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진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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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대구 달서구 병)'''
제17대
김석준

'''제18~20대
조원진'''

제21대
김용판









'''초대·제2대 우리공화당 대표
조원진
趙源震 | Jo Won-jin
'''
<colbgcolor=#009944> '''출생'''
1959년 1월 7일 (66세)
경상북도 대구시 원대동
(現 대구광역시 서구 원대동)
'''본관'''
배천 조씨[1]
'''학력'''
인창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 / 학사)
영남대학교 (정책분석학 / 석사)
'''병역'''
육군 하사 만기전역[2]#
'''종교'''
개신교 (예장합동)[3]
'''가족'''
배우자 성희숙, 슬하 1남
'''소속 정당'''

'''정치 성향'''
극우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8, 19, 20
'''현직'''
우리공화당 대표
(애국정책전략연구원 이사장 겸임)
우리공화당 대구시당위원장
'''별명'''
진박감별사, 조트럼프, 조동아리, 곰탱이, 조곰, 조진핑[4], 욕망의 항아리[5]
'''외부 링크'''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1. 개요
2. 생애
6. 대우그룹과의 인연
7. 기타
8. 소속 정당
9. 선거 이력
10. 이력
11.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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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 출신 정치인. 제18-20대 국회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병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현재 우리공화당의 당대표이다.
2017년 4월 8일 자유한국당을 탈당하여 새누리당에 입당했고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서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추대되었다.
2017년 4월 11일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경선 후보로 단독 입후보한 조원진을 대선후보로 공식 확정했다.
2017년 6월 16일부로 새누리당에서 제명처리 되었으나 # 대한민국 정당법 제33조에 의해 효력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먼저 나가지 않는 한 당적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소속을 유지한 채 7월 8일 대한애국당 창당준비위원회를 만들었으며 8월 30일 정식 창당했다.

2. 생애


1959년 1월 7일 대구 원대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종로초등학교, 협성중학교, 인창고등학교(서울)[6],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학 학사, 영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분석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예비역청년협회장으로 학생운동에 앞장섰다.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여 통일민주당 당원이 되었다.
본래 한국외대 총장을 역임하면서 조원진을 눈여겨보았던 황병태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이에 응한 조원진은 그의 보좌관이 되었다.[7] 그러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황병태가 낙선하자 정계를 잠시 떠났다.
이후 1993년 (주)대우 베이징 주재원으로 중국에 첫 진출했다가 1996년 퇴사, 일시 귀국했으며 2000년대 초반 베이징으로 다시 들어가 사업을 하면서 재중국한인회 부회장 겸 세계한인무역인협회(OKTA) 베이징(北京)지부 회장을 지냈다.
초기 정치 경력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데,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이인제가 이끌던 국민신당에도 가담해서 대구 수성구 갑 지구당위원장을 역임한 적도 있었지만, 1998년 7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국민신당을 탈당하고 북구 갑 지역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처음 선거 경력을 시작했다. 이때는 4등으로 낙선했고, 16대 총선에서도 다시 무소속으로 대구 북구 갑(대구)에 출마했지만, 또 4등으로 낙선했다. 이때까지는 극우 성향은 아니었고, 오히려 민주계 출신인 만큼 개혁 성향에 가까웠다. 그리고 중국에서 사업을 했는데, 이때 몽골까지 진출하고 (몽골 현지 법인의 대표 역임) 세계한인무역협회의 상임이사 겸 베이징회장을 지냈다.
2008년에 열린 제18대 총선 당시 친박연대 소속으로 달서구 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유재한을 꺾고 당선된 후 한나라당에 복당했다. 사실 달서구 지역은 그가 두 번 출마했던 북구도 아니었고, 정치 경력도 상대인 유재한이 주택금융공사 사장 출신인 반면에 두 차례의 국회의원 출마와 중국에서의 소규모 기업 경영이 경력의 전부였다. 더군다나 친박연대에서 해당 지역에 송영선 출마를 검토하는 바람에[8] 실제 출마 여부도 선거 등록 당일에서야 결정되는 등,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보였는데도 이 당시 선거에서 불었던 친박 바람에 힘입어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때 이후로 3선 의원이 되는 동안 내내 쭉 친박계 세력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2016년 기준 새누리당의 원내수석부대표 겸 국회운영위원회 간사였다.
유승민 前 원내대표과의 대립 과정에서 최경환 前 경제 부총리와 함께 ‘진박(眞朴) 감별사’를 자처하였다.
2016년 20대 국회가 구성되면서, 같은 당 소속인 신상진 의원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1년씩 나눠서 맡기로 했다. 그러나 조원진 의원이 중도에 탈당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9일 실시된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2016년 12월 탄핵국면에 폭로한 9명의 친박의원 모임의 일원이다.# 이른바 '''친박 9인회'''. 최씨 일가와 문고리 3인방 등이 사라져 생긴 박근혜정부의 권력 공백을 2016년 10월 25일 1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날부터 이들이 메우고 지원하고 있다.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을 축으로 정갑윤, 원유철, 정우택, 홍문종, 유기준, 조원진이 포진하고 있다. 매일 작전회의를 하여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해준다고 하였다. 정황상 탄핵 정국에 혼란을 야기하였던 제3차 대국민 담화도 이들의 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3. 제19대 대통령 선거


