르단에 첫 금메달을 안겨주었고, 그 전까지 올림픽 메달이 은메달 한 개 뿐이었던 코트디부아르는 리우 올림픽에서 태권도로만 메달 2개를 획득했다. (금 1, 동 1) 태권도는 종목의 특성상 진입장벽이 낮고 자본 투자로 인한 격차도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어서 스포츠 약소국 출신 선수들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더 많다는 이점이 있다.
그래서 네티즌들 사이에선 약소 국가들이 돌아가면서 태권도에서 금메달 따는 것이 태권도의 우수성을 알리는 수단이라는 의견도 있다. 개도국의 경우 그 나라에서 태권도 메달을 가져온다면 곧 그 나라에 태권도 열풍이 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각 지역별 태권도 강국으로 북미에서는 미국과 멕시코, 유럽에선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 대표적이며 아프리카에서도 가봉과 북아프리카 지역이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중동은 터키와 이란이 대표적인 태권도 강국이며, 동남아에서도 태국과 필리핀 베트남이 강세이며, 동북아시아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이 모두 태권도를 매우 잘하며 남미에서도 태권도는 브라질과 콜롬비아가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한 강국이다.
특히 터키의 세르베트 타제굴(남자)과 누르 타타르(여자), 영국의 J.제이슨, 몰도바의 아론 쿡[10], 중국의 우징위, 한국의 이대훈, 일본의 하마다 마유 등등 전 세계적으로 정상급 선수가 즐비하다. 보다시피 한 나라가 독식한다기보다는 세계적으로 정상급 선수들이 골고루 분포해있기에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워서 더욱 흥미진진하다.

6.2. 공격 태권도 지향


어렵게 입성한 올림픽 정식 종목이라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WT태권도 수뇌부에서도 변화를 보이면서, 수비만 하는 재미없는 태권도에 대해 페널티를 부과하고 좀 더 공격적으로 시합을 펼칠 수 있도록 규칙을 개선시키기 시작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그 동안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하던 "머리 부분 타격시 2점" 규칙을 추가해 좀 더 적극적인 공격을 유도하고, 판정시비를 없애기 위해 전자 호구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는 등 태권도계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11]
현재는 득점룰이 또다시 바뀌어서 발차기로 머리를 가격할 시 3점, 머리 가격에 한해서 1회의 비디오 판독이 주어지게 되는 등 경기에서 좀 더 다양한 기술을 쓰도록 노심초사하고 있다. 게다가 점점 도망가면 도망갈수록 벌점을 주는 제도는 강해지고 있다.[12]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부터 위의 신형룰이 도입, 거기에 전자 호구를 도입함으로서 좀 더 정확한 판정을 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일단 신형 룰의 효과는 긍정적으로 나오고 있어, 도망가던 태권도 선수들이 좀 더 공격적으로 경기를 하게 되었다. 다만 전자호구는 오작동이 일어나거나 착용 위치가 조금만 달라져도 판정이 달리 나오는 등 아직 개선의 여지가 있는 편. 전자호구 때문에 재미없어졌다는 악평도 있다.

6.3. 핵심 종목 진입, 그리고 계속되는 혁신


2012년 런던 올림픽을 기점으로 하여 드디어 태권도는 재미없는 종목이라는 편견을 깨부술 전환점을 마련하였고, 2013년 IOC 총회에서 핵심 종목으로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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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F가 해오던 여러 실험 끝에,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규정과 경기 방식 진행뿐만 아니라 전자 채점 방식도 개선하였고, 더불어 비디오 리플레이까지 도입되며 아주 큰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우선 링을 8mX8m으로 확 좁혀 도망갈 공간을 최소화하였으며,[13] 전자호구도 광저우 당시의 오작동 문제로 지적받던 라저스트의 터치식에서 대도사의 압력식으로 변경, 대신 머리 공격에는 판정이 완화되어서 비디오 판독 시 발의 터칭이 보여도 득점이 인정되도록 하였다. 앞에서 말한 대로 공개 비디오 판독이 도입되고, 회전 공격은 추가 점수가 부여되어 몸공격 회전계는 2점, 머리공격 회전계는 4점이 부여되도록 규정을 수정했다.
