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 댓
'''슈퍼 아이돌 시절.'''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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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이후로 영국에서 가장 성공한 팝밴드/보이밴드'''[3][4]'''"그들은 1996년 수백만의 소녀를 눈물짓게 했으며, 1년 전 다시 뭉쳤습니다. 그리고 처음과 같은 성공을 거두었지요. 신사숙녀 여러분, 영국에서만 10개의 1위곡[2]
이 있는 테이크 댓(Take That)입니다!"'''
'''— 데이비드 베컴, 2007년 'Concert For Diana'에서'''
'''이후 전세계에서 등장한 모든 보이밴드들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신화적인 보이그룹'''
영국 출신의 테이크 댓(Take That)은 '''60년대 비틀즈 이래[5] 영국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렸으며, 앨범 판매고 또한 비틀즈 이후로 손꼽히는 기록을 세우며 90년대 중반까지 10대 팝 열풍을 일으켰던 그룹이다.'''
초기에는 그룹의 프론트맨이자 메인 보컬이자 작곡가인 '''게리 발로우''', 보컬이자 그룹의 비주얼을 담당했던 '''마크 오웬'''과 '''로비 윌리엄스''', 주로 댄스와 백보컬을 담당했던 '''하워드 도널드'''와 '''제이슨 오렌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1995년 로비 윌리엄스의 탈퇴와 더불어 1996년 그룹의 해체라는 시련을 겪었지만, 2006년 로비 윌리엄스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이 재결합하여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다. 2010년 로비 윌리엄스가 프로젝트 형식으로 재합류했었고, 지금은 제이슨 오렌지마저 음악 활동을 중단하여 3명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여전히 활동은 왕성하게 하고 있는 중.
2. 멤버
- 하워드 도널드 - 1968년 4월 28일 생. 팀에서 맏형이다.
- 제이슨 오렌지 - 1970년 7월 10일 생. 댄스 담당이다.
- 마크 오웬 - 1972년 1월 27일 생. 비주얼 담당.
3. 역사
3.1. 1990-1995: 데뷔, 《Take That & Party》, 《Everything Changes》, 《Nobody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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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발로우는 어렸을 때 전자 키보드를 마스터 한 후 가수의 꿈을 갖고 여러 레코드 회사에 데모 테입을 보냈었다. 이런 와중에 마크 오웬을 만나 듀오를 결성하고 나이젤 마틴 스미스를 만나 보이밴드를 결성하게 된다.'''난 지금도 내가 (테이크 댓을 시작했을 때) 그들에게 말한 걸 똑똑히 기억한다.'''
'''"테이크 댓이 성공하게 되면, 5년 후 너희들은 서로를 싫어하게 될 거다. 그리고 분명히 나도 싫어하게 되겠지.'''
''' 하지만 우린 모두 엄청난 부자가 되어있을거다."'''
''' - 나이젤 마틴 스미스, 당시 테이크 댓의 매니저'''
당시 팝의 흐름은 뉴 키즈 온 더 블록이 히트친 하이-에너지 위주의 댄스팝이 주류였는데 게리 발로우와 마크 오웬은 춤엔 젬병(...)이었기 때문에 맨체스터에서 제일 잘나가던 브레이크 댄스 듀오 -하워드 도널드와 제이슨 오렌지- 를 영입한 후 오디션을 통해 로비 윌리엄스를 뽑아 테이크 댓을 탄생시킨다. [6]
게이 나이트클럽을 순회하며 공연을 하던 테이크 댓은 독립 레이블에서 데뷔 싱글 '''Do What U Like'''(1991)를 발매한다. 이 곡은 벌거벗은 멤버들의 모습을 담은 뮤직비디오로 약간의 화제를 일으키는 데 그쳤지만, 메이저 레벨이었던 RCA 레코드와 계약을 맺게 되고 싱글 '''Promises'''(1991), '''Once You've Tasted Love'''(1992)를 선보이는 계기를 마련한다. 계속적인 클럽 투어를 하던 이들은 '''It Only Takes A Minute'''로 UK 싱글 차트 7위까지 오른 데 힘입어 데뷔 앨범인 《Take That & Party》를 발표, 곧 UK 앨범 차트 2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다.
