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어 바이센베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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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테오도어 바이센베르거'''(Theodor Weissenberger : 1914년 12월 21일~1950년 6월 11일), 독일 공군이 배출한 슈퍼 에이스 조종사로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적기 208대를 격추시켜 항공전 사상 격추수 11위를 기록했다.
2. 초기
독일 제국의 헤센주 뮐하임 암 마인에서 태어난 테오도어는 어렸을 때 국가적인 장려를 받던 항공 스포츠 클럽에 가입해 글라이더로 비행 훈련을 받았고, 조종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 글라이더 조종사로 나서게 된다. 이렇게 민간 항공업계에 입문한 그는 1936년에 공군에 지원 입대했다. 전투기 조종 교육을 마친 그는 부사관 계급으로 1941년 제77전투항공단(JG 77)에 배속되어 구축전투기 Bf 110을 몰게 된다.
테오도어 상사는 1941년 10월 24일에 노르웨이 상공에서 처음 적기를 격추했고 이후 둔중한 중전투기를 몰면서도 23대나 격추시켰는데, 이 전과는 전체 구축전투기 에이스 중에서도 에두아르드 트라트, 베르너 티에르펠더, 에곤 알브레히트, 롤프 칼드락 다음으로 5번째에 해당되는 엄청난 것이다. 이 공로로 1942년 9월에 독일 황금십자장을 수여받고 단발 전투기 부대인 제5전투항공단(JG 5)으로 옮겼다. 거기서도 적기 38대를 격추하고 1942년 11월 13일 기사철십자장을 받았다.
3. 독소전에서
전쟁 동안 375회 출격하여 208기를 격추시킨 그의 전과는 대부분 동부전선과 북빙양 방면에서 기록하였으나 서부전선에서도 33대의 적기를 격추했다. 서방 연합군을 상대로 올린 격추 기록 33건 중 8건은 제트전투기인 메서슈밋 Me 262로 격추한 것이라고 한다. 러시아에서 급격히 상승세를 그리는 그의 신들린 격추 행진은 당대 어느 에이스보다도 더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 시기에 하루만에 적기 5대 이상을 잡는 1일 에이스를 11회 이상 기록했기 때문이다.
4. 본토 방공전
1943년 6월, 승진한 바이센베르거는 JG 5의 제7비행중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12번째 적기를 격추한 뒤인 1943년 8월 2일 곡엽 기사철십자장을 수여받았다. 9월에는 JG 5의 제6비행중대장으로 옮기고 1944년 3월 JG 5의 제2비행단 지휘관으로 승진했다. 1944년 6월 JG 5의 제1비행단을 지휘하여 노르망디 방면으로 침공하는 연합군을 막아내는 방어전투를 수행했다. 노르망디에서만 적기 25대를 격추하면서 1944년 7월 25일에는 드디어 200번째 승리를 거두게 된다. 소련 공군 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대로 평가받는 영미 공군을 상대로도 그의 격추 페이스는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었다.
이후 Me 262로 기종 전환 훈련을 마친 뒤 코만도 노보트니라 불리던 제7전투항공단(JG 7)의 제1비행단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1945년 1월에 소령으로 진급하는 동시에 JG 7의 사령관이 되었고 그 상태에서 더 이상의 출격을 못하고 패전을 맞았다.
전후에는 카레이서가 된 그는 1950년 6월 11일 뉘른베르크 서킷에서 BMW 328로 포뮬러 2 경주를 벌이던 도중에 코너에서 충돌하는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