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량쭤
1. 개요
청말의 군인, 중화민국의 군벌. 안휘군벌의 일원으로 호남독군을 지냈으나 안직전쟁으로 몰락하였다.
2. 생애
2.1. 초기 이력
1873년 호남성 건청에서 태어났다. 1894년 호남성 시무학당을 나왔으며 무술정변 이후 천진무비학당에 입학했으며 졸업 이후 1902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귀국하여 북양근기군대에 입대하였다. 1907년 동삼성 총독 쉬스창 휘하에서 총참의, 육군과장 등 참모직을 지냈다. 1912년 중화민국 건국 이후 대총통부 군사처장을 거쳐 1912년 차하얼 도통에 임명되었다. 1916년 돤치루이 내각의 육군차장이 되어 안휘군벌의 일원이 되었으며 우광신, 진윈펑, 쉬수정과 함께 안휘파 4대 금강 중 한 사람으로 불렸다. 1917년 부원지쟁의 결과로 장훈복벽이 일어나자 복벽을 토벌하였다.
2.2. 호법전쟁
복벽 진압 이후 돤치루이가 약법 회복을 거부하자 쑨원이 광저우로 남하, 광저우에 호법정부를 세워 1차 호법운동을 전개하였고 이에 돤치루이가 무력토벌을 결정, 1917년 호법전쟁이 일어났다. 이때 중앙정부에는 직예군벌의 수장인 펑궈장이 대총통으로 재임하면서 돤치루이의 무력통일 정책에 반대하고 있었는데 펑궈장은 돤치루이를 견제하기 위해 휘하의 리춘을 강소독군으로, 진광원을 강서독군에 삼았는데 이에 맞서 돤치루이도 우광신을 장강상류경비사령 겸 사천사판사로, 그리고 1917년 8월 푸량쭤를 호남독군에 임명하였다. 8사단과 20사단을 거느려 호남에 부임한 푸량쭤는 9월 9일 독군에 취임, 호남성장으로 그간 호남에서 정권을 유지해오던 탄옌카이를 축출하고 호남의 지배자가 되었다. 당시 호남군 2사단장 진복초는 푸량쭤의 지인으로 푸량쭤를 지지하고 있었고 1사단장 자오헝티는 상중이라서 1사단장 대리인 1사단 1여단장 이우문 포섭에 주력하는 한편 전성계엄총사령부를 조직, 스스로 계엄사령관에 취임하여 양광으로 진격할 준비를 갖추었다.
하지만 쑨원의 호법 구호에 호응하여 9월에 영릉진수사 유건번과 여장 임수매가 돤치루이에 반대하며 봉기, 호법정부에 가담하여 청첸을 호법군 호남총사령관으로 추대하였다. 푸량쭤는 즉시 장사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파견한 부대들이 항명하거나 도리어 호법군에 가담하는 등 전황은 삽시간에 푸량쭤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급기야 1사단장 자오헝티가 호법군에 합류하자 푸량쭤는 8사단장 왕여현을 상남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20사단장 범국장을 부사령관으로 삼아 3만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호남 남부의 호법군을 진압하게 하였다. 허나 10월에 호법군 상남총사령부가 조직되고 청첸이 총사령관에 추대되었다.
초기에 푸량쭤는 임수매 등을 몰아내고 전 전선에서 전진하였으나 탕지야오, 루룽팅이 탄하오밍을 월계상연군총사령으로 임명, 20개 대대로 구성된 지원군을 파병하면서 10월 말에 푸량쭤가 도로 밀리게 되었다. 급기야 직예파벌이었던 왕여현, 범국장이 11월 14일 정전을 통전하고 철수해버렸다. 대세가 기울어버린 것을 안 푸량쭤는 장사의 수비를 왕여현에게 남겨둔 체 자신은 호남성을 떠나 도주했다. 이에 당황한 돤치루이는 푸량쭤를 면직하고 왕여현을 독군에 임명했으나 11월 17일에는 왕여현까지 장사를 버리고 퇴각하였다.
2.3. 안직전쟁과 몰락
호남에서의 패배로 11월 돤치루이가 총리에서 사직하고 왕스전이 신임 총리가 되어 남방과의 화의를 시도했으나 쉬수정의 주도로 차오쿤, 장회지, 니쓰충 등이 토벌령 발표를 요구했고 이로 인하여 내전이 재개되었다. 2월에 왕스전도 물러나고 내무총장 첸넝쉰이 잠시 대행하다가 다시 돤치루이가 총리가 되어 장쭤린의 봉천군벌까지 끌어들여 전쟁을 지속하려 했으나 결국 북양군벌의 내분으로 진전이 없었다. 1918년 10월 쉬스창이 신임 대총통에 취임하고 슝시링, 차이위안페이, 량스이 등 사회 명사들이 정전을 요구하자 니쓰충을 비롯한 주전파들도 화평을 요구하여 11월에 호법전쟁은 종결되었다.
푸량쭤는 안휘군벌의 세력강화를 위해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을 구실로 조직된 참전군에 들어가게 되었다. 참전군의 조직에 대해서 국내외의 비난이 빗발치자 참전군은 복드 칸국 정벌을 위해 필요하다는 구실로 변방군으로 개칭되었고 푸량쭤는 변방군판공서 참모장에 임명되었다. 1919년 쉬수정이 외몽골 출병을 단행, 복드 칸의 항복을 받아내는 등 변방군은 나름 밥값을 하는 것으로도 보였으나 수만에 달하는 대군이 육군부가 아니라 안휘파의 사병으로 조직한다는 현실은 명백하였고 결국 직예군벌과 봉천군벌의 불만이 폭발, 1920년 7월 안직전쟁이 발생했다.
안직전쟁에서 안휘군벌은 참패했고 돤치루이는 사직을 통전하였다. 쉬수정, 돤즈구이 등 안휘파의 주요 장령들에게는 체포령이 내려졌고 푸량쭤도 변방군이 해체됨에 따라 변방군 참모장에 하야, 톈진에 은거하다가 1926년 사망했다.
3. 주요 경력
4. 참고문헌
- 중국현대정치사론, 장옥법, 고려원.
- 군신정권, 진지양, 고려원.
- 중화민국과 공산혁명, 신승하, 대명출판사.
- 마오쩌둥 평전, 알렉산드르 판초프, 스티븐 레빈, 민음사.
- 民國 初期(1912 - 1920) 湖南軍閥의 形成, 김세호, 동아시아역사연구 4권, 동아시아역사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