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템킨
1. 제정 러시아의 귀족
러시아어: Григо́р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Потёмкин-Таври́ческий
영어: Grigory Aleksandrovich Potemkin-Tavricheski
1739~1791.
제정 러시아의 귀족 출신 정치인, 관료, 군인이자 예카테리나 2세의 총신 겸 정부. 크림 반도를 러시아 땅으로 하는 공로를 세웠고 러시아-튀르크 전쟁의 총사령관으로 복무했다.
포템킨은 'ё'(요)를 잘못 읽었거나 Potemkin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생긴 오류.[1]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는 그리고리 알렉산드로비치 포툠킨-타브리체스키, 구개음화를 반영한 원어 발음로는 '빠쫌낀'에 가깝다.
2,3,4번 항목의 어원이다.
2. 러시아 제국의 전함
보통 '포템킨'이란 명칭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정식 함명은 '크냐지 포툠킨(파촘킨) 타브리체스키'.
1898년부터 건조가 시작되었으나 중간에 화재사고가 일어나는 등의 문제로 1905년이 돼서야 흑해 함대에 배치되었다. 건조 시기부터 따져봐도 상당히 뒤늦게 만들어진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서 이미 영국에서는 드레드노트급이 건조되고 있을 무렵이었지만, 러일전쟁으로 인해 발트 함대가 증발당한 러시아에는 그야말로 막 뽑혀나온 최신예 전함이었다.
2.1. 포템킨 반란 사건
포템킨 반란 문서 참고.
2.2. 영화 전함 포템킨
해당 문서 참고.
3. "초라한 상태를 은폐하기 위해 꾸며낸 겉치레"라는 뜻을 가진 관용어
'''포템킨 마을'''이라고 한다. 유래는 '포템킨'이란 명칭으로 잘 알려져 있는 1번 항목의 러시아 귀족 그리고리 포툠킨(포템킨)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포템킨은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 치하의 궁정 인사였고, 여제의 연인이기도 했다. 또한, 포템킨은 당시 러시아 제국에 합병된지 얼마 안 된 옛 크림 칸국의 통치를 맡기도 했다. 그에 관해서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위 이야기가 사실일 가능성은 적지만, 그후 그레고리 포템킨의 이름을 딴 '포템킨 마을'이라는 용어는 초라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를 은폐하기 위해 꾸며낸 겉치레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또한 포템킨 마을 전략은 전쟁터에서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군대가 전력을 실제보다 더 강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법이라는 뜻도 있다.
소련이 냉전 시대에 이 수법을 사용하였다. 흐루쇼프는 미국에 비하면 얼마 되지도 않는 미사일과 핵무기를 가지고 미사일로 미국을 싸그리 지워버릴 수 있을 것이라며 60년 초에 수많은 공갈 협박을 자행해왔다[2] . 폭격기 갭 논란, 미사일 갭 논란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후 80년대에 들어서는 소련이 핵무기를 무진장 늘려놔서 미국보다 더 많은 수의 핵무기를 가졌었다. 그만큼 핵전쟁의 공포는 더 늘어났지만 상호확증파괴 덕분에 다행히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소련은 얌전히 붕괴했다.
한국도 해당 상황과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을(를) 자제해 주십시오가 대표적. 특히 군인 출신이 정권을 잡았던 군정 시절에 이러한 "전시(보여주기) 행정"이 심하였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녹화(잔디 심기) 정도가 미진하자 큰 도로 주변의 잔디밭에 녹색 페인트를 스프레이칠한 것은 당시 세대에게 잘 알려진 일화이다.
북한도 똑같이 구는데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평양의 일부 지역 외엔 절대 여행 허가를 안내주는 것이 그것이다. 일부러 가장 발전된 지역만 외국인에게 보여주려는 목적.
4. 길티기어 시리즈에 등장하는 캐릭터
포템킨(길티기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