1993년, 배리 매닐로(Barry Manilow)의 곡을 리메이크한 '''Could It Be Magic'''으로 브릿 어워즈에서 베스트 브리티시 싱글[7] 을 수상한 이들은 다가오는 두 번째 앨범의 리드 싱글 '''Why Can't I Wake Up With You'''로 차트 2위를 기록하며 당대 최고의 아이돌 스타로서의 지위를 구가하게 된다.
이들은 두 번째 앨범 《Everything Changes》에서 싱글 '''Pray'''로 처음으로 UK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르고, 그 다음 싱글 4곡이 연속으로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그 해 수많은 히트곡을 양산하며 영국을 비롯한 전 유럽은 물론이고, 캐나다, 호주 등에서 막강한 지지와 더불어 '''90년대 판 비틀즈'''라는 대찬사를 받게 된다. 2집에서 이들은 댄스 음악으로 10대 소녀들과 또래 집단에게 어필함은 물론, 감각적인 컨템포러리 발라드로 폭 넓은 팬층을 구축하며 나름 성숙해진 음악성을 보여주었다.
세 번째 앨범 《Nobody Else》 역시 폭발적인 테이크 댓 신드롬을 이어갔고, 뿐만 아니라 게리 발로우의 새로운 음악 스타일인 감성적인 발라드로 테이크 댓이 성인 팬층에게도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수작이 되었다. 지난 5년간, 적어도 영국 내에서만큼은 테이크 댓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첫 번째 싱글인 '''Sure'''가 곧바로 UK 싱글 차트 1위로 데뷔한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발매된 싱글인 '''Back For Good'''은 그야말로 유럽 뿐만이 아닌 전 세계를 휩쓸었으며, 31개국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철옹성이었던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7위까지 오르는 등 지금까지도 테이크 댓의 대표곡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되었다.
3.2. 1996: 로비 윌리엄스의 탈퇴, 그리고 해체, 《Greatest H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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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윌리엄스는 그룹 중 가장 끼가 많았던지라 어디서든 주목받고 싶어했고, 튀고 싶어했던 소년이었다. 또한 사고뭉치이기도 했는데, 마약, 여성편력 등 테이크 댓에서 사고를 쳤다하면 대부분 로비 윌리엄스였다. 1994년 MTV 뮤직 어워즈 전날에 약물을 복용하다 적발되기도 했다.'''"1995년 3월 쯤, 리허설 도중에 로비가 나에게 너무 지겹다면서 밴드를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난 바보같은 소리 하지도 말라고 했고, 그 이후 다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 게리 발로우'''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댄디하고 깔끔한 이미지로 수많은 팬을 보유하던 테이크 댓이었고, 게다가 멤버들은 그의 악동적 기질에 로비 윌리엄스와 마찰이 어느 정도 있었다. 이렇다 보니 그룹은 로비 윌리엄스에게 최후통첩을 날리기에 이른다. '그룹의 일원으로서 앞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해라', 아니면 '그룹에서 떠나라'. 로비 윌리엄스는 예정된 월드 투어에 같이 참여한 뒤에 그룹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이는 통하지 않았다. 결국 로비 윌리엄스는 후자를 택한다. 그 후 인터뷰에서 로비 윌리엄스는 게리 발로우의 리더십을 비난하는 등 테이크 댓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고, 테이크 댓은 로비 없이 4명으로 《Nobody Else》 앨범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1996년, 로비 윌리엄스가 빠진 공백을 메우지 못한 테이크 댓은 결국 해체를 선언하고[8][9] 베스트 앨범인 《Greatest Hits》을 발매하며 그들의 활동은 끝을 맺었다.
베스트 앨범의 싱글은 비 지스의 곡을 커버한 '''How Deep Is Your Love'''였고 2006년 공식적인 재결합 전 마지막 UK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하게 된다. 해체 후, 엘튼 존은 '테이크 댓은 이전의 다른 보이 밴드와는 달랐다'라며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여 화제를 모았다.'''"불행하게도 그 루머는 사실입니다, How Deep Is Your Love는 우리의 마지막 싱글이 될것이며,'''
'''Greatest Hits는 우리의 마지막 앨범이 될 것입니다, 더 이상은 없습니다." - 게리 발로우'''
3.3. 2006-2007: 마침내 재결합, 《Beautiful World》
'''새로운 전설의 시작''''''"이 곡은 우리 4명을 다시 하나로 뭉치게 해준 노래입니다" - 게리 발로우'''
로비 윌리엄스가 점차 하향세를 타기 시작할 때 쯔음인 2006년, 2005년에 새로 발매된 테이크 댓 베스트 앨범 《Never Forget》이 영국에서만 210만장을 팔아치우는 히트를 기록하고, ITV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For the Record" 가 엄청난 관심속에 방영되었다[10] . 그리고 4명이서 정식으로 재결합을 선언 후 컴백 투어를 시작하는 것을 알린다.
