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민주당
1. 개요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존속하였던 정당이다.
2. 역사
1988년 창당하였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김대중 양 김의 분열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자 조순형, 유인태, 제정구, 원혜영, 김부겸 등과 함께 3김의 지역할거 정치 및 민주정의당의 관권 정치에 저항하는 제3의 당을 구상했고, 그 산물이 한겨레민주당이었다.
대표최고위원에는 예춘호가 선출되었다.[1] 창당 전당대회에서 자주, 민주, 통일이 핵심을 이루는 10대 강령과 5대 기본 정책을 채택했다.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예춘호, 조순형, 원혜영 등이 입후보하였다. 그러나 전라남도 신안군의 박형오 딱 1명만 당선되어 겨우 등록 무효를 면하는 신세가 되었으며, 그렇게 당선된 박형오 의원조차 13대 국회 개원 직후인 6월 11일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여[2] 원외정당으로 전락. 게다가 박형오가 당선된 것도 자력이 아니라 평화민주당 한화갑 후보의 등록 무효로 인해[3] 평화민주당 성향 표가 쏠렸기 때문이었다. (...)[4] 만약 한겨레민주당이 전남 신안 선거구에 공천을 안했더라면 '''민주정의당 김복수 후보의 무투표 당선'''이라는 일대 사건이 일어날 뻔한건데, 실제 선거 결과를 봐도 박형오는 77.66%밖에 얻지 못했고 민정당 김복수가 무려 '''22.33%'''를 얻었다. 결국 신안군에서의 민정당 지지세가 의외로 있었던거고, 민정당이 무투표 당선으로 가져갔더라면 교두보 삼아 공략에 나섰을지도 모를 일.
총선 참패이후 예춘호 대표는 정계를 은퇴하였고 남은 당원들은 1990년에 '민주연합추진위원회'[5] 측과 합당하려 했다. 그러나 '민주연합추진위원회' 측에서는 진보정당의 재건을 먼저 해야 한다고 한 반면 한겨레민주당 측에서는 야권 통합을 먼저 해야 한다고 하는 의견 차이를 보여 합당은 무산되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조순형, 원혜영 등 당 지도부가 민주당에 입당하였고, 이듬해에 한겨레민주당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6]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로 인해 생긴 정당으로 정작 한겨레민주당 참여 인사 대부분은 민주당으로 갔으며, 후대의 진보정당들과의 접점은 전혀 없다.
여담으로 비슷한 시기에 창간한 한겨레신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단지 우연히도 이름이 비슷했을 뿐. 이 때문에 한겨레신문은 창간을 홍보하는 지상파TV 광고에 '한겨레민주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라는 멘트를 집어넣었다.
3. 역대 선거결과
-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0.3% 1/299
[1] 당시 한겨레민주당 지도부 중에서 국회의원 경험이 있는 사람은 예춘호 대표와 조순형 전 의원 정도였고, 나머지는 전부 재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었다.[2] 이미 선거기간 중에 당선되면 평민당에 입당한다는 밀약이 있었으며,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화갑의 피선거권이 회복되자 박형오는 예정대로(?) 팽 당했다. 그렇게 정계에서 사라졌다가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전라남도의원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2011년에는 포항에서 무허가 소금을 판매하여 경찰에 입건된 적도 있다. 2019년 1월 지병으로 별세. [3]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인해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는데 이게 아직도 사면 복권되지 않은 상태였다.[4] 앞서 언급한 평민당 입당 밀약 자체가 평민당이 박형오를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대가로 나온 것.[5]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온 민중당의 전신격 단체이다.[6] 사유는 지속적인 이탈로 인한 법정 지구당 수(전체 지역구의 1/5)에 미달. 이 규정은 2004년에 시도당 제도로 개편되면서 5개 이상의 시도당을 유지해야 존속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