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시

 




1. 개요
2. 기원
3. 현황
4. 여담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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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si. 인도에 거주하는 조로아스터교 신도들을 가리키는 말. 파르시란 페르시아 사람이라는 뜻이며, 정확히는 페르시아와 파르시 모두 어원이 이란의 파르스 주에서 나왔다. 한마디로 인도에 거주하는 페르시아인이라고 보면된다. 현재 인도에 6만명이 거주하며 파키스탄에도 1400명이 산다. 또다른 인도계 국가인 네팔,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에도 소수의 파르시가 살고 있다.
파르시 출신 유명인으로 잠세트지 타타[1], 프레디 머큐리, 주빈 메타가 있다. 카이코스루 소랍지도 파르시 계통 혼혈이지만 아래의 특성상 파르시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이란계 사람들이 그러하듯 백인 계통에 속하며 정통 파르시 출신인 프레디 머큐리에서 볼 수 있듯 유럽의 백인과 거의 비슷한 외모를 가지는 경우도 있다.

2. 기원


걸프 만을 거점으로 인도양 해상 무역에 종사하던 페르시아인 상인들이 사산 왕조가 멸망하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인도의 구자라트주를 중심으로 정착한 것을 기원으로 보고 있다. 이들의 부계 Y-DNA는 이란계인 반면 모계 mtDNA는 약 6% 정도만 이란에서 기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구자라트에 정착했던 파르시들은 다시 신드 지방의 카라치[2]마하라슈트라봄베이로 이동해 공동체를 형성하며 인도 해상 무역 패권을 장악했다. 고대 서기 1~3세기 무렵 인도 해상 무역을 장악했던 신드 바르바리쿰의 불교 공동체는 상당수가 이들과 동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기 8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사산 왕조가 아랍인들의 정복으로 멸망한 이후에도 활발한 대외 무역을 행한 것으로 나온다.

성품은 교역을 좋아해서 늘 서해에서 배를 타고 남해로 들어간다. 스리랑카에 가서 온갖 보물을 가져온다. 또 배를 타고 중국에도 가는데 직접 광저우에 가서 비단을 사온다.

혜초, 왕오천축국전

이들은 당나라 때 중국으로도 진출했으며 후에 조로아스터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하면서 송, 원나라 회족의 기원이 되었다.

3. 현황


인도에서 파르시는 생활 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은 편이며 인도의 재벌 기업인 타타 그룹도 파르시가 세운 기업이다. 파르시는 인도인 중에서 영어를 제일 빨리 배우고 유럽과의 해상 무역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매우 성공한 집단이 되었고, 다른 인도인들에 비해 대단히 많이 서구화되었다. 때문에 오늘날의 파르시들은 인도계 민족답지 않게 출산율이 매우 낮다.
오늘날의 조로아스터교 신도는 크게 인도의 조로아스터교와 이란의 조로아스터교로 나뉘는데, 이란의 조로아스터교는 원칙적으로 외부인이나 타 종교 신도의 개종이 가능한데 비해 인도의 조로아스터교는 외부인의 개종이 불가능하다. 오직 파르시 어머니와 파르시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만이 파르시로 인정받고 조로아스터교인이 될 수 있다. 기독교로 개종하는 인구, 서구인과 결혼하는 파르시 증가 및 출산율이 낮아지는 상황인지라 파르시의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1941년 11만 명에 달하던 파르시 인구는 2011년에는 6만 명 이하로 떨어진 상황이고, 더욱이 파르시 인구 중 31% 이상은 60세 이상이며 출산율은 0.8명에 불과한 상황이다. # 오늘날의 파르시 대부분이 아는 친척 중에 서구인과 국제결혼하거나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을 두고 있다.

4. 여담


사족으로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네타 해변가와 W 호텔 근처에 Rangoli라는 인도 레스토랑이 있는데, 해당 레스토랑 사장님이 파르시다. 자신이 파르시라는데 자긍심이 강한 분이라서 브레이크 타임에 차 한잔 주문하고 인도의 파르시 공동체나 조로아스터교 관련해서 궁금한 점을 영어로 물어보면 친절하게 잘 알려주시는 편이다.
아제르바이잔에서 고대 조로아스터교 사원 유적을 개방하면서 이곳으로 성지 순례를 가는 파르시들도 많아진 듯 하다.
혹여나 사업상 인도 기업인 중 파르시를 만난다면 근처에서라도 담배를 피우면 안된다. 조로아스터교에서 흡연은 절대 금기 사항[3]으로,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 사람에 따라서 되게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4]

[1] 인도 최대의 기업집단타타 그룹의 창립자이다. 국내에서는 타타대우상용차로 알려져있다.[2] 본래 조그만 항구도시에서 시작되었으나 근현대 구자라트 주의 수라트 항이 마라타 동맹의 약탈로 타격을 입은 이후 이를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되었다.[3] 몸에 해로워서 금기 사항이 된 것은 아니고 불을 함부로 다루고 더러운 곳에 버리는 것을 불경한 행위로 간주하는 것[4] 다만 파르시들은 교리 설명이 귀찮아서 굳이 말은 안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