실제로 이런 변화 덕에 2012 런던 올림픽 태권도 경기가 한층 더 동적으로 변화하며 흥미진진해졌고, 올림픽 폐막 이후로도 상당히 호평을 받았다. 특히 이 올림픽에서 재미있는 스포츠를 굳이 규칙을 바꿔서 노잼 만들었다고 대혹평을 받은 유도와 비교되고 있다.
그리고 2013년 IOC 총회에서 핵심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반영구적으로 올림픽에 남게 되어 전 세계가 공유할 수 있는 한국의 스포츠이자 무술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변화의 바람은 계속 이어지면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 좀 더 실전적인 태권도 지향을 내걸고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때 베타 테스트 형식으로 도입했던 8X8 옥타곤 링이 도입되었고, 지난 세계선수권때 시범적으로 시행했었던 전자 헤드기어가 정식으로 도입되었다. 또한, 드디어 올림픽 최초로 컬러도복 사용이 가능해졌다!. 단 일단은 하의만 컬러도복을 입는 것이 허용되었다. 또한 올림픽 펜싱과 동일하게 10초 이내의 시간대로 돌입할 시 100분의 1초 계측모드로 돌입한다.[14]
장기적으로는 단체전 추가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또한 2016년 기준 남녀 성별로 4체급만 존재하는 것을 점차 늘려 일반적인 격투기 종목 수준이자 세계선수권 대회와 같은 7~8체급으로 확대하는 것 또한 과제로 삼고 있다.[15]
2020년에도 혁신이 계속되고 있는데... 시험적으로 격투게임같은 체력 시스템을 도입한 경기를 했다! 뉴스 링크 양 선수에게 기본 100점을 부여한 뒤 명중시킨 부위와 타격한 강도에 따라 상대의 점수를 깎고 상대의 점수가 0이 되면 라운드에 승리한다. 리플란은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6.4.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의 평가


성공적인 룰 개정과 경기 양상의 변화로 런던올림픽에서 호평을 받았던 태권도가 리우 올림픽에서의 지루하고 소극적인 경기 유발로 다시 악평을 듣고 퇴출론이 다시 나오고 있다. 물론 이렇다고 태권도가 진짜 퇴출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태권도는 전 세계적으로 고루고루 메달을 따가는 종목이고 스포츠 강대국과 약소국이 모두 메달을 딸 정도로 저변이 상당히 넓다. 이런 상황에서 퇴출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종주국으로서 메달을 독식하는 상황이 깨져버리고 여러 태권도 강국들이 등장함으로서 오히려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으로서의 위치가 훨씬 더 안정적이고 좋은 평가가 나오고있다.[16] 이대훈이 8강전에서 요르단 선수에게 패하고 먼저 다가가 손을 들어주며 승리를 축하해준것 역시 "종주국은 항상 강해야 한다"는 편견을 깨버리고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보여줌으로서 대호평을 받고 있다.[17]
다만 이건 한국에서만 한정된 이야기로, 대회 초반에 출전한 49kg급 김소희, 58kg급 김태훈의 경기가 재미가 없어서 이런 반응이 나온 것이다. 김소희 선수의 경우 본인의 몸무게 대비 키 자체는 별로 심하지 않으나 상대 선수들이 반대로 장신이다보니 체격상 불리해 소극적인 경기 운영을 했다고 볼 수 있다.[18] 김태훈 선수의 경우 키가 무려 182cm에 달하는 등 머리 공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키에 비해 낮은 체급에서 뛰려는 선수들이 많아지면서 킥의 파워가 떨어져 경기 자체의 박력이 떨어진 면이 있는데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 선수들끼리 대결한 경기들의 경우 재미없다는 여론은 다소 있으나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았고 현장의 관중들의 반응도 축제의 나라답게 열광적이었다.
한국 선수들의 경기스타일에 대한 비판여론 또한 낮은 체급에만 국한된 반응이고 그보다 높은 체급에서는 재미없다는 반응이 그렇게 압도적이지 않은편이다, 특히 이대훈 선수[19]나 오혜리 선수의 경기는 재밌었고 통쾌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다른 국가들간의 경기에선 여자 패자부활전 태국vs이란 대결에서 태국선수가 돌아서 머리차기 4점득점으로 이기고있다가 이란 선수한테 역전당하기도 하고, 남자 80kg 결승에서는 1초 남겨둔 상황에서 머리 공격으로 극적인 역전승도 거두는 등 명경기가 연이어 배출되었다.[20] 관중들도 꽤 온 편이고...
