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
1. 개요
2015년 3월 5일 주한 미국 대사 마크 리퍼트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약칭 민화협) 조찬 행사에서 한미연합사령부 해체, 정전협정 대신 평화협정 체결 등을 주장하는 우리마당통일문화연구소(약칭 우리마당) 대표 김기종에게 피습당하여 부상을 입은 사건이다.
2. 사건 진행
아래 링크부터는 혐짤 주의.
- 피습당한 리퍼트의 왼손
- 피습당한 리퍼트의 얼굴
- 오른쪽 안면부와 왼쪽 손목 등 다섯 군데에 자상을 입은 리퍼트
2.1. 습격
민화협은 서울시민문화단체연석회의 대표인 김기종을 포함 총 420명에게 초청장을 발송하였고, 행사장 규모 문제로 참석 의사를 밝힌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해 두었다. 김기종은 행사 참석 의사를 밝혔다고 주장하였지만 민화협이 준비한 참석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이에 대해 현장에 배치됐던 정보관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김씨의 얼굴을 알고 있던 행사 관계자가 현장에서 손으로 써 준 이름표를 발급하여 행사장에 입장시켰다. 김기종 출입 과정 기사
김기종은 미리 가져온 유인물 40여장을 열려있던 노정선 교수의 가방에 넣고 10여장을 건네고 일어나 메인 테이블로 이동, 식사를 시작하려던 리퍼트를 넘어뜨리고 과도로 공격했다. 범행 중 제압당한 김기종은 "유인물은 노정선 교수[1] 한테 있습니다. 노정선 교수님, 유인물 나눠주십시오. 지난 3월 2일 훈련 반대하면서 만든 유인물이 노정선 교수에게 방금 전달됐습니다"라고 소리쳤다. 김기종 범행 당시 주장 내용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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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에 사용된 흉기는 사건 초기에 면도칼로 알려졌으나 이후에 25cm 길이의 과도로 밝혀졌다. 이 25cm를 날 길이로 알고 회칼이 아니냐며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25cm는 날 끝에서 손잡이 끝부분까지의 길이이다. BBC 등 영미권 언론에서는 'Long Blade'로 표현했다.
2.2. 범인 체포 및 대사 병원이송
민화협 상임의장인 장윤석 국회의원[2] 이 최초로 김기종을 제압했고 현장에 있던 정보과와 외사과 소속 사복형사들이 가세하여 일차적으로 제압한 상태에서 인근에 있던 종로경찰서 소속 교통경찰들이 투입되어 범인을 연행하였다.
리퍼트 대사는 즉시 지혈을 하고 순찰차에 올라 인근 강북삼성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치료 후 오전 9시 40분경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다. 병원을 옮긴 이유는 세브란스 병원이 미 대사관의 지정병원이었고 세브란스 국제진료소장 인요한 박사가 리퍼트 대사와 개인적 친분이 있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리퍼트는 스스로 손수건을 이용해 지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이 멀쩡한 상태였고 강북삼성병원 측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라고 발표했다. 김기종 역시 범행 후 제압당하는 과정에서 오른쪽 발목에 골절상을 입어 응급치료를 받은 뒤 종로경찰서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오후 2시 경 리퍼트 대사의 수술이 성공적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갔으면 경동맥이 손상되었을 것"이라고 하니 정말 아슬아슬한 차이로 치명상을 피한 것. 수술이 끝난 후 리퍼트 대사와 부인 모두 평소와 다름없이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고 하며 대사 본인은 주변의 기자들이나 걱정해준 사람들에게 "나는 괜찮다, 걱정해줘서 고맙다"라는 의사표시를 지속적으로 하기도 했다. 수술을 받기 직전까지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수술경과가 좋기 때문에 이르면 다음주 중으로 실밥을 제거하고 퇴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병원측은 밝혔다.
2.3. 사건 이후 대응
중동 순방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은 현지에서 보고를 받고 "이번 사건은 주한 미 대사에 대한 신체적 공격일 뿐만 아니라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으로서 결코 용납할 수 없다."라면서 엄정한 처벌을 시사했다. 또한 "리퍼트의 조속한 쾌유를 기원하며 가족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함과 동시에 "미국 대통령 오바마와 미국 정부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며, 몇 시간 후 직접 리퍼트 대사에게 전화 통화로 위로를 전했다. 잘 알려졌듯이 박 전 대통령도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6년 전국 지방선거에서 유세 도중에 칼로 피습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위로에는 "나도 피습 당해봐서 얼마나 힘들지 잘 안다."는 취지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일본의 역사인식을 비판하면서 친중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이 사건 때문에 대미협상력이 약화되어 미국의 요구를 더 많이 들어줘야 하게 되었다. 김기종의 바람과는 정확하게 반대로 흘러가는 셈.
