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임
許任
(?~?)
1. 개요
조선의 한의사. 본관은 하양(河陽)이며 허억복이라는 이름을 가진 장악원 악공의 아들이지만 관노 출신의 자식이기 때문에 천민이었다가 이후 어의까지 오른 인물이다. 허임의 7대조는 세종 대의 명재상이었던 '송골매' 허조(許稠)로 알려져 있으며 허씨 가문이 단종 복위 운동과 연루되어 신분이 강등되었다. 허조의 아들 허후(許詡)는 수양대군의 권력 찬탈에 반대하다 교형을 당하고 손자 허조(許慥)는 사육신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기도하다 발각되어 자결했다. 단종 복위 기도에 연루되어 하양 허씨 문경공파 가문의 직계는 사형을 당하고 “백·숙부(伯叔父)와 형제의 자식들은 먼 지방 잔읍(殘邑)의 노비로 영원히 소속시키라”는 명에 따라 허임의 조상도 괴산으로 부처(付處)되어 관노에 편입된 후 몸종 생활을 전전한 것으로 추측된다.
허준이 선조에게 "침술은 자신보다 허임이 낫다"라며 추천했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실제로 잘 알고 있는 사이인듯 보인다. 임진왜란 때에는 광해군의 분조와 함께 전장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광해군의 신뢰를 받은듯 싶다. 광해군 시절에 신임을 받아 남원부사에까지 올랐으며 천출이라는 이유로 대신들의 반대가 거듭되었음에도 크게 중용되었다. 인조반정 이후 관직을 버리고 집필 활동에 힘을 써서 '침구경험방'이라는 서적을 냈는데 당시 중국과 일본에 수출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책을 청나라에서 표절한 이가 있어 크게 논란이 일었다고 한다.
2. 여담
역덕후나 한의대생이 아닌 이상 기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의원이었으나 한의대생이 되고 나면 허준 다음으로 의미가 커지는 인물이다. 동의보감의 단점 중 하나가 처방하는 약과 정리 수준에 비해 침구학 부분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양이 적고 부족하다는 것인데 침구학 부분에서는 확실히 개선을 해주는 조선 시대 의서가 침구경험방이기 때문이다. 허준이 침 치료에 있어서 허임을 추천한 사례는 실제 역사에도 기재되어 유명하다.
왕이 불렀음에도 늦게 들어갈 정도로 좋게 보면 배짱이 있었고 나쁘게 보면 괴팍했다. 때문에 사간원에서 허임을 비판하여 벌을 내릴 것을 주청하였으나 뛰어난 침술로 인해 오히려 상여금을 받는다.
사이비 침구사인 김남수는 허준조차 침은 잘 못 놓았다며 자신을 허임에 비유하기도 했다. 한의사들이 침을 못 놓는다고 주장해대며 불만있으면 침술 대결을 해보자고 했다가 진짜로 일침학회 창시자가 응하자 도망간 행적을 생각해보면 허임이 하늘에서 소송을 걸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애초에 허준이 "침술은 허임이 낫다."라고 말한 것은 비교라서 허준이 침을 잘 못 놓았다는 단서가 되지 못한다.
3. 대중매체에서
대중매체에서는 명불허전 드라마에서 타임슬립을 하여 미래로 온 허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3.1. 명불허전
- 해당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