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스프링스틴
}}} ||
1. 개요
'''나는 로큰롤의 미래를 보았다. 그 이름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이다.'''[2]
— 존 랜도[3]
미국의 전설적인 록커, 싱어송라이터. 미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인물들 중 한 명이자 미국 대중문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아이콘이다.'''The Boss'''[4]
2. 상세
미국 노동 계급의 꿈, 고난, 좌절을 노래하는 시적인 가사와 폭발력 넘치는 무대 매너로 크게 사랑 받으며 가장 미국적인 락 가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외모나 차림새도 타 인종이 흔히 생각하는 금발벽안의 덩치크고 각진 북유럽계 백인이 아닌, 미국의 이미지를 좀 더 파고 들어가야 보이는 "미국 노동계급"[5] 의 이미지다. 전세계적으로 1억 2천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했고, 2004년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롤링 스톤 선정 100대 아티스트에서 23위에 올랐으며, 스무 개의 그래미상과,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6] 까지 수상한, 그야말로 진짜 '''보스'''이자 미국 락앤롤계에서 모두의 존경의 대상이자, 끝판대장.
그는 로큰롤, 포크, 블루스, 컨트리, 가스펠 등을 접목한, 지극히 미국적인 록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흔히 그의 음악을 'heartland rock'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보통의 평범한 블루칼라 미국인들의 삶을 노래하며 단순한 유흥 이상의 공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다.[7]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다. 2008년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를 적극 지지했고, 당선 후 축하 파티에서 처음 튼 곡이 그의 노래 "The Rising"이었다. 취임식에서도 이 곡을 공연했다.[8]In my songs, the spiritual part, the hope part is in the choruses. The blues, and your daily realities are in the details of the verses. The spiritual comes out in the choruses, which I got from Gospel music and the church. I make American music, and I write about the place I live and who I am in my lifetime. Those are the things I'm going to struggle for and fight for.
- 브루스 스프링스틴
3. 음악
1975년 발표한 <Born to Run>은 그를 처음 메인스트림에 올려놓은 앨범이다. 이전에 발표했던 두 앨범이 평단의 호평과 달리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반면, 이 앨범은 말 그대로 'breakthrough'. 평단과 대중 모두를 만족시키며 로큰롤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 가는 시발점이 되었다. '''같은 해 10월 27일 그가 미국의 양대 시사주간지 타임과 뉴스위크 표지를 동시에 장식한 사건은 당시 이 앨범이 미국을 얼마나 발칵 뒤집어 놓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image]
"Born to Run"은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곡에서 21위에 올랐다. 참고로 미국 뉴저지 주의 "unofficial youth anthem"으로 지정되기도 했는데,[9] 정작 본인은 그 결정을 의아해했다고 한다. 가사가 꿈을 찾아 뉴저지를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
1978년작 "Darkness on the Edge of Town"로 300만장, 1980년작 "The River"로 500만장의 히트를 기록하고 전작들에 비해 차분한 포크 사운드를 담은 1982년작 "Nebraska"로 잠깐 주춤한 듯 보였으나[10] 그의 음악 인생 통틀어 가장 큰 한방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1984년에 발표한 "Born in the U.S.A."는 그의 대표곡 중 하나다. 얼핏 보면 국수주의적 내용인 듯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베트남 전쟁에 끌려가 죽을 고생을 하다 돌아왔는데 조국에서 제대로 된 대접 하나 해주지 않는 비참한 현실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정부와 심지어 가족에게도 외면 받는 노동자들의 정신적인 위기"에 관한 곡이라고 밝혔고, 후렴구에 반복되는 "I was born in the U.S.A."는 '''과거의 진정한 애국심을 찾고 싶은 일종의 절규에 가깝다. '''
하지만 곡명만 보고 판단했는지, 발표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둔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측에서 이 곡을 캠페인에 사용하려 했고, 당연히 퇴짜를 맞았다.''' 그런데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언론플레이를 하다가 '''결국 전국적인 조롱거리가 되었다.''' 아마 그의 대중적인 인기를 등에 업고 지지율을 올리고 싶었을 텐데, '''그가 공화당 후보를 지지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망상.'''[11] 그런데 문제는 레이건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 의외로 후렴구만 듣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앨범 <Born in the U.S.A.> 역시 잭팟을 터뜨렸는데, 미국에서만 15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1985년에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다. 또한 싱클컷한 7곡 "Dancing in the Dark", "Cover Me", "Born in the U.S.A.", "I'm on Fire", "Glory Days", "I'm Goin' Down", "My Hometown" 전부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 안에 진입하는 대기록을 세웠다.[12] 2003년 롤링 스톤지는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에서 이 앨범을 85위로 선정했다.[13]
1985년에는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가 주도하는 '''We Are The World'''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특유의 목소리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기세를 이어 1986년에 발매한 라이브 앨범 "Live 1975–85"도 1500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량으로 그를 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만들었다.