당일 오후 12시 30분, 주한미국대사관 측은 세브란스 병원에서 입장을 발표했다. 염려를 해준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 외교부 및 정당 대표들과 한국 국민들에게 감사의 뜻과 이러한 폭력 사태에 대한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오후 4시 30분 경 리퍼트 대사가 올린 트윗은 외교관으로서 매우 적절한 대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리퍼트 대사는 피습 후 병원으로 후송되는 중에도 "전 괜찮습니다, 걱정 마세요.(I'm OK, Don't worry.)"라고 오히려 주변을 진정시키는 것은 물론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유머를 잃지 않고 병실 밖까지 웃음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웃는 등의 침착하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저는 잘있고 굉장히 좋은 상태입니다. 로빈(아내), 세준(아들), 그릭스비(애완견) 그리고 저는 여러분의 응원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복귀하겠습니다. 같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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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이는 몰상식한 공격이라며 돌봐주고 쾌유를 빌어주는 한국인들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리퍼트 대사의 아버지도 인터뷰에서 "이라크에서도 다치지 않은 아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한국에서 이런 일을 당하게 되어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도 "아들은 한국을 사랑한다. 나는 이런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리퍼트 대사의 상태가 양호하여 6일 오전부터 연세대 총장,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 등 주요 인사의 병문안이 있었다.
3월 9일 오전, 중동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은 곧바로 리퍼트 대사가 입원한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찾아 문병했다. 이 자리에서 굳건한 한미동맹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으며 리퍼트 대사는 정치권 인사들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까지 자신을 염려해준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3월 10일, 리퍼트 대사가 퇴원하였다. 퇴원하면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 국민들의 성원에 감동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3. 수사과정
3월 6일, 경찰은 피의자 김기종을 살인미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였다. 브리핑 전문 경찰은 여죄를 추궁해 배후세력이 있는지 더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도 사안의 중대성으로 인해 이례적으로 검사 10명에 수사관 40여명 규모의 전담 수사팀을 꾸렸다. 대공, 테러 전담인 공안1부를 주축으로 공공형사부, 강력부, 첨단범죄수사부까지 합세하여, 주로 범행의 배후와 동기를 수사하겠다는 의향을 보였다.
3월 9일, 경찰은 김기종의 사무실에서 압수한 물품들을 분석하면서 발견된 10여종의 서적이 국가보안법에 위배되는 이적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미국 FBI와 긴밀한 협조하에 수사를 진행중이며, 배후세력이나 자금줄이 있었는지 면밀히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브리핑 전문 심문 과정에서 김기종은 김일성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20세기 민족지도자"라며 "일제 치하에서는 항일운동을 했고 38선이 생긴 이후 자기 국가를 건설해 지금까지 잘 이끌어왔다"라고 답했으며 '"이를 볼 때 남한에서 김일성과 비교할 만한 대통령은 없다고 본다"'라고 평가했다고 경찰이 공개한 것에 대해 김기종의 변호인 황상현은 꼬리와 머리를 모두 다 자르고 경찰 구미에 맞는 말만 따서 공개한 것이라 주장하였다.
3월 12일 리퍼트 대사는 경찰을 상대로 한 피해자 조사 과정에서 김기종에 대해 처벌해 달라는 의사를 밝혔다.
3월 13일 경찰은 김기종씨를 살인미수, 외국사절 폭행,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구속송치할 예정이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등에 대해서는 수사본부를 유지한다고 발표하였다. 브리핑 전문 이에 대해 YTN에서는 공범, 배후, 국가보안법 위반 등에 대한 증거를 경찰이 찾지 못했다고 보도하였다.
4월 1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김기종을 살인미수와 외교사절폭행,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였고,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 공모 여부와 관련해서는 단독 범행으로 결론내렸다.