2017년 4월 8일 탄핵반대 집회에서 자유한국당 탈당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바로 새누리당에 입당하였으며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조원진의 대선출마에 대한 여론은 꽤 싸늘하다. 심지어 극우 신문인 뉴스타운마저 조원진의 대선출마를 대차게 까고 있는 실정이다.[9] 그의 대선출마로 인해 보수진영은 또 한 번의 분열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두 갈래로 갈라져버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보다 더 극우인 새누리당이 등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 국가정보원장남재준 역시 출마함에 따라 보수표도 성향에 따라 강성친박의 극우 표인 조원진과 남재준, 비박과 온건친박의 보수 표인 홍준표, 비박 또는 반박의 중도보수 표인 유승민이재오 이렇게 다섯 갈래로 갈려져버리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박근혜 즉각 석방, 박근혜 탄핵 주동자 심판, 언론에 대한 강력한 제재, 5.18유공자 전수조사, 동성애 금지(반동성애법 제정), 국정교과서 의무화[10], 세월호 관련 조사 중단 및 금지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11] 여론조사 지지율은 1% 안팎이다.
2017년 4월 24일 열린 19대 대선 비초청 후보 토론회에서는 김선동 민중연합당 후보에게 종북몰이색깔론을 들이대다가 '철 지난 메뚜기'란 조롱을 들었다. 기사 1 기사 2 오해를 막기 위해 기술하자면, 김선동 후보도 잘한 것은 없다.[12] 나머지 후보들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이 비초청후보 토론의 최대 승자는 '''이재오 후보'''라는 게 중론이다.
19대 대선 선거송으로 유명 동요인 곰 세마리를 각색하여 쓰고 있다. 그 외에도 실제로 곰을 닮은 외모를 의식해서인지 19대 대선 후보 중 유일하게 캐릭터를 내세워 홍보했다.
[image]
심지어는 선거 현수막에 공약이 아니라 '''"박근혜를 석방하라!'''"라는 문구로 박근혜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선거 1주 전가량 바른정당에서 보수 단일화를 요구하며 15명의 국회의원이[13] 탈당하고 자유한국당에 복당하려 하자 '자유한국당도 탄핵 주역에 배신자이다'라 비난하며 홍준표와의 단일화 협상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에다 홍준표 후보 측의 댓글부대 운용 의혹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기사
투표 당일인 5월 9일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넣은 현수막이 등장했다.
한국갤럽이 조사한 조원진 후보의 예상 득표율은 0.3%라고 한다. # 1%도 못 넘은 예상 득표율이지만 그나마 원외정당 후보들보단 높은 수치이다.
개표 결과, 42,949표(0.13%)를 획득해 6위로 낙선이 확정되었다. 이는 5위를 한 심상정의 약 47분의 1 정도 되는 득표 수이다. 당초 박근혜 탄핵에 반대했던 유권자들의 대거 지지를 기대했으나 예상 득표율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대부분의 탄핵 반대자들이 좀 더 당선 가능성이 높은 홍준표에게 투표했으며 보수후보의 재집권이 어려워지자 박사모 등 극렬 새누리 지지자들도 일부는 홍준표에게 투표한 것으로 보인다.[14] 이 정도면 확실히 정치 약체이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주낙영이 경주시장 선거에서 얻은 47,656표보다 4,707표를 적게 받았다. 참고로 주낙영은 당선되었다. 이렇게 조원진은 무려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음에도 불구하고 일개 시장, 그것도 군소 시장에 출마한 후보보다 표를 더욱 적게 받을 정도로 처참한 결과를 냈다.
2017년 6월 1일 새누리당에서 13개월 당원권 정지를 당했다. # 그리고 15일 뒤인 6월 16일, 공식적으로 제명 처리되었다고 한다. # 하지만, 정당법 33조[15]에 의해 본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제명처리가 진행되지 않는다. 소속 의원의 1/3의 동의가 필요한데 자기자신뿐이라 애초에 성립이 안되기 때문.