"E Street Band"와 결별하고 팝적인 사운드를 내세운 1987년작 "Tunnel of Love"은 300만장이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음악성은 나쁘지 않다는 평가였다.
"E Street Band"와 재결합 후 발표한 2002년작 "The Rising"으로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락 앨범상을 수상하며 왕의 귀환을 알렸다.
그에게 오스카를 안겨준 1993년작 영화 <필라델피아>의 주제곡 "Streets of Philadelphia". 1994년 빌보드 연말 차트에서도 20위 권 안에 들었던 메가히트곡이었다.
2009년 슈퍼볼 하프타임쇼에 나서 "Tenth Avenue Freeze-Out", "Born to Run", "Working on a Dream", "Glory Days"를 차례로 불렀다. 국민 록스타의 위엄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이다.[14]
현재까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거머쥔 그의 음반은 11개로 통산 3위의 기록이다.[15] 더군다나 가장 최근에 발매된 <High Hopes>(2014) 역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리며 여전히 국민 락스타임을 입증했다.
2019년에 발매된 <Western Stars>역시 메타크리틱에서 84점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의 백업 밴드는 바로 '''E 스트리트 밴드'''(E Street Band). 1972년부터 그와 함께 했다. 1989년부터 1999년까지 헤어져 있었지만 다시 재결합하여 2015년 현재까지도 그와 함께 하고 있다.[16] 밥 딜런, 보니 타일러, 아레사 프랭클린, 스티브 닉스, 스팅, 산타나 등과도 함께 음악 작업을 한 적이 있으며, 2014년에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 스트리트 밴드와의 라이브 앨범은 참 많이도 발매했는데 특히 하이 레졸루션 오디오로 발매된 앨범은 너무 많아도 너무 많구나 할 정도.... 계속해서 나오다 보니 지칠정도이다. 더욱이 플레이 시간이 2~3시간되는 앨범들이여서 완주에 대한 각오를 다지지 않은 이상 힘들정도이다.
밴드 멤버 중 한 명이 그의 아내 패티 셜파(Patti Scialfa)[17] 다. 1980년대 초반 뉴저지의 한 술집에서 공연을 하던 패티를 보고 그가 밴드에 합류할 것을 권유했고 1984년 Born in the U.S.A. 투어 직전 합류하게 된다. 둘은 함께 활동하다 1991년 결혼한다. 1985년에 브루스가 다른 여성과 결혼을 했기 때문에[18] 둘의 관계는 많은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아이 셋을 낳고 현재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19] 공연 영상을 보면 무대 위에 유일한 여성 멤버가 있는데, 그녀가 바로 패티다.