4. 재판과정
2015년 9월 11일, 1심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는 피의자 김기종에게 살인 미수와 외국 사절 폭행, 업무 방해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2년형을 선고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2006년 칼로 공격했으나 살인죄는 인정되지 않은 지충호의 선례로 살인죄가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평가도 존재했으나, 재판부는 김기종이 지충호처럼 얼굴만을 찔러 상해를 입힌 것이 아니라, 칼로 피해자의 얼굴과 목 등 치명적인 부위를 짧은 시간에 수차례 공격했고, 피해 부위 바로 아래에 경동맥이 있어 피해자가 사망할 수도 있었다며,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한 정치적 범죄이기 때문에 엄벌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밝혔다. 다만 검찰이 주장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받아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증거를 보충한다면서 항소했고, 김기종 측도 항소했다. #
2016년 9월 28일, 대법원은 피의자 김기종에게 살인미수, 외국사절폭행,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2년형 선고를 확정했다. (관련기사, 판결문)
5. 피의자 김기종
내용이 길며 구속영장이 발부됨과 동시에 작성금지가 해제되어 별도 문서로 분리되었다. 해당 문서 참조.
6. 평가
당초에는 우방국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대사가 직접 공격당했다는 점에서 적지않은 정치/외교적 파장, 특히 한미관계 악화가 크게 우려되었다. 1964년 당시 주일미국대사였던 에드윈 라이샤워[3] 가 정신이상자에게 피습당한 사건이후 비교적 치안이 안정적인 우방국에서 미국 주요 대사가 테러를 당한 것은 수십년만의 일이다.
하지만 오히려 리퍼트 대사와 미국에 대한 우호적 여론이 늘어나 김기종이 의도했던 바와는 정반대로 상황이 흘러갔고, 각종 실정으로 말미암아 하락하던 박근혜 정부에 대한 지지율마저 반등하는 현상을 초래하였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대중국 포위망 구축과 관련하여 한국에 대한 영향력이 강화되는 전화위복 상황을 맞았기 때문에 굳이 한국 내 여론을 자극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한 이 사건은 누가 봐도 명백하게 특정 개인이 망상으로 저지른 짓이지 한국 사회와는 관련이 없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김기종에게 제대로 된 처벌을 내리고 경호 관련자들을 징계 처분하면 해결이 가능한 문제다.
한편 이런 공식적인 행사장에서 흉기를 소지한 범행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행사장 경호 문제도 비판을 받았는데 사건 발생 하루도 지나지 않아 미 대사관과 한국 경찰이 슬그머니 책임 미루기를 시도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책임이 있다. 일단 민화협과 미국 대사관의 보안과는 책임을 피할 수 없고 경찰도 미국 대사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줄줄이 옷 벗는 전례를 감안할 때 보다 큰 규모의 문책성 인사가 예상된다.
각국 대사의 근접경호는 자국의 국방무관들이 직접 맡는 것이지만 출입자 관리는 행사 주관기관 책임이며 민화협은 경찰 또는 사설 경호업체에 대한 사전 협조 요청을 소홀히 했다. 경찰은 리퍼트는 경호 대상이 아니었지만 행사장 외부에는 경찰을 배치한 상태였다고 밝혔는데 후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현장에는 출입자 통제 인력도 부족했고 경호와 관련된 인력은 아예 없었다고 한다. 이는 치안이 상당히 안정적인 우방국에서 "누가 감히 미국 대사를 건드리겠냐"는 안일한 생각에 경호가 허술해진 것으로 보인다. 대사관 앞에 상시 배치하는 경찰 병력을 감안하면 "시위 진압만 할 줄 알았지 테러 대처에는 취약하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7. 국내외 반응
7.1. 정치권
미국 국무부는 브리핑을 통해 "우리는 리퍼트가 강연을 하던 도중 피격을 당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우리는 이 같은 폭력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사건을 보고받고 리퍼트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쾌유를 빌고 안부를 물었다 한다. 국내 언론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 것처럼 리퍼트와 오바마는 같은 당 소속에 오랜 친분이 있어 최측근으로 평가받는다.
당초 테러에 대해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강력한 항의와 압박이 예상되었으나, 미국에서는 이를 테러가 아닌 개인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건 발생 불과 며칠 전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 차관이 개인 자격으로 참석한 강연회에서 "한국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지나치게 과거사 문제를 물고 늘어진다"는 투의 발언을 한 것이 재조명되었고, 이로 인해 한국 국민들의 불만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미국 정가의 분석도 있었다.[4] 적어도 미국이 외교적으로 욕을 먹을 뻔했던 입장에서 오히려 욕을 해도 한국이 어쩔 수 없는 입장이 되었음은 명백하다.