재결합 콘서트 "The Ultimate Tour"는 당초 아레나 규모의 경기장 위주로 진행되었으나 티켓이 30분만에 매진되면서, 스타디움 공연들이 추가되었다. 3시간만에 275,000장의 티켓을 매진시켰고, 이 기록은 당시 두번째로 빠른 기록이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첫번째는 로비의 솔로 콘서트 기록이었다. 투어는 호평을 받았고[11] , 로비 윌리엄스를 제외한 4명은 Polydor Record와 300만 파운드 규모의 대형 계약을 체결하고 새로운 앨범을 발매하면서 10년의 공백을 뛰어넘어 초창기의 테이크 댓의 인기를 뛰어넘는 일약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불행히도 그 루머는 사실입니다, TAKE THAT은 Reunion Tour를 합니다." - 게리 발로우'''
그들의 컴백 앨범 《Beautiful World》는 출시된 주에 UK 앨범 차트 1위에 올랐고, 132주 연속으로 차트에 머물며, 전 세계적으로 350만장 가까이 팔리면서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12] 이 앨범은 게리 발로우가 전적으로 담당했던 초기의 앨범들과는 달리 4명의 멤버가 골고루 보컬을 맡았으며, 기여를 했었든 안 했었든간에 멤버들이 공동 작곡가로서 이름을 올리게 된다. 첫 번째 싱글인 '''Patience'''은 UK 싱글차트 1위를 기록했고, 두 번째 싱글 '''Shine'''[13] 역시 UK 싱글차트 1위에 올랐으며, 이 두 곡은 각각 2007년과 2008년 브릿 어워드에서 테이크 댓에게 베스트 브리티쉬 싱글상을 가져다 주게 된다.
2007년 10월에는 영화 《스타더스트》의 OST인 '''Rule The World'''를 매튜 본 감독을 위해 만들었다. 이 곡은 아쉽게 1위는 하지 못했지만 UK 싱글 차트 2위까지 올랐고, Top 10 안에 12주 동안 들어있었으며[14] , Top 100 싱글 차트에 무려 '''1년하고도 5달에 21일'''[15] 동안 머물렀다. 2000년대 영국에서 30번째로 많이 팔린 싱글이기도 하다.
3.4. 2008-2009: 《The Cir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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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만명이 운집한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2008년 10월, UK 싱글 차트 1위로 데뷔한 첫번째 싱글 '''Greatest Day'''로 테이크 댓은 《The Circus》활동을 시작했으며, 이 앨범은 발매 하루만에 133000장이 팔렸고, 그 다음 4일 동안 31만장을 팔아치우며 그 해 가장 빨리 팔린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영국에서 세 번째로 빨리 100만장이 팔린 앨범이기도 하다. 또한 5주 동안 UK 앨범 차트 1위 자리를 지켰으며, 영국 음악 역사상 세번째로 가장 빨린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또한 2009년 6월부터 7월까지 The Circus Live 투어를 진행, 그들의 영국에서의 인기를 재확인했다. 이 투어는 4시간 반만에 65만장의 티켓이 팔리며, 역대 가장 빨리 매진된 투어로 기록되었다.
3.5. 2010-2011: 로비의 재합류, 《Prog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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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다섯명으로...''''''"Welcome back, Rob!" - 마크 오언'''
'''"Good to be back, Markie!" - 로비 윌리엄스'''
2010년, 로비 윌리엄스가 테이크 댓에 재합류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로비 윌리엄스와 게리 발로우가 1995년 이후 처음으로 함께 한 싱글인 '''Shame'''[16] 이 차트 2위에까지 오르면서 화제를 모았고, 로비 윌리엄스의 .두번째 베스트 앨범인 《In And Out Of Consciousness (Greatest Hits: 1990-2010)》에 게리 발로우가 참여하면서 이는 기정사실화되었고, 그들의 재결합과 앨범 제작 모습을 담은 다큐가 제작되는 등 이는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드디어 2010년 11월 15일, 15년만의 다섯명으로서의 앨범, 《Progress》가 발매됐다! 발매 첫 주 영국에서만 53만장이 팔리며[17] , 66만장을 팔아치운 오아시스의 《Be Here Now》 다음으로 높은 기록을 세운다. UK 앨범 차트 1위로 데뷔하여, 7주 동안 자리를 내주지 않으며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역시 테이크 댓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20주년을 기념하는 투어인 Progress Live는 '''티켓 예매 시작 24시간 만에 134만장 판매라는, 영국 역대 투어 사상 가장 빠른 매진 기록'''을 경신하며 그들의 티켓 파워를 과시했다.