4. 디스코그래피
5. 싱글
5.1. 빌보드 핫 100 2위~10위
- Hungry Heart (1980) 5위
- Dancing in the Dark (1984) 2위[20]
- Cover Me (1984) 7위[21]
- Born in the U.S.A. (1984) 9위
- I'm On Fire (1985) 6위
- Glory Days (1985) 5위
- I'm Going Down (1985) 9위
- My Hometown/Santa Claus Is Comin' to Town (1985) 6위
- War (1986) 8위
- Brilliant Disguise (1987) 5위
- Tunnel of Love (1987) 9위
- Streets of Philadelphia (1994) 9위[22]
5.2. 빌보드 핫 100 11위~50위
- Born to Run (1975) 23위
- Prove It All Night (1978) 33위
- Badlands (1978) 42위
- Fade Away (1980) 20위
- Fire (1987) 46위
- One Step Up (1988) 13위
- Human Touch (1992) 16위
- Better Touch (1992) 16위
- Secret Garden (1997) 19위[23][24]
5.3. 빌보드 핫 100 51위~100위
- Tenth Avenue Freeze-Out (1975) 83위
- 57 Channels (And Nothin' On) (1992) 68위
- Secret Garden (1995) 63위
- The Rising (2002) 52위
- Devils & Dust (2005) 72위
- Girls in Their Summer Clothes (2008) 95위
- Working on a Dream (2008) 95위
6. 기타
- 미국 뉴저지 주가 낳은 대표적인 스타 중의 스타. 현재 아내인 패티와 결혼한 뒤에 로스엔젤레스로 이사했고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나이가 되자 다시 뉴저지로 귀향하는데 그 이유가 파파라치와 기자들이 득실거리지 않는 환경에서 평범하게 키우고 싶어서라고. 그리고 장남은 보스턴 칼리지 졸업, 둘째 딸은 듀크 대학교에서 승마팀으로 뛰다가 2014년에는 미국 국가대표팀으로도 발탁될 정도로 실력파이며 현재는 졸업했다. 그리고 막내아들은 현재 소방관으로 일하는 중이다.
- 펑크의 대모 패티 스미스의 유일한 빌보드 핫 100 15위 권 진입곡 "Because the Night"과 R&B 여성 그룹인 포인터 시스터즈의 1979년 대히트곡 "Fire"는 원래 그의 정규 앨범에 수록될 뻔했던 곡들이다. 우선 "Because the Night"는 그가 4집
(1978)을 위해 녹음까지 했으나 "뻔한 사랑 노래"(another love song)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최종 트랙리스트에서 뺐다. 이후 프로듀서 지미 아이오빈을 통해 패티가 이 곡을 받았고 개작해 발표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녀의 음악 인생 중 가장 성공한 노래가 되었다. 정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으나 브루스는 이 곡을 투어에서 종종 부르며 대형 페스티벌 무대에서는 거의 매번 부른다. 그래서 정규 앨범이 아닌 실황 앨범과 기획 앨범에서 그의 목소리로 부른 "Because the Night"을 들을 수 있다.[25]
- "Fire"는 본래 브루스가 우상인 엘비스 프레슬리를 위해 만든 곡이다. 하지만 데모 테이프를 받아보기도 전인 1977년 8월 16일 엘비스가 세상을 떠났고, 할 수 없이 본인의 앨범
을 위해 녹음했다. 그러나 앨범의 전체적인 흐름과 조응하지 않아 넣지 않았고, 결국 남의 손에서 초대박을 터뜨렸다. 포인터 시스터즈의 "Fire"는 빌보드 핫 100 2위에 오르며, 당시 브루스의 어떠한 곡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26] 이후 역시 실황 앨범과 기획 앨범을 통해 그의 버젼이 공개되었다. 지금이야 웃어넘길 수 있는 일들이지만, 아직 자신의 입지를 굳히지 못했던 때 일어난 일련의 상황들이 무척 속상했을 것이다. 아래는 락앤롤 명예의 전당 25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그와 패티, U2가 함께한 공연.