외교부는 유감을 표명했으며 이완구 국무총리는 사건 진상을 잘 파악하고 미국과 협력관계에 문제가 없도록 미국측에 잘 설명하도록 지시했다.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모두가 용납할 수 없는 테러 행위라면서 테러 세력을 근절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으며 정의당, 노동당 등 진보계열 정당들도 마찬가지로 유감을 표명했다.
행사를 주도했던 민화협은 공식 성명을 통해 한미 양국 정부와 국민에게 깊은 사과를 표함과 동시에 이번 사건을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 테러로 규정하였다. 민화협 회장인 홍사덕은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 와중에도 북한은 사건 당일에는 "전쟁 미치광이 미국에 내려진 응당한 징벌, 정의의 칼세례를 안겼다."라고 논평했고 3월 8일에는 종북세력의 소행으로 모는 것에 대해 비난했다.
사건 발발 당시에는 유감을 표하는 데 여야가 뜻을 같이 했으나, 리퍼트 대사의 안위가 확인된 이후 3월 8일 여당이 "종북 세력 숙주론"을 꺼내들며 야당을 공격했고, 이에 대해 3월 9일 야당은 "'같이 갑시다'라고 한 리퍼트 대사의 반의 반만이라도 닮으라"고 대응했다. 이러한 공방은 4월 29일 예정된 재선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이 건에 대해서 야당측은 사과를 요구했으나 여당측이 받아들이지 않자 종북숙주론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할 것을 밝혔다. 이에 대해 과거 문재인 의원에게 고소당했으나 무혐의 처분된 바 있는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고소 남용을 막는 법안을 입법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와 관련하여 타인을 종북이라고 칭하는 것이 명예훼손임이 인정된 과거 판례가 존재한다.
또한 북한에서 김기종을 안중근에 비유했고, 국내 유명 시사카페에서도 이에 동조하였다. 이에 대해 보훈처에서는 안중근 의사 명예훼손에 대해 즉각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요구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에 대한 테러는 미국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공격으로 지난 60년간의 평화를 부정하고 전쟁을 부추기는 반민족적 행위"로 규정하였다. 김기종을 안중근에 비유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첫째 친한 성향의 마크 리퍼트 대사를 제국주의자였던 이토 히로부미와 동일시한다는 것, 둘째 만약 그런 인물이였다 가정해도 참정권을 박탈당해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김기종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알릴 평화적인 방법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7.2. 언론
당사국인 미국에서는 이 사건을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속보로 보도하였고 일본·중국·영국에서도 주요뉴스로 보도했다. CNN은 테러가 아닌 습격이라는 표현을 썼고 MSNBC 기사에서도 한국 정부에 대한 비난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국가 혹은 특정 정치집단이 저지른 게 아니라 개인이 저지른 행동이며 불특정 다수가 아닌 미국 대사만 공격 대상이었다는 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위의 동영상 제목은 South Korea가 아닌 North Korea라고 잘못 표기되었다.
미국 하원의원을 지낸 김창준(Jay Kim)이 한 종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미국 정부는 매우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때문에 자국 대사가 피습된 일은 중대한 일이지만 개인의 돌발행동을 한국 정부책임으로 모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조승희가 저지른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 "왜 미국인 범죄를 대한민국이 사과하냐"고 반응한 과거 사례도 있다. 미국 내에서는 개브리엘 기퍼즈 하원의원을 저격한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 등 더 과격한 형태의 습격도 있다는 점도 영향이 있다.
국내 언론도 진영과 상관 없이 분노와 범인에 대한 규탄을 표출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테러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으며 마크 리퍼트 대사에게 유감을 표하고 쾌유를 기원하였다. 또한 이러한 사건 재발 방지와 함께 한미 동맹에 해가 되지 않게 만전을 기하라고 요구하였다. 이는 과거 한겨레에서 일본대사 테러 당시 김기종을 독립투사에 비유한 것과 대조되어 한일관계와 한미관계의 차이를 확인시켰다. 더군다나 한겨레는 2010 당시 테러 당시에는 김기종에 대해 비판적인 사설을 실어 잘못을 알고 있었음에도 띄워줬다는 점에서 비판이 제기되었다. 민중의소리에서도 과거와 달리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반면 노동자 연대에서는 미국의 호전적인 군사훈련과 한일관계사 왜곡 비호가 낳은 사건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여 빈축을 샀다. 이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도 있었으나 사실 노동자 연대는 통합진보당 창당 때에도 진보신당으로부터 의원들이 탈당하는 것을 지지해 현 노동당 쪽에게 빈축을 산 적이 있었으며 지금도 통진당 지지로 기울어져 있다.