3.6. 2014-2015: 제이슨 오렌지의 탈퇴,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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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로비 윌리엄스가 트위터로 자신이 아빠가 되었음과 동시에, 더이상 테이크 댓 앨범 작업과 투어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하며 테이크 댓의 7번째 앨범 작업은 계속되었다. 같은 해 9월에 제이슨 오렌지마저 테이크 댓을 떠나며 오직 3명만이 남게 되었지만, 그들은 테이크 댓 앨범은 예정대로 발매될 것이라고 밝혔다. 10월, 첫번째 싱글 '''These Days'''가 발표되었고, UK 싱글 차트 1위로 데뷔하게 되며 그들의 12번째 넘버원 싱글이 되었다. 앨범 《III》은 11월에 발매되어 역시 UK 앨범 차트 1위를 기록, 그들의 7번째 넘버원 앨범이 되었다. 2015년 3월, 두번째 싱글 '''Let In The Sun'''이 발매되었다.
신보의 수록곡 중 하나인 '''Get Ready For It'''이 매튜 본 감독의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엔딩곡으로 삽입되어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는데,[18] 그 이유 중 하나는 매튜 본과 테이크 댓의 관계에 있다. 매튜 본 감독의 이전 작들인 《스타더스트》의 삽입곡과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엔딩곡 역시 테이크 댓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2015년 10월 16일, 《III》의 Re-release Version인 앨범의 첫번째 싱글 '''Hey Boy'''가 공개되었다. 《III》 스타일의 연장선상에 있는 곡이며, 새 앨범은 기존 앨범에 새로운 곡 4개를 추가하여 발매한다고 한다.
3.7. 2016년 ~
2016년 6월 2일, 영국의 드럼 앤 베이스 듀오 시그마의 싱글 '''Cry'''에 피쳐링했다. 2016년 10월 21일자 인터뷰에서 2017년 3월에 8번째 정규앨범 'Wonderland' 발매를 발표했다. 동시에 'Wonderland Live 2017' 투어 개최도 발표했는데 투어는 앨범 발매 두달 뒤인 17년 5월부터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3.8. 요약
그룹의 역사를 돌아보면 참 파란만장하다. 게이바를 전전하던 신세에서 벌거벗은 뮤직비디오로 겨우겨우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는데, 막 인기의 정점에 올라선 시점에 팀의 막내가 갑작스럽게 탈퇴 선언. 결국 그룹의 해체라는 뼈아픈 시련이 찾아왔고, 그 와중에 탈퇴한 막내는 명실상부 영국 최고의 가수로 발돋움. 10년 뒤, 로비를 제외한 4명의 멤버가 재결합, 거짓말처럼 대박을 치고, 몇년 뒤 애증의 막내가 재합류. 또 몇년 뒤 한 명이 음악활동 잠정 중단 선언. 현재 남은 인원 셋.....하지만 2017년, 데뷔 25주년 기념로 다시 다섯 명이 뭉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러나 테이크댓의 8번째 앨범 'Wonderland'가 2017년 3월에 발매 후 5월부터 정기 투어에 돌입하고 로비 윌리엄스는 비슷한시기인 17년 6월에 'The Heavy Entertainment Show Tour'를 9월까지 진행하기 때문에 25주년 기념으로 5인 재결합은 불발될 가능성이 높다.
4. 음악
초기에는 꽃미남들로 구성된 보이밴드로서, 당시 위상은 아이돌에 가까웠기 때문에 음악 스타일 역시 전형적인 틴 팝이었으며, 타겟도 당연히 10대 소녀들이었다. 첫번째 앨범과 두번째 앨범이 틴 팝 스타일의 곡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세번째 앨범부터는 10대 소녀들과 더불어 성인 팬층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나왔는데, 틴 팝과 더불어 어덜트 컨템퍼러리 장르의 곡들도 몇몇 선택함으로서 그 전략은 나름 성공을 거두었다.