4. 대한애국당/우리공화당 시절


2017년 6월 30일 신당 창당을 결의했다고 한다. 7월 8일 대한애국당을 공식 창당했다.
여담이지만 5월 7일 eUnited 팀의 팬미팅 때 옆에서 유세를 하고 있었는데 해리슨 폰드를 보러온 학생들이 자신들을 도우러 온 것이라며 주장을 하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21대 총선에서는 자신의 원 지역구인 대구광역시 달서구 병의 출마를 확정지었다. 하지만 대구에서조차 강성 친박[16]은 부담스러웠는지 미래통합당 김용판 후보에게 크게 밀려 4선 연임에는 실패했다.[17] 심지어 더불어민주당 김대진 후보의 득표율보다도 낮은 15.0%의 득표율을 올리는 데 그쳤다.[18] 그나마 간발의 차이로 선거비용과 기탁금 전액을 보전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나 할까? 보수의 텃밭이다 못해 성지이자 더불어민주당지옥대구광역시 지역구에서조차 더불어민주당에서 나온 후보보다도 더 적은 표를 받는 바람에 조원진은 선거 경쟁력이 아예 없음을 입증하고 말았다, 나중에 22대 총선 때에 기성 빅텐트 보수정당으로 복귀하여 출마한다면 모를까, 나중에 또 극우성향 소수정당 후보로 출마한다면 떨어질 확률이 매우 높다.
2020년 7월 6일 우리공화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5. 논란




6. 대우그룹과의 인연


만 34세에 대우자동차를 거쳐 대우 중국기획조사부 부장까지 했었다. 그 후 황병태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두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16대 총선 선거공보물에는 명동판매라는 기업의 대표이사를 지내고 있다는 언급이 나오기도 한다.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인 2001년엔 중국에서 무역 컨설팅 사업을 하기도 하였다. 이때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의 베이징 지회장을 역임하기도 하는 등 사업 수완은 있는 인물로 사료된다. 김우중 회장과의 인연이 있다.