사건 초기 국민일보는 점차 고립돼가는 반미·반체제적 종북 활동이라는 이념과 비뚤어진 민족주의나 편협한 국수주의와 같은 극단주의 결합돼 테러리즘으로 진화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사설을 통해 논평하였다.
사태 진정 후 벌어진 여야 공방과 관련하여 보수언론에서는 김기종과 야당 의원들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부각하고, 기사 논조도 관련 야당 의원들의 책임회피성 태도를 강조함으로써 여당의 종북 세력 숙주론에 힘을 더했다. 반면 진보언론에서는 해외 언론 논조와의 비교를 통해 이러한 종북몰이에 대해 경계했고, 뉴욕 타임즈에서도 연세대의 미국인 교수 인터뷰를 통해 정부와 여당이 종북몰이를 위해 과도하게 정치화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한편 시사in에서는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이라느니 배후가 있다느니 하는 대통령과 여당의 메시지는 국익에 반대되는 행위라고 전직 최고위 외교 당국자의 말을 인용하여 주장하였고, 굽시니스트 만평을 통해서도 미국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과거 대통령들의 태도와 대조했다.
중앙일보는 리퍼트 대사 회복과 관련하여 여당/야당 대표와 만났다는 내용을 제쳐두고 로버트 오그번 미 대사관 공보참사관이 전한 "김치 먹고 더더욱 힘 난다"는 대사의 발언을 기사 타이틀로 채택하였다.
3월 8일 로버트 오그번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참사관은 리퍼트 대사가 입원 중에 돈 오버도퍼의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을 정독하고 있다고 전했는데,[5] 이에 대해 "미국은 한미관계를 냉정히 판단하고 있다"는 정치적 메시지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후 부채춤 공연과 석고대죄 단식 등의 국내 반응에 대해 진중권, 손석희, 뉴욕 타임즈 등이 미국에 대한 숭배주의에 따른 광기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하였고, 조선일보조차 과하다는 일부 시민의 의견을 끄트머리에 언급했다. 이런 현상을 꼬집듯이 리퍼트의 동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8. 시민들의 활동 및 반응
시민들은 대체적으로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혀 상관도 없는 미국 대사, 그것도 친한파 인사한테 왜 그랬느냐는 반응이 많다. 서울 한복판에서 시민단체 대표라는 자가 칼을 휘둘렀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인데 무엇보다 평화통일과 전쟁 반대를 주장한다는 사람이 외교관을 칼로 찔렀다는 점이 가장 까이고 있다. 보수 진영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이념적 성향을 표출하려고 극단적 방법을 선택한 전형적 확신범의 행위"라며 종북세력에 의한 테러임을 강조했고, 진보 진영에서는 이번 사건을 이념과 무관하고 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한 운동가의 탈선으로 보는 분위기가 우세하다.[6]
8.1. 오프라인에서의 활동들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한성총회 소속 신자들은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한답시고 발레, 부채춤, 난타 공연을 펼치는 모습이 드러나 나라 망신으로 비난받았다. 미국 대사관 앞에는 청년학생포럼이 쾌유를 비는 기원단을 설치하였다.
어버이연합은 "종북단체 민화협에서 축출하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민화협 건물 앞에서 인공기 화형식을 벌였다.
한 70대 남성이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한다며 개고기와 피습 사건에 대한 사과 편지를 들고 병문안을 오는 일이 생겨 해외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개고기는 병원 측에서 전달을 거절하여 리퍼트 대사에게는 전달되지 않았지만, 편지는 대사가 읽었다고 주한 미국 대사관 관계자에 의해 확인되었다. 이후 모 회사의 회장으로 신원이 밝혀진 권씨의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가 조명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부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박근령 여사의 남편)가 석고대죄를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왕족"을 언급한 시대착오적 발언이 비난을 받았다.
자유청년연합 등 7개 시민단체는 광화문에서 1주일간 촛불집회를 열었다. 종북세력을 규탄하는 타 정치적 집회와 달리 순수하게 대사의 쾌유를 비는 자리임을 강조했고, 모 시사평론가 등이 참석했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있는 황선 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후보의 남편 윤기진은 재판이 진행되고 있던 서울법원 종합청사 근처에서 FTA, 무기 판매 등에 대한 미국 측의 책임을 묻는 시위를 하면서 "얼굴에 상처 조금 난걸로 온 나라가 난리"라고 발언하여 물의를 일으켰다.