해체 후 다시 재결합한 2006년부터의 테이크 댓은 팝, 발라드, 락, 일렉트로닉 등 여러 장르를 시도한다. 춤을 출 나이도 아니며, 10대 소녀들을 공략할 나이도 이젠 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선택이 신의 한 수가 되어 테이크 댓은 이제 정말로 전 세대를 어우르는 영국을 대표하는 팝 밴드가 되었다!
5. 이야깃거리
5.1. 게리 발로우와 로비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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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팝의 상징이 된 로비 윌리엄스가 속한 그룹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실상은 게리 발로우의 원맨 밴드 성격이 강했다. 메인 보컬도 몇몇 곡을 제외하면 게리 발로우가 도맡아 불렀으며[20] , 테이크 댓의 웬만한 곡들은 전부 다 게리 발로우가 작곡한 곡이었다. 그런 밴드에서 윌리엄스는 자신의 끌어오르는 역량을 맘껏 발산하지 못하고 내내 억눌려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활동 기간 동안 마약과 여성 편력 등 말썽도 제일 많이 부렸다. 결국 테이크 댓으로부터 탈퇴선언을 한 로비 윌리엄스는 1995년 언론과 대중의 관심 속에 솔로로 데뷔, 일약 대성공을 거두며 나오는 앨범마다 대히트, 윌리엄스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그렇게 로비 윌리엄스는 영국 솔로 아티스트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한다. 로비 윌리엄스는 팀을 탈퇴한 후 언론을 통해 '테이크 댓은 쓰레기였다', '난 게리 발로우가 싫다' 라는 등 테이크 댓을 탈퇴한 일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21]'''"내 문제는 항상 게리로부터 비롯되었다. 난 게리 발로우를 부숴버리고 싶었다." - 로비 윌리엄스[19]
'''
그룹 해체 후 모두가 기대했던 대로 게리 발로우와 마크 오웬은 솔로 활동을 개시하였고, 게리 발로우는 3개의 UK 차트 1위 곡과 2개의 UK 차트 1위 앨범을 가지게 되었고, 마크 오웬도 나름 3개의 UK 차트 탑텐 곡을 불렀으나, 그들의 테이크 댓 시절 명성과 인기에 비하면 부족하게 느껴지는 성과였다. 더군다나 제 발로 나간 로비 윌리엄스는 2000년대 중반까지 영국 최고의 솔로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한데 비하면 초라할데 그지없는 기록이었다.
해체 후 공격을 퍼부은 쪽은 로비였으며, 로비는 언론, 시상식, 공식 석상을 가리지 않고 게리 발로우 뿐만 아니라 테이크 댓에 관해서도 인신공격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모욕적인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4명은 로비 윌리엄스에 관해 나쁜 말은 전혀 꺼내지 않았으며, 로비에 대한 그리움, 아쉬움, 안타까움 등을 털어놓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이 둘은 완벽히 갈라섰으며, 로비 윌리엄스가 합류한 다섯 명의 테이크 댓은 커녕 멤버들 사이의 연락조차도 기대할 수 없던 상황이 계속되는 듯 했다. 그러나 2010년, 어떻게 된 일인지 게리 발로우와 로비 윌리엄스의 듀엣곡 Shame이 발표되었고, 이 곡은 UK 차트 2위를 기록하며 히트했다.
가사만 봐도 '''우리 화해했어요!'''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다. 단순히 좋은 곡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지만, 테이크 댓의 팬들에게 이 곡의 의미는 특별할 수 밖에 없다. 팬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드라마틱한 화해였고, 가사 한줄 한줄이 정말 와닿았다고 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로비 윌리엄스가 테이크 댓에 재합류한다는 뉴스가 발표되었다. 그 후 방송이나 투어, 트위터를 보면 이 둘은 완벽히 화해(?)를 한 듯 하며, 다른 테이크 댓 멤버들과도 잘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게리 발로우는 초창기 테이크 댓 시절, 자신과 로비 윌리엄스는 둘도 없던 친구 사이였고, 다른 감정들은 분명히 모두 나중에 (로비의 탈퇴와 그룹 해체 후) 생긴 것이라고 고백했던 적이 있다. 실제로 당시 로비가 가장 믿고 의지했던 사람도 게리 발로우였다고.'''