7. 기타


김진태김태흠친박의 돌격대장이라면 조원진은 광신도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사실 광신도인 척을 하면서 박근혜를 동정하는 국민들의 표를 바탕으로 정치 활동을 해나가고자 하는 고도의 전략을 가진 인물일지도 모른다. # 탄핵까지는 아니지만, 4월 30일 퇴진을 주장했고, 최순실 특검법에도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게다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대구광역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넷 중 4위라는 처참한 경선 결과로 인해 다음 지선에서 대구시장 공천을 장담할 수 없게 되어 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직접 당을 만들었다는 시각도 있다. 참고로 정당 소속 후보가 내야 하는 공탁금이 무소속 후보가 내야 하는 공탁금보다 적다.
19대 대선 당시 무매독자 아들이 아버지의 대통령을 유세하는 장면이 공개되었다. 아들은 1998년 생이며, 외모가 꽤 훈훈한 편이라고...
대선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였던 조원진에게 전라도 출신[19]이라는 허위 사실을 유포한 일베 회원이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
2017년에만 4개의 당적을 기록했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새누리당(2017년)대한애국당) 모두 6개월 동안 일어났으며, 이는 10년 전인 김한길과 김한길계 정치인들과 타이를 이룬다.[20] 이렇게 당적을 갈아 치워도 특이하게도 철새 취급은 받지 않는다. 철새는커녕 변경된 당적의 공통점이 전부 친박, 탄핵 반대 집회 쪽 노선이라 오히려 그가 가진 정치색이 더욱 진해졌다고 봐야 한다.[21]
2017년 10월 23일 박근혜 석방 등을 주장하면서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가 11일만에 단식을 포기하고 휠체어에 앉아 실려나갔다.
새누리당 시절 강기정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광주 망월동 묘지에 들러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는 사실이 있다. 다른 친박들은 잘 따라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고 현재 모습을 보면 참 웃긴 부분이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1살 위의 친누나 조화영 씨가 대한애국당 동구청장 후보로 출마하였다. 그녀는 경희대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동구에서 개업 한의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7월, 국감을 진행하는 도중에 더불어민주당 의원인 강창일이 질의하는 도중에[22] 옆에서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며 언쟁을 벌였고 격노한 강창일에게 양아치 소리를 들었다.[23]
2018년 10월, 서울특별시 국정감사 도중에 서울시청에 난입한 김성태 의원을 언급하여 "김성태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라고 발언했다.[24]
20대 국회에서 본회의 불출석율이 50.0% 였다. #

8.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87 - 1990
창당[25]
정계 입문

1990 - 1995
합당[26]

1995 - 1997
당명 변경

1997
국민신당 합류를 위한 탈당

1997 - 1998
창당

1998 - 2008
탈당

2008
정계 복귀
입당

2008
한나라당 복당을 위한 탈당

2008 - 2012
입당

2012 - 2017
당명 변경

2017
당명 변경

2017
새누리당 입당을 위한 탈당

2017
입당

2017
제명

2017 - 2019
창당

2019 - 2020
당명 변경

2020
합당[27]

2020 -
당명 변경

9.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8
7.21 재보궐선거
대구 북구 갑

2,453(5.0%)
낙선(4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5,526(7.6%)
낙선(4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달서구 병

'''26,357 (49.23%)'''
'''당선 (1위)'''
[28]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49,842 (74.77%)'''
'''당선 (1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43,817 (66.24%)'''
'''당선 (1위)'''
[29]
2017
제19대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42,949 (0.13%)
낙선 (6위)
[30]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달서구 병

12,707 (15.08%)
낙선 (3위)


