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크 데 프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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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수도 파리의 16구에 위치한 경기장으로 1897년 7월 18일에 개장하였고 이후 2번 (1932, 1972)의 보수 및 확장공사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파리를 연고로 하고 있는 클럽인 파리 생제르맹 FC의 홈구장이다. 또한 UEFA가 지정한 카테고리 4 경기장으로서 각종 유럽 대회를 유치하고 치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경기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육상 트랙이 있는 다목적 경기장이다. 애칭은 '''르 파르크(Le Parc)'''.
르 파르크가 들어선 터는 이전부터 유원지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18세기 부르봉 왕가의 사냥터였으며, 19세기에는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이 여가를 보내던 곳이기도 했다.
인근에 스타드 장부앵(Le Stade Jean-Bouin)이 위치해 있다. PSG의 메가스토어가 있고 경기 당일 매표소 또한 장부앵에 설치된다.
2. 역사
2.1. 준공(1897년~)
1897년 7월 18일 '스타드 벨로드롬 뒤 파르크 데 프랭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개장하였다. 시설이 들어서기 전 파리의 이 구역은 프랑스 혁명 전 프랑스 왕실이 사용하던 유원지였다. 프랑스어로 제후들의 공원/유원지란 뜻의 경기장 작명은 그 때문.
최초의 국제대회는 유럽의 라이벌 잉글랜드 팀과 프랑스 파리 시민팀이 벌인 1903년 친선경기인데, 무려 11 대 0으로 잉글랜드가 승리한다.(...) 개장 당시의 좌석은 3,000석 안팎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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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차 증축(1932년~)
1924년 리모델링으로 좌석을 2만 석 가까이 확보했지만 1924 파리 올림픽과 럭비 경기를 위한 임시 증축이라 1932년에 제대로 된 증축을 한다. 원래도 좌석을 26,000석 가까이 늘렸으나 1932년의 증축을 통해 좌석은 38,000석까지 늘어났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쳤으나 다행히 파괴되진 않았고, 1944년 파리 해방 이후 이 당시 르 파르크를 홈으로 사용하던 레드 스타 FC와 라싱 파리가 다시 돌아와 홈경기장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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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차 증축(1972년~)
그러나 전쟁을 거치고 지붕도 없고 노후화까지 된 경기장이라 역시 계속 사용하기엔 무리였다. 드디어 지금의 현대적 건축물로서의 건설을 계획한다.
이 당시엔 럭비를 염두해 두고 트랙을 유지한 게 아쉬운 부분이긴 하나 타원형 지붕과 조명 시설이 결합된 최초의 경기장이었고, 저명한 프랑스 건축가나 예술가들이 파리의 스카이라인까지 신경써서 만든 나름 당시 최신기술들이 접목된 건축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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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파리 생제르맹과 리모델링(2012년~)
1972년 증축이 완료된 후 프랑스와 소련의 국제경기, 쿠프 드 프랑스 결승전 등을 진행하고 파리 생제르맹 FC의 홈으로써 사용된다. 그러나 몇 년 못 가고 1973년 파리 FC와 PSG로 클럽이 두 개로 다시 나뉘고, '''현존하는 파리 생제르맹'''으로서의 르 파르크 첫 경기는 1973년 리그 2에서 같은 파리를 연고지로 하는 레드 스타 FC와의 경기였다.
1974년엔 PSG가 다시 리그 1으로 승격하고, 반대로 르 파르크를 쓰던 파리 FC는 강등당하여 PSG는 파르크 데 프랭스를 자신들의 홈으로 사용할 것을 공식적으로 표명하였다. 당연히 파리 FC는 거부하였고 몇몇 경기는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치루지 못하여 스타드 조르주 르페브르, 스타드 장부앵, 현재 레드 스타 FC의 홈인 '스타드 바우어' 등에서 경기를 해야했다.
결국 르 파르크에서는 PSG, 파리 FC, 레드 스타 FC 등 파리를 연고로 하는 클럽이 돌아가면서 경기하게 되었는데, 지금처럼 완전히 PSG의 홈이 된 이유로는 결정적으로 관중 수 차이가 컸다. PSG는 창단 당시부터 시민들의 서명과 모금을 받았고, 창단 의도 자체가 파리의 빅클럽을 만든다는 것이었으니 PSG의 파르크 데 프랭스 홈경기 관중 수는 당연히 레드스타나 소극적 운영을 하던 파리FC가 모으는 관중보다 많아 1972년 재개장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큰 경기장이었던 파르크 데 프랭스를 홈으로 쓰는 것에 당위성이 생긴 것이다.