이외에 각계 각층의 병문안이나 행사로 인해 병원에서 환자를 좀 쉬게 해 달라며 면회를 자제시키는 일도 벌어졌다. 리퍼트 대사의 수술과 치료를 집도한 세브란스 병원의 국제진료센터장인 인요한 의사는 3월 11일 CBS 박재홍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가해자 김기종에 대해서는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북한 배후론을 부정하였고, 일부 보수진영의 쾌유기원 집회에 대해서는 "요란하게 할 필요 없이 직장으로 돌아가라"고 비판하였다.
일각에서 나라망신이라고 반응할 정도로 각종 보수단체가 앞다투어 행사를 연 데는, 정부가 공익활동사업 지원금을 친정부 성향이 짙은 단체에 지원해 온 병폐가 영향을 끼친 부분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2015년 6월에는 리퍼트 대사가 아직 성치 않은 몸으로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찾아와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을 격려했고,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빌던 보수단체들 역시 축제 현장에 따라와 차이콥스키 발레와 부채춤, 난타를 다시 선보였다... '''응?''' 사건의 진상은...
2015년 9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세월 오월 그림과 박근혜 출산 그림으로 논란을 빚었던 작가 홍성담이 김기종을 미제 강점에 대한 절망을 칼로써 표현한 것이라며 안중근과 같은 사람이라고 추켜세우는 그림을 그려 파문을 일으켰다. 정신나간 테러리스트를 침략에 저항한 안중근과 동일시함으로 안중근 의사에게까지 동시에 피폭을 전하고 있다.
2016년 10월 온라인에선, 개신교 단체에서 굿판을 벌인 것에 관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의 관련 의혹이 재평가되기도.
8.2. 온라인에서의 활동들
사건 직후에는 아래와 같은 논란이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오갔다.
- 김기종이 손으로 쓴 이름표로 입장했다는 기사에 대해 행사 관계자 중에 내부 협조자가 있다는 음모론이 제기되었다.
- 김기종이 오늘의유머 회원이라는 글이 떴으나 조작임이 밝혀졌다.
- 김기종의 계좌번호와 연락처를 이용한 모금 운동 글이 일베저장소에 게시되었다는 기사에서 김기종의 출신지에 따른 지역드립에 대한 우려를 보였다. 이에 대해 일베회원은 패러디를 진짜로 오보했다며 고소하겠다 밝혔다.
- 다음 아고라에는 한국일보 디지털뉴스 내용을 인용하여 올라온 박근혜 자작극이란 음모론이 회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좌우안가리고 타사이트의 비난을 받았다.
- 트위터에서는 어버이연합이 민화협 앞에서 벌인 시위와 관련하여 민화협 대표는 홍사덕이라는 트윗이 화제에 올랐고, 인공기 제작, 소지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빈 한 시민단체가 2014년 세월호 사건 당시 보였던 태도가 재조명되면서 어느 나라를 위한 단체냐는 지적도 있었다.
9. 관련 문서
[1] 전 한국 YMCA전국연맹 통일위원장이자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로 친북 반미 성향의 통일신학 권위자이다. 처음 채널A 보도에서 노종상으로 나왔지만 이후 수정되었다.[2] 새누리당 소속의 경상북도 영주시 지역구 국회의원이다. 대한민국 육군 법무장교 출신에 육군특수전사령부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또한 2015년 3월 대한복싱협회장을 맡았다. [3] 미국 선교사의 아들로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부인도 일본인에다 역사학으로 동아시아를 연구한 일본통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교토 핵공격을 막았던 게 이 사람 덕이라는 설도 있다. 현행 로마자 표기법 제정 이전에 쓰던 메큔-라이샤워 로마자 표기법을 고안했던 인물이기도 하다.[4] 리퍼트 대사 피습 이전만 해도 웬디 셔먼 차관의 해당 발언은 개인 자격으로 나간 강연회에서 나온 것이라 미국 현지의 주요 언론은 관심있게 보도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리퍼트 대사가 피습된 이후부터 미국 현지 언론에서도 웬디 셔먼 차관의 발언을 뒤늦게 보도하기 시작했다.[5] 돈 오버도퍼는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이며, 현재 존스홉킨스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8년에 기사에서 소개된 저서 <2개의 한국>을 발표하여 미국의 저명 한반도 전문가로 인정받았고, 해당 저서는 이후 몇번의 개정판을 내는 등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한반도 현대사 관련 서적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성향은 대북 대화에 긍정적인 온건파.[6] 이 단락은 한국일보의 표현을 그대로 따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