10.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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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8세손 원(源)자 항렬을 쓴다.[2] 병사출신 일반하사이다. 현재의 전문하사와 동일하다.[3] 출처 대구북부교회 집사로 알려져 있다.[4] 중국과 관계가 깊었던 그를 비꼬는 별명이다.[5] 2017년 19대 대선 당시 '후보자에게 바란다'에서 "욕망의 항아리 실화냐" 라는 말도 올라왔다.[6] 청구고등학교에서 전학[7] 학내분규에 책임을 지고 쫓겨나다시피 외대 총장직을 사퇴한 황병태를 따라간 행적은 훗날 조원진의 정치적 위치를 생각해보면 실로 묘하다고 할 수 있다.[8] 송영선은 비례대표로 옮겨가 당선되었고, 이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남양주시 갑으로 옮겨서 현직 당협위원장인 심장수의 지역구를 빼앗아 논란이 있었다. 알다시피 송영선은 이후 비리로 당에서 제명되었고, 그 후 탈박하여 비박계로 전향했다.[9] 다만 뉴스타운은 대선후보로 남재준을 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비난할 수밖에 없다.[10] 그러나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후 국정교과서는 사형선고를 받게 됐다.[11] 재미있는 점이라면, 박근혜의 석방만 외쳤을 뿐 대통령직 복권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12] 애당초 김선동은 서갑원, 이정현과 함께 '''순천시 국회의원의 수치 3총사'''에 나란히 꼽히는 인물이다. 더군다나 민중당 자체도 舊 통합진보당 NL계가 뿌리인지라 종북몰이를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라고 보기도 한다.[13] 김성태, 김학용, 김영우, 여상규, 장제원, 이진복, 이은재, 이종구, 박성중, 홍문표, 홍일표, 권성동, 이군현, 황영철, 김재경을 의미한다. 대다수가 김무성계에 속한다.[14] 정작 무소속으로 나와서 지원이 불리하면서도 7위를 기록한 정치신인 김민찬에게도 밀릴 뻔했다.(당장 울산과 경남, 호남, 충남, 충북, 제주, 세종에서 밀렸다.) 최종 순위는 6위이다.[15] 제33조(정당소속 국회의원의 제명) 정당이 그 소속 국회의원을 제명하기 위해서는 당헌이 정하는 절차를 거치는 외에 그 소속 국회의원 전원의 2분의 1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당 소속 국회의원이 조원진 한명 뿐이라 자기가 찬성하지 않으면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다.[16] 원래는 해당 지역구에서 평판이 나쁘지 않았으나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집회등으로 최근들어 평판이 급속도로 나빠졌다는 게 중론[17] 선거 막바지 낙선이 예상 됐는지 당선되면 미래통합당과 합친다는 현수막까지 내걸었으나 결국 낙선했다.[18] 그래도 15% 득표로 지역구 관리를 개판으로 하지 않았다는게 증명되었다. 정말 지역구 관리를 개판으로 한 인물들은 나가도 한 자리수 득표율을 받는다.[19] 일베에서 전라도 출신은 거진 불가촉천민 수준으로 취급받으며, 극우세력에서는 전라도=민주당의 이미지가 강하다.[20] 같은 6개월이어도 김한길계가 조원진보다 약 2주 빠른 기록을 가지고 있다.[21] 애초에 한국 정치에서 철새라는 평판을 받게 되는 정치인 대부분은 당적 변경 때문에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정치색과 노선이 다른 '정파'(예를 들어 범보수계-범민자당계-와 범 민주당계, 또는 범 진보계 등의 정파)를 바꿀 경우 철새라는 소리를 듣기 쉬운 것. 같은 정파 내에서 당적을 변경하는 것만으로 철새라는 낙인이 찍히는 경우는 드물고, 특히 정치상황의 변화로 정당의 이합집산이 일어나는 시기에 당적이 바뀌는 건 별로 특이한 일도 아니다. 6개월간 4개의 당적을 기록한 것이 진기록이기는 하나, 짧은 시간 내에 당적 변경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멀쩡히 잘 있는 정당(정파)에서 떠나 다른 정파(정당)으로 이적한 것이 아니라 그 짧은 기간동안 맹렬한 정파 내의 이합집산이 그만큼 심하게 일어났다는 의미이므로 딱히 철새취급을 받기 쉬운 조건은 아닌 것. 그리고 위에도 설명된 것처럼 조원진의 경우 친박 대표주자라는 자신의 정치적 노선-정체성-은 단 한번도 버린 적이 없다. 단지 친박/탄핵반대 정파 내에서 그만큼 정파의 이합집산이 격렬하게 일어나 여러번 당이 쪼개지고 나눠지고 뒤집힌 것 뿐이다.[22] 강창일이 민갑룡 경찰청장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을 두고, 통과시킬지 말지를 자유한국당에 재촉하는 장면이었다.[23] 하긴 3년 전인 2015년에도 강창일과 말다툼을 벌였던 적이 있었다.[24] 하필이면 서울시청 국정감사 도중에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서울교통공사 친인척 채용비리에 항의하기 위해 서울시청에 들어가는 도중에 경찰들과 몸싸움 및 욕설이 오고 갔다. '''참고로 서울시청을 포함한 공공장소의 내부에는 집회금지구역이다.''' 이 추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김성태 의원과 자유한국당을 맹비난했다. 오죽하면 반보수 성향언론인 민중의소리도 그를 옹호하는 영상까지 올렸을 정도.[25] #[26]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27] 자유통일당과 신설 합당[28] 2008년 한나라당 복당[29] 2017.04.10: 자유한국당 탈당
2017.04.10: 새누리당 입당
2017.08.30: 새누리당 탈당
2017.08.30: 대한애국당 창당
[30] 전임자 박근혜 탄핵 인용에 따른 파면으로 인한 궐위에 의한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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