물론 그렇게 끝난 것은 아니고, 파리 FC와 레드 스타 FC가 리그 1에 있던 가장 최근 시절인 1990년대까지도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그들이 몇 차례 경기를 하긴 했다. 하지만 그 두 클럽들이 끝내 버티지 못하고 리그 2로 강등되어 올라올 낌새가 안 보였고, 반대로 PSG는 카날 플뤼스를 등에 업고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한 90년대로 접어들어 온전히 PSG만의 경기장이 된다.
이후 별 사건사고 없이 시간을 보내다 카타르 자본이 들어서고, 파리 시와 합의하여 2043년까지 파르크 데 프랑스 임대를 연장한 뒤 낡았다 싶으면 리모델링하기 시작했다. 2012년, 2013~14년, UEFA 유로 2016의 진행을 위해 2015~16년까지 3차례에 걸쳐 개수하고, 계주 트랙 사이드에 두 줄 1,200석 등 합계 4,500석의 좌석을 추가 설치하여 수용력을 48,000명까지 늘렸으며 웜업실, 관리실, 탈의실 등을 추가 설치 및 보수하였다. 리모델링에 총 75m 유로를 사용했고 경기장 수입은 기존 20m 유로에서 5배 뛴 100m 유로가 되었다.
사실 카타르 수뇌부는 스타드 드 프랑스로의 홈 이전 or 파르크 데 프랭스 재개발 중 UEFA 유로 2016 문제도 겹쳐 후자를 택한 거라 전체 계획 중 아직 남아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최종적으로 파르크 데 프랭스의 수용력을 60,000석 이상으로 확장시키고, 약 150m~200m 유로로 파리 시로부터 '''PSG 명의로 경기장 자체를 구입할 계획도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었다.(...) 재개발 계획을 맡은 PSG의 부회장 장클로드 블랑과 카타르 수뇌부가 유럽 유수의 클럽이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로 구단 자체 소유의 대규모 홈구장을 생각하는만큼 어디까지 진행될지 두고볼 일이다.
3. 여담
주요 대회로는 1924 파리 올림픽[1] , 1938년 FAIFA 월드컵, UEFA 유로 1984 결승전인 개최국 프랑스 대 스페인의 경기와 1998년 FIFA 월드컵의 조별 예선과 3.4위 결정전이 치러졌다. 유로 2016, 2019 FIFA 여자 월드컵 프랑스 대회의 개최지 중 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대의 흑역사가 여기서 벌어지기도 했다.''' 1994 FIFA 월드컵 미국의 유럽 지역예선에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은 여기서 이스라엘 축구 국가대표팀과 맞붙는 상황이었다. 상대가 당시로서는 진짜 유럽이라고 할 수조차 없는 뜨내기인 이스라엘인데다가 홈 경기였기 때문. 프랑스는 그 경기에서 이스라엘에게 2-3으로 털리는 바람에 마지막 불가리아와 경기까지 본선 진출 확정이 미루어졌고 불가리아와의 경기 역시 비기기만 해도 본선 진출이었지만 충격적인 역전패 그것도 종료 직전 라스트 미닛 골을 얻어맞으면서1994 FIFA 월드컵 미국을 텔레비전으로 시청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는 1998년 FIFA 월드컵 E조 한국 대 벨기에와의 조별 예선경기 (무승부 1:1)와 2019년 FIFA 여자 월드컵 개막전(대한민국 대 프랑스)으로 인해 인연이 있다.
르 클라시크나 챔스 빅매치 등의 경기를 직관할 때 만에 하나 잘못 걸리면 연기가 매우 빡세다.(...) 축구장에서 과열되면 홍염이야 으레 나오지만 지붕 안, 관중석 쪽으로 바람이 불 때면 다른 경기장에 비해 연기가 잘 안 빠진다...
4. 2019 FIFA 여자 월드컵 프랑스
5. 둘러보기
[1] 단, 주경기장은 스타드 올랭피크 이브-뒤-마누아르(현재 명칭)으로, 이 경기장은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의 결승전이 열렸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