5.2. 미국 시장에서의 실패
테이크 댓은 9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약 5년 동안 영국을 지배했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린 보이 그룹이었지만, 불운하게도 미국 시장과는 연이 없었다. 이는 당시 미국 음악 시장의 흐름이 "강한 얼터너티브 록"을 중심으로 흘러갔던 탓 아닐까 싶다. 1집과 2집은 미국 시장에서 말그대로 대실패였지만, 미국 시장에서의 실패는 영국에서의 테이크 댓의 인기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하지만 거대한 미국 시장은 언젠가는 정복해야 할 큰 산이었으며, 테이크 댓은 3집에서 미국 시장을 다분히 의식한 듯한 노래 몇 곡을 추가하게 되었다.[22]
그리고 이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게 된다.
《Nobody Else》의 수록곡이자 지금까지도 테이크 댓의 대표곡으로 불리는 Back For Good이 '''빌보드 싱글차트 7위'''까지 올라간 것이다. 드디어 대선배 비틀즈에 이어 새로운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벌어지는가? 싶었는데 Back For Good 이외에는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그대로 해체...[23] 하지만 10년 뒤 컴백해서도 미국에서는 별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아예 미국 시장에 의욕적으로 나서지도 않는 모습.[24] 2000년대 후반 들어서 콜드플레이, 에이미 와인하우스, 아델, 멈포드 앤 선즈, 샘 스미스, 그리고 원 디렉션 등등 영국 출신 아티스트들의 활약이 더욱 굉장했음을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
하지만 미국 시장에서의 실패만으로 테이크 댓을 판단해서는 곤란하며,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테이크 댓이 90년대 음악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2000년대에 다시 컴백, 역대급 밴드 반열에 든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25]
그리고 이건 테이크 댓만의 문제라고도 볼 수 없는게 원 디렉션 이전의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UK권 보이밴드[26] 중 누구 하나 미국에서 성공한 케이스가 없다. 물론 걸밴드 중에는 스파이스 걸스라는 괴물이 있긴했지만...
5.3. 영국 최고의 송라이터, 게리 발로우
테이크 댓이 데뷔할 당시는, 뉴키즈온더블록, 보이즈투맨과 같은 보이 밴드들이 이미 시장에 나와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테이크 댓이 그들과 차별성을 둘 수 있었던 부분은 바로 멤버 '''게리 발로우의 리더십과 작곡 실력'''이었다. 게리 발로우가 웬만한 테이크 댓의 노래를 작곡했다고 봐도 무방하며, 그의 작곡 능력 역시 탁월했다. 그 당시 직접 자신들의 곡을 만드는 잘 생긴 다섯명의 보이 밴드는 처음이었으며, 실제로 그 노래들이 팬들을 홀릴 만큼 달콤하고 좋았으니 큰 인기를 얻을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아이돌 출신이라는 점과, 나름 곱상한 외모 때문에 과소평가 받는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게리 발로우는 Ivor Novello Awards[27] 를 다섯 번이나 수상한 이력이 있고, 영국의 역대 최고의 송라이터로 뽑힌 적도 있는 진정한 실력파이다. 게리 발로우의 경우 솔로 실패 후 작곡과 프로듀스 등의 음악 제작자로써 꽤 활발하게 활동했다는 점도 다른 네 멤버와의 차이점.
여담으로, 게리 발로우는 2012년 영국 여왕의 Diamond Jubilee Concert[28] 를 기획한 공로로 대영 제국 훈장 4등급(OBE)을 받았다.
'''2012년 Diamond Jubilee Concert - Sing, 게리 발로우가 작곡, 작사.'''
5.4. 기타
- 초창기 테이크 댓의 매니저였던 나이젤 마틴 스미스는 굉장히 엄격한 방식으로 유명했는데, 초기 테이크 댓에게는 굉장히 많은 행동 제약이 존재했다고 한다. 게리 발로우가 나이젤을 독재적 조련사라고 표현한 적도 있다. 로비가 마약, 알코올에 빠지게 된 이유도 너무 반듯하게 행동하기를 고집한 나이젤에 대한 반항 심리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 나이젤이 굉장히 편애가 심했다는 소문도 있다. 게리 발로우를 가장 예뻐했으며, 나머지 멤버들은 뒷전이었다는 것이다.