[1] 그래미 시상식의 가장 중요한 상들로 여겨지는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노래상, 최고의 신인상만이 기록되어 있다. 나머지 부문의 상들은 따로 문서 내 수상 목록에 수록해주길 바랍니다.[2] I saw rock & roll's future, and its name is Bruce Springsteen.[3] 현재는 스프링스틴의 매니저 겸 공동 프로듀서지만, 이 글을 기고할 1974년엔 유명한 음악평론가였다.[4] 그의 별명. 그가 미국 대중음악계 내에서 차지하는 거대한 위상을 잘 나타낸다.[5] 고속도로에서 트럭 몰거나 건설 노동 할거 같은, 굴곡진 코에 갈색이나 밤색으로 곱슬진 수염과 구레나룻이 무성하며, 청바지에 셔츠 걸치고 다니는 등등[6] 물론 둘 다 주제가상 부문이다. 아카데미에서는 영화 <필라델피아>로, 골든글로브에서는 <필라델피아> 와 <레슬러>로 두 번 받았다.[7] 대표적인 가수가 그 외에 밥 시거, 탐 페티, 멜리사 에더리지, 존 멜런캠프 등. 이 가수들 역시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8] 당시 그는 피트 시거와 우디 거스리의 "This Land Is Your Land"를 불렀는데, 이 곡이 가지는 의미를 알게 되면 그의 정치성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9] 원래 주가로 지정하려 했으나 부결되었다.[10] 물론 판매량이 그렇다는 얘기다. 음악성으로는 큰 호평을 받았다. 실제로 이 앨범은 피치포크와 롤링스톤 앨범가이드에서 만점을 받았고, 롤링스톤 500대 명반 중 224위에 선정되었다.[11] 그러나 레이건은 이런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 살린 것 하나로 압도적인 선거인단 확보로 재선이 되었었다.[12] '''이는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자넷 잭슨의 Janet Jackson's Rhythm Nation 1814와 타이 기록이다.'''[13] 1위는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이 리스트에 올라간 그의 음반은 총 8장으로 11장의 밥 딜런, 10장의 비틀즈와 롤링 스톤스에 이은 네 번째다.[14] 참고로 이때 25년 만에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15] 1위는 20개의 비틀즈, 2위는 13개의 JAY-Z.[16] 1995년에 잠시 뭉친 적이 있다.[17] '스칼파'라고 부르기도 한다.[18] 1989년에 이혼.[19] 아이들을 잘 키웠는데, 장남은 보스턴 칼리지를 졸업했고, 장녀는 듀크 대학교를 다니는 승마 선수이며, 막내 아들은 소방관이다.[20]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곡 중 흔치 않은 댄스 곡으로, 당시 뉴웨이브와 흑인 음악 위주로 돌아가던 영미권 음악계의 시류에 편성한 곡으로 판단이 된다. 결국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싱글 중에서는 제일 성공한 곡이 되었다. 1984년 빌보드 연말 차트에서도 14위까지 올랐었다.[21] 도나 서머에게 줄려고 작곡한 곡이었지만, 그냥 브루스 자기가 불러서 발표했다.[22] 영화 필라델피아의 삽입곡. 이 즈음에 같은 하트랜드 락 가수 존 멜렌켐프도 히트곡 "Wild Night"을 발표했었다.[23] 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삽입곡[24] 1997년 재발매[25] 브루스가 부른 것과 패티가 부른 버전은 도입부 피아노 부분이 다르다. 그리고 패티 버전은 마지막 후렴 부분에 새로운 가사를 추가하였다.[26] 당시 그에겐 빌보드 핫 100 20위 안에 진입한 곡이 없었다. 그리고 동시기에 발매된 패티 스미스의 Because The Night 역시 13위에 오르며 히트하였다. 이 외에도 77년도 Manfred Mann's Band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곡을 커버하여 핫 100 1위에 올린 바 있다.
- 1985년 6월 스웨덴 예테보리의 울레비 경기장[27] 에서 투어 공연을 진행했는데, 엄청난 수의 관객이 열광적으로 방방 뛴 탓에 구조물에 금이 가고 일부는 무너져 수리 비용만 수백만 불이 들었다고 한다. 흡사 지진의 피해와도 같았다고.
- 1999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과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각각 헌액되었다.
- 2009년 케네디 센터 아너스를 받았다.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I may be the President, but he is 'The Boss'"라고 말하며 그에게 경의를 표했고, 헌정 공연 사회자로 나선 코미디언 존 스튜어트는 그를 "밥 딜런과 제임스 브라운의 아들"로 빗대 좌중을 뒤집어 놓았다.