다만 확실히 몇몇 경기에서 선수들이 너무나 맞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플레이를 한다는 점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우리나라 김소희 선수가 초반에 획득한 점수를 9개의 경고를 받으면서까지 시간끌기식 경기를 하자 금메달을 땄음에도 여론이 별로 좋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는 시간을 끄는 플레이를 보이면 한번에 2경고를 주기도 하는등 드러눕는 플레이가 예전에 비해 확연히 줄어들긴했다. 줄어든게 이정도긴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부분들은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견들도 있다.
정리하자면, 한국 시청자들은 한국 선수들, 그 가운데서도 대회 초반에 열리는 낮은 체급 경기만 보고 '재미없다'는 선입견을 갖는다. 그러니 다른 나라, 다른 체급 선수들이 하는 경기도 제대로 보기도 전에 '재미없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얘기다. 실제로 대회 초반 중계를 놓치고 이대훈 선수나 오혜리 선수 경기부터 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태권도 보고 왜 노잼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있었다.
[1]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려면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어야 하기도 하지만 그 종주국의 국력 문제도 매우 크다. 무에타이가 세계적으로 매우 널리 퍼져있으나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기 위한 문턱조차 전혀 밟고 있지 못하고 뜬금없이 무에타이를 거의 베꼈다는 의심을 받는 산타가 올림픽 종목 후보로 계속 올라오는 것을 보자. 한국이 태권도를 올림픽 종목으로 밀어줘서 태권도가 크게 뜬 걸 보고 의외로 태국도 무에타이를 올림픽 종목으로 적극적으로 밀어주려 하고 있으나, 태국의 국력이 한중일에 비하면 좀 많이 부족한 편이라 쉽지 않다. G2인 중국의 산타와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의 가라데도 태권도라는 박힌 돌을 못 빼내서 계속 박터지고 있는 중인데...[2] 원래 세계태권도연맹이 규정하는 체급은 남녀 각 8체급인데, 올림픽 태권도에서는 출전선수를 줄이기 위해 체급을 통폐합하여 남녀 각 4체급으로 실시하고, 특정국의 메달독식을 막기 위해 남녀 각 4체급중 체급당 1명씩 최대 2체급만 출전이 가능하다. 즉 한 나라가 딸 수 있는 금메달은 최대 4개. 아시안게임에서는 남녀 8체급을 모두 실시하며 현행 규정에서는 한 나라가 최대 남녀 6체급씩 참가할 수 있다. 처음인 1986년 대회에서는 남자 8체급만 실시했는데 아무 제한이 없었고, 한국은 7체급에서 금메달을 땄다. 하나는 8강에서 탈락. 당시 권투도 12체급을 싹쓸이했는데 태권도는 하나 놓쳤다.[3] 간단히 말해서 체조나 피겨 스케이팅과 유사한 방식[4] 룰도 그렇지만 큰 기술이 많은 태권도의 특성 상 카운터에 약하다는 문제도 있다. 먼저 공격하는걸 보고 카운터를 넣으면 발차기의 위력+카운터 보정으로 엄청난 데미지[5] 한 때 2013년 2월 12일 부로 레슬링이 올림픽 종목에서 퇴출되었다가 복귀한 적이 있다.[6] 덧붙여 2016년 올림픽 종목으로 추가된 것은 럭비와 골프.[7] 다만 이념 중시 때문에 경기용 품새를 만들어 보급, 태권도 품새를 올림픽 등 국제 대회에서 채택하게 하려는 움직임이 있기는 하다. 동계올림픽의 피겨 스케이팅과 비슷한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8] 가라테의 경우 원래 오키나와의 무술이기 때문에 상당히 배척당했으며, 일본의 경우 이미 국기(國技)인 스모나 정식 올림픽 종목이 된 유도가 있으므로 가라테에 적극적이지 않은 편. 사실 한국처럼 국가적으로 하나의 종목에 집중하는게 특이한 경우이다.[9] 이것도 한국의 열성적인 홍보의 결과다.[10] 원래 영국 소속이었으나 영국 태권도 협회와의 불화로 몰도바로 국적을 변경하게 되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딱히 어처구니 없는 결정은 아니다. 