- 2006년 당시 패기 넘치는 신예였던 밴드 악틱 몽키스의 프론트맨 알렉스 터너에게 거하게 디스당한 적이 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몇년 뒤 알렉스 터너는 게리 발로우에게 사과했다고.
- 2012년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뮤지션 5위에 올랐다. 1위는 닥터 드레.
- 영국에서 최소 기간 100만장이 팔린 앨범의 2, 3, 4위가 모두 테이크 댓의 앨범이다.
- 21세기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순위에서 테이크 댓의 Beautiful World가 13위, Progress가 22위, Never Forget - The Ultimate Collection이 24위, The Circus가 30위를 기록, 4개의 앨범을 순위에 올리며 로비 윌리엄스와 함께 가장 많은 앨범을 순위에 올린 가수가 되었다. 참고로 1위는 아델의 21, 2위는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Back To Black이다.
6.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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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아이돌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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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재결합 후, T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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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다섯명의 완전체로'''
간단히 요약하자면 90년대 초중반에는 '''영국 최고의 보이밴드이자 아이돌스타''', 2006년 재결합 이후에는 전 세대에 걸쳐 사랑받는 '''영국의 국민 그룹.'''
데뷔 초부터 해체 전까지 테이크 댓은 말 그대로 소녀들의 우상이었고, 소위 사생팬 또한 극성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5명은 그런 상황을 즐겼다고.
이들이 비틀즈 이후 최고의 팝 밴드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미국의 보이 밴드 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에 대한 영국의 답변으로 처음 구상됐던 테이크 댓은 댄스 팝과 소울풀한 발라드로 1990년대 중반 영국 차트를 완전히 정복했다. 특히 그 가운데 Pray, Relight My Fire, Babe, Everything Change 등 네 곡이 연속으로 UK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테이크 댓은 비틀즈 이후 영국에서 4곡을 연속으로 차트 정상에 올린 첫 밴드가 되었다.
1960년대 이후로 명백히 영국 팝 음악계에 최고의 선풍을 일으켰으며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8개의 싱글을 차트 정상에 올리는 등 그들이 보여준 눈부신 상업적 성과는 실로 비틀즈에 버금갈 정도였다. 또한 이들 5인조 라인업과 달콤한 틴 팝 사운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백스트리트 보이즈, 엔싱크 같은 슈퍼 보이 밴드들의 전형이 되었다. 그뿐 아니라 밴드가 해체한 뒤 멤버였던 로비 윌리엄스는 현재 당당히 영국 팝 음악계를 대표하는 초특급 팝스타가 되었다.
1996년, 해체의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이 바로 로비 윌리엄스의 탈퇴와 함께 찾아온 멤버들의 사기 저하, 그리고 음악 흐름의 변화이다. 당시에는 이 요인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해체라는 최악의 수를 두었지만 무려 10년 후에, 그것도 굉장히 성공적으로 재결합에 성공한 테이크 댓은 특히 수명이 짧다는 비판을 받는 아이돌 보이밴드로서는 이례적인 경우이다.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전형적인 틴 팝 장르에서 전 세대를 아우를수 있는 컨템퍼러리 장르로 노선을 바꿨다는 점으로 보아 테이크 댓은 시대의 흐름에 백기를 들 뻔 했지만 나름 최선의 대처방안을 모색해 최고의 극복을 한 셈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 폐막식에서도 공연했다. 영화 《스타더스트》의 OST인 Rule The World를 열창했으며, 세계적인 뮤지션이 즐비한 영국의 올림픽, 그것도 폐막식에서 한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영국 내에서의 위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려 '''피날레''' 직전 공연이었다![29]
2007년 BBC에서 투표로 선정한 영국 최고의 밴드 순위에서 당당히 5위를 차지했다.'''1위가 퀸, 2위는 비틀즈, 3위는 롤링 스톤즈, 4위는 오아시스'''였던 걸 감안했을 때, 테이크 댓의 영국에서의 위상을 또 한 번 알 수 있는 부분.
'''단,''' 위의 모든 평가는 대부분 영국 혹은 유럽 내에서 이뤄낸 성과이며, 가장 큰 시장인 미국 시장 공략에 실패했다는 점은 테이크 댓의 커리어에 있어서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으로 남을 것이다. 제 2의 비틀즈라고까지 불린 보이밴드의 전세계 앨범 판매량이 4500만장에 불과하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지만, 미국 시장 진출 실패라는 요인을 생각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론 4500만장도 어마어마한 숫자이긴 하지만, 전성기 테이크 댓의 위상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아쉬운 숫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테이크 댓이 현재의 원 디렉션처럼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었다면, 보이밴드의 역사는 또 한번 뒤바뀌었을 것이다.
