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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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릉

玄正陵 / Hyeon Jung Rung
1. 개요
2. 역사
3. 형식
4. 관련 문서


1. 개요


고려왕릉. 북한행정구역개성특별시 해선리 소재(남한 행정구역은 경기도 개풍군 토성면 여릉리 소재). 개성 시가지의 서쪽에 있으며 태조 왕건이 묻힌 현릉(顯陵)과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다. 공민왕의 능은 서쪽(왼쪽)이 현릉(玄陵), 노국대장공주의 무덤은 바로 옆 동쪽(오른쪽)의 정릉(正陵)으로, 묶어서 현정릉(玄正陵)이라고 부른다. 북한의 국보 제123호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개성역사유적지구로 등재되기도 했다.
북한에 있는 고려왕릉들의 관리상태가 심히 안습한 가운데서도 넷상에 퍼진 사진들로 보나 위성지도로 보나 상당히 관리가 잘 되고 있는 편인 것 같은데, 실제로 위성지도로 확인해보면 개성 주변의 산들은 북한 다른 곳들도 대부분 그렇듯 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산인 경우가 많다. 여러 개성 고려왕릉들도 사진을 확인해 보면 나무 하나 없는 황량한 산중턱에 외롭게 서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유독 여기와 현릉은 왕릉 주변에만 조금 있는 것이긴 하지만 왕릉 근처로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그럭저럭 잘 정비된 모양새도 갖추고 있다. 북한 정권이 그나마 신경쓰는 문화재 중 하나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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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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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고적도보에 실려있는 1920년대 현정릉의 모습. 봉분이 많이 깎여있는 모습이 보인다.
노국대장공주가 1365년 2월 15일에 승하하고,고려사 기사 1365년 4월 4일에 정릉(正陵)에 장사지냈으며,고려사 기사, 이후인 1366년 5월에는 덕릉(德陵)[1]의 나무를 거의다 베어다가 정릉의 재실을 만들었다. 고려사 기사
9년 후인 1374년에 공민왕이 승하하자, 1374년 10월 28일에 공민왕을 정릉의 서쪽에 장사지내고 현릉(玄陵)이라고 하였다. 고려사 기사 1 고려사 기사2

3. 형식


현정릉의 구조는 조선왕릉과 매우 흡사한데, 현정릉의 양식이 조선왕릉의 형식에 모범이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현정릉의 석물들을 살펴 보면 봉분에 병풍석(또는 호석)과 난간석을 각각 둘렀고, 봉분 주변에는 석양과 석호를 각각 4쌍씩(석양 8기, 석호 8기)과 망주석 1쌍, 혼유석 1쌍, 장명등 1쌍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그 아래 부분에는 문인석을 2쌍, 무인석을 2쌍씩 배치하였는데, 조선왕릉의 형식과 비교해 보았을 때 조선왕릉이 문인석과 무인석 곁에 석마를 배치하였다는 점을 빼면 거의 동일하다. 이러한 현정릉의 형식은 태종원경왕후가 함께 안장되어 있는 헌릉과 비교해 보면 더더욱 그 유사성을 살펴볼 수가 있다.
다만, 정자각부터 봉분에 이르기까지 계단을 배치하여 권위적인 분위기를 내는 것은 조선왕릉과 사뭇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정릉은 두 개의 왕릉을 붙여서 배치하고서도 각 봉분에 능호를 따로 부여하였는데, 이러한 점은 조선왕릉 초기의 왕릉[2]에도 적용이 되다가, 차츰 사라지게 된다.

4. 관련 문서



[1] 고려 26대 왕 충선왕의 왕릉[2] 태조 이성계의 선조이자 추존왕, 추존왕후들이 묻혀 있는 왕릉들은 쌍릉으로 조성하였음에도 능호를 각각 부여하였는데, 목조가 묻힌 덕릉(德陵), 그의 부인이니 효공왕후가 묻힌 안릉(安陵)이 대표적인 사례이다