이 링크를 보면 알 수 있다. # 아론 쿡 대신에 출전한 루탈로 무함마드가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넸고, 아론 쿡이 나갔다 한들 체급을 낮춰 출전하는 선수들도 많아 금메달이 유력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4년 뒤 리우 올림픽에서도 루탈로 무함마드는 은메달을 따냈다.[11]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2009년 6월에 '무신(武神)'이라고 하는 태권도 중심의 격투기대회가 열린 바 있으나, 운영 미숙으로 반쯤 망쳤다.[12] 레슬링도 비슷한 문제가 있어서 퇴출 해프닝 이후 태권도처럼 도망가면 바로 경고 및 벌점.[13] 물론 실업연맹 경기에서 쓰는 8X8 원형 코트보다는 느슨한 정도, 그래도 당초 예상이 9X9였던 것보다는 많이 타이트해졌다.[14] 물론 펜싱에서 이걸 도입하는 것은 신아람 선수의 2012 런던 대회 당시 1초 오심 사건때문이지만, 태권도에서 이것을 도입하는 이유는 이른바 발펜싱 현상방지이다. 즉 기존의 "서로 먼저 찼다고 기합지르고 어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 지난 대회때는 비디오 판독을 도입해서 이런 부분을 대폭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이제는 아예 그 비디오판독마저 더 전략적으로 사용하도록 하게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즉 전자호구에도 센서 감지 체킹이 100분의 1초 단위 체킹이 되므로 동시타격 발생 시 좀 더 빨리 터칭한 선수가 더 많은 점수를 가져가게 된다.(그 반대는 카운터 점수만 가져간다. 물론, WTF 규정집 상 전자호구 내에 세팅된 허용 압력값 이상으로 터칭 되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즉 그만큼 코치진들의 머리는 더 아파지게 된다. 다음 경기에 쓸 수 있는 판독 요청 카드가 날아가는 한이 있어도 동시타격으로 인정받아 점수를 나눠 받기 위해서 비디오판독을 걸 것인가, 아니면 그냥 인정하고 넘어갈 것인지 생각을 해야 하는 마당이 되었다.)[15] 다른 격투 종목인 유도는 남자 4체급으로 시작하여, 1980년 남자 7체급, 1992년 이후 남녀 각 7체급까지 확대됐다.[16] 여기서도 한국인 사범들의 노력으로 신생 강국이 등장했다는 소문이 돌면 그것으로도 한국이 태권도 종주국이라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많다.[17] 참고로 이번 대회에서 총 32개의 메달을 20개의 국가가 나눠가져갔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국가가 여럿있다. 요르단&코트디부아르:역사상 첫 금메달, 이란:역사상 첫 여성 메달, 도미니카&니제르: 올림픽 유일한 메달.[18] 경고를 9개씩이나 받으면서 금메달을 땄다며 금메달의 의미를 폄하하는 의견이 있고 이전 버전에도 그러한 서술이 있었으나 다른 투기종목(특히 유도는 지도를 많이 준다.)과 달리 태권도는 경고의 기준을 확 낮췄고, 그 목적은 물론 재밌는 경기진행을 위해서이다. 재밌는 경기를 위해서 경고를 많이 주기 시작한 건데 경고 횟수를 근거로 들어서 태권도 재미없다고 까는 건 자가당착이다. 그렇다고 김소희 선수가 침대축구처럼 의도적으로 경고를 받으면서 시간을 질질 끈 것도 아니다. 개정된 룰의 경우 고의로 매트에 넘어지는 등 선수의 의도가 반영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경고가 주어지기 때문. 물론 경고를 감수하는 태도로 플레이를 한 것은 맞다. 그리고 그게 비난의 여지가 되지도 못한다. 길게 말할 것 없이, 축구에서 2-0으로 이기는데도 공격만 하다가 2-3으로 역전당했던 도하 참사(축구) 당시 여론이 어땠는지 생각해 보자. 김소희가 그런식으로 역전패했으면 '경고 감수하고 지키는 플레이 했어야지'라며 까였을 게 뻔하다.[19] 동메달 결정전에서의 부상투혼이 재미를 배가시켰다.[20] 영국과 코트디부아르 간의 경기인데 코트디부아르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 선수가 딴 메달이 코트디부아르 올림픽 역사상 첫 금메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