6.1. 투어
투어가 '''역대급'''인 밴드이다. 2011년 웸블리 스타디움 8회 공연 수익은 $61.7m에 623,737명의 관중을 동원했고, 같은 해 맨체스터 스타디움에서의 8회 공연 수익은 $44m에 443,223명. '''세계 1, 2위 기록이다.'''[30] 영국과 미국의 인구수와 음반시장 규모를 비교했을 때 영국 밴드가 영국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것은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일이다. 영국의 국민 밴드 아니고서야 이런 기록을 달성할 수는 없다. 또한 '''웸블리 8회 연속 공연 기록'''도 세웠는데, 기존 1위는 1988년 마이클 잭슨의 7회 연속이었다. 흠좀무.
7. 비판(?)
테이크 댓을 향한 비판에는 항상 '게리 발로우의 원맨밴드다', '게리 발로우가 다해먹는다'가 포함되어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게리 발로우가 테이크 댓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 못할 정도로 상당하니까. 하지만 그런 비판이 설득력을 잃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테이크 댓 멤버들의 음악성을 무시하면 안된다는 것이다.(처음부터 그룹 결성의 시작이 게리였다.) 로비 윌리엄스[31] 는 말할 것도 없고, 하워드 도널드[32] , 마크 오웬[33] 모두 UK 차트 1위 곡을 노래한 적이 있고, 이들의 투어나 공연 영상들을 보면 모두 악기 두세개쯤은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실력자들이다. 그리고 테이크 댓은 항상 '''화음'''을 중심으로 한 노래들을 만들어 왔다. 다섯 명의 목소리가 만드는 화음이야말로 오직 테이크 댓의 노래에서만 들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고, 이를 폄하하는 것은 아카펠라의 개념을 부정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8. 디스코그래피
UK 차트에서 '''28개의 Top 40 싱글과 17개의 Top 5 싱글, 그리고 12개의 넘버원 싱글'''[34] 을 가지고 있고, '''7개의 넘버원 앨범'''을 가지고 있다. 영국의 그래미인 브릿 어워드에서 총 8번 수상하여 콜드플레이, 애니 레녹스와 함께 수상 횟수 2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35]
(★ : UK 앨범 차트 1위)
8.1. 정규
- 《Take That & Party》 (1991)
- 《Everything Changes》 (1993) ★
- 《Nobody Else》 (1995) ★
- 《Beautiful World》 (2006) ★
- 《The Circus》 (2008) ★
- 《Progress》 (2010) ★
- 《III》 (2014) ★
- 《Wonderland》 (2017 3월 발매 예정)
8.2. 비정규
- 《Greatest Hits》 (1996) ★
- 《Never Forget – The Ultimate Collection》 (2005)
- 《The Greatest Day – Take That Present: The Circus Live》 (2009)
- 《Progressed》 (2011)
- 《Progress Live》 (2011)
- 《III 2015 Edition》 (2015)
- 《Odyssey》 (2018)
8.3. 싱글 목록
8.4. 싱글 성적
8.4.1. UK 싱글 차트 1위
- Pray (1993)[36]
- Relight My Fire (1993)
- Babe (1993)
- Everything Changes (1994)
- Sure (1994)
- Back For Good (1995)[37]
- Never Forget (1995)
- How Deep Is Your Love (1996)
- Patience (2006)[38]
- Shine (2007)[39]
- Greatest Day (2008)
- These Days (2014)
8.4.2. UK 싱글 차트 2위
- Why Can't I Wake Up With You (1993)
- Rule The World (2007)[40]
- The Flood (2010)
8.4.3. UK 싱글 차트 3 ~ 10위
- It Only Takes A Minute (1992)
- A Million Love Songs (1992)
- Could It Be Magic (1992)[41]
- Love Ain't Here Anymore (1994)
- Said It All (2009)
8.4.4. UK 싱글차트 11 ~ 40위
- Promises (1991)
- I Found Heaven (1992)
- I'd Wait for Life (2007)
- Up All Night (2009)
- Kidz (2011)
- Love Love (2011)[42]
- Giants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