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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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별명은 '''Mr. 쓴소리'''였으며 부인 김금지와 아들 조성덕은 연극배우이다.
2. 생애
1935년 충청남도 천안군 직산면(현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에서 유석 조병옥의 3남 2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 때는 평범하게(?) 삼성물산에서 근무하였다.
1981년 형 조윤형이 정치규제를 당하자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김정례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정치규제에서 해금된 둘째 형 조윤형이 민주한국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선거구에 출마하려 하자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홍성우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고려대학교 앞 시위 선동 혐의로 박찬종 등과 기소되었다.
1987년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김영삼과 김대중이 분열하여 따로 출마하자,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찬종, 이철, 홍사덕, 장기욱, 허경구 등과 양김 단일화를 촉구하였다. 1988년 예춘호 등과 한겨레민주당을 창당하였다. 그리고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도봉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주공화당 신오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꼬마민주당에 합류하여 야권통합에 노력하였다. 1991년 민주당 최고위원이 되었다. 1992년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병 지역구에 출마하여 현역 전국구 국회의원인 민주자유당 양경자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 민주당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가 다시 대한민국 국회 교육청소년위원장이 되어 1994년까지 일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북구 을 지역구[2] 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내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노무현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2003년 열린우리당 분당에 반대하였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때 새천년민주당 대표로서 탄핵을 주도하였다.[3]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탄핵 정국의 책임을 지고, 지역주의도 타파한다는 명분 하에 지역구를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 지역구로 옮겨 출마하였으나 당연히 한나라당 이한구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4] 이후 원외인사로 전락하며 정계에서 은퇴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2006년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성북구 을 지역구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5]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 출마하였으나 이인제에게 밀리자 금권선거에 항의하며 탈당하였다.
2008년 자유선진당이 창당되자, 왕년의 정적인 '''이회창'''과 손을 잡고 자유선진당 상임고문으로 입당했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선진당 비례대표 국회의원(2번)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최고령 상임위 간사(만 72세)'''라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며[6] ,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선진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중도 사퇴 후 정계를 은퇴했다. 해당 선거에서는 민주통합당 정호준 후보[7] 를 지지하였다. 자유선진당이 선진통일당으로 당명을 변경하며 이인제 대표를 선임할 때 탈당하였다. 그를 데려온 이회창 총재도 새누리당에 5년만에 평당원으로 복당하면서 없었고, 이인제와는 악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계를 은퇴한 뒤에는 간간히 방송에 나와서 시사 평론을 하고 있으며, 탄핵을 주도했었던 적이 있기 때문인지 2017년에는 탄핵 여파에 휩싸여 있던 자유한국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결국 비대위원장직은 인명진에게 넘어갔지만. 민주당이었지만 아버지와 같이 보수성향이다. 그래서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에게 쓴소리도 많이 하였다.
3. 선거 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4. 소속 정당
5. 둘러보기
[1] 25세 '''형(衡)''' 행(行) 항렬.[2] 도봉구 갑/을/병이 도봉구 갑/을, 강북구 갑/을로 선거구가 1개 늘어났다.[3] 이 당시 당 부대변인인 장전형이 '''야당대표가 오셨는데 물 한 잔도 안 준다.'''라고 KBS를 비난하는 바람에 물은 셀프라고 하는 유행어와 관련한 일화가 생기기도 했다.[4] 헌데 12%대 득표로 선거비용 절반은 건졌다.[5] 친노계 인사인 신계륜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잃으면서 지역구가 비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형인 조윤형의 지역구이기도 했다.[6] 이후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이 만 75세의 고령으로 법사위 간사를 잠깐 맡으면서 깨졌다.[7] 정대철의 아들이다.[8] 전임자 신계륜 피선거권 상실[9] 신민주연합당과 신설 합당[10]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11] 중도개혁통합신당과 신설 합당[12] 국민중심연합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