> I am not a music critic. Nor historian, nor archivist. I cannot tell you where Bruce Springsteen falls in the pantheon of the American songbook. I cannot illuminate the context of his work or his roots in the folk and oral history traditions of our great nation. But I am from New Jersey, and so I can tell you what I believe, and what I believe is this: I believe that Bob Dylan and James Brown had a baby. And they abandoned this child on the side of the road, between the exit interchanges of 8A and 9 on the New Jersey Turnpike. That child is Bruce Springsteen. (Jon Stewart)
> "저는 음악평론가가 아니고, 음악역사학자도 아니고, 그 기록을 관리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저는 브루스의 노래가 미국의 방대한 노래책 안에 어디 있는지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의 음악에서 비쳐지는 이야기들과 우리 미국의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밝혀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뉴저지 출신이고, 제가 믿는 것을 말해줄 수는 있습니다. 제가 믿는 것은 이겁니다: 밥 딜런과 제임스 브라운이 아이를 가졌고, 그 아이는 뉴저지 고속도로 출구 8A와 9번 사이 길바닥에 버려졌습니다. 그 아이가 브루스 스프링스틴입니다."
> "저는 음악평론가가 아니고, 음악역사학자도 아니고, 그 기록을 관리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저는 브루스의 노래가 미국의 방대한 노래책 안에 어디 있는지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의 음악에서 비쳐지는 이야기들과 우리 미국의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밝혀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뉴저지 출신이고, 제가 믿는 것을 말해줄 수는 있습니다. 제가 믿는 것은 이겁니다: 밥 딜런과 제임스 브라운이 아이를 가졌고, 그 아이는 뉴저지 고속도로 출구 8A와 9번 사이 길바닥에 버려졌습니다. 그 아이가 브루스 스프링스틴입니다."
- 2012년 컨트리 가수인 에릭 처치가 발표한 "Springsteen"[28] 은 그의 노래가 미국인들의 일상생활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주된 가사 내용은 십대 때의 사랑 이야기지만 그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그의 노래들이다. 실제로 가사에 "Born to Run", "Born in the U.S.A.", "Glory Days", "I'm on Fire"가 언급된다.
||
- 2013년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 2015년 존 스튜어트의 Daily Show 마지막회에 특별히 공연을 해 줬다. 둘다 뉴저지에 사는지라 서로 왕래가 잦은듯..
- 라이브 실황을 보면 대부분 Fender Telecaster를 메인기타로 쓰는데 다른 기타리스트들과는 다르게 시그내쳐 모델 기타가 없다. 대부분 시그내쳐 모델이 있는 기타리스트들은 솔로 기타리스트로서의 역량이 꽤나 되는 분들만 얻는 것인데, 비록 그쪽으로는 모자라더라도 전국구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가진 분으로써 약간 이상한 부분이기도 하다. [29]
- 2016년 바르셀로나 콘서트에서 관중들이 춤추며 생긴 초저주파를 500m 근방의 지진계가 포착했는데 곡이 바뀌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결과가 깔끔하게 나왔다.
- 2016년 9월 23일에 자서전
을 발표한다고 한다.
- 위에서도 알 수 있듯 리버럴한 성향으로 유명하다. 로널드 레이건이 자신의 노래를 선거운동용 곡으로 쓰려 했을때 강하게 반대했으며 긴 기간동안 민주당을 지지해온 전형적 리버럴이자 평화주의자이다. Born in the U.S.A 때문에 보수주의자로 오해하기 쉬운데, 스프링스틴은 연예계 내에서도 진보적인 축에 들면 들었지 절대로 보수주의자는 아니다. 애초에 그 노래 가사도 미국의 끔찍한 전쟁영웅 대우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 2020년 11월에 음주운전으로 체포되었다고 한다. 이후 조 바이든의 취임식에서 공연을 하고, 슈퍼볼 기간에 방송되는 자동차 브랜드 지프의 광고에 출연했기 때문에 더욱 비판을 받고 있다. 음주운전 체포 기사는 2021년 2월에 보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